울지 않는 늑대
팔리 모왓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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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당히 날렵한 얼굴에는 검은 코와 날카로운 이빨이 있지만, 어둠 속에서는 갈색의 예쁜 눈동자가 수정처럼 반짝인다. 북극의 살인적인 추위에도 견딜 수 있는 멋진 은회색의 두터운 털외투를 걸치고 긴 다리로 꼿꼿이 앉아 있는 늠름한 늑대의 모습에 오래전부터 나는 매료되어 왔다. 늑대는 야생 동물 중 유일하게 일부일처제를 고집하고 있고, 씨족 위주로 5~10마리 가량 구성된 무리는 끈끈한 유대감에서 비롯된 놀라운 사회성을 이루고 있다. 무리의 리더는 탁월한 통솔력을 지닌 매우 용감하고 영리한 녀석이다. 늙어서 은퇴하지 않는 한 절대 자신의 가족들을 버리는 일이 없다. 새끼들을 기르는 어미는 사람의 어머니와 다르지 않다. 오직 새끼의 안전과 건강만을 염려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는 모습은 늘 나와 함께 있는 인자하신 누군가와 닮아 있다.

  야생의 세계는 오직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단순한 논리가 적용되는 예도 있겠지만, 조금만 더 깊이 파고들면 감동과 놀라움이 더욱 더 만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바로 늑대의 예가 그렇다. 이 매력적인 동물에게 나는 오래전부터 매료되어 왔는데, 그 시발점은 웹서핑 하다가 우연히 시청했던 다큐멘터리 때문이었다. 세상 모든 동물들에게 매력을 느끼기는 하지만, 특히 야생 동물에 관심이 많았는데, 늑대의 습성을 제대로 알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 기특한 영국 방송 덕택이었다. 어렸을 적 ‘시튼 동물기’에서 읽었던 ‘이리왕 로보’처럼 소름끼치도록 영리하고 멋진 늑대들. 일종의 자기 최면처럼 나에게 받아들여진 늑대라는 존재는 언제나 서구에서 경시하던 악마의 화신도, 인간을 잡아먹는 잔인한 동물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먹고 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인간과의 보이지 않지만 편안한 공존을 위하여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기를 갈망하는 약한 짐승일 뿐.

  「울지 않는 늑대」는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캐나다의 동물학자인 ‘팔리 모왓’이 캐나다의 아북극 지역에서 1년가량 늑대를 연구하던 당시를 기념하며 썼던 책이다. 저자 역시 늑대는 그저 살인귀일 뿐이고, 이유 없이 순록들을 살상하여 멸종 시키는 무자비한 동물이라는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늑대라는 동물에게 연상되는 이미지는 절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늑대 한 마리의 목에 몇 십 달러의 현상금까지 걸려 있어서 늑대를 죽여서 돈을 버는 전문 사냥꾼까지 만연하게 존재하던 시절……. 잔인한 이 동물을 연구하기 위해 얼어붙을 만큼 추운 북극에 온 저자는 조금씩 늑대라는 동물을 알아가며 늑대의 매력에 매료되기 시작한다. 마치 언젠가의 나처럼.

  논픽션이기에 더욱 생생한 그 때의 감동들이 밀려온다. 저자는, 눈으로 뒤덮인 낯선 지역으로 날아가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에스키모들과 친해졌고, 늑대의 편견과 오해를 풀어가며 그들의 생활방식을 하나씩 하나씩 이해하고 알아 갈 때의 희열을 느낀다. 한 무리의 가족을 이루고 있는 늑대들을 연구하면서, 조지, 앤젤린, 앨버트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마치 동물이 아닌, 우리와 비슷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생명체를 바라보는 듯 유머러스하게 상황을 풀어간다. 그리고 이유 없이 대량 살상을 일삼는 인간들을 보면서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느낄 수 있었을 분노들. 우리네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살상의 문화는 그저 환멸만이 가득한 서글픈 문명일 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인간과 짐승의 역할이 바뀐 듯 했다.

  늑대들의 그 고집스러운 우직함이 좋았다. 아니, 늑대뿐만 아니라 모든 야생의 세계는 그들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주어진 것만을 탐하는데 반해, 우리는 늘 지나친 욕심을 향해 달려가지 않았던가. 필요 이상으로 먹고,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려 하고, 필요 이상의 즐거움을 찾다가 지금은 이 우직한 늑대라는 친구들을 찾아보기조차 힘들어졌다. 그들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던 아름다운 울음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인간 사회가 별 이상한 이유를 다 갖다 붙여서 파괴하려고 했던 이들의 세계는 결국 우리들의 잃어버린 세계일뿐이다. 울지 않는 늑대처럼, 우리도 우리들이 간직했던 소리를 잃게 될까? 그런 후엔 그들처럼 흔적도 없이 멸종되어 사라지지 않을까.

  모든 일에 오만한 결정권자가 제멋대로 내렸던 판단들이 정확하지 않았던 것처럼, 세상과의 경계에서 지독한 피해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은 죄 없는 야생 늑대들뿐이다. 인간과 공존하며 자신들이 몇 만 년 전부터 터 잡고 살았던 작은 영역을 지키고자 했던 그들에게 목청껏 울 수 있는 그 세계를 다시 돌려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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