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안 되는 거야.
- 1904년 1월, 카프카,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 중-

땅콩을 거두었다.
덜 익은 놈일수록 줄기를 놓지 않는다
덜된 놈! 덜떨어진 놈!

이 한 줄만으로도 덜된다는 게 이런 얘기구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익으면 떨어지는데, 익지 않아 ‘덜떨어진다는 겁니다. 이 한 줄 자연현상이 인간사로 넘어오는 순간입니다. 현기증 나는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그냥 자연현상인데 순식간에 사람의 것으로 이입이 됩니다. 이 철수는 또 저에게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동양의 삶의 태도와 서양의태도를 가장 극명하게 비교하게 해주었는데요, 그것은 역시 판화 가을사과에 쓴 한 줄의 글이었습니다.

사과가 떨어졌다.
만유인력 때문이란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

사과가 떨어진 걸 만유인력 때문이라고 기어이 과학적으로 밝혀내고야 마는 것은 서양의 장점입니다. 그리고 동양의 장점은 때가 되어서 떨어지는 걸 왜 안달복달 난리들이야 하며 자연을 아우르는 철학입니다.
과학적으로 끌고 온 서양의 담론과 노력은 인정하지만, 동양의 것은 이렇게 쾌도난마亂麻의 느낌이에요. 칼로 퍽 쳐서 단숨에 꼬인 실타래를 확 풀어버리는 맛이 있죠. 서양의 장점이 가져다준 문명적인 혜택,충분히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자연적 재앙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자연현상을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파악하는 동양의 지혜가 다시 힘을 발휘해야 할 때가 되었구나 생각합니다

요즘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고수들이 일상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구나 싶습니다. 박재삼이, 존 러스킨이, 헬렌 켈러가 같은 생각을 했어요. 사과가 떨어져 있는 걸 본 최초의 사람이 뉴턴이 아니잖아요. 사과는 늘 떨어져 있지만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은 겁니다. 상황에 대한 다른시선, 절박함이 사과를 보고 이론을 정리하게 했죠. 답은 일상 속에 있습니다. 나한테 모든 것들이 말을 걸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 들을 마음이 없죠. 그런데 들을 마음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입니다. ... 여러분 안에 씨앗이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한테 울림을 줬던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의성입니다.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파리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곳에있을 시간이 삼 일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삼 일 있다가 떠난다는 걸 아니까 모든 게 난리인 겁니다. 에펠탑 봐, 이게 퐁피두래, 이게 샹젤리제거리야. 그런데 만약 거기에서 삼십 년을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그것들이 그렇게 감탄스러울까요? 대한민국, 서울,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도 들여다보면 좋은 게 꽤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것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선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그러니까 그시선을 길렀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번 말했듯 그런 것들을 기르는 데 가장 좋은 것이 책입니다.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지식이 많은 친구들보다, 감동을 잘 받는 친구들이 일을 더 잘합니다.감동을 잘 받는다는 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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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매 순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행동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행동능력이 있기에 뭔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행동이 불가능해 보일때라도 ‘정신적인 행동이 가능하다. 관점을 바꾸거나 같은 삶의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면서 말이다. 정신적인 행동으로도 우리는 뭔가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희망은 더 나은 시간을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습관에서 한 걸음 벗어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더 유리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 또한 희망이다. "삼촌이 나를 팬다면, 난 삼촌을 죽일 거예요." 에거는 삼촌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런 반항의 행위에서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에거의 희망이 드러난다. 에거는 다가올 미래가 어떻게전개될지 알지 못한다. 그의 행동으로 일상의 익숙한 진행을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의 편이 되어준다. 이 순간 변화가 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이렇게 썼다. "모든 시작의 본질은 그것이 기존의 것,
이미 일어난 것의 시각에서 보면 아주 뜻밖에, 예측할 수 없게 세상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사건의 예측 불가능성이 모든 시작과 모든 근원이 지닌 고유한 특성이다.

안드레아스 에거의 최대 강점은 바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그는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으로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눈사태로 아내와 아이와 집이 모두 송두리째 사라져버리고 자기 뼈가 부러졌을 때도 왜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런 일이 없는데 자기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한 번도묻지 않은 채 견딘다. 이런 받아들임은 게으름이나 무감각의 소산이 아니라 삶의 지혜다. 눈사태는 도덕을 따지지 않는다. 그것을이해하려고 하거나 거기에 반항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에거는 세상이 꼭 정의롭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옳게 하면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지리라고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세상은 오히려 자신이 참여하는 사건이다. 그 때문에 그는 사랑이 찾아오면 사랑을 하고, 슬픔이 밀려오면 슬퍼한다. 그는 삶을 판단하는 대신 삶을 경험한다.

철학자 에픽테토스도 이와 비슷한 태도로 살았다. 그는 노예였다가 풀려난 사람으로, 영혼의 평화를 설파하여 유명해진 철학자다. 그는 삶 자체가 인간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삶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을 변화시킬수도 없기에 괴로운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에픽테토스의 가장 중요한 충고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하라는것이었다. 에픽텍토스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을멈추면 훨씬 더 행복해진다고 생각했다.
에픽테토스는 자신의 철학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일화에 따르면 그는 주인이 때려서 고관절이 부러졌을 때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주인이 노예의 뼈를 부러뜨릴 힘은 있을지언정 그의품위를 손상할 힘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에픽테토스의 평정심이 철학적인 숙고에서 비롯되었다면, 안드레아스 에거의 인내심은 그의 단순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으로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거 역시 언제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좋을지를 지혜롭게 인식한다. 그처럼 에거는 우리에게삶의 지혜는 반드시 외형적인 교육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은 파킨슨병을 앓을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이었어요 . 하지만 그것만 빼면 나는 무한한 선택의 가능성을 안고 있어요. 내가 그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는 오로지 내게 달려있어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우지 몰라도 - 중요하지요. 체념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치료 가능성을 강구하는 것도 아니고요. 거기에서 도망치려 하거나 반대로뭔가를 변화시켜보려고 하면, 정말 힘들어져요."

위기 속에서 성장하는 것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일어난 일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모든 것에는 좋은 면이 있다고 무조건 믿는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실의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바로 그곳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폭풍우가 내 삶을 휩쓸었음을 압니다. 나는 내가 해고당했음을 받아들입니다. 나는 내바람과 달리 이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젊음은 최종적으로 갔습니다. 수술로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인정합니다" 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상황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때, 단순하지만 중요한 질문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질문은 "그래,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어. 하지만 이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시간을 불행이 일어나기 이전 시점으로 되돌릴 수 있었으면 하고 애타게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한 우리는 불행하고 좌절할수밖에 없다. 진정한 성장은 늘 현실을 토대로,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 결코 이전처럼 되지 않을 것임을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은 심지어 ‘더 좋아질 수 있다. 더 깊고, 더충만하고, 더 생동감 넘치고, 더 가치 있고, 더 공감적이며, 더 성숙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조지프는 "트라우마는 마치 팡파르처럼 기존의 경직된 사고와 감정을 점검해보라고 우리를 일깨운다"고 말한다.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것도 우리가 점검해야 할 중요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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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적 존재양식에서 인간은 남들과 비교하여 자신이 우월하다는데에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의식에서, 그리고 결국 정복하고 약탈하고 죽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그러나 존재적 실존양식에서 행복은 사랑하고, 나누며, 베푸는 것에 놓여 있다.
‘소유적 인간‘은 자기가 가진 것에 의존하는 반면, ‘존재적 인간‘은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 기탄없이 응답할 용기만 지니면 새로운 무엇이 탄생하리라는 사실에 자신을 맡긴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고수하려고 전전긍긍하느라 거리끼는 일이 없기 때문에 대화에 활기를 가지고 임한다. 그의 활기가 전염되어 대화의 상대방도 흔히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나를 짓는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은 고결함을 지향한다. 비단결이 고운 것은 올이 많아 섬세하기 때문이다. 자유인은 사물과 현상을 인식하는 사유의 올들에 하나의 올이라도 더 보태거나 수정하여 조금 더 섬세하고 정교하게 세상을 인식하려고노력할 것이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대신 어제의 나와 오늘의나를 비교할 것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존재로 나를 짓기위함이다. 그는 ‘회의하는 자아‘다. 회의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를 짓는 자유는 무의미하다. 고쳐 짓거나 새로 지을 게 없는,이미 완성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유인이 ‘회의하는자아‘로서 지향하는 고결함은 제로섬게임이 적용되는 고귀함과 다르다. 고귀함은 ‘귀함‘이 뜻하듯 태생적으로 선택된 사람이거나 남과 경쟁하여 승리한 자의 몫이다. 고귀함은 그 반대편에 비천함을 필요로 하지만, 고결함은 그렇지 않다. 나의 고결함이 너의 비루함을 전제하지 않는다.

고결함은 남과 경쟁하여 승리한 자의 몫이 아니라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의 산물이며 선물이다. 나의 고결함이 너의 고결함을 가로막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고결함으로 이끈다. 설령 결이 다르다고 해도서로가 서로의 곱고 섬세한 결을 느끼며 향유할 수 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듯이 "지초(芝草)와 난초는 깊은 숲속에서 자라나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향기를 풍기지 않는 일이 없고, 군자는 도를 닦고 덕을 세우는 데 있어서 곤궁함을 이유로 절개나 지조를 바꾸는 일이 없다". 또한 "착한 사람과 함께 살면 지초나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간 것처럼 오랫동안 그향기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부귀영화를 누릴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모두 고결해질 수 있다. 이반 일리치의 말처럼 "스스로 족함을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은 가난할지라도 구성원 모두가 자유로운 곳"에서라면 말이다.

자공이 물었다.
"가난하면서도 비굴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다면 어떻겠습니까?"
"괜찮지. 하지만 가난하면서도 즐겁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것만은 못하겠다."
시경』에 절차탁마(切磋琢磨)라고 한 대목이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킨 것인가요?"

자공아 이제 너와 더불어 시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나!
지나간 것을 말해주니 올 것을 알아차리는구나."


우리는 "가난하면서도 즐겁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가난하면 즐거울 수 없고 부유하면예를 좋아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 나를 고결하게 짓는 자유의 길은 과거보다 더 절차탁마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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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네 렌츠는 그녀에게 "다른 생명과 본질적인 것을 나누는것 외에 생의 더 깊은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100 그생명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연이든 상관없으며, 순간을 나누고싶은 마음이 드는 한 그녀의 남은 인생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좀심하게 말하자면, 그렇지 않으면 그냥 가버려도 좋다는 것"이었다. 자비네 렌츠는 나아가 스스로와 나눌 것이 아직 남아 있는경우에도 생명을 유지할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에게 침묵 하는 사람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말이다.
인생은 자기 안팎으로 살아 있음을 나누고 전달하는 것이다. 죽 음을 앞둔 많은 사람들은 신체적·정신적으로 기진하여 이제 누가말을 걸어도 대답할 힘이 없을 때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한다.

산다는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단순한 것이리라.
매우 일상적이고 비밀스럽지 않으며
매일 매 시간이 그렇듯 아주 평범한 것.
우리는 이렇게 단순한 것이삶이라고 믿지를 못하여
삶을 느끼지도 깨닫지도 못한 채수천 년을 지나쳐왔다.

소설가는 정말로 현실에 가까운 삶을 고안했다. 에거는 행복한 섭리나 놀라운 우연을 통해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며, 그의 질긴 버티기 능력은 세속적인 성공이나 사회적인 명성으로 보상받지도 못한다. 에거의 만족감은 무엇보다 그가 본질적인 것에대한 시선을 잃지 않고, 꾸준히 삶의 기본 밑천을 활용할 수 있었 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에거는 위기 속에서도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단순한 힘과 능력에 의지했다. 그것은 바로 신뢰, 희망, 수용, 사랑, 생명력이다.

온화한 여름밤이면 그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앞에 무한하게 펼쳐져 있는 미래를 생각했다.
미래가 그런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미래에 대해아무것도 기대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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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른도르프는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세심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했다. 그의 글은 시적이고 개성 넘치며 유머러스하다. 그는 거의매일 강렬한 순간들을 경험했다. 병원 카페테리아 앞에서 참새 모이를 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1학년짜리가 제 몸집보다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신호등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저 아이는 지금 자신이 언젠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이전혀 안중에 없겠구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를 한없이 약하게만드는 것은 세 가지다. 세상의 친절함, 자연의 아름다움, 어린아이들,89 그는 실존의 위협을 문학으로, 그리고 깊은 지각으로 승화시켰다. "다른 사람은 살지 못하는 바로 이 순간에 살고 있다는것이 얼마나 불가해한 일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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