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는 매 순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행동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행동능력이 있기에 뭔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행동이 불가능해 보일때라도 ‘정신적인 행동이 가능하다. 관점을 바꾸거나 같은 삶의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면서 말이다. 정신적인 행동으로도 우리는 뭔가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희망은 더 나은 시간을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습관에서 한 걸음 벗어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더 유리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 또한 희망이다. "삼촌이 나를 팬다면, 난 삼촌을 죽일 거예요." 에거는 삼촌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런 반항의 행위에서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에거의 희망이 드러난다. 에거는 다가올 미래가 어떻게전개될지 알지 못한다. 그의 행동으로 일상의 익숙한 진행을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의 편이 되어준다. 이 순간 변화가 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이렇게 썼다. "모든 시작의 본질은 그것이 기존의 것,
이미 일어난 것의 시각에서 보면 아주 뜻밖에, 예측할 수 없게 세상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사건의 예측 불가능성이 모든 시작과 모든 근원이 지닌 고유한 특성이다.

안드레아스 에거의 최대 강점은 바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그는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으로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눈사태로 아내와 아이와 집이 모두 송두리째 사라져버리고 자기 뼈가 부러졌을 때도 왜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런 일이 없는데 자기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한 번도묻지 않은 채 견딘다. 이런 받아들임은 게으름이나 무감각의 소산이 아니라 삶의 지혜다. 눈사태는 도덕을 따지지 않는다. 그것을이해하려고 하거나 거기에 반항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에거는 세상이 꼭 정의롭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옳게 하면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지리라고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세상은 오히려 자신이 참여하는 사건이다. 그 때문에 그는 사랑이 찾아오면 사랑을 하고, 슬픔이 밀려오면 슬퍼한다. 그는 삶을 판단하는 대신 삶을 경험한다.

철학자 에픽테토스도 이와 비슷한 태도로 살았다. 그는 노예였다가 풀려난 사람으로, 영혼의 평화를 설파하여 유명해진 철학자다. 그는 삶 자체가 인간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삶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을 변화시킬수도 없기에 괴로운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에픽테토스의 가장 중요한 충고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하라는것이었다. 에픽텍토스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을멈추면 훨씬 더 행복해진다고 생각했다.
에픽테토스는 자신의 철학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일화에 따르면 그는 주인이 때려서 고관절이 부러졌을 때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주인이 노예의 뼈를 부러뜨릴 힘은 있을지언정 그의품위를 손상할 힘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에픽테토스의 평정심이 철학적인 숙고에서 비롯되었다면, 안드레아스 에거의 인내심은 그의 단순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으로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거 역시 언제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좋을지를 지혜롭게 인식한다. 그처럼 에거는 우리에게삶의 지혜는 반드시 외형적인 교육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은 파킨슨병을 앓을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이었어요 . 하지만 그것만 빼면 나는 무한한 선택의 가능성을 안고 있어요. 내가 그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는 오로지 내게 달려있어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우지 몰라도 - 중요하지요. 체념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치료 가능성을 강구하는 것도 아니고요. 거기에서 도망치려 하거나 반대로뭔가를 변화시켜보려고 하면, 정말 힘들어져요."

위기 속에서 성장하는 것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일어난 일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모든 것에는 좋은 면이 있다고 무조건 믿는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실의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바로 그곳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폭풍우가 내 삶을 휩쓸었음을 압니다. 나는 내가 해고당했음을 받아들입니다. 나는 내바람과 달리 이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젊음은 최종적으로 갔습니다. 수술로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인정합니다" 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상황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때, 단순하지만 중요한 질문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질문은 "그래,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어. 하지만 이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시간을 불행이 일어나기 이전 시점으로 되돌릴 수 있었으면 하고 애타게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한 우리는 불행하고 좌절할수밖에 없다. 진정한 성장은 늘 현실을 토대로,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 결코 이전처럼 되지 않을 것임을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은 심지어 ‘더 좋아질 수 있다. 더 깊고, 더충만하고, 더 생동감 넘치고, 더 가치 있고, 더 공감적이며, 더 성숙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조지프는 "트라우마는 마치 팡파르처럼 기존의 경직된 사고와 감정을 점검해보라고 우리를 일깨운다"고 말한다.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것도 우리가 점검해야 할 중요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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