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머릿속에 쌓인 것을 깨끗이 비우는 데는 역시걷기가 가장 적합한 듯하다. 예로부터 무언가를 생각하는사람이 산책하고 소요를 즐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교토의 동쪽에 자리한 시시가타니에는 철학의 길이라는거리가 있다. 학자들이 사색하며 걸었던 길이라기에는 길이 조금 험한 데다 요즘은 황폐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걷는 일 자체에 의미가 있다. 왠지 정리되지 않은 마음, 묘하게 마음에 걸리는 일,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차분하게 글을 읽거나 생각할 수 없다. 그럴 때는 산책이 답이다.
사고는 얽매여 자유롭지 못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열렬한 관심을 가지면서도 관심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 관심 interest을 가지면서도 무관심한 disinterestedness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사고의 역설은 바로 여기에 있다.
빗대어 표현하자면 글라이더와 같다. 엔진 없이 공기를타고 나는 글라이더처럼, 본보기가 되는 대상이 끌어당겨주면 하늘로 날아오른다. 하지만 자기 힘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서 이윽고 힘을 잃고 내려와야 한다. 다만 나는 동안은한없이 우아해서 어떻게 날고 있는지 따위는 문제가 되지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소리도 없이 활공하는 모습에 오히려 진짜 비행기보다 낫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늘을 날 때는 그것이 글라이더인지 비행기인지 알 수 없다. 적어도 글라이더는 자신이 글라이더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다.
지식을 단편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꽃가지에만 초점을 맞춘 행위다. 다른 곳에서 핀 꽃은 쓸모가 없다. 자기 힘으로 피운꽃이 귀중하다. 그러려면 뿌리부터 옮겨 심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 새로운 꽃을 피워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상의원예학에 너무도 무관심했다. 꽃은 꽃집에서 사는 거라고믿어 의심치 않았다.
술도 다른 곳에서 사오거나 훔쳐 온 술을교묘하게 조합하고서 마치 자기가 직접 만든 술인 양군다. 거기에 독창성이 있다면 각종 술을 어떤 비율로 혼합하느냐 하는 부분이 전부일 것이다. 칵테일은 타력본원他力本, 즉 다른 사람의 힘에 의지해 원하는 바를 이루는 일이다. 그러나 지적 창조는 타인의 것을 훔치거나 가공해서가 아니라, 자기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술로 술을 만드는 것은 올바른 길이 아니다. 술이아닌 것으로 술을 빚어내야 한다.
화이트가 이야기한 사례에서는 조금 벗어나지만, 중국의 시인 조익의 시에는 "도로시지비력취到老始知非取, 삼분인사칠분천"이라는 구절이 있다. 젊은 시절에는뭐든 자기 힘으로 해내고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이든 이룰수 있다고 믿지만, 나이가 들면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한일도 있음을 알게 된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3할, 나머지는 전부 운이라는 의미다. 사람 일은 좀처럼 자기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정신을 집중하면 무슨 일이든 이루지 못하라‘라고들 하지만그럼에도 하지 못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좋은 발상을 얻는 것도 그중 하나로, 아무리 조바심 내고 안달해도 안 될때는 끝까지 안 된다. 감정적으로 달려들수록 오히려 멀리달아난다.
‘냄비도 계속 지켜보면 끓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도리어 방해가 되어 역효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뭔가 좋은 생각이 없을까‘ 하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때는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다른 일로몸을 쓰거나 휴식을 취할 때처럼 뜻하지 않은 순간에 불쑥 좋은 착상이 머리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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