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니주의보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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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호오(好惡)는 전통이거나 학습된 관념이다. 반면 일상은 구체다. 몸 쓰며 노동한다는 것은 몸으로 구체를 실천한다는 것, 어떤 관념도그 구체성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그래서 촌구석의 낡디낡은 노인들이 때로는 깜짝 놀랄 정도로 선진적일 수 있는모양이다.

절골댁이 번쩍 손을 들려는데 한씨가 한발 빨랐다.
살라 허소. 우리헌티 돈 달래는 것도 아닌디 먼 상관인가. 나중에라도 먼 문제가 터지먼 벤호사 선상이 맡아줄것이고, 펭상 한동네서 살았는디 엄동설한에 길거리로 쫓게나는 것을 수수방관헐 수는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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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마지막 독서 강의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은정 옮김 / 상상스퀘어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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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디에고 리베라라는 거장 화가(거대한 벽화를그린 점과 독창적인 스타일에서 거장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의부인으로 그녀 역시 독특한 화가였던 프리다 칼로‘가 떠올랐습니다. 칼로의 그림 중 <헨리 포드 병원>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녀의 혈관이 몸 밖으로 튀어나와 태아또는 달팽이, 난초나 기계 등과 연결된 그림이죠. 저도 서고의 책들과 제가 혈관으로 이어져 있다고 느끼며 살아왔는데, 이번 ‘오에 겐자부로 서점‘ 책장에서 새삼 그걸확인하니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책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이런사람들의 책을 읽고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다‘는 삶의 지도가 살아가는 동안 점점 완성되어갑니다. 그게 바로 꾸준히 책을 읽는 이유입니다. 제 나이쯤 되면, 이제까지 살아온 게 이런 책들과 함께여서 가능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 수준, 이 정도 양의 책이었나?‘ 더 나아가서는내가 살아온 게 ‘이 정도의 삶이었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그래, 나는 이렇게 살아왔었지‘ 하는, 그리운 마음도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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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존경의 본질은 "나의 고유한 인격과 행동이, 나와 동일한 가치를 가지며 동시에 내가 함께 있으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타자에 의해서, 높이 평가되고, 인정되는 것이다. 자기존경이나 자존감이 없는 사람, 심지어 자신을 혐오하는 사람은타자도 경멸한다. 자기존경과 타자에 대한 존경은 서로 손잡고 간다.

"자기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타자의 성취에 그만큼 더 즐거워한다. 자기를 신뢰하는 사람은타자를 인정하는 데서도 인색하지 않다.

질서정연한 사회는 ‘사람들의 상호 존경(Achtung)‘을 전제로 삼는데, 이것은 곧 서로에 대한 인정으로 표현된다. 상호존중(Respekt)은 정의로운 사회의 토대를 이룬다. "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의무"이며, "이 의무는 도덕적 주체 즉 정의감과 선(善)의 표상을 갖는 존재인 인간에게 마땅히 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상호 존경의 의무가 지켜지는 사회에서 삶의 장점을 누린다.

"물론 사람들은 능력이 서로 다르며, 모두가 똑같은 것에흥미와 자극을 느끼지는 않는다. 사실 질서정연한 사회에는언제나 전혀 이질적인 집단과 결사체들이 있으며, 그 구성원들은 각자의 목표 설정과 능력에 맞는 이상을 갖는다. […] 중요한 것은 집단생활이 그 구성원들의 능력과 욕구에 부응하고, 그들의 자존감(Selbstwertgefühl)을 지켜주는 확실한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성과의 절대적 가치는 비록 정의할 수있을지라도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타자의 생활 방식에 대한 모든 판단""은 중지되어야 한다. 모든 이성적 인생계획은 그 자체로 이미 의미와 가치로 충만하다. 그 밑에 선의이념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사회에서 자기 존경의 기초는 소득분배 상에서
점하는 위치가 아니라, 기본권과 기본적 자유의 공적인 분배다. 그리고 그것은 [정의로운 사회에서] 평등하게 분배되어있기에, 모든 사람은 더 넓은 사회집단의 공동 관심사를 다루기 위해서 타자와 만날 때, 모두 평등하고 확실한 지위를갖는다." "지위 욕구(Statusbedürfnis)"는 오로지 "시민권의평등을 통해서만 충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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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
신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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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속에서도 더러 완벽한 행복의 순간이 있다.
위기의 순간엔 외부적인 어떤 것보다도 기억이우리를 절망에서 구한다. 우리는 우리가 혼자서,
아무 이유 없이 행복했었다는 걸 안다.
-프랑수아즈 사강*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여러분은 삶을 어떻게 살고있습니까? 인생으로 인해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기 전에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했습니까? 당신의 진짜 눈동자 색을,
진짜 머리칼 색을 말해준 사람이 있습니까? 당신은 밤을두려워합니까? 누구나 고독을 느끼고, 당신과 마찬가지로죽음 이상으로 삶을 두려워한다는 걸, 당신은 알고있습니까?"* -마음의 푸른 상흔, F. 사강-

1. 진동0xcillation추의 진동을 가리키는 뜻으로, 한 가지 진리에정착하기를 거부한 그르니에를 표현하기에좋은 단어다. 그는 고향 브르타뉴와 지중해사이를 끊임없이 오갔다. 그에게 산다는 것은안개 속에서 빛을 그리워하고, 빛 속에서 다시안개를 잊지 않는 일이었다.

2. 부재Absence‘없다‘라는 말은 늘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그르니에게 이 단어는 반드시 그렇진 않다.
그는 ‘부재하기에 비로소 나타나는 것‘에집중했고, 그 자리에 없을 때, 혹은 내가 나를내세우지 않을 때 비로소 그 빈 공간이 다른것들로 채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더 소중한 본질을드러내는 일이다.

3. 무심함Indifférence그르니에의 무심함은 차가움이 아니라대상에 대한 예의이다. 대상을 내 마음대로정의하거나 소유하려 들지 않고, 그가 온전히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적절한거리를 두는 것. 내가 무심해질 때 비로소대상은 나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로우리 앞에 선다.

4. 익명성Anonyme나를 규정하는 수식어들이 사라진 ‘무의상태‘에서 인간은 진실해질 수 있다. 익명은"고독한 유배지가 아니라, 진짜 나를 만나는장소다.
5. 비밀secrète모든 것을 말하고 전시하는 시대에그르니에는 ‘말해지지 않는 여백‘을 지켰다.
누구에게도,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언어로다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캄캄한 방 하나를품고 사는 일. 이러한 비밀이 있을 때, 인간은타인에게 소모되지 않고, 자신만의 고귀한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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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방법은 단순했다. 감염자의 혈액을 비감염자에게 주입하는 것. 나는 이 과정을 관찰하면서 한 가지를 더 생각했다. 여기서는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자기 건강을 팔아서 시급을 올리려하고 있었다. 착취의 방향이 위에서 아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향하고 있었다. 자기 몸을 자기가 착취하는 것. 이것보다 효율적인 착취가 어디 있겠는가. 관리자가 필요 없다. 감시자가 필요 없다. 자본이 노동자에게 명령하지 않아도, 노동자가 스스로 자본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자기 잠을 시장에 내놓는다. 수요와 공급.
보이지 않는 손이 잠을 빼앗아간다.

그리고 반복 행동이 강화되었다. 상자를 나르는 동작이 정확해졌다. 실수가 줄었다. 속도가 올라갔다. 하지만 동작에 변주가 없어졌다. 같은 속도, 같은 각도, 같은 리듬. 사람의 동작이 아니라로봇 팔의 동작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로봇 팔이 착, 착, 착, 하고상자를 집는 것과 장기 감염자들이 쿵, 쿵, 쿵, 하고 상자를 나르는 것의 리듬이 같아지고 있었다. 인기계와 인간의 구분이 흐려지고 있었다. 아니, 구분이 아예 사라지고 있었다. D구역의 노동자들은 로봇이 처리할 수 없는 비규격 상자를 처리하는 인간이었는데, 그 인간이 로봇처럼 변하고있었다. 비규격을 처리하는 규격 인간.

"아르고스가 그걸 일부러 하고 있다면?"
"일부러?"
"네, 물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안 자면 물동량이 올라가잖아요. AI 시스템이 그걸 학습해서 노동자들의 수면을억제하는 방향으로 최적화한 거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다. AI 관제 시스템이 노동 효율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들의 잠을 빼앗는다? 하지만 초저주파는 기술적으로 가능했다. 서버 냉각 시스템의 팬이나 진동이 특정 주파수를 발생시킬 수 있었고, 그 주파수가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의도인지 우연인지였다.

그것만이 아니었어요. 머리가 맑아졌어요. 너무 맑아져서 무서웠어요. 생각이 빨라지고, 감각이 날카로워지고, 피곤함이 완전히사라졌어요. 5분 있었는데 몸 전체가 깨어 있었어요. ‘깨어 있다‘는말이 이렇게 무서운 말인 줄 몰랐어요.
동시에 이상한 게 있었어요. 머리가 맑아지면서 어떤 것들은 흐려졌어요. 서버실에 들어가기 전에 느꼈던 긴장감이 사라졌어요.
잡히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나쁜 의미로 사라진 거예요. 두려움이 없어지니까 조심성도 없어졌어요. 볼트를 풀 때 소리가 났는데, 평소라면 멈추고 바깥쪽으로 귀를 기울였을 거예요.
근데 그냥 계속했어요. 들키면 어때, 라는 생각이었어요. 이 생각이 나답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멈추지 않았어요.
5분 만에 이 정도예요.

누군가의 소소한 기쁨이 진흙탕에 잠기고 있었다. 형광등이 전부깜빡였다가 다시 켜졌다. 비상 전원이 가동된 것이다.컨베이어 벨트는 멈추지 않았다.
이것이 핵심이었다. 벽이 무너지고, 흙이 쏟아지고, 물이 밀려오는데 컨베이어 벨트는 멈추지 않았다. 아르고스의 판단은 오직물동량 유지. 벽이 무너져도 컨베이어 벨트는 돈다. 유골이 올라와도 컨베이어 벨트는 돈다. 아르고스에게 벽의 붕괴는 변수이지,
종료 조건이 아니었다.

마침내 아르고스가 셧다운된 것이다. 냉각 시스템이 멈춘 지약 12분. 서버 온도가 한계에 도달했고, 아르고스는 스스로 시스템을 종료했다. 하드웨어 보호. 아르고스의 마지막 행위는 자기보존이었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하드웨어를 보호하기 위해 꺼졌다. 아르고스도 끝까지 자기 자신을먼저 구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목표 함수에 충실한 기계. 나와 같았다. 나도 마지막 순간까지 계산을 했다. 아르고스가 물동량을

제목이 된 ‘아르고스(Argo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100개의눈을 가진 거인이며, 소설에서는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AI 관제시스템의 이름이기도 하다. 오직 생산성 향상만을 목표로 노동자를 통제하는 시스템에 이 이름이 붙은 것은 시사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르고스는 노동자의 이름과 신체 상태, 피로도, 감정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것이 계산하는 것은 물류량과 이동 경로, 작업 속도와 생산성 그리고 시스템의 효율성, 기술적 합리성뿐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측정과 관리의 대상으로 환원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아르고스처럼 판단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된다.
이것이 진짜 공포다. 우리를 감시하는 불가해한 괴물이 바로 우리자신이라는 사실 말이다.

. 《아르고스》는 AI란무엇인가를 묻는 소설이 아니라 AI 시대에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정면으로 묻는 소설이다. 그것은 AI가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 이미 무엇이 되어가는가를 묻는 말이다. 이 질문 앞에서 누구도 고개를 돌릴 수 없다. 이 소설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서기 4~5세기경 가야의 수장급 인물들이 묻힌 무덤, 인공지능 로봇이 택배를 분류하는 스마트 물류센터, 이주 노동자들이거주하는 비닐하우스. 이 모든 게 반경 500미터 안에 공존하는김해시 금관 테크노밸리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야 왕들이 민중의 고된 노동 덕에 영겁의 세월 동안 편히 잠들 수 있었다면,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정교하게 설계된 공장 시스템으로 인해 잠을 잃는다. 노동자가 잠을 안 자도 안 아프고 안 죽는 세계가 있다면, 그곳에서 웃는 자는 누구일까. 노동 시간을 늘려 수당을더 받으려는 노동자, 피로를 느끼지 않는 노동자의 혈액을 채취해궁극의 혈청을 출시하려는 의사, 노동자를 각성시켜 물동량을 최적화하려는 거대 자본

잠이 없는 세계란 자못 비인간적으로 보이지만, 잠을 팔아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이들의 선택은 지극히‘인간적‘이다. 자본의 문법에 효과적으로 적응한 탓이다. 다만 잠을 잃은 노동자들은 왜인지 누군가의 꿈 이야기에 이끌린다. 꿈이야기를 듣는 동안은 불면 노동자들의 초점 없는 눈에 미약한생기가 돈다.

<아르고스》는 누군가의 잠을 동력 삼아 결코 멈추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개당12초 안에 택배 상자를 분류하는 노동자의 기계화된 속도를 따라 거침없이 질주하다가 마침내 어떤 장관에 다다른다. 그러고는인공지능과 생체 정보, 과학 기술과 인간성, 노동과 자본, 영웅과희생자, 공모와 저항, 이 모든 이분법적 도식을 물리치며 묻는다.
컨베이어 벨트가 멈췄을 때, 당신은 무슨 꿈을 꾸겠느냐고. ‘오늘주문 내일 도착‘ 스티커가 붙은 택배 상자와 1500년 전 유골이 뒤섞인 곳에서 만나는 이 서늘한 질문 앞에서 망설일 시간은 없다.
가슴께까지 차오르는 흙탕물, 무너져 내리는 벽 사이에 꼼짝없이세워진 독자에게 ‘내일‘이 있을까. <아르고스》는 이 시대 가장 긴급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의 형식을 제대로 간파한두렵고도 통렬한 문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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