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하건대, 사람을존재, 나이나 성별, 학력, 지역으로 나눌 수는 없다. 하지만 행동으로 구분할 수는 있다. 폭력은, 폭행은, 폭도는 그 어떤 이유든 납득될 수도 설득될 수도 허용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한가문 일족의 파멸은 공적인 삶을 버리고 사생활, 고독에 기대어 산 결과이다.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은 연구실에 틀어박혀 일생내내 연구를 하거나 근친상간의 사랑에 빠진다. 연구와근친상간의 공통점은 바로 외부, 차이와의 단절이자 폐쇄성이다. 고독은 단절의 대가다. 부엔디아 가문은 역사와 세계로부터 도망쳐 자신들만의 공간에 숨어들지만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공공의 연결을 잃은, 타인이 부재한 무세계의 대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엄혹한 현실일지언정 맞서서 대면하지 않는다면 돼지꼬리가 달린 기형적 결과물과 만날 수밖에 없다. 고독은 결코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긴다.
바보를 뜻하는 ‘이디엇(idiot)‘의 어원에는 사적인삶만 사는 자가 포함되어 있다. 사적인 삶만 있는 자가바로 바보이다. 한나 아렌트는 사적인 삶만 있는 자들의 바보 같은 삶을 경계했다.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등장하는 ‘악의 평범성‘은 그런 의미에서 악의 세속성이자 악의 고독성, 직업적 순응성이라 바꿔 부름이 더 적합해 보인다. 나만의 삶에만 충실한 사람, 나만 중요한 사람, 무관계성 속에서 타인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 그들은 고독한척 하지만 사실상 악한자 일수 있다
책을 읽는 자들이 토요일 집회에 나간다. 책을 읽는 문해력이 문화와 독재를 읽고, 자유를 갈망하는 집회가 문화와 연결되고 닿아 있는 것이다. 2030 여성의 문화 소비는 ‘가치소비‘로 요약된다. 가치 있다 생각된다면 그 소비재가 무엇이든 진심으로 전력을 투자한다. 이는 지금껏 청년 세대의 주류 가치로 여겨졌던 ‘가성비‘와 대조된다. 가치 있는 것이라면 아깝지 않다. 돈도, 시간도, 열정도. 그리고 지금 2030 여성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는 그렇게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선택의 대상, 자유의 표상, 문화적 대상이 되었다. 전통적 의미의정치적 각성이나 관여가 아니라 자유라는 가치를 지키려는 의지와 관계성에 대한 진심이 전력 투사된 물리적
남태령 대첩 직후 12월 24일 안국역에서 있었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다이-인(die-in)" 현장에서부터 남태령의 정신을 이어가자는 시민들의 발언과 행동이 폭발했다. "남태령을 겪으며 깨달았다. 연대는 무조건적이고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사실을. 내 마음이 동한다면 어떤 현장이라도 달려가 몸을 던져 구호를 외치고 손잡고 어깨를 걸 수 있다는 용기를 여러분들을 더이상 외롭게, 고통 속에 남겨두지 않겠다." 사람들의 진심어린 외침이 남태령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을 가득 채웠다. 동덕여대 학생들의 사학비리 공학전환 반대 투쟁에서,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농성에서, 제주항공 참사 공항 현장에서, 한강진의 3박 4일 키세스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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