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성장은 멈추고 관계는 멀어지면서 단절과 소외의 시간이 길어지고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변화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삶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영감은 어디서 얻어야 할까. 그 물음에 답을 주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알라딘 eBook <퇴근길 인문학 수업 : 뉴노멀> (김경미 외 지음, 백상경제연구원 엮음) 중에서

디지털 세계의 두 번째 특징은 한계비용marginal cost(생산물 한 단위를 추가로 생산할 때 들어가는 총비용의 증가분) 제로 상태다. 디지털 상품의 경우 여러 사람이 동시에 사용해도 양이 줄지 않고 품질이 저하되지 않는다.

-알라딘 eBook <퇴근길 인문학 수업 : 뉴노멀> (김경미 외 지음, 백상경제연구원 엮음) 중에서

디지털 상품의 검색, 복제, 전송 비용이 줄어들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경제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첫째, 누군가를 추적하는 비용이 크게 줄었다. 둘째, 신뢰 등 무형의 가치를 검증하는 비용이 저렴해졌다. 이 두 가지 효과는 경제 영역은 물론 우리의 일상까지 크게 바꾸어놓았다.

-알라딘 eBook <퇴근길 인문학 수업 : 뉴노멀> (김경미 외 지음, 백상경제연구원 엮음) 중에서

다른 이의 평가 따위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면 상관없겠지만,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한 번쯤 포털 사이트에서 자신의 이름과 이메일을 검색해보길 권한다. 만약 검색된 당신의 모습이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좀 더 깔끔하고 재미난 모습으로 변신해보는 것도 좋겠다.

-알라딘 eBook <퇴근길 인문학 수업 : 뉴노멀> (김경미 외 지음, 백상경제연구원 엮음) 중에서

신권력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신권력이 주류가 된 세계에서는 실제 일어난 일보다 개인적인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재미없는 진실보다는 감정을 동요시킬 만한 흥미로운 거짓이 더 큰 영향을 발휘하는 ‘탈진실post-truth’의 세계에서 우리는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켜갈 수 있을까.


-알라딘 eBook <퇴근길 인문학 수업 : 뉴노멀> (김경미 외 지음, 백상경제연구원 엮음) 중에서

콘텐츠의 조회 수와 시청 시간에 따라 창작자에게 수익을 배분하는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의 등장은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최근의 세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동영상 콘텐츠로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짜 뉴스란 비용 대비 효율성이 아주 높은 성공적인 아이템 중 하나다.

-알라딘 eBook <퇴근길 인문학 수업 : 뉴노멀> (김경미 외 지음, 백상경제연구원 엮음) 중에서

약한 유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외로움이나 소외감으로 불안에 떤다. 그리고 이 같은 불안감은 스마트폰 중독이나 포모증후군Fear of Missing Out(고립공포감)과 같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포모증후군이란 놓치거나 제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의미한다. 특히 SNS에서 자신만 도태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SNS에 더욱 매달리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포모증후군의 치료법은 역설적이게도 인터넷 혹은 SNS 사용을 줄이는 ‘디지털 디톡스’다. SNS에서 맺어진 관계가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런 고립공포감은 계속될 수밖에 없기에 온라인 세상에 의존하는 일 자체를 줄여야 하는 것이다. 온라인 세상에서 맺어진 관계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현실 세계의 친구들이다. 현실 세계의 친구들과 함께 한바탕 어울린다면 스마트폰이 손에 쥐어져 있지 않은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불안감을 떨칠 수 있다.

-알라딘 eBook <퇴근길 인문학 수업 : 뉴노멀> (김경미 외 지음, 백상경제연구원 엮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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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겠다는 욕심과 과도한 책임감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대신 나를 믿고 제품을 써준 고객들과의 관계에 집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모든 사람에게 이해받을 순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했다. 욕심을 내려놓으니억울한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제품에 대한 확신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나를 믿고 사용하는 분들 덕분에 충분한 보람을 느낀다.

비누 모양 역시 만들어진 그대로를 고수했다. 수제 비누라반듯하지 않고 울퉁불퉁했지만, 다듬느라 낭비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제공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믿었다. 이런 비누 모양에 대한 의견도 다양했지만, 오히려 그 투박함에서 진정한수제 비누의 정성을 느낄 수 있다는 고객들의 피드백이 이어졌다. 한동안 비누 모양을 다듬어보기도 했으나, 결국 고객들이더 선호한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겉모습보다 제품의 진정한 가치가 중요함을 깨달았다. 용기나 외형과 관계없이 고객들은 한결같이 내제품을 신뢰하고 사용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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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준비하는 글은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동안 잘 살았는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가치 있는 삶이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내려놓아야 할 것과붙들어야 할 것이 분명해졌다. 사람은 붙들어야 할 것이었고 그 외엔 내려놓아도 좋은 것들이었다.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는다면 어떤 삶이라도 가치 있기 때문에 나의 삶 또한가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나는 보통 사람이고 싶다. 보통 사람은달에 로켓을 띄울 수 없다(아주 애를 쓰면 라면을 나눠주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대신 세상에서 보통 사람이 가지는 역할이 하나 있다. 그건 가장 보통의 역할이고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바로 타인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보는 것, 그래서 세상을 보통 사람들의 온기로 채우는 것이다. 나는 그 역할이 우리가 사는 땅에 지금껏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믿는다.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게 만들었다고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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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는 존재론이고, ‘되다‘는 생성론이지.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만들어진 것은 이미
‘있는‘ 거야. (...) 하지만 어린아이는 (...) 모든것이 ‘되는‘ 생성론이지. 출발점에 있으니 모든것이 될 수 있는 무서운 존재거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간 속에 먹혀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거꾸로 시간을 적극적으로 내 생명 안으로 끌어들인다는것이다. 그것이 슬픔이든 고통이든 늙음이든 한 사발의

사람은 태어나면서 사람인 것이 아니라, 끝없이사람이 되어가는 존재다. 한 발 한 발 걸어가는그 모습(人)은 바로 사람이라는 이 목표,이상적인 인간상을 향해서 가는 형상이다.
그래서 겉만 사람, 생물학적으로만 사람이라고지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완성체가 아니라 죽을때까지 되어가는 과정의 존재, 즉 ‘비잉 Being‘인것만이 아니라 ‘비커밍Becoming‘이기도 하다.

예수는 혼자서 다만 혼자서 외롭게 십자기에 못 박혀 죽었다.
모든 인간의 괴로움, 원죄의 무거운 짐을 혼자서 걸머지었다.
길에서 십자가를 같이 짊어지자고 했을 때에도 그는 그것을거부하였다. 그러나 식사만은 혼자서 하지 않았다. 그는여럿이 자리를 같이해서 먹기를 희망하였다. 그것이 바로<최후의 만찬>이었다. 죽음을 홀로 감수하는 사람조차도 빵을먹고 술을 마시는 데만은 타인이 필요했던 까닭이었다.
예수의 십자가 옆에는 최후 만찬의 또 다른 식탁의 의미가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창을 가리키는 영어의 윈도window는
‘바람의 눈Wind+Eye‘이라는 뜻에서 나온말이라고 합니다. 집에 창이 있다는 것은영혼에 눈이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바람의 눈, 영혼의 눈으로세상을 보고 배웁니다. 왜 학교를 배움의 창,
학창꽃이라고 하고 왜 옛 친구를 동창이라불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시인 랄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잡초를 ‘가치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식물들‘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잡초란 존재하지 않아. 아직 발견되지 않은 버추virtue,
즉 미덕이라는 겁니다. 뭔가 발견되지 않은 풀일 뿐이지모든 만물은 제각기 생겨나서 언젠가는 인간에 의해 덕성이밝혀지면 약초가 된다는 얘기지요.

암기한다는 것은 어떤 사상에 항복한다는 것이다. 어떤 아름다운 시도 암기하고 있는 순간만은 축문과 다를 게 없다.

명칭을 모르면 형용사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다이애거널diagonal(대각선) 무늬의 외투를 입고"라고말해도 될 것을 그 명칭을 모르면 손짓 발짓부터 나온다.
"아! 왜 이렇게 생긴 것 있잖아. 옆으로 얼룩말처럼 줄이비스듬하게 굵게 죽죽 쳐져 있는 무늬, 왜 그거 있잖아.
언젠가 왜 길거리에서 만난 그 여자가 입고 있었던 것 말야.
아 글쎄 그런 옷 입고 말야."
얼마나 정력의 낭비며 시간의 허비인가? (...)어휘와 이름이 빈약했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불합리한 불모의 사고 속에서 살아왔는가를 의미한다.
애매하고 모호한 사막에서 벗어나 존재의 푸른 평원으로나가기 위해선 많은 ‘이름‘들을 발견해야만 할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전락La Chute』에서처럼떨어지는 세계에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떨어져보지 않고서는 상승하지 못합니다.
지렛대는 한쪽이 아래로 내려가야 다른 쪽이올라갑니다.
아무리 세속의 조건이 나를 행복하게한다 하더라도 나는 꿈(문학) 속에서늘 추락하리라. 나의 지식으로부터,
재력으로부터, 명성이나 박수 소리로부터자진해서 추락하는 꿈을 꾸어야만내 신장은 멈추지 않고 커갈 수 있을 것이다.
사막의 신기루에 속지 않기 위해서.

등자는 사람이 말에 오를 때 필요한발판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말 왼쪽에만달았다고 해요. 그런데 누군가 말 오른쪽에도똑같은 등자 하나를 더 달 생각을 했지요.
그 순간 등자의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두 다리로 등자를 딛고 일어설수 있게 된 겁니다. 달리는 말 위에서도 마치땅에 딛고 있는 것처럼 칼을 휘두르고 활을 쏘고깃발을 들고 달릴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단지 등자 하나를 더 단 것인데 말이 무서운신무기로 변하여 일기당천-騎, 말을 탄 기사하나가 천 명의 보병을 이기는 세상이 온것입니다.

그래서 왕과 기사 계급과 기사도의 새로운세력이 일어나 왕국의 크기가달라지고 성곽의 높이가 달라졌지요.
기사들의 이야기가 로망스가 되고『돈키호테』 같은 소설이 나오는 문화가 탄생했지요.
세상을 바꾼 것은 말이 아니라 등자입니다.
아닙니다. 등자가 아니라 생각입니다.
아닙니다. 그냥 생각이 아니라 작은 생각입니다.
당신의 작은 생각이 세상을 바꿉니다.

즉 문자는 깊은 연관성을 가지면서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이어서 "물 미음ㅁ에서 뿔이 난 것이 불 비읍ㅂ이다. 이토록 선명한 대칭을 이루는 말과 문자가 세상에 있을까."
글씨 쓰기를 업으로 삼은 나는 어떤 글을 글씨로 옮기기 위하여 글이 가지고 있는 뜻을 먼저 분석한다. 이어서 글자의 구조를 해체하여 공간을 열어 이야기를 심고 다시 조합하여 글이가진 뜻이나 소리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선생님은 문자의 구조나 형태를 넘어 물과 불의 상극이 오히려 "상생으로 변해 날것도 아니요, 탄 것도 아닌 맛있는 문명의 밥상이 차려진다"는 해석으로 한 차원 높은 인문의세계로 우리를 이끌었다.

"사랑은 관찰이 아니다. 잠수다. 강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고 그냥 뛰어든다"는 구절에 멈추게 된다.
선생님의 글쓰기 사랑에 대해서도 그러셨으리라, 죽음 앞에서조차 자신을 던지는 마음으로 뛰어드셨으리라 감히 짐작해본다.

인터뷰를 하는데 한 구절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2020년7월 5일.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깃털은 흔들린다, 날고 싶어서.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공깃돌은 흔들린다, 구르고 싶어서.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내 마음은 흔들린다, 살고 싶어서"

도서관에 가보면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얘기를 더 보태겠어? 다만 79억 지구인 중에서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모든 사람은 각자 고유의생각을 하고, 그 생각은 제각각 소중해요.

그것은 제 마음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명문 "당신이 배를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 마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처럼 새로운 동경으로 이어졌습니다.

‘방향‘과 ‘디렉션direction‘은 말의 뿌리 자체가다르다. 한자의 ‘방‘은 사각을 나타내는 문자로 동서남북전방위를 포함한다. (...) 그러나 영어의 ‘디렉션‘은어디까지나 그 어원대로 화살표라는 직선의 의미밖에 없다.
한자의 방향이 포용적인 데 비해 서양의 방향은 배제적이라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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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나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머릿속 독재자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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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장면이 되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문제가 있었다. 마이크의 눈에는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그는 자기앞의 물체들을 바라보며 완전히 당황하고 있었다.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그의 뇌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들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선과 색과빛의 감각을 경험하고 있을 뿐이었다. 눈의 기능이 정상인데도 그에게는 시각이 없었다.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뇌가 보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흑같이 어두운 두개골 속에 몰아치는 기묘한 전기 폭풍은 세상의 모든 물체들이 감각과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우리가 한참 동안 파악한 뒤에야 비로소 의식적인 정보로 요약된다. 복도를 걷는 경험을 생각해보자. 마이크는 평생 복도를 걸어본 경험 덕분에, 양쪽 벽이 팔을벌리면 닿을 거리에서 복도 끝까지 평행으로 뻗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시각을 회복했을 때, 양쪽 시야가 멀리서 한 점으로 수렴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뇌가 보기에는 전혀 말이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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