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남다른 기억력을 지니고 있다. 가끔 사소한 일을깜빡 잊는 것을 빼고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지식과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랍다. 만일을 대비해 그는 앞으로의 일정을 어딘가에 적어놓곤 하는데 과거의 일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과거에 연연해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으며, 오늘을 충실히 보낸다‘라는 평범한 진리가 그의 수도 생활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가장 자신다운 사람이 되어라. (Esto Quod Es에스토 쿼드 에스.)’가장 자기다운 사람이 된다는 게 대체 뭘까? ‘가장 자신다운 고유한 사람‘이 되어야 삶이 단단해져 어떤 외부의 충격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고 어떤 걱정과 고민도 삶을 갉아먹게 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일과 삶의 균형도지혜롭게 지켜내고 삶 자체를 향유하게 될 것이다.
"많이 알지만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모르는 건 정말 어리석은 태도 같아."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득하지만, 제대로 말을 하지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고 싶지 않아서 그의 한국어 공부는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스페인어로 ‘만족하다‘라는 의미의 ‘사띠스파세르satisfacer‘는 이 단어의 어원인 라틴어 ‘사티스파체레 satisfacere‘ 와 마지막 알파벳 e만 빼고는 같다. ‘충분한‘이라는 형용사 ‘사티스satis‘와 ‘하다, 만들다‘라는 뜻의 동사 ‘파체레Facere‘의 합성어가 바로 ‘사티스파체레‘이다. ‘무언가를 위해충분히 노력하면 저절로 만족감이 따라온다‘는 말이다. 빠드레가 "소피, 너는 왜 스페인어를 배우니?"라고 묻는다. 지금 당장 나에게 자격증이나 언어 실력에 대한 증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또 다른 세계의 언어로 새로운 나의 자아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배움의 과정‘, 가끔은 결과를 지나치게 중시하고, 목표만 바라보며 주변의 풍경도 살피지 않은 채 전력 질주하는 사람들도 배움의 과정에서 순간순간 밀려오는 행복을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나이가 들면 으레 그래. ‘나이 든 사람의 잔병치레(achaque de viejos아차께 데 비에호스!야!"라고 한다. 잔병치레와 만성병이라는 뜻의 ‘achaque아차는 항상몸속 어딘가 숨어있다가 컨디션이 나빠지면 심해져 온몸을 괴롭힌다. 평소에 빠르게 걸으며 산책을 즐기면 몸이적당한 자극을 받아 활기를 느끼지만, 한순간 몸 어딘가가 아프기 시작하면 밖으로 나가는 것이 꺼려진다. 나이 드는 건 자연의 순리지만 기력이 약해져 방 안에만, 침대 위에만 누워있게 될 상황이 되도록 늦게 오기를바랄 뿐이다. 그 시기는 모두에게 다르게 다가온다.
그가 수수께끼 하나를 냈다. "세상의 것 대부분이 많을수록 좋지만 적을수록 좋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게 뭘까?" 그러더니 "적을수록 좋은 건(cuantos menos mejor꽌또스 메노스 메호르) 바로 병과 상처가 아닐까?" 하며 요즘 들어 아프다는 허리를 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짚어 보인다.
스페인어에 ‘상호적 관계(reciprocidad 레시쁘로시다드)‘라는 말이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다 해서 그에상응하는 대가를 받고자 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위하는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내면이 결국 상호주의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어린 물고기가 있었다. 그 어린 물고기는 어른 물고기에게다가가 "전 바다라고 불리는 곳을 찾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때 어른 물고기는 "네가 있는 곳이 바로 바다야!"라고 대답했고, 어린 물고기는 "여기는 그냥 물이에요. 내가원하는 건 바다라구요"라고 투덜거렸다. 많은 이들이 이 어린 물고기처럼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방황하지만, 사실 삶의 의미는 가장 평범한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 평범한일상도 다른 시각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추억과 일상은 ‘재해석‘의 순간들이다. ‘이유와 의미를 가진 사람에게 참을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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