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적 존재양식에서 인간은 남들과 비교하여 자신이 우월하다는데에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의식에서, 그리고 결국 정복하고 약탈하고 죽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그러나 존재적 실존양식에서 행복은 사랑하고, 나누며, 베푸는 것에 놓여 있다.
‘소유적 인간‘은 자기가 가진 것에 의존하는 반면, ‘존재적 인간‘은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 기탄없이 응답할 용기만 지니면 새로운 무엇이 탄생하리라는 사실에 자신을 맡긴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고수하려고 전전긍긍하느라 거리끼는 일이 없기 때문에 대화에 활기를 가지고 임한다. 그의 활기가 전염되어 대화의 상대방도 흔히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나를 짓는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은 고결함을 지향한다. 비단결이 고운 것은 올이 많아 섬세하기 때문이다. 자유인은 사물과 현상을 인식하는 사유의 올들에 하나의 올이라도 더 보태거나 수정하여 조금 더 섬세하고 정교하게 세상을 인식하려고노력할 것이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대신 어제의 나와 오늘의나를 비교할 것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존재로 나를 짓기위함이다. 그는 ‘회의하는 자아‘다. 회의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를 짓는 자유는 무의미하다. 고쳐 짓거나 새로 지을 게 없는,이미 완성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유인이 ‘회의하는자아‘로서 지향하는 고결함은 제로섬게임이 적용되는 고귀함과 다르다. 고귀함은 ‘귀함‘이 뜻하듯 태생적으로 선택된 사람이거나 남과 경쟁하여 승리한 자의 몫이다. 고귀함은 그 반대편에 비천함을 필요로 하지만, 고결함은 그렇지 않다. 나의 고결함이 너의 비루함을 전제하지 않는다.

고결함은 남과 경쟁하여 승리한 자의 몫이 아니라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의 산물이며 선물이다. 나의 고결함이 너의 고결함을 가로막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고결함으로 이끈다. 설령 결이 다르다고 해도서로가 서로의 곱고 섬세한 결을 느끼며 향유할 수 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듯이 "지초(芝草)와 난초는 깊은 숲속에서 자라나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향기를 풍기지 않는 일이 없고, 군자는 도를 닦고 덕을 세우는 데 있어서 곤궁함을 이유로 절개나 지조를 바꾸는 일이 없다". 또한 "착한 사람과 함께 살면 지초나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간 것처럼 오랫동안 그향기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부귀영화를 누릴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모두 고결해질 수 있다. 이반 일리치의 말처럼 "스스로 족함을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은 가난할지라도 구성원 모두가 자유로운 곳"에서라면 말이다.

자공이 물었다.
"가난하면서도 비굴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다면 어떻겠습니까?"
"괜찮지. 하지만 가난하면서도 즐겁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것만은 못하겠다."
시경』에 절차탁마(切磋琢磨)라고 한 대목이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킨 것인가요?"

자공아 이제 너와 더불어 시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나!
지나간 것을 말해주니 올 것을 알아차리는구나."


우리는 "가난하면서도 즐겁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가난하면 즐거울 수 없고 부유하면예를 좋아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 나를 고결하게 짓는 자유의 길은 과거보다 더 절차탁마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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