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까닭에, 훗날 교황이 된 저는 바티칸을 벗어난 첫 여정으로람페두사섬을 가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지중해의 이 작은 섬은 희망과 연대의 전초 기지가 되었지만, 동시에 이주민의 비극과 모순을 상징하는 곳이자, 너무나도 많은 사람의 해상 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람페두사로 떠나기 몇 주 전, 또 다른 난파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그생각이 마음속 가시처럼 계속해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계획에 없던여정이었지만, 저는 가야만 했습니다.
16세기 스페인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 로페 데 베가의 희곡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폭정을 일삼는 총독에 맞서 푸엔테 오베후나 마을 주민들이 봉기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총독을 처단했지만, 서로 입을 맞추어 범인을 밝히지 않기로 합니다. 왕의 판사가 "누가 총독을 죽였는가?"라고 물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푸엔테 오베후나입니다, 나리."라고 대답합니다. 모든 사람이 연루되었지만, 동시에 아무도 범인이 아닌 셈이 된 것이죠. 오늘날에도 그 물음은 강렬한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오늘 흘리는 이 피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우리 모두 "나는 아니다."라고 발뺌합니다.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공범이면서도, 동시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합니다. "나는 아니야. 나와는 상관없어. 다른 누군가겠지. 나는 확실히 아니야." 무관심의 세계화 앞에서, 우리는 모두 만초니의 소설 속 ‘이름 없는자들innominati‘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이름 없는 자들, 얼굴 없는 자들처럼 비인간적인 존재가 되어 우리 자신의 역사와구원의 여정마저 외면한 채 살아갑니다. 우리를 어리석음의 나락으로몰아넣을 이 두려움 앞에서,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던지신 그 질문이세월을 넘어 우리 귓가에 끊임없이 메아리칩니다.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먼저 prima‘라는 말은 ‘가장작은 이들이 먼저prima gli ultimi‘라는 뜻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작은 이들이 먼저입니다. 매일같이 주님께 부르짖으며 자신들을 짓누르는 온갖 악에서 해방시켜 주시기를 애원하는 이, 우리가 사는 도시의변방에서 신음하는 이, 속임을 당해 사막에 버려져 죽어 가는 이, 보호소에서 고문과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는 이, 바다의 무자비한 파도와 맞서 싸우는 이....... 바로 이들이 가장 작은 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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