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 디지털 인프라를 둘러싼 국가, 기업, 환경문제 간의 지정학
기욤 피트롱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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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는 날로 커져만 가는 기술의 힘과그 기술을 사용하는 우리의 지혜 사이에서의 줄타기가 될 것이다."
디스스티븐 호킹

1971년 10월 2일, 미국 출신 공학도 레이 톰린슨이 과학자들과 미국 군인들 사이에서 애용되던 정보통신망 아르파넷Arpanet‘을 통해 최초의 이메일을 보낸다. 이로써 인류는 급작스럽게 즉시성의 시대로 들어선다. 오늘날 모든 것은 (거의) 빛의 속도로 교환되고 달라진다. 우리는 고대의 포석 깔린 도로, 산업화 시대의 철도를 지나 이젠또 어떤 기초 설비가 우리의 일상적인 디지털 행위를 가능하게 해줄지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당신이 한 통의 이메일을 보내거나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엄지 척‘(그 유명한 ‘좋아요‘)을 누를 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수십억 번의 클릭은 어떤 지리적 분포양상을 보이며, 그것들의 물질적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것들은 어떤 생태적·지정학적 위협을 가하는 걸까?

단순히 한 번의 ‘좋아요‘를 보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인간이 세운 것들가운데 아마도 가장 거대한 규모일 것으로 여겨지는 엄청난 하부구조를 설치하고 가동시켜야 한다. 우리는 말하자면 콘크리트와 광섬유,강철로 이루어진 왕국, 항상 대기 중이며 지시가 떨어지면 백만 분의일초 만에 복종하는 굉장한 왕국을 건설한 것이다. 이름하여 데이터센터, 수력발전용 댐, 화력발전소, 전략 금속 광산 등으로 형성된 ‘인프라 월드‘. 이 모든 요소들이 막강한 출력, 속도 그리고 냉각, 이렇게세 가지 효과를 위해 결합한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10퍼센트를 끌어다 쓰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거의 4퍼센트를 차지하는데,
이는 세계 민간 항공업 분야 배출량의 두 배에 약간 못 미치는 양이다." "디지털 기업들이 그들을 규제하는 공권력보다 더 힘이 세질 경우, 그들이 생태에 끼치는 영향을 우리가 더는 통제하지 못할 위험이있다"고, 스카이프 공동 창업자이자, 기술의 윤리 문제를 연구하는 생명의 미래연구소 창립자인 얀탈린은 경고한다

최근 들어 당신은 그걸 누르고 싶어 죽겠을 때마다 눌러왔다. 가령사랑스러운 직장 동료의 마음을 사기 위해 당신은 그 동료가 페이스북에 올린 한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 사랑하는 이의 휴대폰에 도달하기까지 이 ‘좋아요‘는 인터넷의 일곱 개 층을 거치는데, 그중 일곱 번째, 그러니까 제일 꼭대기에 있는 층이 당신이 작동시키는 디지털:기(가령 컴퓨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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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네게 믿으라고 강요할 순 없다. 믿고 안 믿고는 온전히 네몫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천주의 가르침을 부정하는데 억지로 받들고자 애쓰라 하지도 않겠다. 그러나 알고서 부정하는 것과 모르면서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천양지차다. 그러니 읽어라. 진심으로 교리서를탐독해봐. 그다음에 비판해도 늦지 않다. 다만, 눈이 아닌 마음으로읽고 또 읽어라. 그리하다 보면 어느 순간 천주의 말씀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무릇 마음이란 강물과 같아서 막으면 고이는 법이고, 그렇게 고이다 보면 종국엔 저 밑바닥까지썩게 마련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것이 자연스럽고 현명한 대처일 터였다. 첫 교리연구회에는 참석했으나 내내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이 없던 김원성이 결국 강학을 탈퇴하겠다고 밝혀왔을 때도 잡지 않은 이유였다.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찾아오는 이도 있는 법.

"천주교는 조선의 근본을 뿌리째 흔드는 종교입니다. 그런 종교를따르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양반들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겠지요.이제껏 당연하게 누려온 것들이 한순간에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될 수있어요. 과인은 물론이고 조정의 모든 신료, 나아가 이 나라 조선의모든 양반이 그 점을 똑똑히 각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인의 입지가곤궁해질 것을 능히 짐작하면서도 천주교를 막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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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트] 잡동산이 현대사 (총3권)
전우용 / 돌베개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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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내가 살면서 행복감이라고 해야 할지 그저 ‘잔잔한 흥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감정을 느꼈을 때는 주로 새로운 물건들과 조우하던 때였다.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집에 라디오가 처음 들어왔을 때 그 작은 나무상자 안에 사람들이 숨어 있다는 말을 믿었던 천진함을…

거울이 귀했던 데다가 선명하지도 않아서,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람들은 자기 겉모습을 관찰하려는 욕망을 충분히 실현할 수 없었다. 달밤에 우물을 굽어보고 어렴풋이 비치는 자기 얼굴을 확인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조선 말 서울에서 군교 노릇하던 사람이 있었다.

더불어 사람들은 마음보다 몸에, 타인보다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남의 마음에 생긴 큰 상처보다 자기 얼굴에 생긴 점 하나를 더 중시하는 문화가 만들어진 데에는 유리거울이 책임질 몫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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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스 BLISS - 내 안의 찬란함을 위하여
임현정 지음 / CRETA(크레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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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 상쾌 & 열정& 공감….임현정 피아니스트의 근원지가 어디인지를 만나게 해준책. 음악만큼이나 멋진 임현정씨를 만나서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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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스 BLISS - 내 안의 찬란함을 위하여
임현정 지음 / CRETA(크레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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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을 시작한 순간, 모든 것은 다 사라지고 나와 흑건만이존재했다. 어느새 나는 열두 살의 말괄량이로 돌아갔고 이방인이 된 사실도 잊어버린 채 그저 피아노 건반과 재밌게 노는 천진난만한 소녀가 되어 있었다. 연주가 끝나자 묘한 침묵이 교실을 덮었다. 영원과 같았던 침묵의 순간이 흐르는 동안 모두와친해지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실패로 끝나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한 명씩, 조금씩 박수를 치기 시작하더니, 결국 다 같이환호하며 찬사를 보냈다.

피아노는 두려움을 극복시키면서 내 마음 그대로를 전달해주었다. 단 몇 분의 음악은 9000킬로미터의 거리로 떨어져 있는 언어와 국경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고, 이렇게 음악은 나와바깥세상을 연결해 주는 가장 멋있는 다리이자 고유한 언어가되었다. 내 영혼은 피아노를 통해 세상과 대화하게 되었고, 비로소 나는 진정으로 음악을 만났다. 내게 피아니스트는 그저 막연한 꿈이 아닌 뚜렷한 사명으로, 직업이 아닌 존재 이유로 다가왔다. 음악이 ‘유니버설한 언어‘라는 표현은 언어의 개념을 뛰어넘어 ‘생존 키트‘로 다가왔고, 부당한 인종차별을 직접 당하면서 본질적으로 우리는 모두 얼마나 동등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다. 좁은 우물 안 개구리가 갑자기 끝도 없이 넓은 대서양을 보며 정신이 활짝 열린 것이다.

"오만한 아름다움으로 로마를 지배하고 있는 이 빌라 메디치 VillaMedici, 로마상이 열리는 장소는 순수한 기쁨을 신뢰와 함께 안고 올 수있는 장소, 그런 모든 예술의 활기찬 지성의 중심지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에게 이곳은 단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오는 장소일 뿐입니다. (…) 그곳에서 ‘연구‘라는것은 그저 의무적으로 어서 ‘보내버려야 할 것‘으로만 여겨지고있고, 정말 연구를 제대로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생기는 결과만나오고 있습니다.- 드뷔시가 로마상 수상후-

적어도 한 시대의 아름다움을 검증하는 예술적 운명을 완수하기위해서는 로마상이 쓸모없다는 점을 그 어떤 비판보다 더 잘 증명하는 우울한 결론입니다.
로마상을 받은 젊은이들, 당신이 어떤 용감한 사람을 만나서, 예술이란 정부에서 보존하는 기념물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배워야 하고, 그 어떠한 불행을 겪더라도 모든 관점에서부터예술을 사랑해야 하며, 절대로 예술을 통해 그 어떠한 ‘지위‘에도오르려고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기를 바랍니다."

모든 콩쿠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콩쿠르의 길을 걸으면서 자신을 다지고 발전시킬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 콩쿠르라는 시스템이 음악가들을 지나치게 지배하고 있다. 콩쿠르가 아니면 음악인으로서 활동할 수 없다는 인식깊게 뿌리내렸다. 음악인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빛낼 수있는 길이 보다 더 다양해져야 한다.

"항상 기회는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잘 안되어도 슬프지 않고, 잘되어도 그렇게 기뻐하지는 않아요. 제가 세워놓은 목표가너무나도 높기에 상을 받아도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고, 오히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지금이 제 목표 달성의 첫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가야할 길이 많거든요. 미래에꼭 완벽한 음악가가 되고 싶고, 피아노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여러 분야에서 도사가 되고 싶어요."

피아니스트 여러분! 쇼팽이 우리에게 남겨준 자산을 잊지 맙시다. 그는 피아니스트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그런 권한을 드립니다. 당신이 창조한 이상을당신 마음 안에서 느껴보십시오. 그리고 자유롭게 따라가십시오. 아주 대담해지세요. 당신 자신의 능력과 힘을 자신 있게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언제든지 좋을 것입니다"

실제로 사는 동안 세상이 등을 돌렸던 반 고흐는 의욕조차사라졌을 때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동생 테오에게 한 말이다.
"희망도 없고 무엇을 해내고 싶은 열망 같은 것은 이미 깨져버렸어. 그저, 너무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야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서"
그의 생의 마지막 편지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어쨌든! 난나의 일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고 나의 이성까지 반쯤 잃어버렸어"

‘겸손‘의 한자어를 풀이하면 謙겸손할 겸은 말씀 언과할 겸이, 遜겸손할 손은 쉬엄쉬엄 갈 착과 孫손자 손이 합쳐져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겸손할 겸의 언급 옆에 있는 겸이 벼 두포기를 손으로 잡은 모양이다. 즉 ‘말을 묶어두어라‘, 혹은 ‘말을아끼다‘라는 뜻이 될 수 있고, 다르게 해석하면 ‘상대의 입장과자기 입장을 동시에 겸하다‘라는 뜻도 된다.

착과 손이 합쳐져 있는 손은 ‘어른의 그림자도 밟지 않고 간다‘라는 뜻으로 ‘어린 손자가 어르신과 함께 갈 때 보폭을맞춰서 쉬엄쉬엄 간다‘라고 해석할 수 있고, ‘손자 같은 어린 자와 함께 할 때 쉬엄쉬엄 기다리며 천천히 간다‘고 달리 해석할수도 있다.
‘겸허허는 ‘비다‘, ‘없다‘라는 뜻이다. 말과 마음을 비우고 상대를 대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겸손과 겸허함은 상대적일 수 있다. 겸손의 손자는 겸손, 겸허의 상대성이 잘 나타나 있다. 높은 이가 아랫사람을 대할 때는 함께 기다려 주며 보폭을 맞춰 소통하는 ‘겸손함‘이 있고, 아랫사람이 높은 이를 대할 때는 많이 배우려는 자세로 마음을 비우고 소통하는 ‘겸허함‘이 있는 것이다. 때에 따라 겸손과 겸허가 상대적으로 표현된다.

한자어로 겸손의 뜻을 풀이했을 때 그 어디에도 자기를 일부러 더 못나게 한다거나, 잘한 것을 감춘다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일부러 부정한다는 뜻은 없었다. 무조건 자신을 낮추는것은 진정한 겸손이 아니다. 겸손과 가식, 그리고 겸손과 비굴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우월감이나 열등감은 서로 만나는 지점이 있다. 바로 ‘결핍‘이다. 이제 막 한글을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성인이 우월감을 느끼진 않는다. 혹은 현대 음악가가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에게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우월감이나 열등감은 어떤 위협을 느꼈을 때, 안정적이지 못할 때 나타나는 자기만의 보호본능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게 맞는 특정한 분야에서 유일무이하고변화무쌍하게 자기 가능성과 재능을 발휘한다. 그 분야는 사람마다 다르다. 각자의 재능이 표출되는 방식도 장소와 타이밍에의해 달라지고 세월을 따라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기에, 누군가에게 절대적으로 우월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 모순이다.
"모든 사람은 천재다. 그러나 물고기를 나무에 오르는 능력으로판단한다면 물고기는 평생 자신이 멍청하다고 믿으며 살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과학자-

음악을 무대에 올리기 전 나는 어떻게 하면 음악을 지극히 전문적이고도 즉각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청중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한다. 오로지 내 음악에만 빠져서 혼자만 즐기다 오는공연은 전혀 반갑지 않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관객의 시선과 관점으로 바라볼수록 아이디어와추구하는 바가 더욱 선명해진다. 고유의 음악 그대로를 연주하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확고하고 완성도가 높으면, 아무리어려운 클래식 음악일지라도 그 감동이 청중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만약 당신이 어떠한 것을 여섯 살짜리 아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직 그것을 이해하고있지 못한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과학자-

청중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어림짐작하며 눈높이에 맞추려할 필요가 없다. 대중을 상대하는 예술인으로서 그 대중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허상의 수준에 맞추려고어떤 방식으로든 예술의 수준을 일부러 내려버린다면, 스스로와 청중은 그 자리에만 머물게 된다.
청중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예술인이 제시하는 높이만큼 따라오기 나름이다. 단 조건이 있다. 전달하고자 하는 세계가 또렷하고도 분명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설득력과 전달력이 생긴다.

나라는 사람이, 혹은 나의 예술이 어떻게 평가되는지는 그다지중요하지 않다. 내게 붙는 타이틀이나 수식어에 큰 의미를 두지않는다. 그것은 포장지일 뿐이지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예술인이 사회에서 활동하려면 대중에게 보이는 이미지가 중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포장에 너무 과한 비중을 두는 순간예술과는 멀어지고 사회적 지위를 갈망하는 위험한 함정으로빠질 수 있다. 아울러 번지르르한 포장지를 만드는 부류의 마케팅과 미디어에 너무 집착하면서 끌어들인 부귀영화는 예술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진정한 의무 앞에서 나태하고 안주하게 만든다. 예술은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재능이 있다고 안주하지 말자. 재능은 소유물이 아니다. 하늘에 잠시 빌린 것뿐이다.

마케팅이나 수식어, 타이틀의 중요성을 인지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모든 것이 포장지에 불과하다는 것도 안다. 단지 활용할 도구로 생각할 뿐이다. 그것은 좇으면 좋을수록 더 도망가고, 실체 없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타이틀은 결과적으로 붙는 장식일 뿐이지 원인도 아니고 목표도 될 수 없다. 타이틀을얻게끔 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예술, 알맹이다.
그 예술이 탄탄할수록 빛이 나기 마련이고, 빛날수록 타이틀이 저절로 붙기 마련이다. 이 세상에 우리가 다 알지도 못하는 타이틀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면서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알맹이 없는 번지르르하기만 한 껍질을 바라보는 공허한 일이다.

나의 커리어가 타인에게 의존되는 순간 사회성 스킬을 발휘하며 인맥 관리를 해야 하는데, 이는 예술적 재능과는 또 다른영역의 스킬이다. 소속사 안에서의 ‘정치질‘, 공연을 기획하는기관과 사람들 사이에서도 ‘정치질‘을 뚫어야 한다. 즉 기획자,
매니저, 소속사, 각종 단체의 관계자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사교생활을 이어나가야 한다. 철저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만의 우주에 몰입해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인이 사회생활까지 동시에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함께 아시아 투어를 했던 로저 노링턴 경은 내게 "체면은 음악의 가장 큰 적"이라고 말한 적 있다. 어떻게 하면 한 예술인으로서 그 신선함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까. 세월이 지나도항상 모험하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며 위험에 맞설 용기를 어떻게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예술인으로서 안전보다는 리스크를, 편안함보다 신선한 영감을 추구할 수있을까.

우리는 흔히 밥값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존재한다는이유 하나만으로 지구의 모든 아름다움과 풍요를 누릴 자격이있다고 당당하게 선포한다.
무한함과 영원, 그리고 풍요로움과 아름다움, 그 권리를 나와다른 이에게 당당하게 허락하겠다.

부모님이 나에게 하셨던 "인간이 돼서 인간 도리를 먼저 하고피아노를 해라"라는 말씀을 되새겨 본다.
피아노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내가 말하는 ‘긍정의 빛‘은 사회적 성공이나유명세, 혹은 그 어떠한 부귀영화보다도 더 값지고 중요하다.
존경받고 존중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떳떳하고도 빛나는과정이 존재해야만 한다. 묵묵히 충실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믿음직스럽게 살면 된다. 그것이 바로 빛나는 과정이다. 성공은 자연스레 오는 결과일 뿐이라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다.

2012년, 영국 로열 앨버트 홀에서 6000명의 청중 앞에서 연주하기 전에 대기하고 있던 나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청중이 한 명뿐이더라도 수천 명이 있는 듯이 연주하고, 수천명이 있더라도 한 명 앞에서 연주하듯 편안하게 하여라."
몇 년 후, 두 시간이 넘는 바흐의 <평균율> 1권 전곡의 대장정을 고작 대여섯 명 앞에서 펼친 나의 공연을 경청하신 엄마는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현정아. 진정한 아티스트가 되었구나.
이렇게 소수의 관객 앞에서 넌 마치 6000명이 보고 있는 것과같이 온 영혼을 다해 연주했어."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칭찬 중가장 내 마음을 울린 한마디다.

"모든 인생 다 바쳐서 피아노를 공부하고 있고, 피아노에 모든 꿈과 미래가 달려 있고, 피아노가 인생에 거의 전부인 나한테 만약 사고로 손을 다쳐 더 이상 피아노를 못 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수 있는가?"

"자신의 인생을 사는 방법은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모든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것처럼 사는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과학자존재 전체가 환희에 휩싸이는 인생. 모든 것을 기적으로 바라볼 때 시작된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세상 모든 것이 진부해진다.

예술에는 어떤 특정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고 최상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예술인의 수만큼 정답이 존재한다. 감정 팔레트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며 ‘이것‘이라고 가슴을 관통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독불장군 같은 뻔뻔함을 정말 동경하고 또 동경한다. 나에게 등대같이 예술의 여정을 밝혀주고 있는 반 고흐의 고백이다.
"이 세상은 나한테 거의 중요하지 않아. 내가 세상에 빚진 것이 있다는 점만 뺀다면 말이다. 30년 동안 이렇게 세상에서 유유자적했으니, 그 은혜를 갚아야 하지 않겠어. 그러기 위해서는감사하는 마음으로 데생이나 그림 몇 점 정도는 남겨야 할 의무가 나에게 있는 것이야. 하지만 이 그림들은 이런저런 시류에맞추며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진실한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려진 것이야."

프랑스어나 영어로 똑같이 ‘perfection‘이라고 쓰는데, 이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라틴어의 perficio페르피키오까지 올라간다.
perficio ficio는 무엇을 ‘하다‘라는 뜻이고, per는 ‘끝까지‘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perfection은 ‘끝까지 하다‘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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