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는 아름다움의 가뭄 속에 살고 있다. 아름다움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그보다 오늘날 그 단어의 정의가 그다지 품이 넓지도, 우호적이지도, 포용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에게 가장이로운 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들과 시스템 때문에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이상하고 후줄근한 형태로 짓눌려버렸다(어떻게 보면 그들에게는 마음이랄 것도 없다).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는 우리 대부분에게 혼란스럽고 뭔가 미진한, 그러면서도 과도한 어떤 느낌으로남고 말았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두고 떠나버린 기분이다. 이제 아름다움이란 구입하고, 소유하고, 과시하는 것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오늘 아침 아주 평범한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먹으면서 이런 글을 읽었다.
"아름다움이란 결국모두의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결국 아름다움이란 그 자신 말고는누구의 것도 아니고 말이다!"
-수전 존슨 Swonn Johnson

이런 것들을 관심 있게 바라보노라면,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얼마나 무심한지도알게 된다. 사람들의 팔을 잡아끌어하늘을, 지평선을, 유칼립투스 나무에새로 돋아난 잎을 보게 하고 싶다.
그러나 아름다움에 관해서라면그걸 지켜보지 않는다고 사람들을비난할 수는 없다. 사실상 아름다움이란 건이미 너무 많이 노출되었고,가격표로 뒤덮여 있으며, 번지르르하고비현실적인 사진을 통해 팔려나갔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특정한종류의 아름다움만 바라보도록강요되어온 건 아닐까...

나는 아름다움을 어딘가 음악 같고, 어딘가 물 같으며, 어딘가 사랑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름다움은 우리 모두가 존재하기 전부터 여기 있었고, 우리가떠난 뒤에도 여기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행성과 함께하는 짧고도 혼란스러운 시간 동안, 그 아름다움을 찾아나서는 것은 우리에게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유익한 일이다.
아름다움이란 우리를 멈춰 서게 하는 것이자, 시작하게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아름다움이란, 비록 잠깐일지라도 세상을 이해할 수있게 하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보이는 힘‘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몸의 무게를 지탱하는 것이기도 하며, 어쩌면 물고기가 물을 거슬러 오르는 이유이자, 우리가 육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 사람의곁에서 눈을 뜨기로 선택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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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를 기울이세요."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언젠가 어느 젊은 청중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창작 과정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삶에 관한 말이기도 했다. "결국 중요한 건 주의를 기울이는 일입니다.세상에 펼쳐진 것들을 가능한 한 많이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곧 떠안게 될 여러 의무와 그에 따르는 지루함 때문에 삶을 좁아지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을 타인과 이어주고, 당신이 갈망하게 만듭니다. 계속 갈망하십시오."
갈망하고, 연결되고, 일상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이 지나치고 마는 것을 알아차리기. 이것은 중요한 능력이자 고귀한 목표다. 세상에 주의를 기울이면 보는 것과 보이는것의 차이, 듣는 것과 들리는 것의 차이, 세상이 제시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내게 중요한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의 차이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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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라는 말은 동서양에서 모두 ‘담장 안, 나만의 자리‘라는 뜻에서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일상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스로를돌보는 자리도 ‘정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선조들은 산을 쌓거나 연못을 크게 파서 정원을 가꾸는 대신, 먼 산의 능선을 창과 기둥 사이로 ‘빌려 와‘ 감상했습니다. 차경 경치를 빌린다는 뜻입니다. 저도 골목 어귀에 핀 들꽃 한 포기, 주차장 틈새에 선 나무 한 그루를 그렇게 빌려왔습니다. 이 책과 걷는 다섯 개의 길에는 저마다 다른 표정의 정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원의 담장은, 걷는 이가 나무 한 그루 앞에 멈춰 서는 순간 스스로 두르게 되는 ‘마음 정원‘의 담장이기도 합니다.

이 나무의 이름이 왜 ‘산딸인지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가을의열매는 명쾌한 답을 건넵니다. 붉게 익은 열매 표면이 올록볼록하여 산에서 나는 딸기를 꼭 닮았거든요.
산딸나무는 우리에게 변화의 용기를 가르쳐 줍니다. 꽃잎이 없으면 잎을 꽃으로 바꾸어서라도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그 유연함. 이 나무 앞에 서고 나서야, 그 선택이 어쩌면 결핍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지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의원을 달리 이르는, ‘행림‘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살구나무 행촘, 수풀림. 식물 공부를 하면서 비로소 그 의미를알게 된 이 단어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중국 삼국 시대에 ‘동봉‘이라는 명의가 살았습니다. 그는 병든사람을 고쳐 주고는 치료비 대신 살구나무를 심게 했습니다. 중병이 나은 사람은 다섯 그루, 가벼운 병이 나은 사람은 한 그루.세월이 흐르자 그가 살던 곳은 울창한 살구나무 숲행림이 되었고,그는 그 살구 열매를 팔아 다시 가난한 이를 구제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의원을 ‘행림‘이라 부르는 전통으로 이어졌습니다. 미술관 뜰에 서서 그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아픈 사람에게돈 대신 나무를 심게 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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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 박준의 시를 읽는 마음
박준 지음 / 난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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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면 될 때가 있습니다. 단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은 끝에 마주한 뜨거운 물 한잔. 정말 이것이면 모두 괜찮아질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일들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열에 아홉이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고 해도 열에 하나만 마음에 들면 그리 나쁜 것이 아니겠지요. 그동안 있었던 숱한 별일들이 별일이 아닌 것처럼 괜찮아지기도 하고요. 물론 사람도 그렇습니다. 한 사람만 있으면 나의 세계가 온전해질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단한 사람이 되어주기 위해 한 평생을, 한 해를, 하루를 힘내어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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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 박준의 시를 읽는 마음
박준 지음 / 난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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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몸으로 하는 것이라고, 그것도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김수영은 말한 바 있습니다. 하나 인상적인 것은 시라는 말자리에 다른 낱말을 넣어도 뜻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자유를넣든 혹은 사랑이나 이별이라는 말을 넣든 말입니다.

한국 현대시의 역사는 이제 백 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학창시절 국어 시간을 잠시 떠올려보면 우리는 이 현대시를 자유시라는 이름으로 배웠습니다. 시조 등 이전의 정형시와는구별되는 새로운 것. 형식이든 내용이든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것. 다만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은 자유도 아니고 시도 아니라는 것. 자유라는 말 안에는 나와 너는 물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들까지 공존해야 한다는 것.

시를 읽는 순간은 문득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오를 때와 닮았다. 예감도 기색도 계기도 없었는데 딱히 골똘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어떻게 이 생각을 떠올렸지? 하고 스스로 기특함이 들 정도의 생각, 거창하고 대단하지는 않지만 살갑고 세심해서 성글기만 했던 내 지난 시간의 빈 곳을 채워주는 생각.

이를 위해서는 잦아들어야 한다. 비어 있어야 한다. 내가 나인 것이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내 삶 주변의 숱한 거짓 사이에서도 진실한 마음 하나가 까치발을 들고 서 있어야 한다.

세상 아름다움은 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는 것이다.
우리는 한 번도 아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잊고 사는 날이 많았을 뿐.

아름다움에 한발 다가가거나 손을 뻗어 당겨오는 것.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힘은 언제나 나의 안녕으로부터 온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1938~)
1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느긋하되 늘어지지 않는, 편안하되 흐트러짐 없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결국 스스로가 기다리고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야 한다. 너무 긴 기다림은 종종 상대를 향한 원망으로 변할 위험이 있기에. 그렇다고 해서 긴 기다림을 환상으로 바꾸어서도 곤란하다. 멀리 있는 것들은 끝이없고 기다림은 다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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