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나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머릿속 독재자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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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장면이 되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문제가 있었다. 마이크의 눈에는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그는 자기앞의 물체들을 바라보며 완전히 당황하고 있었다.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그의 뇌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들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선과 색과빛의 감각을 경험하고 있을 뿐이었다. 눈의 기능이 정상인데도 그에게는 시각이 없었다.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뇌가 보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흑같이 어두운 두개골 속에 몰아치는 기묘한 전기 폭풍은 세상의 모든 물체들이 감각과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우리가 한참 동안 파악한 뒤에야 비로소 의식적인 정보로 요약된다. 복도를 걷는 경험을 생각해보자. 마이크는 평생 복도를 걸어본 경험 덕분에, 양쪽 벽이 팔을벌리면 닿을 거리에서 복도 끝까지 평행으로 뻗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시각을 회복했을 때, 양쪽 시야가 멀리서 한 점으로 수렴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뇌가 보기에는 전혀 말이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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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세상은 늘 죽을 만큼 괴로운 것들을 넘어서야만새로운 세계를 보여줍니다. (...)그러니 지금 흐르는 눈물을 닦지 마세요.
마를 때까지 그냥 놔두세요. 눈물은 창피한 것이아니라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당신에게 눈물이 있다는 것은 영혼이 있다는 것,
사랑이 있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고 애타게그리워한다는 것, 그리고 뉘우친다는 것,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은 비가그치자 나타난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눈사람을 만들던 사람들이다. 그 어린 시절에 더따뜻한 목도리, 더 두꺼운 이불을 원한 사람들이 아니라바깥으로 뛰어나가서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었다. 그게 그냥짐승이 아니고 사람이었다. 이름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눈으로 만든 ‘사람‘이었다. 그리고 눈사람이 녹을까 봐,
봄이 올까 봐 무서워서 오히려 나의 눈사람을 위해서기도했다. ‘세상에서 가장 길고 추운 겨울을 주옵소서.‘
이게 사랑이고, 내가 만든 창조물에 대한 나의 꿈이고,
그게 나의 삶이다. 이런 사람은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다.

현대인에게 있어 행복은 잃어버린 숙제장이다.
누구나 이제는 행복이란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를주저한다. 그것은 하나의 장식 문자되어버렸다.

좋은 땅에 씨앗이 떨어지면 어떤 것은 30배, 60배, 100배결실을 맺기도 한다. 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전해준지식이나 말을 통해 우리는 몇백 배의 수확을 얻을 수가 있다.
말은 그냥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가서번식한다.

공감 없는 세계는 마치 어두운 밤과도 같아서 누구도 그런곳에서는 타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공감, 그것은 피아노와 손의 관계처럼 마음이 마음을건드리는 하나의 음악이다.

인간이 자연의 마음을 품고 하늘의 마음을 품을 때, 네모꼴이동그라미로 변해서 사람은 사랑, 사랑으로 바뀐다.
-정의로운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을치를 때 남쪽의 정의와 북쪽의 정의가 달랐어요. 모두들자기가 정의롭다고 생각해요. 정의로움은 입장에 따라다릅니다. 그런데 사랑에는 입장이라는 게 없습니다. 남쪽의사랑과 북쪽의 사랑이 따로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정의를이야기하지 않고 자꾸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의 원래 뜻은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오래오래 생각한다는것.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생각한다는 것을 곧 사랑한다고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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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숲 - 나와 지구를 살리는 경이로운 나무들의 이야기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 지음, 노승영 옮김 / 아를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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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총나무는 이집트의 전성기에사랑받았으며 오늘날까지 계속 쓰이고 있다.
북유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딱총나무를지나칠 때 반드시 말이나 몸짓으로 인사한다.
존경의 표시로 모자를 벗고 허리 숙여 절한다.
딱총나무를 태우거나 죽이는 일은 결코없었다. 그랬다가는 딱총나무에 깃든 영혼이죽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딱총나무가결코 병충해를 입지 않는 것을 보고서 생긴속설이었다.
딱총나무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고대이집트에서는 귀한 화장품으로 쓰였다. 실제로도피부를 재생하고 회복하는 효과가 있다. 꽃은 눈피로를 회복하는 안약으로 널리 쓰였다.

총이라는 횡재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질병이 찾아왔다. 차모로족은 거의 한 명도 예외없이 놀라운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신경변성장애였다. 전에 보지 못한 질병이었다. 파킨슨병,알츠하이머병, 무시무시한 루게릭병의 증상이죽음의 길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죽기시작했다. 이 낙원에서 일상적이던 평안한 죽음을 맞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토르티야를 만들 때에는 소철 견과를가루로 빻기 전에 여러 번 물에 헹군다. 이것은전 세계 토착 부족들이 식품을 준비할 때 흔히거치는 과정이다. 이 방법은 소철에는 효과가있었지만, 코코넛밀크에 끓인 박쥐가 문제였다.
신경독이 잔뜩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박쥐를 매일 먹자 독소가 뇌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례식이 뒤따랐다.

인간이 커다란 입 한 개로 하는 일을나무는 몇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입 수백만 개로한다. 나무의 입에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하는 일은 같다. 인간의 입은 벌어져 산소를빨아들인다. 이 기체는 음식을 연소시켜 흔한유독 기체인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데, 인체는이산화탄소를 제거해야 한다. 연소로 인한 이배기가스는 날숨의 형태로 허파에서 빠져나간다.

이에 반해 나무가 몸을 만들려면배기가스인 이산화탄소가 필요하다. 그래서기공 입을 열어 이산화탄소를 기공 내 공간으로들이마신다. 이산화탄소를 탄소가 들어 있는 당으로 바꾸고 산소라는 무독성 기체를내뿜는다. 이 기체는 주변 공기에 곧장 섞여들어공기를 풍부하게 한다.

이렇듯 인간과 나무는 서로 연결된순환에 매여 있다. 인간은 나무에게 필요한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고 나무는 인간에게필요한 산소를 만들어낸다. 둘 다 이 필요순환의 일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둘 다약간 털보이기도 하다. 인간의 입은 때로는무성한 털로 둘러싸였다. 나무의 입도 그럴때가 있다. 나무와 인간 둘 다에서 수염은 입을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 하지만 나무는 여기서한발 더 나아간다. 수백만 개의 털북숭이 입덕분에 건조한 환경에서도 물이 덜 필요하다.
숨의 습기가 수증기로 털에 응결하기 때문에 전체수분 손실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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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 프란치스코 교황 공식 자서전
프란치스코 교황.카를로 무쏘 지음, 이재협 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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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까닭에, 훗날 교황이 된 저는 바티칸을 벗어난 첫 여정으로람페두사섬을 가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지중해의 이 작은 섬은 희망과 연대의 전초 기지가 되었지만, 동시에 이주민의 비극과 모순을 상징하는 곳이자, 너무나도 많은 사람의 해상 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람페두사로 떠나기 몇 주 전, 또 다른 난파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그생각이 마음속 가시처럼 계속해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계획에 없던여정이었지만, 저는 가야만 했습니다.

16세기 스페인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 로페 데 베가의 희곡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폭정을 일삼는 총독에 맞서 푸엔테 오베후나 마을 주민들이 봉기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총독을 처단했지만, 서로 입을 맞추어 범인을 밝히지 않기로 합니다. 왕의 판사가 "누가 총독을 죽였는가?"라고 물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푸엔테 오베후나입니다, 나리."라고 대답합니다. 모든 사람이 연루되었지만, 동시에 아무도 범인이 아닌 셈이 된 것이죠.
오늘날에도 그 물음은 강렬한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오늘 흘리는 이 피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우리 모두 "나는 아니다."라고 발뺌합니다.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공범이면서도, 동시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합니다. "나는 아니야. 나와는 상관없어. 다른 누군가겠지. 나는 확실히 아니야."
무관심의 세계화 앞에서, 우리는 모두 만초니의 소설 속 ‘이름 없는자들innominati‘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이름 없는 자들, 얼굴 없는 자들처럼 비인간적인 존재가 되어 우리 자신의 역사와구원의 여정마저 외면한 채 살아갑니다. 우리를 어리석음의 나락으로몰아넣을 이 두려움 앞에서,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던지신 그 질문이세월을 넘어 우리 귓가에 끊임없이 메아리칩니다.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먼저 prima‘라는 말은 ‘가장작은 이들이 먼저prima gli ultimi‘라는 뜻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작은 이들이 먼저입니다. 매일같이 주님께 부르짖으며 자신들을 짓누르는 온갖 악에서 해방시켜 주시기를 애원하는 이, 우리가 사는 도시의변방에서 신음하는 이, 속임을 당해 사막에 버려져 죽어 가는 이, 보호소에서 고문과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는 이, 바다의 무자비한 파도와 맞서 싸우는 이....... 바로 이들이 가장 작은 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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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례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의식적으로 ‘현실‘과 ‘가상‘ 사이에 진한 선을 그어도 몸은 그 경계선을 쉽사리 넘나든다는 것입니다. 몸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자유분방합니다. 몸은 ‘뭐? 그런 것도 한다고?‘라고 놀랄만한 일을 잔뜩 벌입니다. 몸은 ‘현실적인 것‘이라고 단언할수 있을 만큼 단단하지 않습니다. 몸은 대체로 우리가 의식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앞서 나갑니다.

몸의 ‘자유분방함‘은 때때로 위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현실과 가상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말은 바로 ‘속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는 현실이 아니라고 아는데도, 몸은 무심결에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어떤 의미로몸은 무척이나 ‘느슨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느슨함이 몸으로 개입할 가능성을 만들어냅니다. 만약 몸이 빈틈없이 단단한 것이었다면, ‘켄다마해냈다! VR‘ 같은 기술을 이용해서 몸의 상태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겠죠. ‘몸은, 제멋대로 한다.‘ 몸의 느슨함이 반대로 몸의 가능성을 넓혀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공식이 무너진 순간, 그때까지 믿었던 자신의 공식을고집하지 않고 피아노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계획했던 연주를 변형하는 것. 그 자리에서 건반에 손을 대며 새로운 공식을 세우는 것. 그것이 ‘최고의 연주‘이며,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열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연이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잘되면 좋겠다.‘ 하고 요행을 바라는 자세로는 멋진연주를 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바로 ‘탐색‘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평소와다른 연습실에서 연습해보기. 평소와 다른 시간에 피아노를연주해보기. 손가락을 사용하는 방식의 세세한 차이에도 탐색할 부분이 있겠죠. 그렇게 탐색하면 ‘이렇게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라는 공식 바깥의 세계를 더 민감하게 느낄 수있습니다.
앞서 인용한 대로 후루야 씨에게 "연습과 실전은 가설과 증명 같은 관계" 입니다. 얼마나 많은 가설을 세울 수 있을까? 다르게 말하면, 얼마나 나 자신을 스스로 흔들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탐색하는 과정의 폭과 질이 본 공연의 연주를 좌우합니다. 생각지 못했던 곳으로 자기도 모르게 나아가고 마는 능력이 피아노 연주에 중요한 요소인 것이죠.

앞서 인용한 대로 후루야 씨에게 "연습과 실전은 가설과 증명 같은 관계입니다. 얼마나 많은 가설을 세울 수 있을까? 다르게 말하면, 얼마나 나 자신을 스스로 흔들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탐색하는 과정의 폭과 질이 본 공연의 연주를 좌우합니다. 생각지 못했던 곳으로 자기도 모르게 나아가고 마는 능력이 피아노 연주에 중요한 요소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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