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함은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은 핵개인을 돕고, 협력은 작아진 단위에서 더 깊어집니다. 우리는 덜 소유하고 더 연결되며, 덜 의존하면서도 서로를 더 위합니다. 무겁던 질서는 해체되고, 느린 조직은 추락합니다. 이제 생존을 가르는 것은 덩치가 아니라변화에 즉각 반응하는 힘입니다. 이 문명을 먼저 이해하는 자만이 다음 시대를 살아남습니다. ‘경량문명‘의 탄생입니다.
각 전문가가 가진 정보는 인간의 두뇌와 근육 속에 내재되어 있기에 개인의 시간과 장소라는 물리적 한계에 종속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물리적 한계가 없는 분야별 인공지능이 상시 협업하며, 새로운 협업은 시공간의 제한을 넘어서기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은 모든 분야의 변화를 가속화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이 전문성의 파편을 재조합함으로써 새로운 분야에 적응하는 유연성을 확보할 수도있습니다. 전문적 지식과 숙련된 지능은 지금까지 소수의 전문가 집단에 귀속된 것이었지만, 이제 시스템과 함께 널리확산됩니다.
이 책에서는 협력의 방식이 바뀌게 된 패러다임의 변화에 주목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능의 범용화‘와 ‘협력의 경량화‘입니다. 두 축의 패러다임 변화는 서로 호응하며 증폭하는 한 쌍이 되어 세상을 빠르게 변화시킵니다.
모든 이가 일상을 함께하고 공동체 중심으로 생산하던, 무거운 문명이 이제 저물고 있습니다. 저마다의 지혜가 각자의 인공 지능과 결합하고, 작은 규모의 모둠으로도 커다란 진보를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문명의 시대가 이제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그 문명의 혜택을 함께 나누려는 수많은조직의 밑그림이 이제 막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볍고빠른, 그렇지만 더욱 깊어지는 문명, ‘경량문명‘의 탄생을 선언합니다. 거대한 변화의 시기, 가장 잊지 말아야 할 덕목은 ‘가벼운 존재‘만이 생존할 것이라는 새로운 진리입니다.
경량문명의 시작은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육체를 가지지 않은, 인간을 모사한 새로운 지적 개체에서 시작합니다. 그 개체를 만든 것은 인간일지 몰라도 그 개체와 역할을 나누는 것은 인간의 몫이 아닐 수 있습니다. 누구나 계획은 있지만 언제나 그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기업이 자사에 필요한 자원을 취하는 방식 역시 빠른 만남과 이별을 전제로 합니다. 무엇보다 소프트웨어와 인프라의 대중화로 인해 필요한 자원 대부분을 가볍고 손쉽게 빌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한몫합니다. 경량기업들은 로펌과 계약하기 위해 전문가를 찾고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을 통해 법률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디자인 에이전시의 경쟁 PT를 받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 구독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리서치 회사에 제안요청서를 보내고 제안을 받는 것이 아니라딥 리서치 AI에 비용을 씁니다. 분석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그전에는애초에 리서치 회사와 계약하기까지도 몇 주가 걸렸다는이 더 중요합니다. ‘관계의 경량화‘와 ‘협업의 거리 단축‘이, 바로 협력이 가벼워지는 세계의 핵심입니다.
이 변화에 발맞춰 나가기 위한 전략으로 립프로깅Leapfrogging, 즉 ‘개구리 점프‘라고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소수의 실험이 아니라 집단 전체의 점핑, 한 번의 도약으로 단계를 넘어선 혁신이 이루어진다는 전제하에 조직, 기업, 정부가 시도할 수 있는 전략입니다. 하나씩 단계를 밟아나가기보다 새로운 문명에서 처음부터 첨단 기법으로 무장하자는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케냐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 엠페사M-Pesa입니다. 케냐는 ATM이나 은행 지점이 넓게 깔리지않은 상태에서, 휴대폰만으로 모바일 뱅킹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기존의 발전 단계인 텔레뱅킹이나 PC 온라인 뱅킹을 뛰어넘고, 곧바로 효율적인 경량문명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AI 시대에는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한 곳이어도 새로운 문명의 도래가 가능합니다. 물리적인 통신망을 가지지 않더라도, 기간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 살고 있어도, 스마트폰을 가진 모두에게 경량문명이 동시에 도착할 것입니다. 모두가 변화의 중심에서 함께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신호가 발신되고 있습니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니라, ‘빠른 전환자(fastchanger)‘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량문명에서는 누구나, 어느 곳에서나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경량문명의 구성원들은 올림픽의 스타가 아니어도 자신이 하루에 뛴 거리와 조금씩 당겨지는 기록에 행복해합니다. 한바탕 뛴 후에 함께 운동한 이들과 격려의 말을 나누고, 자신이 발견한 잘 뛸 수 있는 팁을 친절하게 알려주는것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명산 100곳을 완등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자기 삶을 지탱하기 위한 근력과 지구력을 키우고자 산에 오릅니다. 성취의 대상과 목표가 사회와 금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세운 나만의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단단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척박했던 시절을 빠르게 지나며 한강의 기적은 우리에게 ‘하면 된다‘라는 용기를 주었지만, 상호 경쟁 속 무한의쟁투는 개인을 갈아내어 ‘나‘ 없는 성취의 환상을 전시했습니다. 속도가 인간의 템포를 넘어선 경량문명의 주인공들은자신의 삶을 위해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묵묵히 살아가다, 뒤돌아보면 그 흔적이 자연스레 스스로를 설명하는 삶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기는 언제 멈추어도 무방합니다. 혼자 뛰는 경기의 승자는 언제나 ‘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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