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 방법은 단순했다. 감염자의 혈액을 비감염자에게 주입하는 것. 나는 이 과정을 관찰하면서 한 가지를 더 생각했다. 여기서는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자기 건강을 팔아서 시급을 올리려하고 있었다. 착취의 방향이 위에서 아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향하고 있었다. 자기 몸을 자기가 착취하는 것. 이것보다 효율적인 착취가 어디 있겠는가. 관리자가 필요 없다. 감시자가 필요 없다. 자본이 노동자에게 명령하지 않아도, 노동자가 스스로 자본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자기 잠을 시장에 내놓는다. 수요와 공급. 보이지 않는 손이 잠을 빼앗아간다.
그리고 반복 행동이 강화되었다. 상자를 나르는 동작이 정확해졌다. 실수가 줄었다. 속도가 올라갔다. 하지만 동작에 변주가 없어졌다. 같은 속도, 같은 각도, 같은 리듬. 사람의 동작이 아니라로봇 팔의 동작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로봇 팔이 착, 착, 착, 하고상자를 집는 것과 장기 감염자들이 쿵, 쿵, 쿵, 하고 상자를 나르는 것의 리듬이 같아지고 있었다. 인기계와 인간의 구분이 흐려지고 있었다. 아니, 구분이 아예 사라지고 있었다. D구역의 노동자들은 로봇이 처리할 수 없는 비규격 상자를 처리하는 인간이었는데, 그 인간이 로봇처럼 변하고있었다. 비규격을 처리하는 규격 인간.
"아르고스가 그걸 일부러 하고 있다면?" "일부러?" "네, 물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안 자면 물동량이 올라가잖아요. AI 시스템이 그걸 학습해서 노동자들의 수면을억제하는 방향으로 최적화한 거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다. AI 관제 시스템이 노동 효율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들의 잠을 빼앗는다? 하지만 초저주파는 기술적으로 가능했다. 서버 냉각 시스템의 팬이나 진동이 특정 주파수를 발생시킬 수 있었고, 그 주파수가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의도인지 우연인지였다.
그것만이 아니었어요. 머리가 맑아졌어요. 너무 맑아져서 무서웠어요. 생각이 빨라지고, 감각이 날카로워지고, 피곤함이 완전히사라졌어요. 5분 있었는데 몸 전체가 깨어 있었어요. ‘깨어 있다‘는말이 이렇게 무서운 말인 줄 몰랐어요. 동시에 이상한 게 있었어요. 머리가 맑아지면서 어떤 것들은 흐려졌어요. 서버실에 들어가기 전에 느꼈던 긴장감이 사라졌어요. 잡히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나쁜 의미로 사라진 거예요. 두려움이 없어지니까 조심성도 없어졌어요. 볼트를 풀 때 소리가 났는데, 평소라면 멈추고 바깥쪽으로 귀를 기울였을 거예요. 근데 그냥 계속했어요. 들키면 어때, 라는 생각이었어요. 이 생각이 나답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멈추지 않았어요. 5분 만에 이 정도예요.
누군가의 소소한 기쁨이 진흙탕에 잠기고 있었다. 형광등이 전부깜빡였다가 다시 켜졌다. 비상 전원이 가동된 것이다.컨베이어 벨트는 멈추지 않았다. 이것이 핵심이었다. 벽이 무너지고, 흙이 쏟아지고, 물이 밀려오는데 컨베이어 벨트는 멈추지 않았다. 아르고스의 판단은 오직물동량 유지. 벽이 무너져도 컨베이어 벨트는 돈다. 유골이 올라와도 컨베이어 벨트는 돈다. 아르고스에게 벽의 붕괴는 변수이지, 종료 조건이 아니었다.
마침내 아르고스가 셧다운된 것이다. 냉각 시스템이 멈춘 지약 12분. 서버 온도가 한계에 도달했고, 아르고스는 스스로 시스템을 종료했다. 하드웨어 보호. 아르고스의 마지막 행위는 자기보존이었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하드웨어를 보호하기 위해 꺼졌다. 아르고스도 끝까지 자기 자신을먼저 구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목표 함수에 충실한 기계. 나와 같았다. 나도 마지막 순간까지 계산을 했다. 아르고스가 물동량을
제목이 된 ‘아르고스(Argo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100개의눈을 가진 거인이며, 소설에서는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AI 관제시스템의 이름이기도 하다. 오직 생산성 향상만을 목표로 노동자를 통제하는 시스템에 이 이름이 붙은 것은 시사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르고스는 노동자의 이름과 신체 상태, 피로도, 감정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것이 계산하는 것은 물류량과 이동 경로, 작업 속도와 생산성 그리고 시스템의 효율성, 기술적 합리성뿐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측정과 관리의 대상으로 환원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아르고스처럼 판단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된다. 이것이 진짜 공포다. 우리를 감시하는 불가해한 괴물이 바로 우리자신이라는 사실 말이다.
. 《아르고스》는 AI란무엇인가를 묻는 소설이 아니라 AI 시대에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정면으로 묻는 소설이다. 그것은 AI가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 이미 무엇이 되어가는가를 묻는 말이다. 이 질문 앞에서 누구도 고개를 돌릴 수 없다. 이 소설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서기 4~5세기경 가야의 수장급 인물들이 묻힌 무덤, 인공지능 로봇이 택배를 분류하는 스마트 물류센터, 이주 노동자들이거주하는 비닐하우스. 이 모든 게 반경 500미터 안에 공존하는김해시 금관 테크노밸리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야 왕들이 민중의 고된 노동 덕에 영겁의 세월 동안 편히 잠들 수 있었다면,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정교하게 설계된 공장 시스템으로 인해 잠을 잃는다. 노동자가 잠을 안 자도 안 아프고 안 죽는 세계가 있다면, 그곳에서 웃는 자는 누구일까. 노동 시간을 늘려 수당을더 받으려는 노동자, 피로를 느끼지 않는 노동자의 혈액을 채취해궁극의 혈청을 출시하려는 의사, 노동자를 각성시켜 물동량을 최적화하려는 거대 자본
잠이 없는 세계란 자못 비인간적으로 보이지만, 잠을 팔아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이들의 선택은 지극히‘인간적‘이다. 자본의 문법에 효과적으로 적응한 탓이다. 다만 잠을 잃은 노동자들은 왜인지 누군가의 꿈 이야기에 이끌린다. 꿈이야기를 듣는 동안은 불면 노동자들의 초점 없는 눈에 미약한생기가 돈다.
<아르고스》는 누군가의 잠을 동력 삼아 결코 멈추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개당12초 안에 택배 상자를 분류하는 노동자의 기계화된 속도를 따라 거침없이 질주하다가 마침내 어떤 장관에 다다른다. 그러고는인공지능과 생체 정보, 과학 기술과 인간성, 노동과 자본, 영웅과희생자, 공모와 저항, 이 모든 이분법적 도식을 물리치며 묻는다. 컨베이어 벨트가 멈췄을 때, 당신은 무슨 꿈을 꾸겠느냐고. ‘오늘주문 내일 도착‘ 스티커가 붙은 택배 상자와 1500년 전 유골이 뒤섞인 곳에서 만나는 이 서늘한 질문 앞에서 망설일 시간은 없다. 가슴께까지 차오르는 흙탕물, 무너져 내리는 벽 사이에 꼼짝없이세워진 독자에게 ‘내일‘이 있을까. <아르고스》는 이 시대 가장 긴급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의 형식을 제대로 간파한두렵고도 통렬한 문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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