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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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아렌트가 강조한 것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이히만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와 다름이 없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는 ‘악의 평범성banality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가 달린 것이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유대인 학살이라는 전대미문의 범죄 혹은 악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발생했던 것일까요? 아렌트는 바로 이 점에 관해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던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그녀는 다음과 같이 아이히만이 저지른 범죄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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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빅터 (스페셜 에디션) - 17년 동안 바보로 살았던 멘사 회장의 이야기
호아킴 데 포사다 외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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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이 무언가를 만들 때는 대부분 기존의 것에서 디자인을 살짝 고치거나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하죠. 이른바 지루한 덧칠작업이죠. 그에 반해 천재들은 사물의 결정적인 요소를 바꿉니다. 새로운 물건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만들죠. 세상에, 줄넘기에서줄을 없앨 생각을 하다니. 정말 친구 분을 빨리 만나 뵙고 싶네요!"

"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활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느껴도 그것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상한 점을 당연하게 여기기까지 하죠. 하지만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들은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들은질문을 하죠. 왜? 왜? 왜? 언제 어디서나 질문을 하는사람. 이들이 애프리가 원하는 창조적인 인재들입니다. 바로 빅터 씨처럼요."

그러자 불덩이 같던 남자의 체온은 거짓말처럼 정상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정신의 힘을 과소평가한다. 정신은 정신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신은 행동을 지배한다.
표지판을 잘못 본 등산객의 경우처럼 정신은 심지어육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무엇을 믿느냐에따라 당신의 현실이 결정된다.

"세… 세상의 기준이 오옳… 은 것 아닌가요?"
"전혀 그렇지가 않네."
테일러 회장은 웃으며 검지를 흔들었다. 그리곤 검지를 가슴팍에 대고 줄을 긋듯 수직으로 내려 그었다.
"사람들은 심장이 왼쪽에 있다고 말하네. 그런데 사실 심장은 인체 중앙에 있어. 약간 왼쪽으로 치우쳤을뿐, 일반적인 위치 개념으로는 분명 중앙이야. 하지만으레 심장은 왼쪽에 있다고 알아왔던 탓에 모두 그렇게 말하는 것일세. 학창시절에 심장이 가운데 그려진인체해부도를 수없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눈보다 잘못된 상식을 더 믿는 거지."

17년 전 빅터를 저능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로널드 선생의 눈에는 빅터의 IQ 평가표에 적힌 173 이란숫자가 73으로 보였다. 그게 사건의 전부였다. 단지 누락된 한 자리 숫자로 인해 빅터는 17년 동안 바보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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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대신 좌파라고 불러 주지만, 좌파라는 완곡 어법은 여전히, 곧바로 ‘공산당 일당 독재·생산수단의 공동소유·평등한 분배’를 의미하는 스탈린주의를 뜻하고, 나아가 김일성·김정일 세습 왕가의 추종 세력임을 증명해 주는 불도장이다. 하지만 박노자는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의 보론 「좌파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단상」을 쓰면서, 좌파란 "시대 해방적이며 발전적인 경향을 주장하고 따르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말한다. 그는 20세기 말에 무너졌던 교조적 현실 사회주의를 부정하면서 "현실에 대한 비판과 부정"의 정신을 가진 사람은 모두, 이미 좌파라는 세례를 베푼다.

중국이 조선을, ‘임금은 약하고 신하는 강하다’는 뜻의 ‘군약신강君弱臣强’의 나라라고 일컬었듯, 조선은 재상 우위의 국가, 요즘으로 말하자면 내각책임제 국가였다. 조선은 그 정치 구조상 임금이 아무리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려고 해도 사대부들이 따라 주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나라였다. 이런 나라에서 효종이 추진한 군비 확장 정책은 기득권에 안주하는 문신들의 강한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문신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란 국란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 어떤 교훈을 얻기에는 이미 정치 구조가 고질적인 문치주의로 고착된 것이다. 군약신강과 문치주의! 이것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것이 우리나라 현대사를 비극으로 만든 계몽 군주에 대한 갈구가 아니었을까?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국가 형성기에는 강력한 군주가 있어야 한다는 국가주의 신화를 이승만·박정희와 같은 독재자를 통해 해갈하려고 했던 절박한 사정에는, 군약신강과 문치주의에 대한 한국민의 오래된 불신이 깔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위의 인용문은, 몇 년 전부터 신문과 방송을 통해 심심찮게 대할 수 있었던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시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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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안에서든 그저 중립이나 중용만 취하고 있으면 무지가 드러나지 않을 뿐더러,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로까지 떠받들어진다. 나의 중용은 나의 무지였다. 중용의 본래는 칼날 위에 서는 것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것을 뜻할 뿐이다. 그러니 그 중용에는 아무런 사유도 고민도 없다. 허위 의식이고 대중 기만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무지의 중용을 빙자한 지긋지긋한 ‘양비론의 천사’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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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작용을 살피면서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선택하는 일도 결국 ‘나는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종림 스님은 욕망과 무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잘 살고 싶고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없애거나 억눌러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유로이 일어나도록 살려야 하는 대상이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나의 욕망과 남의 욕망이 어떻게 서로 억누르지 않고 어우러질 수 있을까? 종림 스님은 마음이라는 틀 안의 내용을 비우자고 제안했다. 서로를 보장하고 존중하는 길을 비움 속에서 찾는다. 마지막으로 철학자 셸리 케이건과 함께 죽음을 마주한다. 그는 죽음이 삶을 부른다고 했다. 우리는 자신의 유한함과 끝을 충분히 인지할 때 살아 있는 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사랑에 대해 물었다. 로맨틱한 사랑 말이다. 정념을 미루고 차단하려 하는 오늘의 청춘들을 보며 애달픔이 일었다.

두 번째 이유는 이 공부가 실제로 내 삶에 통찰을 준다는 것입니다. 왜 화를 냈을까? 왜 기분이 처질까? 왜 어떤 사실은 기억하면서 다른 사실은 잊어버릴까? 그리고 이는 정치, 경제, 역사와 연결됩니다. 사람들은 왜 전쟁을 일으킬까? 가장 효과적인 정부의 틀은 무엇일까? 법이 존재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무정부적 질서를 지향해야 하는 것 아닐까? 돈을 꼭 각자 벌어 소유해야 하나, 아니면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이런 정치적인 질문은 결국 인간 본성에 관한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바로 ‘뇌는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한 질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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