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이야기 - 옛이야기 다시읽는 5060 명작 3
임석재 지음, 배종근 그림 / 재미마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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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누군가 만나고 싶은 출판사 사장님이 있느냐고 물으면 난 재미마주의, 그림 작가이기도 한 이호백 님을 1등으로 꼽고 싶다. 재미마주에서 나오는 책 한 권 한 권을 살펴보면 그 분의 정신 같은 걸 느낄 수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재미마주의 책에서는 상업성이 아닌 진정성이 느껴지고, 책을 많이 내는 출판사가 아닌데 나오는 책들마다 눈길을 끌게 만든다. 이호백 님은 돈보다는 책과 어린이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분이 아닐까 싶다.

재미마주에서는 작년부터 50~60년대 우리 어린이들이 읽었던 시나 동화집을 다시 읽는 명작 시리즈로 출간하고 있다. 가끔 예전에 나왔던 책을 글도 요즘 투로 바꾸고 그림도 바꿔서 나오는 경우가 있긴 한데 재미마주는 그대로 책을 만들어서 예전 어린이, 즉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읽었던 그대로의 책을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책이 참 소박하다. 요즘 나오는 큼직하고 화려한 그림책 속에 끼어 있으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또 책모양 만큼 내용도 소박하다. 자극적인 것이나 새로운 것, 남의 나라 이야기에 더 열광하는 시대에 진짜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획된 책이로구나 싶다. 그리고 단순한 선과 점만으로 이루어진 흑백의 삽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림만 보아도 이야기의 내용이 어떨지 짐작이 가고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이 느껴진다.  


<어린 신랑 놀리는 말>에 있는 그림인데, 어린 신랑이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면서 쩔쩔매고 있는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우는 모퉁이>에 실린 그림이다. 글을 모르는 어머니가 아들이 보낸 편지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읽어달라고 했더니 다짜고짜 울기에 어머니는 나쁜 소식인 줄 알고 울고, 지나가던 스님도 덩달아 따라 우는 모습이다. 알고 보니 지나가던 사람도 글을 읽을 줄 몰라 서러워 울었던 거라는구만.

이 책에는 모두 23편의 옛날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개그 콘서트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야기를 읽을 때는 웃겨서 막 깔깔대지만 다 읽고 나면 뭔가 탁! 하고 와닿는 느낌들이 있다. 또 우리 아이가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자꾸 나온다고 할 정도로 옛말이나 자주 접해보지 못한 순우리말, 시골에서 쓰는 말도 많이 나온다.  

옛날 옛적, 간날 갓적, 무자수 고려적, 나무접시 소년적, 툭수바리 영감적, 헌 벙거지 초립적, 고초당초 어릴 적, 털벙거지 열각적....(옛날 옛적에 중에서)  

새서방 망태  꼴방태, 의주 벙거지 날라리, 노랑두 대구리,  물렛줄 상투 잡아 매고서 샛문 가에 붙어서 호말 같은 색시 보고 누렁지 달라 밥광지 달라... (어린 신랑 놀리는 말 중에서)

.... 어두운 데 들어가다가 그만 고무래 잎을 밟았습니다. 그러니까 고무래 자루가 그만 툭 하고 올라와서 이 신랑의 이마를 때렸습니다. ...(미련한 신랑 중에서)    

한 편 한 편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슬며시 웃음이 배어나온다. 어릴 적 할아버지 할머니 옆에 꼭 붙어 앉아 들었던 옛날 이야기를 다시 듣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린다. 엄마 아빠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들을 앞에 앉혀놓고 옛날 이야기 들려주듯 편안하게 읽어주면 딱 좋을 것 같다. 이야기 한 편 읽어주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5분이면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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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10-05-15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감있고 재미난 책이네요. 찜하고 갑니다.^^

소나무집 2010-05-15 19:00   좋아요 0 | URL
네, 정감 있고 재미있어요. 그런데 아이들 눈에 쏙 들어오는 책은 아니라서 부모가 읽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순오기 2010-05-16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끌리네요.
이호백 선생님 그림 정말 좋아요~~~ 돈보다 어린이를 생각하는 정신도 좋고요.
이 책은 이호백 그림이 아니군요. 선으로만 그린 그림이 독특하네요.

소나무집 2010-05-17 09:08   좋아요 0 | URL
눈에 딱 들어오는 책은 아니지만
우리 어렸을 때 들었던 옛날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 추억에 젖을 수 있어요.
 

딸아이가 어버이날 하루 종일 잘 놀다가 잠자리에 누워서 말했다. 사실은 학교에서 편지 썼다고. 아마 이런 편지 주는 게 좀 쑥스러웠나 보다. 딸아이가 준 편지를 이불 속에 누워서 읽으며 눈물이 왈칵 솟았더랬다. 그래서 "고마워!"  한마디만 하고는 자는 척했는데...

나도 딸아이가 있어 고맙고 행복하다.    

"저를 위해서 고생해주신 엄마께 이 훈장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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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0-05-13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뻐요♡

소나무집 2010-05-14 10:40   좋아요 0 | URL
네, 요렇게 예쁠 때도 있지만 안 예쁠 때도 많아요.^^

sslmo 2010-05-13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소나무집님.

딸 아이에게 저런 편지를 받을 수 있는 엄마,아빠는 정말 행복하겠어요~
무한감동 받고 갑니다.

소나무집 2010-05-14 10:41   좋아요 0 | URL
네, 반가워요.

엘리자베스 2010-05-13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엄마라니...완전 감동받았어요.
선우는 정말 얼굴도 마음도 모두 예쁘네요.
아들편지는 없는 건가요?

소나무집 2010-05-14 10:43   좋아요 0 | URL
울 아들은 아빠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래요.^^
울 아들도 학교에서 편지는 썼는데 안 가져와서 어버이날 지나고도 한참 있다가 엄마가 추궁을 하니까 그때서야 갖다 주는 거 있죠. 별 내용도 없는 편지..ㅜㅜ

순오기 2010-05-13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딸 키우는 맛이 있지요~ 왈칵, 하셨쎄요.^^
큰딸은 고3때 기숙사에 있을 때 감동의 편지도 보내드만
올해는 세 넘들 모두 편지 한 통도 없네요.ㅜㅜ
이젠 머리 컸다고 감동의 편지든 형식적 편지는 안쓰기로 했나 봅니다.ㅋㅋ

소나무집 2010-05-14 10:45   좋아요 0 | URL
주중엔 남편이랑 떨어져 사니까 요즘 제가 딸한테 기대고 사는 것 같아요.ㅎㅎ
삼남매가 왜 순오기님을 섭섭하게 했을까나....
우리 딸도 좀 크면 무심해질 듯..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쓰라고 해서 썼대요.

세실 2010-05-15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눈물나요. 어쩜...이렇게 엄마, 아빠 마음을 잘 이해할까요. 참 예쁜 따님이예요.
특히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첫 구절....멋져요. 작가의 역량도 보입니다.

소나무집 2010-05-15 19:00   좋아요 0 | URL
네, 예쁜 딸이에요. 저도 고슴도치 엄마.ㅋㅋ

같은하늘 2010-05-1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엄마, 아빠를 이렇게 감동시키나요? 행복하셨겠어요.
2학년 울 아들도 선생님께서 쓰라하니 써오긴 했던데...^^

소나무집 2010-05-15 19:02   좋아요 0 | URL
네, 행복했어요. 아들은 이런 거 기대 안 해요.
어디 다치지만 말고 잘 지내만 다오~ 예요.^^

꿈꾸는섬 2010-05-16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쓴 편지 정말 감동이에요.^^

소나무집 2010-05-17 09:02   좋아요 0 | URL
저도 가끔씩이라도 이렇게 엄마 아빠를 생각해주는 딸내미의 마음이 예뻐요.^^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중1 세트 (최신판, 전3권) (특별부록 :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100% 활용하기)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
김규중 외 엮음 / 창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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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영어 수학은 잘하는 아이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성적이 비슷비슷하고, 성적이 판가름나는 과목은 오히려 국어라고 한다. 영수에 비해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도 적지만 책읽기를 게을리한 아이들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는 이야기다. 두루두루 책읽기를 못하는 아이들이라도 국어 교과서 속에 나온 원작만이라도 충실하게 읽어주기를 바라는 게 엄마의 마음이지만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7차 개정 중학교 검정 국어 교과서가 올해부터는 23종으로 늘어났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어떤 출판사 국어 교과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배우는 내용이 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른 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어떤 작품들이 실렸을지도 궁금하다. 학교별 교과서를 다 찾아볼 수도 없고, 또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 실렸다 해도 아이들이 교과서를 들고 다니며 읽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엄마와 아이들의 마음을 창비에서 알아주었다. 23종 교과서 출판사 중 한 곳으로 창비가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고맙게도 23종 교과서 속에 나온 작품을 한꺼번에 읽어볼 수 있는 기회까지 마련해주었다. 이번에 중학교 1학년 과정이 나온 걸 보니 앞으로 학년별로 다 나올 모양이어서 더 반갑다.  

창비에서는 23종 국어 교과서에 들어 있는 소설, 수필, 시 들 중에서 중학교 1학년 아이가 읽었을 때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을 맛볼 수 있고, 시험 점수가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들로 골라 단행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출판사가 아닌 창비에서 만든 책이기에 더 믿고 읽을 수 있다. 더불어 우리 아이가 갈 중학교에서도 창비 교과서를 선택했길 바라는 마음...^^   

작가나 작품 목록만 보아도 국정 교과서 1종일 때보다 내용이 많이 다양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작가 중 반가운 이름들도 많이 눈에 띈다. 한마디로 국어 공부할 맛이 나는 교과서로 변한 것 같아 문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흐뭇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작품 선정 과정에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해온 현직 국어 선생님 100여 명이 참여했기 때문에 더 믿음이 간다. 맨 뒤에 보면 참여한 선생님들의 명단은 물론 작품이 실린 교과서와 원작 출판사에 대한 정보까지 실려 있다.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3종 세트로 책표지도 모두 깔끔하니 마음에 든다. 교과서에 실릴 때는 줄이거나 고친 부분을 찾아내어 원문을 살렸고, 내용이 어려워 풀어쓴 경우에만 교과서 속 원문을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수필은 130편 중 44편으로 1부에는 나와 가족, 2부에는 이웃과 사회, 3부에는 여행기와 전기와 고전 작품이 실려 있다. 어려운 낱말은 주석을 달아놓아서 대충 넘어가지 않도록 했고, 작가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고 있다.  

작가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박지성, 안철수, 장영희, 한비야, 박원순, 윤구병 님의 글이 보여서 무지 반가웠다. 이들의 단편을 읽고 나면 원작을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물씬물씬 든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충실하게 독서를 한 아이라면 이미 접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고맙게도 중간중간에 작품을 읽어보고 직접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볼 수 있는 독후 활동 코너도 있다. 

      
소설은 모두 12편으로 1부에는 심리와 갈등, 2부에는 정서와 분위기, 3부에는 역사적 상황을 다룬 작품이 실려 있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현덕), 육촌 형(이현주), 동백꽃(김유정), 항아리(정호승), 학(황순원), 수난 시대(하근찬)) 등 재미는 물론 소설의 참맛까지 알게 해주는 작품들이다. 

소설의 경우는 작품마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독후 활동이 실려 있어서 이 부분만 충실히 한다면 논술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특히 학교 선생님들이 이 독후 활동 부분을 잘 활용해서 수업한다면 아이들이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문학 작품을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는 모두 45편이 실려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함께 읽으면 좋은 짝꿍 시를 같이 실어놓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김소월의 <가는 길>이라는 시와 함께 윤동주의<새로운 길>이라는 시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시를 읽고 나서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간단한 활동도 실려 있다.

시를 읽다 보면 가끔 어디에 초점을 두고 읽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는데 이 책에서는 아이들의 그런 어려움을 알고 감상 길잡이도 함께 실었다. 직접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듯 다정한 투의 글이어서 시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김소월의 <가는 길>에 붙은 내용은 "여러분은 올레길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올레는 제주도의 해안가를 따라 걷는 여행자를 위한 길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요. <가는 길>은 어떤 길일까요? 누군가 사랑하게 되면 걷게 되는 그리움과 망설임과 아쉬움이 뒤섞인 갈등과 고민의 길이 아닐까요?"이다. 이 길잡이 부분만 읽는 것으로도 생각이 깊어질 것 같다.

아이들과 국어 공부를 해보면 원작을 제대로 읽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작품 내용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다르다. 원작 전체를 읽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교과서에 실린 작품집을 가까이 두고 손 갈 때마다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중학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던 6학년 딸아이가 이 책 세 권을 하루 종일 들고 다니면서 "중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별 거 아니네!" 하는 걸 보니 중학교 1학년은 물론 6학년 아이들이 예습용으로 구비해두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의 바람대로 이제는 아이들이 주제나 소재를 외우는 국어 공부가 목적이 아닌 작품을 즐기는 즐거운 국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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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5-13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우리 막내 학교에서는 창비 국어를 채택했어요.
창비 책이 선정되는데 나도 한 몫 했고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아인 3학년이니 창비책으로 못 배운다는...
이렇게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으로 모아 낸 책이 있으니 정말 좋으네요. 추천 꾹~

소나무집 2010-05-13 09:18   좋아요 0 | URL
아쉬워라. 창비국어로 수업을 못하다니...
교과서 국어책에 들어 있는 교육 목적의 상업적인 책이 아니라 그냥 수필집, 단편소설집, 시집으로 읽어도 좋을 작품들이어서 정말 강추하고 싶어요.
 

금요일부터 제주에서 시부모님이 올라와 계셔서 4강을 들으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강의를 맡으신 분이 문학평론가 정현기 교수님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침을 먹으면서 시어머니께 양해를 구했고, 부랴부랴 토지학교로  달려갔다. 정현기 교수님의 유명세를 알고 있었기에 가까이에서 뵙고 강의를 꼭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댁이 있는 광주에서 새벽 차를 타고 와서 사우나에 잠깐 들렀다며 몹시 피곤하다고 하셨지만 강의를 하는 두 시간 동안 피곤한 기색은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이셨다. 교수님은 전두환 시절 작가의 사위인 김지하 시인을 두 달간 숨겨준 죄로 해직당했다가 1988년에 복직하셨는데 그 일로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후 교수님은 박경리 선생을 어머니처럼 스승처럼 모셨다고.    


복직 후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계시면서 <토지>에 대한 연구는 물론 <토지>를 연구하는 후학들도 많이 배출하셨다.

강의 내내 MBC에서 촬영을 하고 있어서 교수님의 유명세를 더 느낄 수 있었다.  

정현기 교수님은 <토지, 약육강식의 소설 세계사 읽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셨는데, 현 정부와 미국 추종자들에 대한 비판에 얼마나 속이 후련했는지 모른다. 그런 강의는 하루 종일 들어도 신이 날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요즘의 한나라당은 일진회보다 더 하다고 해서 수강생들 모두 통감을 하며 웃었다. 교수님은 당시 시대 설명을 하면서 안중근과 윤동주, 염상섭 등의 이야기를 길게 하셨고, 이인직 같은 이는 문학적 첩자라고 일갈하셨다. 일본 정치 학교를 졸업한 이인직을 신소설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코미디란다.

<토지>가 시작된 1897년 무렵은 세계적으로 힘센 나라가 힘이 약한 나라를 주워삼키려는 야욕으로 가득한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대였다. <토지>가 시작되기 백여 년 전부터 서양은 산업혁명에 의해 사람의 삶이 바뀌고 있었는데 기계 덕에 소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생산된 물건들을 팔 시장이 필요해지자 제국주의라는 괴물이 탄생하게 된 것. 일부 재산가들이 만들어낸 지구 전제를 싹쓸이하려는 생산 체제는 지구를 몸살을 앓게 만들었고, <토지> 탄생의 배경 또한 거기에 있다고 교수님은 해석을 하셨다. 

한마디로 <토지>는 문명이라는 이름의 재앙이 한국에 달려든 모습을 보여주려고 시작된 소설이라는 것이다. <토지>는 힘이 약한 조선이 일본에게 먹혀 들어가는 과정을 민중들의 삶을 통해 세세히 보여주고 있으며, 제국주의란 남을 이용해서 나만 잘 살아보겠다는 더러운 심보인데, 소설 <토지> 속에는 그 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5대째 부를 이어오던 평사리 최부자집이 왜놈의 상징인 조준구에게 망하지만 용정에서 곡물 장사로 돈을 번 최서희가 다시 평사리로 돌아오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속엔 제국주의로 인해 망한 최부자집이 있고, 다시 자본주의 방식으로 성공해서 집안을 일으키는 최서희가 있다. 교수님은 제국주의, 자본주의, 세계화, 글로벌리제이션은 식민주의의 다른 말이라며 언어의 포장에 속지 말라는 당부도 하셨다. 

<토지> 속에서 선생이 보여주고 있는 여러 삶의 모습은 그들의 삶을 통해 얽어매고 옥죄며 이래라 저래라 하는 더러운 제국주의 계급 의식을 한데 묶어 그것들이 모두 없애버려야 할 것이라는 속뜻을 담고 있다. 사실 내가 몇 년 전 <토지>를 읽을 때는 스토리만 따라가며 읽기에도 바빠 이런 속뜻까지 헤아릴 생각조차 못했다. <토지>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또 불끈 솟는다. 


강의를 마치고 교수님과 함께. 강의를 듣는 내내 느낀 것은 정현기 교수님은 박경리 선생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분이라는 것이었다. 정릉 집을 팔아 원주로 오실 때 집 사고 남은 돈 500만원을 주시며 빚을 갚으라 한 이야기, 박경리 선생의 단구동 집을 드나들며 서쪽으로 창이 난 부엌 밥상에 앉아 곰국을 먹던 이야기 등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셨다.  (5월 1일 강의)


4강의 조별 활동은 원주, 박경리, 토지,박경리 문학공원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넣어 마음대로 글쓰기였다. 우리 조에서는 시를 써서 일등을 먹었다.  



소설 <토지>를 읽고 박경리 선생을 흠모했네!/남 몰래 그리워하다 박경리문학공원에 오게 되었네!/소설 <토지>를 내 마음에 담고 나니 원주를 떠날 수가 없네!

 *** 정현기 교수님의 토지론을 엿볼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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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5-09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좋은 강의 들으셨네요. 부럽다....저도 토지 다시 읽고 싶어요.
근데 소나무집은 누구실까???

소나무집 2010-05-10 09:03   좋아요 0 | URL
작품을 알고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에는 많이 차이가 있음을 새삼 느끼고 있어요. 교수님 뒤에~

세실 2010-05-20 21:21   좋아요 0 | URL
아 맨 아래 발표하시는 분? 참 단아하세요.

같은하늘 2010-05-11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정말 부러워요. 전 소나무집님 바로 보이는데요~~ㅎㅎ

소나무집 2010-05-12 14:46   좋아요 0 | URL
저도 정말 좋은 강의 듣고 있어서 행복해요. 바로 알아보셨군요.^^

꿈꾸는섬 2010-05-12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새 4강이네요.ㅎㅎ

소나무집 2010-05-13 09:15   좋아요 0 | URL
지난 주 토욜에 5강 수업도 했어요.
이번 주 안에 5강도 올리야 할텐데...

순오기 2010-05-13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원주로 간 건 정말 복이에요~ 부러워라!!
정현기 교수님 강의는 어제 MBC에 나올까요?

소나무집 2010-05-13 09:36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유일하게 마음을 줄 수 있는 곳이랍니다. mbc에서 어떤 프로그램에 내보려고 찍어갔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꼬리 잘린 생쥐 신나는 책읽기 25
권영품 지음, 이광익 그림 / 창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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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잘린 생쥐>는 창비 '좋은 어린이책' 저학년 부문 수상작이다. 책을 읽으면서 와, 정말 상을 받을 만하구나 싶었다. 가끔 동화책을 읽으면서 '나도 동화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을 품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꼬리를 싹~ 내리고 말았다. 이 정도 수준의 작품을 쓸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정말 한 번 책을 들면 순식간에 읽게 될 만큼 매력적이다.

<꼬리 잘린 생쥐>는 저학년 아이들에게 재미와 교훈을 적절히 주는 아주 훌륭한 작품이지만 이래라 저래라 훈계 따윈 찾아볼 수 없다. 못난 쥐에 속하는 꼬리 잘린 생쥐가 잘난 쥐들 사이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멋진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잘난 것과 못난 것의 벽을 허물고 함께 살아가야 더 행복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에게 잡혀서 꼬리가 잘린 빠른발 생쥐는 고양이가 없는 유일한 장소가 학교라는 이야기를 듣고 학교로 가는데 그곳에는 고양이만큼이나 무서운 잘난 쥐와 못난 쥐를 구분하는 학교 쥐법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꼬리가 잘린 빠른발은 아무리 자신의 잘난 점을 늘어놓아도 못난 쥐로 구분되고 마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도 한 가지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쉽게 편견을 버릴 수 없듯 꼬리가 잘렸기 때문에 고양이를 물리쳤다는 사실마저 의심을 받는다.  

못난 쥐인 회색눈을 만나 학교 돌아가는 사정을 들은 빠른발은 포기하지 않고 잘난 쥐들의 횡포에 맞서 싸우기로 한다. 하지만 스스로 못난 쥐의 운명을 인정하고 잘난 쥐들의 명령에 따라 살던 못난 쥐들은 빠른발을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무서운가! 못났다고 쇄뇌를 시키니까 진짜 스스로 못났다고 인정하고 복종을 하니 말이다. 결국 지혜로운 작전을 써서 잘난 쥐의 우두머리를 물리친 빠른발은 잘난 쥐와 못난 쥐를 구분하는 악법인 학교 쥐법을 없앤 후 다같이 섞여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쥐들의 학교를 만들어낸다.  

학교 교사인 작가는 교실에 햄스터가 나타났던 경험을 살려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낮에는 학생들이 생활하던 학교에서 밤이 되면 쥐들의 세상이 펼쳐진다는 상상도 있을 법해서 아이들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난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쥐의 흔적을 찾느라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지나 않을까 모르겠다.

요즘은 누가 뭐래도 잘난 사람들이 더 대접을 받는다. 어쩌면 유행하는 말처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인지도 모른다. 1등에 가려진 2등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기에 사람들은 기를 쓰고 1등을 하려고 한다. 이젠 그 여파가 어른뿐만 아니라 초등 아이들에게까지 미쳐 경쟁을 부추기고 아이다움을 잃어가게 하고 있다. 

아이들 세계에서 키도 작고 뚱뚱하고 공부도 못하면 대놓고 찌질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좀 잘난 아이와 좀 못난 아이가 어울려 도와주는 게 아니라 서로 선을 긋다 보니 왕따 문제도 생기고 그러는 게 아닐까 싶다. 좀 부족한 아이들을 왕따시키고 일등이 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일등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그 삶이 부족한 이웃을 도와가며 사는 삶보다 행복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언제 어디서든 내 아이가 최고가 되길 바라는 부모님과 초등 저학년. 그리고 자신의 단점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꼬리가 잘린 자신의 처지를 장점으로 만들어버릴 줄 아는 생쥐 빠른발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단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을 것이다. 동화 내용과 잘 어울리는 삽화도 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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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5-07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좋은 리뷰에요.

소나무집 2010-05-10 09:23   좋아요 0 | URL
재미있으니 꼭 읽어보세요.

순오기 2010-05-13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주에 이 책 샀는데 아직 못 읽었어요.
소나무집님 창비 신간도서 리뷰만 올라오는데~ ^^

2010-05-13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10-05-13 09:12   좋아요 0 | URL
3,4학년 정도 아이들하고 수업을 해도 좋을 책이에요.

2010-05-13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