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영어 수학은 잘하는 아이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성적이 비슷비슷하고, 성적이 판가름나는 과목은 오히려 국어라고 한다. 영수에 비해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도 적지만 책읽기를 게을리한 아이들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는 이야기다. 두루두루 책읽기를 못하는 아이들이라도 국어 교과서 속에 나온 원작만이라도 충실하게 읽어주기를 바라는 게 엄마의 마음이지만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7차 개정 중학교 검정 국어 교과서가 올해부터는 23종으로 늘어났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어떤 출판사 국어 교과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배우는 내용이 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른 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어떤 작품들이 실렸을지도 궁금하다. 학교별 교과서를 다 찾아볼 수도 없고, 또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 실렸다 해도 아이들이 교과서를 들고 다니며 읽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엄마와 아이들의 마음을 창비에서 알아주었다. 23종 교과서 출판사 중 한 곳으로 창비가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고맙게도 23종 교과서 속에 나온 작품을 한꺼번에 읽어볼 수 있는 기회까지 마련해주었다. 이번에 중학교 1학년 과정이 나온 걸 보니 앞으로 학년별로 다 나올 모양이어서 더 반갑다.
창비에서는 23종 국어 교과서에 들어 있는 소설, 수필, 시 들 중에서 중학교 1학년 아이가 읽었을 때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을 맛볼 수 있고, 시험 점수가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들로 골라 단행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출판사가 아닌 창비에서 만든 책이기에 더 믿고 읽을 수 있다. 더불어 우리 아이가 갈 중학교에서도 창비 교과서를 선택했길 바라는 마음...^^
작가나 작품 목록만 보아도 국정 교과서 1종일 때보다 내용이 많이 다양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작가 중 반가운 이름들도 많이 눈에 띈다. 한마디로 국어 공부할 맛이 나는 교과서로 변한 것 같아 문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흐뭇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작품 선정 과정에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해온 현직 국어 선생님 100여 명이 참여했기 때문에 더 믿음이 간다. 맨 뒤에 보면 참여한 선생님들의 명단은 물론 작품이 실린 교과서와 원작 출판사에 대한 정보까지 실려 있다.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3종 세트로 책표지도 모두 깔끔하니 마음에 든다. 교과서에 실릴 때는 줄이거나 고친 부분을 찾아내어 원문을 살렸고, 내용이 어려워 풀어쓴 경우에만 교과서 속 원문을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수필은 130편 중 44편으로 1부에는 나와 가족, 2부에는 이웃과 사회, 3부에는 여행기와 전기와 고전 작품이 실려 있다. 어려운 낱말은 주석을 달아놓아서 대충 넘어가지 않도록 했고, 작가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고 있다.
작가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박지성, 안철수, 장영희, 한비야, 박원순, 윤구병 님의 글이 보여서 무지 반가웠다. 이들의 단편을 읽고 나면 원작을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물씬물씬 든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충실하게 독서를 한 아이라면 이미 접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고맙게도 중간중간에 작품을 읽어보고 직접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볼 수 있는 독후 활동 코너도 있다.
소설은 모두 12편으로 1부에는 심리와 갈등, 2부에는 정서와 분위기, 3부에는 역사적 상황을 다룬 작품이 실려 있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현덕), 육촌 형(이현주), 동백꽃(김유정), 항아리(정호승), 학(황순원), 수난 시대(하근찬)) 등 재미는 물론 소설의 참맛까지 알게 해주는 작품들이다.
소설의 경우는 작품마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독후 활동이 실려 있어서 이 부분만 충실히 한다면 논술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특히 학교 선생님들이 이 독후 활동 부분을 잘 활용해서 수업한다면 아이들이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문학 작품을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는 모두 45편이 실려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함께 읽으면 좋은 짝꿍 시를 같이 실어놓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김소월의 <가는 길>이라는 시와 함께 윤동주의<새로운 길>이라는 시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시를 읽고 나서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간단한 활동도 실려 있다.
시를 읽다 보면 가끔 어디에 초점을 두고 읽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는데 이 책에서는 아이들의 그런 어려움을 알고 감상 길잡이도 함께 실었다. 직접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듯 다정한 투의 글이어서 시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김소월의 <가는 길>에 붙은 내용은 "여러분은 올레길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올레는 제주도의 해안가를 따라 걷는 여행자를 위한 길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요. <가는 길>은 어떤 길일까요? 누군가 사랑하게 되면 걷게 되는 그리움과 망설임과 아쉬움이 뒤섞인 갈등과 고민의 길이 아닐까요?"이다. 이 길잡이 부분만 읽는 것으로도 생각이 깊어질 것 같다.
아이들과 국어 공부를 해보면 원작을 제대로 읽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작품 내용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다르다. 원작 전체를 읽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교과서에 실린 작품집을 가까이 두고 손 갈 때마다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중학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던 6학년 딸아이가 이 책 세 권을 하루 종일 들고 다니면서 "중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별 거 아니네!" 하는 걸 보니 중학교 1학년은 물론 6학년 아이들이 예습용으로 구비해두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의 바람대로 이제는 아이들이 주제나 소재를 외우는 국어 공부가 목적이 아닌 작품을 즐기는 즐거운 국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