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아들은 제주에 있다.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내려가서 안 올라왔다. 엄마랑 헤어진 지 열흘이 되었지만 아들은 전화도 안 하고, 어쩌다 할머니가 전화를 바꿔줘도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 안 한다. 괘씸하게시리. 그만큼 사촌 셋과 지내는 제주에서의 생활이 즐거운 모양이다.
우리 어렸을 때는 방학이면 으레 고모네 이모네 삼촌네 집에 가서 살다 오는 걸 당연시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이런 저런 사정들로 인해 장기간 친척집에 머무는 일은 드문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보내라고 한 형님께 고맙고, 집에서 늘 신경을 써야 하는 어머니께도 고맙다. 난 아들이 엄마의 그늘을 벗어나 한 달을 살면서 마음이 훌쩍 커서(불가능할까?)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할머니의 각별한 사랑도 받고 사촌들과의 끈끈함도 생겨 오기를...
집에서는 몇 번씩 불러도 대답도 안 하고 말도 징글징글 안 듣던 아들이 순한 양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아이구, 요것이 금방 환경에 적응할 줄은 알아가지고... 거기서까지 말을 안 들으면 밥도 못 얻어 먹을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나 보다.
요즘 아들은 사촌들과 함께 제주택견 전통 문화학교에 다니고 있다. 3년 전부터 형님네 아이들이 다니면서 알게 된 곳인데 택견보다는 아이들 정신 훈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하게 하고, 힘들거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도 하게 하고, 자연과 친밀하게 만들어주고,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준다. 생활 예절은 기본이고, 배운 것은 반드시 실천하게 만든다.
제주택견 사부님
아들을 부탁하러 갔던 날 가자마자 그곳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 아들(강아지를 쓰다듬으며 평상에 앉아 있는)의 친화력은 누굴 닮았나 몰라.
조카들이 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한라산에 오르고, 계절을 가리지 않고 밤에 야영을 하고, 계곡이나 바다에 다이빙을 하기도 한다. 실내에서는 운동도 하지만 요일별로 우리 역사, 천자문, 단소 가야금(별도의 교육비를 받음) 같은 것을 가르치기도 한다. 내가 보기에 그곳은 택견 학원이 아니라 종합 학교 같다. 몇 년 동안 그곳에 다닌 조카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며 나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우리 아들에게도 꼭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방학에 내려 보낼 계획을 세운 것이다.
형님의 특별한 부탁 덕분에 우리 아들은 평일반과 주말반에 다 등록을 해서 하루 두 시간은 무조건 택견에 간다. 고집불통에 하는 일마다 얼렁뚱땅이라 고생도 좀 하고 사부님께 걸려서 왕창 혼이 날 줄 알았던 아들은 겁대가리가 없는 덕분에 오히려 칭찬을 받고 있다고 한다. 계속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그곳 생활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울 아들에게는 딱인 모양이다.
엄마랑 처음 떨어져 봤는데 나름 잘 적응해서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할머니집에서 택견 다니는 것 외에 내가 아들에게 요구한 것은 딱 한 가지다. 매일 일기 쓸 것. 그 외에 것은 알아서 할 것.
함덕해수욕장에서 사촌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