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책과 함께 보는 소프트웨어 개념 사전 - 컴퓨팅 사고력과 문제해결능력을 위한 나만의 비밀 노트! 궁리 IT’s story 시리즈
김현정 지음 / 궁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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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초등학생이었던 수년 전에 아내는 아들에게 학원을 강요하는 대신 과목별 '개념 사전'을 열심히 사서 읽혔다. <초등 수학 개념 사전>을 다 읽었다 싶으면 <초등 과학 개념 사전>을 읽히는 식으로 말이다. 예컨대 분수는 '전체에 대한 일부분을 나타내는 수'라고 말할 수 있는 간단한 개념이지만 초등학생의 눈높이에선 그렇게 간단한 개념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므로 책은 그림을 곁들인 여러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의 이해를 돕는다. 공부라는 게 사실 꼭 알아야 하는 과목별 용어가 수도 없이 많은데 이를 간과하고 넘어가면 나중에는 그 과목의 수업이 마치 외국어처럼 들리게 마련인데 그쯤 되면 50분 수업을 듣는다는 건 고문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학년이 높아질수록 과목에서 배우는 필수 용어들이 차츰 증가하게 마련인데 용어의 개념을 등한시한다는 건 공부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진배없다.

 

다소 딱딱할 수도 있는 용어의 개념들을 아내는 짬이 날 때마다 아들에게 퀴즈를 내듯 물어봄으로써 재미를 더하기도 했다. 때로는 내기를 해서 선심 쓰듯 외식을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내의 그런 노력 덕분인지 아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금까지 별 어려움 없이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고 개념 사전을 읽히려 했던 아내의 교육 방식을 내가 전적으로 찬성했던 건 아니다. 자식 교육은 아내가 도맡다시피 하는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이따금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어도 그저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말하자면 자식의 교육에 있어서는 나 역시 한 발 물러나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랬던 내가 늦은 나이에 개념 사전을 읽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책의 제목인 즉 <코딩책과 함께 보는 소프트웨어 개념 사전>.

 

"언론을 통해 귀가 따갑게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컴퓨터 분야를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눈높이 정보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 '핫'한 주인공인 소프트웨어를 쉽게 설명해주는 책을 찾기 어려웠지요. 그래서 저는 이 책『코딩책과 함께 보는 소프트웨어 개념 사전』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우리 생활 곳곳에 마치 공기처럼 존재하며 동작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의 종류, 개념과 원리,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p.11)

 

코딩을 공부하여 인생 2막을 준비하려는 건 물론 아니다. 그럴 만한 능력도 되지 못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많고도 많은 듯했다. 학생들이 한 학년 한 학년 단계를 밟아 올라갈 때마다 익혀야 할 용어의 개념이 늘어나는 것처럼 소프트웨어가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던 과거의 어느 시점부터 한 해 한 해 우리가 배우고 익혔어야 할 관련 용어와 개념들이 비례하여 증가하였음에도 나는 그저 방치한 채 지금껏 버텨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학교 3학년 무렵 잠시 컴퓨터 코딩을 배웠던 아들과의 대화도 조금씩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책이나 잡지, 심지어 저녁 뉴스를 들을 때도 소프트웨어 관련 용어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듣지 못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컴퓨터를 '서버'라고 부르지만, 어떤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웹서버, 콘텐츠서버, DB서버 등 이름도 제각각이랍니다. 웹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버는 당연히 '웹서버'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웹서버(web server)는 웹브라우저(클라이언트)에서 요청한 내용을 처리해주는 소프트웨어인데요, 레스토랑에서 테이블 담당 서버가 손님의 요청을 처리하는 것처럼 웹서버는 인터넷을 통해 도착한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처리합니다" (p.159)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저자의 설명은 무척이나 친절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나처럼 워드 작성만 겨우 할 뿐 다양한 분야의 컴퓨터 사용법은 시도조차 하지 않거나 때로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외면해버리는 '컴퓨터 비 친화적인 종족'을 위한 안내서인 셈이다. 어찌 보면 다양한 소프트웨어의 개발로 인해 누군가는 다양한 편의와 유용한 삶의 도구를 확보하게 되지만 다른 위치에 있는 누군가는 사회로부터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 아웃사이더로 전락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가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서 소위 '인싸'로 남느냐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아싸'가 전락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의 학습 여하에 달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면 우리가 등한시했던 소프트웨어 용어의 개념부터 차근차근 배워가는 게 순서일 듯싶다.

 

카이스트에서 소프트웨어공학을 전공한 후 지난 20년 동안 IT컨설팅회사에 근무하며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직접 경험하고, 현장에서 얻은 지식과 노하우를 독자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자 집필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는 저자는 이 책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1장 코딩 언어로 작성된 응용 소프트웨어, 2장 컴퓨터를 통솔하는 소프트웨어, 3장 전 세계 웹을 연결하는 소프트웨어, 4장 빅데이터를 위한 소프트웨어, 5장 보안과 보호를 위한 소프트웨어, 6장 코딩을 위한 소프트웨어의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4차 산업혁명 시기의 '사회 부적응자'를 위한 지침서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게 언어를 익히는 일인 것처럼 달라진 세상의 통용어에 대한 개념을 익히는 것이야말로 사회 구성원으로 남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가 아닐까. 마치 나는 미뤄두었던 숙제를 끝내는 심정으로 책을 꼼꼼히 읽었다. 저녁 뉴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소프트웨어 용어의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이 시대를 살아왔다는 게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아들에게 개념 사전을 읽힐 게 아니라 개념 사전이 필요했던 사람은 정작 내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언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의 경험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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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내가 애국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요즘처럼 한·일 간의 갈등이 격화된 시점에서는 애국자보다 매국노가 먼저 눈에 띄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패전 이전의 군국주의 일본을 꿈꾸는 아베의 입장에서는 그가 던진 경제 보복이 한국을 단박에 무릎 꿇릴 비장의 카드라고 생각했겠지만 막상 던져 놓고 보니 상황은 그 반대로 흘러가고 있어 당사자인 그도 적잖이 당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미안하다며 보복을 철회할 수도 없는 입장이니 그로서도 진퇴양난의 곤란한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마당에 제국주의 일본을 옹호하는 듯한 논리를 전개하며 <반일 종족주의>라는 해괴한 제목의 책을 펴낸 이 모 교수의 행태라든가 시민단체를 표방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세력화를 도모하는 주 모 여인의 아베 사과 발언 등을 보면서 우리나라 사회에서 여전히 버러지만도 못한 사람들이 활개를 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게다가 이 모 교수는 취재 기자를 폭행하는 등 안하무인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지난 보수정권에서 그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었던가 생각하게 했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습도마저 높아 불쾌지수는 끝을 모르고 오르는 마당에 국민들의 화를 돋우고 찜통더위에 기름을 부은 것은 국회 운영위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리 국회의원이라지만 자신보다  열세 살이나 많은 안보실장에게 반말 짓거리에 욕설까지 한 정 모 의원이나 대통령을 끝없이 흠집 내려는 곽 모 의원의 짓거리 등은 그야말로 목불인견의 광경이었다. 합리적인 근거와 대안을 갖고 조목조목 따져 묻는다면 아무리 야당 의원이라지만 국민들로부터 박수와 지지를 받을 텐데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행태로 정부를 뒤흔들려고 하니 누군들 열불이 나지 않겠는가.

 

찜통더위와 몰지각한 인사들의 행태로 불쾌지수는 높아질 대로 높아졌지만 그래도 오늘은 입추. 20대 국회도 이제 가을에 접어들지 않았던가.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까지 채 일 년도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끝나지 않을 듯한 더위도, 불쾌지수를 높이는 국회의원들의 온갖 패악질도 이제 서서히 그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조금만 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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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
승효상 지음 / 돌베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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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종교라는 굴레로 인해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고, 또 때로는 종교라는 형식으로 인해 더욱 깊어지기도 한다. 책을 읽을 때도 다르지 않다. 내가 어떤 특정한 종교를 믿어서가 아니라 종교라는 엄숙성, 종교라는 절대적 삶의 기준이 때로는 짐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때로는 진리와 깨우침으로 가는 첩경인 양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종교는 한 개인의 기분과 마음먹기에 따라서 가슴 답답한 굴레가 되기도 하고, 목표 지점과 방향을 일러주는 삶의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단순히 가위바위보에서 뭘 낼지 결정하는 것처럼 개인의 가벼운 선택에 달려 있을 뿐 특정 종교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불교를 믿는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 어떻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반야심경을 읽으면 또 어떻단 말인가. 삶의 깨우침에 도움이 된다면 형식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기 <묵상> 역시 그와 같은 책이다. 종교를 떠나 자신이 평생 몸담고 정진했던 건축을 통해 진리에 이르고자 하는 그의 여정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향하는 구도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여행을 통해 그 장소가 가진 진실을 목도하고 현실로 돌아와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작가는 혼자서, 때론 여럿이 길을 떠난다. 이번에 작가는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 14일 동안 로마·아시시·제노바·파리 등을 돌아보았다. 불면에 시달리면서 유럽 곳곳에 산재한 수도원과 건축을 따라가는 여정은 차라리 어둠을 지새우는 '묵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당에서 참배하고 올라오는 일행의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풀밭에서 하늘의 별을 보며 와인을 마실 계획인 모양이었다. 나는 오늘 내내 피곤을 느낀 까닭에 좋은 잠을 잘 수 있을 듯하여 슬그머니 일행을 비켜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차게 들어왔다. 창문을 닫고 침대에 꿇어앉아 오늘의 여정이 무사히 끝난 것에 감사하며 담요를 끌어당겨 잠을 청했다." (p.215)

 

책은 작가와 일행이 방문한 여러 수도원의 흑백 사진과 함께 건축가인 작가의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진다. 그러나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이 책의 가치는 다른 데 있다. 수도원의 역사와 작가의 사유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것은 물론 동행한 사람들에 대한 생생한 기록과 그날그날의 일정을 담백하게 담아냄으로써 여행기로서의 면모도 잃지 않는다. 다른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일반인이 잘 알 수 없는 건축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건축을 수도 없이 베끼고 외웠으므로 누구보다 이 건축에 대해 자신이 있었고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라 투레트 수도원을 처음 본 1991년 여름, 이 검은 공간으로 발을 디딘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에 빠졌다. 내 상상은 관습이었고, 지식은 헛된 것이었다. 다른 세계였다. 이 말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폭 12미터, 길이 42미터, 높이 12미터? 아니었다. 공간은 무한이었다. 암흑. 그 속을 뚫고 비수처럼 들어온 빛은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의 조화를 부리며 암흑을 농락했다." (p.360)

 

한때 존재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신학을 공부하려 했었다는 작가는 건축을 통해 '빈자의 미학'을 세상에 소개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이 책에서 영성을 지닌 건축의 의미와 가치를 전하는 데 주력한다. 종교적 의미의 영성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건축과 물질문명의 천박함에 대한 반발로 고요와 묵상, 영성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목적에서 쓰인 이 책의 유용성은 종교적 목적으로 수도원 기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훌륭한 가이드북이 될 뿐만 아니라 물질문명의 번잡함에서 한발 비껴서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이들에겐 훌륭한 명상록이 될 수 있겠다.

 

"몸을 돌리면 흰 벽 사이 좁은 틈새가 있는데 순교자들이 죽어 거주하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 안에는 그들의 아픈 이름이 적힌 벽면이 끝 모르게 뻗어 있고, 작은 방에는 절규가 벽을 후벼 파고 굳어버렸다. 이곳에 들어온 누구 하나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다.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이내 밖으로 나오면 백색 공간에 홀로 서게 되는데, 세상의 모든 사물이 멈춘 듯 고요하다. 기댈 곳 하나 없는 텅 빈 마당에 홀로 서서 어쩔 수 없이 받은 침묵의 세계. 침묵을 모르는 도시는 몰락을 통해 침묵을 찾는다고 했던가…. 세상과 격리된 이곳, 바로 파눔이다." (p.500)

 

세상은 이미 천민자본주의에 찌든 목회자들이 대부분의 교회를 장악하고 있다. 교회는 영성과 구원을 파는 가게로 변한 지 오래, 자신의 언변으로 미욱한 신도들을 유혹하고, 자신에게 속한 신도의 숫자가 교계의 영향력이자 권위가 되는 세상. 사랑침례교회 정 모 목사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으니 2차 대전의 전범국'이라며 '조선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국가권력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헛소리를 아무 거리낌 없이 하지 않던가. 그들의 목적은 오직 자신의 권위와 돈. 그것을 쟁취할 수만 있다면 하느님의 진리도 언제든 내다 팔 수 있다는 자세가 아닌가. 해방 이후 성직자입네 폼을 잡고 온갖 분탕질을 일삼았던 목회자들이 어디 한둘일까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바퀴벌레처럼 기어 나오는 것 같다. 더위에 인적이 끊긴 보도는 말매미 소리만 가득하다. 호젓한 곳을 찾아 묵상에 들고픈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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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체'를 대체하는 용어로 '지적장애'가 쓰이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2007년 10월에 개정된 장애인 복지법이 시행됨에 따라 '지적장애'라는 말이 새로운 법적 명칭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정신지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것은 어느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정신지체'를 우리가 흔히 쓰는 사회학적 용어 '문화 지체 현상'에 대입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물질 문화와 비물질 문화의 변화 속도의 차이로 인해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가치관의 혼란 등의 부작용을 겪게 되는 현상을 '문화 지체 현상'이라고 일컫는 것처럼 매년 한 살씩 더해가는 물리적 나이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지식이나 판단능력, 상황 대처 능력 등 정신적 성숙도를 나타내는 정신 연령 사이에는 변동 속도의 차이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이처럼 물리적 나이와 정신 연령 간 변동 속도의 차이에서 오는 혼란은 누구나 겪게 된다. 말하자면 정신 지체 현상은 삶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인 셈이다. 그러므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는 정신 지체자라고 말할 수 있다. 70대의 노인이 마음은 20대 청춘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의식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자신의 나이에 비해 항상 뒤처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흔히 알고 있는 인디언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인디언은 한참을 달린 후에는 항상  멈춰 서서 자신의 영혼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몸이 너무 빨리 달리면 영혼이 따라오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시간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흐르는 까닭에 우리의 영혼이 미처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혹은 우리의 먼 먼 조상이 지구의 시간보다 더 천천히 흐르는 외계 행성에서 이주해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아무튼 우리 모두는 '정신지체자'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삶이 지속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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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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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뉴욕시 브루클린을 무대로 펼쳐진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맘동네'에 가입한 초보 엄마들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이라고나 할까. 아기를 돌보느라 꼼짝없이 집에 갇힌 신세가 된 그들은 일주일에 두 번 유모차를 끌고 브루클린의 공원 버드나무 아래 잔디밭으로 모인다. 때는 바야흐로 초여름, 엄마로서의 고충을 토로하며 자연스레 모임이 결성되었고, 모임의 이름 역시 '5월 맘'으로 정해졌다.

 

"스칼릿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 그때 시댁 식구들이 새로 살 집을 보러 올 것 같아요. 하지만 이 계획에서 나만 빠지는 건 싫은데. 내가 앞으로 브루클린에 얼마나 오래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그럼 5월맘들한테 내가 전부 메일을 보낼게요. 한번 신나게 놀아보자고요. 진짜 재미있을 만한 곳을 찾아놓을게요." 넬의 말에 프랜시가 대답했다." (p.40)

 

비슷한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는 고통의 강도가 크면 클수록 구성원들 간의 유대와 친화력도 더욱 증가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엄마들의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 역시 이런저런 필요성에 의해 오래도록 지속되는 게 일반적이다. 마치 남자들의 군대 모임이 단지 군 생활을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깨지지 않고 오래 지속되는 것처럼 말이다. 에이미 몰로이의 소설 <퍼펙트 마더> 역시 초보 엄마들의 끈끈한 유대와 육아의 어려움, 엄마들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아기에 대한 엄마의 강한 모성애 등 복합적인 시선을 스릴러 형식의 소설로 그려냄으로써 우리 사회에 상존하는 육아휴직, 상급자의 부하 여직원 미투, 낙태 문제 등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이슈들을 들춰낸다.

 

"프랜시는 엄마들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지난번 모임 이후로 1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그녀는 깊은 상실감을 느꼈다. 모임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기대했던가. 다른 엄마들이 둥글게 둘러앉은 사이에 자신의 자리가 있고, 서로 조언을 나누며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그 시간이 그리웠다. 이윽고 프랜시는 벤치에서 내려와 카메라 초점을 거리 건너편에 맞추고 위니의 집 앞을 서성거리는 기자 몇 명을 유심히 관찰했다." (p.217)

 

사건의 발단은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엄마들이 동네 술집에서 모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육아의 고통에서 벗어나 잠시 기분 전환을 하자는 취지였는데 싱글맘인 위니의 아기가 그날 밤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기를 봐주기로 했던 베이비시터가 잠깐 잠든 사이에 아기가 아무도 모르게 증발해버린 것이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취재진이 몰리면서 단순히 공통 관심사였던 육아 외의 다른 사적인 것들이 하나둘 알려지기 시작한다. 아기를 잃어버린 위니가 20년 전 유명 TV 드라마의 주연 배우이자 하이틴 스타였다는 사실과 위니의 아기가 사라진 날 밤 엄마들이 술집에서 놀고 있었던 사실이 사진과 함께 신문에 노출되었다.

 

"로웰이 아기를 봐준다면 가게에 가서 소스라도 한 병 살 수 있겠지. 그러자. 울어도 놔두고 조금 쉬어야 한다. 종일 인터넷으로 퍼트리샤 페이스의 사이트를 보고 마이더스 기사를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거기에 달린 끔찍한 댓글도 그만 읽고, 위니를 놓고 대체 그날 밤 어디 있었냐고, 왜 언론에 나오지도 않고, 인터뷰도 안 하고, 마이더스를 돌려달라는 소리도 없느냐고 궁금해하는 질문들도 그만 읽자." (p.250)

 

'아기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이제 엄마들 모두의 공포가 된다. 그리고 경찰의 수사와 기자들의 취재가 이어지면서 위니를 돕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던 넬과 프랜시와 콜레트의 비밀과 거짓말도 점차 드러난다. '자격 없는 엄마들'이라는 대중의 비난이 거세지고, 아기를 잃어버린 위니 역시 자책과 회한이 깊어진다. 그러나 진실을 향한 단서들이 서서히 모아지고 소설은 끝을 향해 치닫는데...

 

자식이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퍼펙트 마더>에 등장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아이에 대한 모든 책임이 전적으로 엄마에게 주어지는 것은 물론 조금만 잘못해도 모든 비난이 엄마에게 쏟아진다는 사실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누구에게도 크나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하루 스물네 시간 단 한순간도 아기에게서 눈을 뗄 수조차 없는 육아의 고통과 버거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시대가 바뀌어 요즘 젊은 아빠들은 육아에 적극적이라고는 하지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모든 부담을 떠안는 엄마의 입장과 단순히 육체적인 힘듦만 견디면 되는 아빠의 입장은 분명히 다르다. 최근에 있었던 조은누리 양 실종 사건만 보더라도 대중의 비난이 엄마에게 집중되지 않던가. 사정도 모르면서 말이다. 여자들은 엄마가 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퍼펙트 마더'가 되도록 요구받는다. 그것은 더없이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엄마들은 탈출구가 없는 개미지옥으로 느끼지나 않을까. 지나고 나면 금세 그리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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