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의 하늘은 어찌나 푸르던지요. 오늘은 1년 24절기 중 여덟째 절기인 소만(小滿)이자 부부의 날.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자라 가득 찬다고 해서 '만(滿)'을 썼다지요. 이맘때면 가을보리를 베고, 모내기를 하고, 밭에 나가 김을 매던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오릅니다. 여름으로 가는 햇살은 따가웠고, 봉숭아의 잎과 꽃잎을 찧어 백반과 소금을 섞어 손톱에 얹고 호박잎이나 피마자잎을 덮어 노끈으로 챙챙 동여주던 누나의 다정했던 손길이 무척이나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점심을 먹고 근처 공원을 잠깐 걸었습니다. 더위를 식힐 정도의 적당한 바람이 불었고, 그늘 밑 벤치에는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도 눈에 띕니다. 인적이 드문 구석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김훈의 <연필로 쓰기>를 마저 읽었습니다. 심술궂은 바람이 제멋대로 책장을 넘기고, 까무룩 들던 낮잠을 저만치 쫓아냅니다.

 

가지런한 봄이 작아지고(小), 바지런한 여름으로 채워지는(滿), 오늘은 소만(小滿). 쾌청한 하늘이 좋아서, 바람이 적당해서, 자꾸만 밖으로 시선이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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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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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누구나 쉽게 감지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의 소설에서는 언제나 치열함이 엿보이지만 에세이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풀어져 있는 작가의 면모를 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소설 쓰기에 집중하느라 바짝 열이 올랐던 몸을 설렁설렁 에세이나 쓰면서 쉬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작가가 에세이를 쓸 때는 성의 없이 '설렁설렁' 쓰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 있는 나로서는 작가가 때로는 '설렁설렁' 글을 쓰는 것도 괜찮겠다 싶기는 하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비판적인 시각에서 하루키의 작품을 대하는 독자라면 그와 같은 사실이 결코 용납이 되지 않는다거나 다시는 그의 작품을 읽지 않겠다고 선언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하루키의 에세이를 팬의 입장에서 읽는 까닭에 책을 읽을 때마다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러므로 하루키의 작품에 대한 나의 리뷰는 어쩌면 편파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는 하루키의 팬이 되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니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이라는 다소 특이한 제목의 에세이는 작가가 1983년부터 약 오 년에 걸쳐 쓴 것으로 '하이패션'이라는 잡지에 게재했던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의 나이로는 서른넷에서 서른아홉까지의 시기인데 작가가 막 유명세를 타던 시기와 겹치는 까닭에 이사도 잦고 매우 바빴던 시기이기도 했다.

 

 

"내 의견을 덧붙이자면, 별 볼일 없는 인간은 별 볼일 없는 일로 기뻐하는 동시에 별 볼일 없는 일로 화를 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원칙적으로 묘한 일에 기뻐하고 감격하는 사람을 그리 신용하지 않는다. 가령 '아무래도 이건 아니잖아, 잘못짚은 거 같은데' 싶을 정도로 누군가가 나를 열심히 칭찬해준다고 치자.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바로 이런 타입이다. 칭찬하는 거니 뭐 어떠랴 하다보면, 또 반드시 영문을 알 수 없는 일로 화를 내기 시작한다. 나로서는 완전한 소모다. 그 사람이 'little mind'든 아니든 'little things'에 기뻐하는 사람은 굳이 상대하지 않는다-이게 인생의 철칙이다. 이렇게 말하고서 내가 'little things'에 기뻐하면 우스운 꼴이겠지만." (p.117)

 

 

이 책에서도 작가는 자신의 이런저런 경험담과 더불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챈들러, 트루먼 커포티에 대해 언급한다. 글쓰기 방식에 대해서는 챈들러를, 재테크에는 젬병인 자신과 스콧 피츠제럴드의 공통점을, 그럼에도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이 조금 더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까지. 물론 이 책 역시 가벼운 신변잡기를 다룬 에세이인 까닭에 지금은 사라진 광고나 오래전에 읽었던 신문기사,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이 실려 있다.

 

 

"가난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나는 때로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면 노인네 같다며 싫어할 테지만, 옛날(이십 년 전의) 여자들은 "가난한 건 절대 싫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지 못했다. 적어도 내 주위에 있는 여자들은 그랬다. 그녀들에게는 돈보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앞섰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여자들이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여자도 꽤 많았다. 외제차가 있는 남자랑만 데이트하는 여자애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여자는 어디까지나 극소수였고, 적어도 나와는 별 인연이 없었다. 내 주위의 보통 여자들은 차가 없거나 돈이 없어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데이트 때도 내게 돈이 없으면 상대가 냈다. 그런 일은 수치도 뭣도 아니었다." (p.195)

 

 

책에 수록된 여러 꼭지의 글을 소개하면서도 정작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의 소개는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글이 하루키를 향한 비난의 빌미가 되거나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하루키 작품 전체에 대한 매도나 폄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그의 글에 의하면 하루키가 십 년 동안 품어온 꿈이 쌍둥이 여자친구를 갖는 것이란다. 설명에 따르자면 그가 본 영화 <하이스쿨Almost Summer>은 캘리포니아 고등학생들의 생활을 그린 청춘영화인데, 영화의 마지막 졸업 기념 파티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이 재킷을 멋지게 차려입고 양옆에 쌍둥이 여학생을 거느리고 나타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렇게나 멋져 보였다는 것이다. 성적인 영역으로 확대할 필요도 없이 그저 특별한 경험으로서 쌍둥이 자매와 파티에 가고 싶을 뿐이라는 것.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으니 뭐라 거들거나 덧붙일 말은 없지만 아무튼 하루키는 그런 꿈을 꾸었다는 것.

 

 

내가 하루키의 소설뿐만 아니라 그의 에세이까지 빼놓지 않고 읽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가 쓴 작품 몇 권쯤은 읽어봐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책을 읽는 재미가 우선인 경우가 많다. 학술적 목적도 없는데 굳이 어떤 작가의 작품 성향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하루키의 저서는 독자들로 하여금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책을 읽은 후에는 '이 사람은 정말 독특한걸.'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나와 어떤 공통점이 있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나와 다르기 때문에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가슴으로 느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얘기다. 우리 주변에는 나와 다른 사람보다는 비슷한 사람이 더 많은 까닭이다. 이놈 저놈 하면서 욕할 대상만 아니라면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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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담장에는 넝쿨장미가 한창입니다. 오늘은 5·18 민주화 운동 39주년이 되는 날. 끄물끄물한 하늘에선 간간이 비가 내렸고, 장미의 붉은빛만 온종일 선명했습니다. 8,90년대를 지나쳐온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매년 이맘때의 심정은 말할 수 없는 미안함과 부끄러움, 삶에 대한 부질없음이 교차하곤 합니다. 그리고 나는 한나 아렌트를 생각하게 됩니다. 악랄하기 그지없었던 전두환과 그의 일당들, 그리고 직접적인 학살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함으로써 그들의 만행에 동조했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 그 시대를 살았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악의 평범성'을 주장했던 한나 아렌트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태인 학살에 가담했던 히틀러와 그의 잔당들을 증오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똑같은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국민들을 학살하는 이스라엘 정치인들을 증오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지금의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많은 영령들의 피의 대가였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한 까닭에 우리는 감사와 부끄러움을 담아 5·18 영령들께 조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엄혹했던 전두환 군사정권하에서 80년 광주의 사정은 알려지지 않았고, 세월이 한참이나 흐른 뒤에야 겨우 사람들의 입과 입으로, 흐릿한 영상을 통해 조금씩 알려졌을 뿐이지요. 우리는 그렇게 무지했던 시절을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장에 참석했던 자유당의 대표는 8,90년대를 관통했던 군사정부 시절에 공안검사를 함으로써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독재를 옹호했던, 어찌 보면 독재의 수혜자이자 '악의 평범성'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의 손에 직접적으로 피를 묻히지 않았다고 해서 죄에서 한 발 비껴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인간은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실수였든 고의였든 차후에 반성하고 참회함으로써 인간 된 자격을 다시 회복하는 게 아닐까요?  아파트 담장에는 넝쿨장미가 선명했던 오늘, 간간이 비가 내렸고 나는 문득 부끄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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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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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오쿠다 히데오가 있다면 한국에는 박민규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적어도 <공중그네>를 썼던 오쿠다 히데오가 살짝 정신이 나갔는지 <남쪽으로 튀어>버린 후 생각지도 못한 추리소설로 방향을 선회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변절이 유행하던 시기였고, 범람하던 변절의 유혹으로부터 작가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박민규 작가만큼은 작가 나름의 지조(?)를 지키며 <지구 영웅전설>을 들려주는가 하면 어느 날에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나 박민규의 본심은 늘 프란츠 카프카로 향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카스테라>를 먹으며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처럼.

 

박민규의 소설집 <카스테라>에 실린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는 2004년 소설가와 문학평론가가 뽑은 '가장 좋은 소설'에 선정된 작품이기도 하다. 박민규의 유머와 상상력이 스토리에 잘 녹아든 이 소설에서 작가는 평생을 자신만의 계산기대로 살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삶을 잘 그려내고 있다. 수학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부 특권층을 제외하면 평생을 자신만의 산수로 주먹구구식 계산을 하며 살아가면서도 영원히 다가오지 않을 희망의 신기루를 끝없이 기다린 탓에 기린처럼 목이 길어진 우리의 자화상을 소설 속에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희망에 중독된 우리의 목도 어쩌면 미래를 향해 45도쯤 기울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산수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을 발견하게 된다.'고 단언하는 작가의 냉정한 현실인식이 추위에 언 독자의 뺨을 후려치는 듯한 소설.

 

"미안하구나. 아버지는 그렇게 얘기했지만, 아버지, 이건 나의 산수예요 라고 나는 생각했다. 정기적금 정기적금, 또 한 통의 자유적금. 시급 천오백원과 천원이 따로따로 쌓여가는 통장들을 생각하면, 세상에 힘든 일은 없었다. 말할 것 같으면, 내 주변은 주로 그랬다." (p.73)

 

소설 속의 '나'(승일)는 상고(정보고)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착실한 학생이다. 말하자면 그렇다. 코딱지만 한 작은 회사에 다니는 아버지와 상가건물에서 청소일을 하는 어머니 그리고 건강이 좋지 않은 할머니와 함께 사는 '나'는 중학생 시절의 어느 날 아버지의 회사에 도시락을 갖다 주면서 자신의 현실을 깨닫게 되고, 그날부터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편의점 알바에서부터 주유소 알바, 신문돌리기까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뺑뺑이를 돌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다. 이런저런 알바를 전전하던 '나'에게 그나마 시급이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하던 형을 '나'는 '코치'라고 부르며 따르는데, 어느 날 '코치형'이 시급이 좋은 지하철 푸시맨 일자리를 소개한다. '나'는 그렇게 시급은 좋지만 노동 강도가 높은 푸시맨이 되었고, 방학이 아닌 평일에도 담임 선생님의 허락 하에 푸시맨 일을 계속한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셔야겠지만, 그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전철을 타야 하고, 전철엔 이미 탈 자리가 없다. 타지 않으면 늦는다.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곳을 택하겠는가." (p.74)

 

가을이 시작되던 어느 날 청소일을 하던 어머니가 쓰러지고, 아버지의 회사 사정마저 어려워지자 '나'는 어머니의 병실에서 눈동자가 잿빛이 된 아버지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얘기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날도 '나'는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야 하는 아버지를 밀어드렸다. 아버지가 사라진 후 '나'는 아버지의 회사에서 밀렸던 두 달분의 월급을 받고,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고, 어머니를 간호한다. '나'는 여전히 삶의 안전선 안쪽으로 사람들을 밀고 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온다. '나'의 집은 무사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유사한 산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숨이 트인다. 여느 때처럼 푸시맨 알바를 끝냈는데, 기린으로 변한 아버지를 보게 된다.

 

"나는 혼자 울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이었다. 아버지... 곧장 나는 가슴속의 말을 꺼냈고, 기린의 무릎 위에 내 손을 올려놓았다. 떨리는 손바닥을 통해, 손으로 밀어본 사람이 기억하는 양복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져왔다." (p.93)

 

어느 날 갑자기 흉측한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 잠자처럼 소설 속 '나'의 아버지 역시 기린으로 변해 있다. 오지 않을 희망을 평생 기다려온 탓에 종국에는 우리 모두가 기린으로 변하는 것은 아닐까. 때 이른 더위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지는 오후, 나는 오늘도 나만의 산수를 하며 하루를 견디고 있다. '논픽션은 현실을 픽션화하는 작업이고, 픽션은 허구를 현실화하는 작업'이라는데 나의 삶은 과연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산수에 지친 나는 픽션과 논픽션의 논쟁에 휘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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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방역 활동을 열심히 한 덕분인지 아니면 최근 지속된 가뭄으로 물웅덩이가 사라진 탓인지 그 원인은 차치하고서라도 예년에 비해 모기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든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내가 사는 지역만 그럴 뿐 다른 지역은 지나치게 많은 모기 개체수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아침 산행에서 모기떼의 집중 공격을 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겠다. 오늘처럼 바람도 없고 날씨마저 후덥지근한 날 모기떼와 함께 산행을 한다는 건 그닥 유쾌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기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자구책으로 한여름에도 긴소매 옷을 고집하는 나로서는 모기의 개체수가 많아진다는 건 그야말로 청천벽력의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서 지병에 가까운 모기 공포증의 증세가 심해지고 있다.

 

그에 반해 정치인들에 대한 해묵은 혐오증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자유당의 당 대표가 부하들을 이끌고 장외로 나가는 바람에 뉴스 화면에서 그들의 모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고 욕에 가까운 험한 말들은 이따금 들려오지만 같은 나라에서 살면서 그 정도쯤이야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하더라도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의 존재감을 내세우기 위해 싸움질이나 했을 터, 차라리 안 보이는 곳에서 조용히 지내는 게 국민들의 정신건강에 유익하지 싶은 것이다. 어찌 보면 자유당의 황 대표는 국민들의 정치 혐오증을 예방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역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지...

 

오늘도 바깥 기온은 초여름 날씨처럼 덥다. 그나마 모기도 없고, 정치인들도 보이지 않으니 괜한 짜증은 나지 않는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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