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정호 그림 / 알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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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합리적인 근거를 갖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계절은 역시 가을이 아닌가 싶다. 날씨가 선선해지고 초록의 나뭇잎들이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의 몸도 마음도 시나브로 사색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변화의 절정은 역시 낙엽이 지고 스산한 바람이 부는 바야흐로 만추가 되겠지만 말이다. 이와 같은 계절에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는 책이라면 역시 올리버 색스의 책들이 아닐까 싶다.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의사로서뿐 아니라 문필가로도 유명한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신경학자로서 전문적 식견과 따스한 휴머니즘을 드러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인간 존엄을 깨닫도록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아서 매년 가을이면 그의 대표작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종종 꺼내 읽곤 한다. 물론 다른 계절에도 마음이 울적할 때면 이따금 꺼내 읽기는 하지만.

 

수줍음이 많고 나서기를 싫어했던 색스는 브롱크스 자치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혼자 살면서 신경과 의사로서의 경험과 자신이 만났던 환자들의 사연을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들려준다. 1부와 2부에서는 주로 뇌 기능의 결핍과 과잉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3부와 4부에서는 지적장애를 지닌 환자들에게 발견되는 발작적 회상, 변형된 지각, 비범한 정신적 자각 등을 다루었다.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이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일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면서 '아, 나 역시 이들과 비슷한 정신적 상처를 한두 개쯤 안고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자각을 하게 된다.

 

"이후 3개월간, 우리는 참을성 있게 검토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저항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했으며 자기 자신과 삶에 대해 자신감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건강하고 인간적인 잠재 능력이 그에게 숨어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심한 투렛 증후군으로 고생하며 살아온 20년의 세월에도 상실되지 않고 남아 있던, 인격 저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잠재 능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p.173)

 

우리는 종종 차별적인 용어를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구분하곤 한다. 이를테면 '미친X'라거나 '병X' 등 입에 담기조차 힘든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함으로써, 그들을 격하시키고 더불어 자신을 우월한 위치에 놓이게 하는, 정말 야비하고 비열한 행위를 다수의 편에 속한 우리는 무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비록 의도적이거나 악의적으로 한 말은 아닐지라도  

 

"더러는 지능이 낮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물쇠를 열지도 못하고, 하물며 뉴턴의 운동법칙을 이해하거나 세계를 개념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세계를 구체적인 것, 상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마틴이나 호세, 쌍둥이 형제처럼 재능이 풍부한 '바보'들이 가진 또 하나의 측면이다." (p.295)

 

'아기'라는 보편적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자신의 이름을 가지 개별적 인간으로 성장하여 한동안 또 그렇게 살아가다 결국에는 '노인'이라는 보편적 인간으로 죽어간다. 나는 이러한 사실이 무척이나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개별적 인간으로 살아갈 때의 심한 격차와 불평등, 차별과 소외 그리고 무한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피곤한 현실에서 벗어나 '노인'이라는 보편적 인간이 된다는 건 체념과 수용을 전제로 같은 인간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하나 누구에게도 강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공감'이라는 정신적 활동이다.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타인에게 공감을 강요하거나 강제할 수는 없다. 이럴 때 나는 '공감'의 이전 단계로 '이해'의 필요성을 절감하곤 한다.

 

올리버 색스의 여러 저서를 읽을 때마다 나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중증의 신경병 환자들에게 쏟았을 저자의 헌신과 노력을 어느 정도 직감하곤 한다. 그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지 않고서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영혼'은 과학적인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그는 이 단어를 사용하는 데 약간 주저하면서 많이 사용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이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현상이 있음을 그는 믿고 잇다. 우리는 24편의 이야기 가운데 어느 것을 읽어도 그의 환자에 대한 애정이 가슴 찡하게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도 '영혼'이라는 개념을 굳게 신뢰하는 그의 신념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그가 병 자체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렇게 진한 감동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p.385 '역자후기' 중에서)

 

인간을 이해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의 회고록에는 기억에 대한 비참하면서도 가슴 섬뜩한 말이 등장한다. 이 책에서도 인용이 되고 있는 부뉴엘의 말은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내가 기다리는 것은 완전한 기억상실뿐이다. 그것만이 내 삶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다.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이다. 색스 역시 '만약 기억의 대부분을 잃어버린다면, 그래서 자신의 과거를 잃어버리고 현재 자신이 의지할 곳을 잃어버린다면, 과연 그 사람에게는 어떤 삶(만약 그런 게 있다면), 어떤 세계, 어떤 자아가 남게 될 것인가?' 하고 묻는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정체성은 우리 각자에게 속한 기억의 총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신의 기억을 완전히 잃었거나 영혼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인간 영혼의 틀을 벗어난 그들마저 이해하기에는 나는 여전히 부족한 인간이다. 옷깃을 파고드는 소슬한 한기로 인해 사색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계절, 가을이다. 인간을 이해하고 가엾이 여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한 첫걸음이자 삶을 통해 배워야 할 깨우침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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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혹은 학벌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누군가를 향해 무식하다는 말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만약 있다면 본인은 정말 바보이거나 본인이야말로 무식하기 짝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식이 많다는 것은 아주 작은 특정 분야에 국한되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다른 분야에 있어서는 본인 역시 무식하다는 평을 면키 어려운 까닭에 우리는 누군가를 향해 감히 무식하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인격이 모자르거나, 사회의 원리를 이해하기에는 지극히 나이가 어리거나, 누군가에게 지독한 증오의 감정을 갖고 있어 악의적으로 누군가를 폄훼하고자 할 때 '무식하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사회적 비난을 감수한 채 말이지요.

 

서울대의 서 모 교수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국정감사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여 조 모 씨에 대해 '본인이 무식해서 그런 분야를 잘 알지 못해서 그런 거니 안타깝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인터넷에 올라온 그분의 얼굴을 사진으로만 보았을 뿐이지만 사리분별을 못할 정도로 사회 경험이 일천해 보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일자 무식의 촌부처럼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는 왜 그런 말을 쏟아냈는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무식하다'는 평은 상대방을 향해 날아가는 말이 아니라 그 칼날이 부메랑처럼 자신을 향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말하자면 자신이 전공한 분야에 잇어서는 약간의 지식이 있을지 몰라도 다른 모든 분야에서는 무식하기 짝이 없었던 셈이지요.

 

우리는 종종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악의에 찬 말을 쏟아내곤 합니다. 그만큼 미숙하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그 칼날은 반드시 자신을 향하게 마련이고 상처를 입는 대상도 자신일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무식하다'는 말은 타인을 평가하는 데는 적절치 않은 말인지도 모릅니다. 형식은 비록 타인을 평가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을 평가하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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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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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원하는 물건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데 있어 그 기준은 항상 구매력, 즉 자신의 경제적 형편에 달려 있는 듯 보인다. 불행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 투잡, 쓰리잡도 마다하지 않으며, 때로는 도시를 떠나 이거고 저거고 모든 걸 포기한 채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게 어디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마는 작게는 아주 소소한 기호식품의 구매에서부터 크게는 가족 전체가 살기 위한 주택의 구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택의 기준이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돈이라고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곤 한다.

 

건축가 유현준이 쓴 <어디서 살 것인가>는 자신 살 곳을 고르는 데 있어 모든 사람이 천편일률적으로 제시하는 돈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그렇다고 이 책이 배산임수를 논하는 풍수지리서도 아니요, 자녀의 교육과 교통, 의료와 문화 시설에 대한 접근성 등을 따지는 부동산 관련 서적도 아니다. 인류 문화를 탄생시킨 요람으로서의 공간이 가진 기능과 그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오직 돈에 매몰되어가는 현대인의 기준을 벗어나 우리는 어떤 공간에서 행복을 느끼며, 어떤 주변 환경이 우리를 더 풍요롭게 하는지, 물질적 풍요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어떠해야 우리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 그러자면 우리는 어떠한 공간에서 어떻게 우리 아이를 성장하도록 해야 하는지 등 삶의 주체로서 우리가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변모시키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선택적 대안을 제시하고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제반 문제를 공간과 결부지어 이야기하고 있다.

 

"필자는 건축을 즐긴다. 건축을 공부했기 때문에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가거나, 식당을 고르거나, 카페에 가거나, 길을 걸을 때 비전공자보다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볼 줄 알게 되고, 음악을 자꾸 들으면 귀가 만들어지듯이,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서 건축을 맛보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조금이나마 키워졌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건축을 느끼면 인생이 더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고 다른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건축도 우리의 행복을 더하는 데 일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p.372)

 

이 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도소를 닮은 현대 학교 건축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힙합 가수가 후드티를 입는 이유와 쇼핑몰에는 왜 멀티플렉스 극장이 존재하는지, 파라오와 진시황제가 싸우면 누가 이길지, 현대인이 SNS를 많이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건축과 상관도 없는 듯한 이야기들로 전개되다가 위기와 발명이 만든 도시를 통해 서울의 얼굴로 이어지고 자연스레 도시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벽, 창문, 기둥, 지붕, 길, 다리 같은 각각의 건축 요소를 통해 건축가의 시선에서 공간에 대한 생각들을 들려준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건축은 일종의 인류 문화의 총체, 인간 정신의 구체적 발현처럼 느껴진다. 집이란 그저 다 늦은 저녁에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한 장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현대인의 인식을 바로잡으려는 듯 저자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의 공간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구획하며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가는지, 삶이 진행되는 시간에 따라 우리는 어떠한 공간을 선택해야 하는지 과거와 현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통해 설득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는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에 빠지기도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 속 주인공 키팅 선생님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책상 위에 올라가라고 요청한다. 작지만 수십 센티미터 커지는 그 시점의 변화가 엄청난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다. 일상에서 그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계단이다. 어린아이들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재미있어하는데 어쩌면 키가 작은 아이가 어른보다 커지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계단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p.222)

 

사물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기실 우리의 사고만 변화시키는 게 아니다. 작게는 우리의 느낌을, 우리의 행동을 변하게도 하고, 크게는 우리의 가치관을, 인생관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들 삶 전체를 바꾸기도 한다. 가을 늦더위가 한풀 꺾인 오후, 옅은 침묵을 배경으로 드문드문 가을 우수가 빗방울처럼 흩어지는 주말 휴일에 나는 도서관 한켠에 앉아 이 글을 쓴다. 도서관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번잡한 도시의 한 공간에 위치하면서도 도시의 소음이나 경쟁으로부터 멀찌기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책들이 빽빽하게 꽂힌 서가의 숲을 거닐다 보면 왠지 모를 슬픔과, 아련한 추억과,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오래전에 읽었던 많은 작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도서관 공간이 주는 묘한 여운이 나의 생각에 화답하듯 멋진 화음으로 응답하는, 사람들의 책장 넘기는 소리가 마치 어느 동굴의 메아리처럼 울려퍼지는 그런 오후. 지금껏 돈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자로서의 빈껍데기 삶을 살아왔던 내가 건축가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고 모든 게 달라질 리 없지만 공간이 뿜어내는 울림 하나하나를 느끼고 기억하다 보면 나에게도 언젠가 그 울림에 화답하듯 '내가 살 곳은 바로 여기야!' 하고 외치게 될 날이 찾아오지 않을까. 그때 나는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가을 오후를 떠올리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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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태풍 미탁이 올라온다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수요일 저녁 7시 진도에 상륙해 남부지방을 훑고 지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기상청 예보이고 보면 징검다리 휴일이 시작되는 목요일도 도시를 벗어나 야외로 떠나려는 계획은 한 번쯤 재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고등학생인 아들은 한글날을 전후하여 중간고사를 치르는 까닭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겠다는 생각은 애시당초 꿈도 꾸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어제 서초동 일대에서 열렸던 촛불문화제를 보신 분이라면 검찰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얼마나 뜨거웠던가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국민들이 8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것으로도 모자라 인도와 주변 골목까지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풍경은 마치 국정농단 사태 당시의 광화문 광장과 흡사했습니다.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정치검찰 물러나라", "공수처 설치", "조국 수호", "특수부 폐지", "검찰개혁 이뤄내자" 등의 구호를 외치는 함성 소리는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태풍이 지나가면 대기 중에 뿌옇게 쌓였던 미세먼지가 흩어지면서 맑은 하늘이 드러나는 것처럼 국민들의 함성과 구호가 계속되면 수십 년 철옹성처럼 지켜왔던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조금쯤 흩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까닭은 나도 내 아들도 이 땅 대한민국을 모국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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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와 잘 지내지 맙시다 - '셀프헬프 유튜버' 오마르의 아주 다양한 문제들
오마르 지음 / 팩토리나인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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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문제 앞에서 타인의 조언을 절실히 구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조언을 구하는 근본 이유는 조언자의 제안을 그대로 실천하겠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단지 내가 처한 상황과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을 누군가 알아주고 공감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조언은 단지 조언일 뿐 우리들 각자는 저마다의 생각이 있고, 스스로 판단을 하며, 여러 방법 중에서 조금이라도 나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과거에는 삶에서 직면하는 문제에 대한 조언을 우리 주변에서 구하곤 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 학교 선배나 친구, 자신이 믿는 종교의 성직자 등 대상이 되는 사람은 매우 다양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꺼려하는 추세를 반영하듯 삶에 필요한 조언도 유튜브가 대신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소위 '유 선생'으로부터 모든 걸 배우고 익히는 '유 선생'의 제자이자 동급생이 된 셈이다. 나 역시 유튜브 동영상을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이나 대중교통을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경우에 이따금 보게 된다.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하다 보면 유튜브에 콘텐츠를 올리는 많은 크리에이터 중에는 전문적인 지식을 알려주는 사람도 있지만,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나 개인적인 고민을 상담하고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어쩌면 유튜브 크리에이터 오마르의 책 <모두와 잘 지내지 맙시다>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책을 다 읽은 후에야 비로소 그가 올린 유튜브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중단발 머리에 거뭇거뭇한 콧수염, 그닥 단정하지 않은 외모에 사뭇 반항적인 듯한 그의 말투는 전형적인 문제아처럼 보이지만 그래서인지 구독자는 제법 많은 듯 보였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걸 알려주고 싶어 한다는 건 무슨 뜻이냐면, 아는 게 없다는 뜻이다. 아무 문제가 없는 젊은이들을 문제 삼고 싶어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면, 지한테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꼰대가 되는 걸 예방하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잘 살아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한 인간으로 스스로 만족할 만큼 제 몫을 하는 제대로 된 인간이 돼야 한다. 아니면 정말로 고장 안 인간, 어처구니없는 인간이 될 수 있다." (p.26)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그가 올린 100여 개 이상의 콘텐츠 중 수십만 구독자들이 공감하고 열광했던 콘텐츠부터 선별해 담았고, 영상에선 못했던 '보태기'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제一장 '나를 '불편'하게 하는 속 '편한' 사람들', 제二장 '연애도 '체력'이 필요해', 제三장 '안 만만해지기 연습'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우리의 삶에서 누구나 겪게 될 문제들, 이를테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문제들, 사회생활에서 부딪히는 예절과 관습에 대한 문제, 연애와 자존심 등에 관련된 문제 등 인생 전체를 망칠 만큼 중대한 문제는 아니지만 사소하다고 무작정 방치하기에도 뭔가 찜찜한 문제들에 대해 저자는 시원하게 처방을 내린다.

 

"착하다는 말, 듣기 좋다.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도 달콤하지. 근데 그 말 듣자고 굳이 잘 맞지도 않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열심히 잘해줄 필요는 없잖나. 그건 결구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다. 그래, 내 옛 친구 B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남들 비위 맞추느라 자신의 의사를 외면하지 말자. 좋은 이미지를 위안 삼으며 스트레스를 모르는 척하는 건 한계가 있다." (p.234)

 

나는 우리가 사는 인생에서 많은 가르침이나 교훈이 필요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신의 삶에서 건지는 건 시간에 켜켜이 쌓은 경험의 축적일 뿐 매 순간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조언에 의해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조언을 끝없이 갈구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타인과의 교감이나 공감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조금쯤 누그러뜨릴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가 이번 생이 처음이다. 그리고 2회차라고 해도 지금보다 딱히 더 현명한 모습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수학엔 정석이 있지만 인생은 그런 게 없으니까. 이건 수학의 정석을 3년 내내 베개로 썼던 사람이 쓴 삶의 참고서다. 참고서니까 그냥 참고만 하기를." (p.7 '프롤로그' 중에서)

 

어제 서초동 검찰청사 앞을 가득 메웠던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절대 권력에 저항하는 시민의 연대와 지지가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콘텐츠에 '좋아요'나 '구독'을 누르는 것보다 훨씬 더 귀찮고 복잡한 일이지만 그 불편함을 딛고 우리 모두를 밖으로 이끌어냈던 원동력은 정의와 평등에 대한 우리 모두의 갈망이었는지도 모른다. 해방 이후 단 한 차례도 이루지 못했던 그 가치를 위해 우리는 공포를 딛고 서로의 등을 토닥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장엄한 물결을 두려워하는 어떤 이들은 '정신 나간 이들'이나 '좌좀' 등으로 폄하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변화를 두려워하는 그들의 공포를 고스란히 드러낸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불의를 지지하는 소수의 몇몇 사람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다수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게 되어 있다. 그것이 역사의 순리임을 유튜브 크리에이터 '오마르'의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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