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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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이를테면 나이가 아주 어리거나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가만히 지켜볼라치면 인생이란 그저 누군가 정해진 길을 순종하며 조용히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곤 한다.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겪는 하루하루의 역동적인 변화는 그들에게 조금도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정해진 운명에 따라 조용히 걷다가 이따금 의미도 없는 함정에 빠져 고초를 겪기도 하는, 별반 특이할 것도 없는 그만그만한 인생을 조용히 살다 가는 게 대다수 사람들이 삶인 듯 여겨지는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이것은 마치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저 아래편 사람들의 꼬물거림을 지켜볼 때의 느낌과 흡사하다.

 

한 사람의 삶을 멀찍이 떨어진 채 무관심한 필체로 그려낸 소설들을 몇 편 알고 있다. 그런 소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로 서두에 꺼낸 그런 느낌을 받곤 한다. 시바타 쇼의 소설 <그래도 우리의 나날>도 그중 하나다. 간결한 필체로 무심하게 써내려간 그의 소설은 무덤덤하다 못해 처연한 느낌마저 든다. 한 사람의 삶을 이렇게 무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는 비판 의식과 함께.

 

"어쨌든 나는 소네의 얘기 속에서 이미 마지막 윤곽이 정해진 사노의 삶에 관해 생각하기보다, 내 속에서 요동치는 그의 죽음의 무게를 재고 싶었다. 그의 죽음의 분위기가 그 늦가을 날 차가운 빗물의 습기와 함께 이미 내 피부에 엉겨붙은 것 같았다. 나는 그날, 내키지 않아 하는 소네에게 부탁하여 요코하마 근처에 있는 그의 집까지 가서 사노의 편지를 빌려 왔다." (p.52)

 

소설은 주인공인 '나(후미오)'가 헌책방에서 자신도 모르게 구입한 'H전집'으로부터 시작된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인 후미오는 먼 친척뻘의 약혼녀인 '세쓰코'와 함께 취직이 내정된 지방의 대학으로 내려갈 예정이었다. 'H전집'에는 소장자의 장서인이 찍혀 있었는데, 그 도장의 주인은 대학 시절 세쓰코와 함께 역사연구회에 몸담았던 동료 회원 '사노'의 것으로 밝혀졌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산당에 가입하여 지하 군사조직에 참가할 정도로 극렬 공산주의자였던 사노는 1955년 무장투쟁을 지향하던 일본 공산당이 '육전협(제6회 전국협의회) 결의' 이후에 평화혁명으로 노선을 전환하자, 학교로 돌아와 평범한 대학생활을 이어가고, 졸업 후 s전철에 취업하여 사람들과 연락을 끊은 채 혼자만의 조용한 삶을 산다. 세쓰코의 부탁으로 사노의 행적을 좇던 후미오는 사노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소네로부터 사노가 죽기 직전에 쓴, 유서나 다름없는 편지를 입수한다.

 

"암이라는 단어를 아무런 무게도 느끼지 않고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젊음의 특권이다. 나 역시 스무 살 때는 사람이 한 번은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것이 내일이라도 나를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것이 언젠가는 찾아온다는 것조차 진지하게 느낀 적이 없다. 그래서 노인도 똑같이 태평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P.79)

 

조용히 살던 사노의 생각이 극단적으로 변했던 것은 s전철 부사장의 별장에 초대된 후였다. 부와 권력을 소유했던 부사장은 자식이 없었고, 사노에게 친척뻘의 어린 여대생인 아야코를 소개했다. 미래의 신랑감 예비 후보로 말이다. 별장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부사장의 표정이 안 좋아졌고 암이 아니냐는 아야코의 농담에 부사장의 표정이 심각하게 어두워졌던 것이다.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부사장도 죽음 앞에서 저토록 공허하고 씁쓸한 표정을 짓는데 사노 자신은 어떨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노는 '결국 죽을 때가 돼서 생각나는 일이 과거에 저지른 배신이라면' 하는 생각과 함께 과거 자신이 시위 대열에서 도망쳤던 단 한 번의 배신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사는 것에 대한 귀찮음과 죽으면 모든 것이 편해질 거라는 속삭임이 한데 어우러졌다.

 

"행복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사람은 그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행복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 잘못된 행복을 잡으면 그건 손바닥 안에서 금세 불행으로 바뀌어버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이 몇 종류인가 있을 거야, 분명. 그리고 사람은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는 거지. 정말로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면, 그건 너무 잘 맞아서 쉬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p.24~p.25)

 

사노의 유서를 읽은 두 사람, 후미오와 세쓰코는 서로 엇갈리기만 했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그리고 뭔가 부족하기만 했던 청춘의 과오를 뒤로 한 채 새롭게 출발하고자 했던 두 사람의 약혼과 오직 행복한 미래만 꿈꾸었던 2년여의 시간들. 그렇게 조용히 흘러가던 시간 속에 사노의 유서는 계속해서 의문을 던진다. 역사연구회의 노세를 육체가 아닌 정신적으로 깊이 사랑했던 세쓰코는 후미오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찾으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후미오는 세쓰코로부터 길고 긴 편지를 받는다.

 

"우리 인간의 생활은 늘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망막한 세상의 심연 위에 노출된 채 빛이 바래가지. 또 자칫하면 그 끝없는 깊이 속에 빠져들기도 하고. 아니, 그런 망막함 속에 표류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생활일지도 몰라. 그럼에도 내 생활은 의미 없는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어. 언제나 상대와 뭔가를 공유하고 싶다, 두 사람의 생활 속에 뭔가 공통된 의미를 갖고 싶다고 바란 것도 망막한 세상에 확실한 못을 박고 싶은, 그것을 한 개 한 개 박음으로써 단조로운 시간의 흐름이 아닌 역사라고 부를 만한 것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었어. 그럼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우리 주위에 펼쳐진 이 무한한 공간, 마침내 우리를 죽음 속으로 사라지게 할 이 무한한 시간을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꼈어.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추구하지 않고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야." (p.185~p.186)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삶은 더 공허해진다. 그것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 양 찾고 또 찾다가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과 같다. 자신의 실존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단지 착각에 불과할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서는 계속해서 삶을 유지한다는 게 힘들다는 건 알지만 숫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런 질문조차 던지지 않는다면 사는 건 오히려 가벼워진다. 그러자면 멀리서 나의 삶을 바라보는 일은 멈춰야 한다. 이제는 고인이 된 스티븐 호킹 박사도 '신은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우주는 과학의 법칙에 따라 무(無)에서 자연스럽게 생겼고 우주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질량을 가진 덩어리와 같은 물질과 에너지, 공간이라는 세 가지 기본 재료만 있으면 된다.'고 답하지 않았던가. 삶은 의미를 찾아야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살아지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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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제1야당인 자유당의 나경원 원내대표가 국민들의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게 하는 사이다 발언을 해서 박수를 받고 있는 듯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선거법 등 주요 법안 '패스트트랙' 상정 추진에 대해 "이렇게 야당을 무시하고 멋대로 마음대로 하는 여당의 태도에 대해 거듭 경고하지만 이제 의원직 총사퇴를 불사하고 맞서겠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했다는데 이보다 더 반가운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조금 과장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분란이란 분란은 모두 자유당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게다가 자유당은 그동안 선거법에 대해 다른 대안도 내놓지 않은 채 사사건건 반대만 일삼아오기도 했었지요. 그랬던 자유당 의원들이 모두 의원직을 내려놓겠다니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있을라고요. 쌍수를 들어 환영할 밖에요.

 

나경원 원내대표가 조건을 달았던 바와 같이 더불어민주당은 더욱더 야당을 무시하고 멋대로 마음대로 함으로써 하루빨리 자유당 의원들이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바라는 바는 그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시끄럽겠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리 되어야 할 듯합니다. 그동안 5.18 망언을 일삼던 의원들을 향해 사퇴하라고 국민들이 얼마나 외쳤습니까. 그럼에도 꿈쩍도 하지 않던 그들인데 자발적으로 그만두겠다는데 돕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오늘은 111주년 세계 여성의 날,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대한민국의 여성 국회의원으로서 조국을 위해 큰 결단을 내린 나경원 원내대표를 향해 심심한 존경의 말을 전합니다. 부디 그 결심 흔들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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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19-03-08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꼼쥐님 격렬하게 찬성합니다! 시원하네요!ㅎ
사이다 사러가다가 필요없을것 같아서 포도쥬스 삽니다!ㅎ

꼼쥐 2019-03-09 16:46   좋아요 1 | URL
ㅎㅎ 포도쥬스도 좋지요.
정말이지 자유당 의원들이 총사퇴를 단행한다면 마을 사람들에게 떡이라도 돌릴 듯합니다.

transient-guest 2019-03-09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스가 나베때문에 시끄럽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네요 저도 나베와 자유당의원들의 총사퇴를 지지합니다

꼼쥐 2019-03-09 16:47   좋아요 1 | URL
지금이라도 당장 사퇴서를 낸다면 자유당 의원들 전체에게 감사의 문자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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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삶은 정확히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감이 오거나 어떤 근거나 데이터를 통해 예측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우리는 단지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협박용(?) 단어로서 혹은 비슷한 세대 간의 작업용(?) 멘트로서 '4차 산업혁명'을 입에 올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이렇게 자주 사용하다 보니 왠지 친근해진 느낌도 들고, '4차 산업혁명'이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온 듯한 느낌도 들긴 합니다.

 

공부는 하지 않고 종일 게임만 하는 아이들에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렇게 게임만 하면 너 거지되기 십상이다."라거나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있는데 우리도 잘 준비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공허한 말을 지인들과의 대화 중간에 슬쩍 끼워넣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정확한 의미도 모르는 채 이곳저곳에 갖다 붙이곤 하지요. 4차 산업혁명의 권위자이자 성균관대 교수이기도 한 최재붕 교수의 저서 <포노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던 건 아마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되었던 듯합니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권력이 소비자에게로 이동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산업 생태계의 지각 변동이 발생했고, 모든 기업의 흥망성쇠도 소비자의 선택이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결국 포노 사피엔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답'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야 좋은 인재가 되고, 사람을 잘 배려할 줄 알아야 성공하는 인재가 됩니다." (p.13 '프롤로그' 중에서)

 

2007년 스티브 잡스에 의해 출시된 스마트폰으로 인해 인류는 '혁명'에 버금가는 큰 변화를 맞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곤 하지요. 시장의 참여자가 미처 눈치를 채기도 전에 많은 변화가 이만큼 진전되는 것이죠. 저자는 이 책에서 1장 포노 사피엔스, 신인류의 탄생, 2장 새로운 문명, '열광'으로 향한다, 3장 온디맨드, 비즈니스를 갈아엎다, 4장 지금까지 없던 인류가 온다의 총 4장에 걸쳐 우리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롭고도 급격한 변화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던 지상파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검색 포털과 유튜브의 점유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가 하면 은해의 지점 창구 처리 비중이 급격히 줄고 무인화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대형마트의 매출은 줄고 온라인 판매가 급증하는 추세이며 결제에 있어서도 현금보다는 스마트폰 결제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누가 시켜서 된 것이 아니라 '포노 사피엔스'라는 신인류의 자발적 선택이라는 데 저자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소우주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손안에 작은 지구 하나씩을 들고 살아가게 된 셈입니다.

 

"인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자발적으로 소비 행동을 바꿨습니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급격한 행동 변화는 연쇄적으로 시장 생태계 전반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변화가 원인이 되어 제조업까지 영향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슈밥이 언급한 4차 산업혁명입니다." (P.143)

 

구시대의 엄격한 질서 속에서 살아왔던 우리로서는 이와 같은 변화가 썩 달갑지는 않을 듯합니다. 게다가 스마트폰으로 인한 부작용은 곳곳에서 발견되는 까닭에 가뜩이나 부정적이던 시각이 더욱 부정적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화는 구성원 개개인이 거부하거나 과거로 되돌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변화에 대한 수용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변화에 대한 저항자의 입장에는 설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특징과 변화된 모습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장의 변화와 소비 트렌드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는 지금이 명확한 '혁명의 시대'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새로운 문명을 공부해야 하고,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읽고자 노력해야 하고, 킬러 콘텐츠를 만드는 전문적인 기술도 익혀야 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노력들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사람'입니다. 혁명의 시대, 결국 답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로 이 책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P.332 '에필로그' 중에서)

 

오늘도 우리는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고 있습니다. 문명의 찌꺼기와 같은 미세먼지가 다른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처럼 스마트폰으로 인한 부작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결국 사람의 몫인 것처럼 스마트폰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고 건강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도 결국 우리의 몫입니다. 다행히 북서풍이 불어 한반도의 대기 상태를 잠시나마 좋아지게 한다니 그저 반가울 따름입니다. 문명의 발전은 이렇듯 명암이 공존하는가 봅니다. 언제나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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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인 경칩(驚蟄), 한자로는 놀랄 경(驚)에 숨을 칩(蟄)을 씀으로써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 뱀, 벌레 등이 따뜻해진 봄기운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는 의미를 지닌다.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속담처럼 이제 어지간한 추위는 다 갔지 싶다. 그러나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놀랄 일은 봄기운뿐이 아니다. 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미세먼지에 한 번, 그리고 1심에서 징역 15년형을 받은 중범죄자를 보석으로 석방했다는 소식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았을까. 아무리 전직 대통령이라 할지언정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야 하거늘...

 

지난 정권에서 있었던 사법농단 탓인지 나와는 그닥 관련도 없는 듯 여겨지는 판사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우게 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하여 권순일 대법관, 차한성 전 대법관,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 신광렬, 조의연, 성창호 등등. 가장 깨끗한 조직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법부가 가장 비열하고 썩어빠진 조직이었다는 사실에 분개하지 않을 국민이 없을 터, 이제는 정준영이라는 이름도 뇌리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가수 정준영이 아니라 판사 정준영이.

 

물론 정치권에 몸 담고 있는 인간쓰레기들, 이를테면 국회에서 '갠세이'니 '야지'니 하는 일본어를 서슴없이 내뱉는 인간들이나 '우리한테 개기면'과 같은 막말을 일삼는 언년이 등 입에 올리기도 싫은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는 지금 자욱한 미세먼지를 보면서 환경을 걱정하기에 앞서 썩어빠진 사법부와 정치인들을 몰아냄으로써 우리의 정치 환경부터 깨끗이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징역 15년형의 중범죄자를 돌연사 운운하며 풀어주었다는 소식에 잠에서 깬 개구리도 놀랐다는 오늘, 오늘은 경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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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소피 드 빌누아지 지음, 이원희 옮김 / 소담출판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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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가사와 반복적인 리듬의 후크송이 묘한 중독성을 유발하는 것처럼 동화와 같은 단순한 스토리 라인의 소설이 독자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말하자면 결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뻔한 구조의 스토리에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도 자신의 예측이 맞아떨어진 것에 내심 뿌듯해하기도 한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구조이지만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소설의 결말을 알아맞히기라도 한 것처럼.

 

프랑스의 기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소피 드 빌누아지의 신작 소설 <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도 그런 소설이다. 단출한 등장인물과 단순한 스토리 라인, 코믹하면서도 빠른 전개, 그리고 약간의 반전이 있는 행복한 결말 등으로 이 소설을 설명할 수 있다. 제목과는 다르게 유쾌하고 밝은 소설이라는 게 반전이라면 큰 반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의 시작은 그닥 유쾌하지 않다.

 

"'아버님께서 오늘 아침 숨을 거두셨습니다. 아버님은 떠나셨어요. 고통은 없었습니다.' 나는 이제 고아다. 마흔다섯 살짜리 고아는 정말이지 불쌍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세상에 피붙이가 아무도 없으니 고아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마흔다섯 살이나 먹은 나를 입양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나는 유통기한이 지났다. 이를테면 자식을 갖기에도, 한 남자를 갖기에도 기한이 지났으니까." (p.7)

 

아버지의 사망과 함께 45살에 고아가 된 실비 샤베르. 외동딸로 성장한 그녀에게는 이제 가족이라곤 아무도 없다. 기업 법무팀에서 일하는 그녀는 외롭고 지겨운 주말보다는 차라리 일을 하는 주중이 더 좋다. 어느 날 센 강 주변을 산책하던 실비는 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한 한 남자를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의식을 잃고 둥둥 떠내려가는 그 남자를 보며 실비는 묘한 평화를 느낀다. 이를 지켜보던 한 남자가 물에 뛰어들어 그 남자를 구하고 주변 사람들이 그 의인에게 박수를 치지만 실비는 오히려 물에 뛰어들 용기를 낸 그 남자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진정한 평화를 얻기 위해 자살을 결심한다. 디데이를 크리스마스로 정한 실비는 자신의 결심을 누군가에게 말하기 위해 심리치료사를 찾아간다.

 

근육질 몸매의 매력적인 남자 프랑크와 45세 노처녀 실비의 만남은 심리치료사와 의뢰인이라는 사무적인 관계를 떠나 마치 연인과 같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런 안배는 독자들이 달달한 결말을 예측하도록 하는 작가의 시선 유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노련한 독자는 이미 눈치를 챌 일이지만 어수룩한 독자는 프랑크와 실비의 해피엔딩을 기대하며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크리스마스에 자살을 감행하겠다는 실비를 프랑크는 말리지 않는다. 다만 이제껏 살면서 해보지 못했던 일을 일주일에 한 가지씩 해보라며 과제를 줄 뿐이다. 실비는 프랑크의 제안에 따라 브라질리언 왁싱을 시도하다 실신하여 병원에 실려가기도 하고, 마트에서 물건을 슬쩍하기도 하고, 처음 만난 남자와 진한 정사를 치르기도 한다. 자신의 평소 성격으로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일들이지만 자살을 핑계 삼아 용기를 냈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아주 친근했어요. 그러다 그 직후에 슬픔이 몰려오는 걸 느꼈는데 걷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놀라웠지만 그게 아주 좋은 영향을 준 거 같아요. 그 슬픔이 모든 걸 날려버렸거든요. 이제 내 안에 슬픔이나 미련 같은 건 없어요. 나는 각오가 됐어요. 날짜를 앞당기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p.125~p.126)

 

프랑크와 헤어져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기 위해 플랫폼에 들어섰을 때 실비는 맨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성 노숙자를 보게 된다. 지독한 냄새를 참아가며 실비는 자석에 이끌리듯 다가간다. 손을 내미는 노숙자의 손을 잡고 실비는 소방서에 전화를 건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듯 보이는 노숙자를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 구급대원이 도착했을 때 여성 노숙자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 구급대원으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실비는 심한 충격을 받고 구토를 한다. 도와줄 사람에게 연락을 하라는 구급대원의 조언에 따라 실비는 프랑크에게 전화를 하고...

 

"나는 거의 혼자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 저녁, 혼자 죽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나도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잇길 바란다. 지하철역 플랫폼이나 따뜻한 욕조 안이나 홀로 죽는 건 마찬가지다. 비참하고 고독한 건 마찬가지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p.138)

 

우리는 살면서 조금만 힘이 들어도 죽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한 번은 죽을 운명, 조금 일찍 가거나 조금 늦게 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겠다 싶겠지만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사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살고자 했던 모습은 살아 있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된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쉽게 포기해버린다면 그것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준다. 그리고 그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할 이유는 일차적으로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타인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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