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의 교실
야마다 에이미 지음, 박유하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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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집 <풍장의 교실>에는 표제작인 '풍장의 교실'을 비롯하여 '나비의 전족', '제시의 등뼈' 이렇게 세 편의 중편소설이 실려 있다. 야마다 에이미는 현대 일본 여성 작가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되고 있지만, '풍장의 교실' 역시 그녀의 작품 중 결이 다른 독보적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육체가 관계의 매개 역할을 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믿는 작가는 그녀가 쓴 소설 속 여성들이 대개 '남자의 몸에 대한 욕망'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반면, '풍장의 교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초등학교 5학년의 어린 소녀라는 점과 주인공을 둘러싼 같은 반 여학생들의 '악의'가 소설의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모토미야 안은 유난히 전근이 잦은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여름방학이면 가족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할 준비를 하고, 여름방학 숙제에서 해방된 '나'(모토미야 안)는 혼자서 들판 같은 곳을 걸으며 시간을 소일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전학이 잦았던 '나'는 또래의 친구들보다 눈치가 빠르고 인간에 대한 이해도 높았다. 말하자면 '나'는 다양한 아이들과 만나며 일찌감치 애어른이 된 것이다.

 

"일단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결코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몸속 깊은 곳에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사는 곳이 바뀐다 해도, 카멜레온처럼 피부색은 변할지언정 기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쓸데없는 저항을 일찌감치 단념하고, 어딜 가든 나 자신을 바꾸지 말자고 결심했습니다." (p.16)

 

도회지에서 시골의 초등학교로 전학을 온 '나'는 처음에는 예쁜 용모와 도회지 출신 다운 세련된 미적 감각을 지닌 탓에 동경의 대상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점차 따돌림을 받게 된다.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요시자와 선생님과 에미코에게 있었다. 쾌활한 성격의 총각인 요시자와는 체육을 담당하는 인기 선생님이었다. '나'에 대한 요시자와 선생님의 편애가 반장인 에미코의 심기를 자극했고 그때부터 에미코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나는 내가 제물이 되어 가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것은 내가 제일 걱정하던 일입니다. 물처럼 잔잔한 인생. 나는 그것만을 바랐는데, 교실에선 언제나 제물을 필요로 하는 종교가 판을 칩니다. 나는 몇 번이고 전학을 하면서 그것을 실감했습니다." (p.38)

 

'나'에 대한 집요한 따돌림과 보복이 도를 넘어서고 있었고 담임 선생님조차 아이들과 동조하는 듯했다. 학급에서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악코가 유일했다. '나'는 메모지를 통해 악코에게 속내를 털어놓고는 했지만 악코는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었다.

 

"내 피부 한 꺼풀을 벗겨 내면 슬픔의 덩어리가 있다는 걸 아무도 몰랐던 겁니다. 알아야 하는 선생님들조차. 하긴 어린애에 불과한 선생님들한테 그런 대단한 것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실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p.41)

 

"절망, 그건 인간에게서 감정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몸이 나른해집니다. 나는 턱을 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내 마음은 항상 쭈그리고 앉은 모습입니다. 일어서기가 귀찮습니다. 검은 장막을 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하는 게 고작입니다." (p.48)

 

어느 날 에미코를 향해 웃었다는 이유로 '나'를 향해 아이들의 무차별적인 폭력이 있었고, 이를 목격한 요시자와 선생님이 '나'를 양호실로 보내주었다. '나'는 양호실에서 더럽혀진 교복을 벗고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채 잠이 들었다. 그러나 일어나 보니 속치마가 사라지고 없었다. 교실로 돌아왔을 때 '나'의 속치마는 적셔진 채 '나'의 얼굴에 씌워졌고, '나'는 그때의 충격으로 인해 자살을 결심한다.

 

"인간이 짐승의 눈이 될 때, 거기엔 도덕도 상식도 없고 심지어 감정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거기에 존재하는 건 습성뿐입니다. 그리고 그 습성을 끝까지 완수하기 위해 끓어오르는 욕망뿐입니다.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요시자와 선생님에게 어깨를 맡긴 채로 교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p.57)

 

자살을 결심한 '나'는 유서에 남길 말을 고민한다. 그날 밤 '나'를 걱정하는 엄마와 언니의 대화를 듣고 마음을 고쳐 먹은 나는 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했던 그동안의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을 놀리고 괴롭히는 아이들을 향해 공격적인 방법으로 대항한다. '나'는 그들을 철저하게 경멸하는 것이다.

 

"내가 탄생시킨 살인법은 경멸이라는 두 글자였습니다. 인간을 죽인다는 건 적절하지 않은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남자아이의 신발에 욕망을 느끼는 내가 인간이라면, 나는 그녀들을 나와 똑같은 위치에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선 자신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이들을 끌어내립니다. 그러고 나서 조금씩 죽여나가는 것입니다." (p.78)

 

소설의 말미에서 '나는 생각한다. '죽은 사람을 들에 내버려 두는 것을 풍장(風葬)이라고 한답니다. 그건 잔혹한 풍습일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들의 따돌림과 집단 괴롭힘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직장 내에서의 따돌림도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는 비단 인성 교육의 부재나 윤리 의식의 상실에서 비롯된다고 보지 않는다. 과학이 발달하고 이런 추세에 따라 오프라인에서의 접촉이 현저히 줄어듦에 따라 사람들은 인간관계와 이해 충돌의 해결책을 학습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우리는 사회성이 결여된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를 끝없이 양산하고 있는 셈인데 그것을 오직 법으로만 해결하려 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들이 득시글거리고 있다. 본래의 모습을 숨긴 채. 우리는 지금 위험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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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헌법재판소의 중요한 판결이 있었다.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처벌하는 현행 낙태죄 조항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결론이었다. 이로써 낙태죄는 1953년 낙태죄 조항이 도입된 이후 66년만에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짐으로써 낙태죄 조항은 역사의 저 편으로 사라질 공산이 높아졌다. 단순 위헌 판결이 아닌 헌법불합치 판결인지라 2020년 12월 31일 시한으로 국회에서 법이 개정될 때까지 계속 적용됨은 물론이다. 이 기한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낙태죄 조항은 전면 폐지되겠지만 말이다.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제한되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하여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던 2012년 8월 23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합헌 결정이 오늘은 '자기낙태죄 조항은 필요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법익 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한 것.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규정'으로 바뀐 것이다.

 

종교적 차원이 아니라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차원에서 바른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사실 낙태죄 조항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불법 시술에 노출되었으며,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안고 살았을지 생각하면 남자인 나로서도 왜 이제야 이런 판결이 내려졌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라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만...

 

게다가 오늘은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지 않은가. 역사라는 게 이렇듯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 속도를 늦추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임시정부를 수립했던 그 당시의 선조들도 대한민국의 해방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을꼬. 역사의 변화는 언제나 우리의 기대보다 한 발짝 뒤처지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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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감력 수업 - 신경 쓰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
우에니시 아키라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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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준이치의 <둔감력>을 읽었던 건 몇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이야 비슷한 제목의 책이 몇 권 더 출간되는 바람에 '둔감력'이라는 단어가 그리 낯설지 않지만 와타나베 준이치가 책을 출간했을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대개 '둔감한 것도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나?' 하면서 의아해했었다. 그러나 그의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하,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둔감한 것보다 예민한 게 능력이라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책.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둔감한 게 능력인 시대에 살고 있다. 언제부터였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것만은 확실하다. 육체노동이 주가 되지 않는 시대에 사람들은 육체적 질병보다는 정신적 질병을 더 두려워하게 되었고, 둔감하다는 건 육체적 내성에 버금가는 정신적 내성의 큰 축으로 작용한다는 걸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세균으로부터 육체를 보호하기 위해 페니실린이 필요한 것처럼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둔감력이 요구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내 떠나지 않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그래, 그것까지는 알겠어. 작은 일에도 파르르 화를 내거나 흔한 질책에도 세상 다 잃은 것처럼 의기소침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말이지. 그렇다면 타고난 천성이 예민한 사람은 도대체 어쩌란 말이야?' 하는 생각. 본성을 바꾸어 다시 태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둔감해지자' 하고 어느 날 갑자기 결심한다고 해서 무 자르듯 뚝딱 바뀌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심리학 박사이자 현직 카운슬러이기도 한 우에니시 아키라는 자신의 책 <둔감력 수업>에서 다른 사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힘, 즉 '둔감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에게 완벽함을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지 말아야 하죠. 모든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다른 사람에게 완벽함을 바라던 마음도 조금씩 사라집니다. 동료가 실수를 저질러도,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어도 둔감하게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다른 사람에게 완벽함을 바라지 않으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고민이 사라집니다." (p.59)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힐 수 잇는 여러 상황을 각각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제1장 '예민한 마음에 삶이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제2장 '주변에 함께하기 불편한 사람이 생겼다면?', 제3장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면?', 제4장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면?', 제5장 '예상하지 못한 위기에 처했다면?', 제6장 '얼굴 빨개지는 일을 마주했다면?', 제7장 '분노라는 감정을 이겨내기 힘들다면?', 제8장 '욕심이라는 빠져나오기 힘든 함정에 빠졌다면?', 제9장 '인생의 방향에 의문이 생겼다면?'으로 장을 나누고는 있지만 생각해보면 우리의 감정은 위에 나열한 하나의 원인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두 개 이상의 복합적인 원인으로 고로워하는 게 아닐까.

 

"심리학에서 말하는 분리화, 즉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면 '상황을 글로 쓰는 방법'이 효과적입니다. 특히 욱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 효과가 큽니다. 노트를 갖고 다니며 일상에서 화가 나거나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그 상황을 글로 적습니다." (p.167)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분노의 근원도, 경제적 상황이나 인간관계의 악화로 인한 고민의 근원도 결국은 '나'의 마음에 달린 문제일 뿐이다. 둔감력은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고 욕심과 분노에 휘둘리지 않게 해주는 '유연한 마음의 힘'이다. 그러므로 최악의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여유는 둔감력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둔감력을 기르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일과 관계, 감정의 중심에 항상 '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른 누군가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길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들 각자가 다 다른 사람이구나 하고 감탄하곤 하는 것이다. 이제껏 몰랐던 걸 처음으로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 모두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그리고 각자의 다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나의 기준으로 그들을 재단하려 했음을 깨닫게 된다. 나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나의 기준에 끼워 맞추기 위해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내고, 나도 다른 누군가의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과도한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결국 '다름'을 인정하면 모든 게 편안해질 텐데 순간순간 그 사실을 잊곤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따금 그 사실을 놓지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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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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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집 <공주님>의 표제작이기도 한 '공주님'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도발적인 소설의 첫 문장에 꽤나 당혹스러워했거나 조금쯤 놀라지 않았을까. '목을 매단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내가 겨우 다섯 살이었다는 게 다행이다.'라니.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도, 그때 나는 겨우 다섯 살이었다는 사실도, 그리고 다섯 살짜리 꼬마가 어머니의 죽은 모습을 발견했다는 사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커튼레일에 매달려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간식을 먹는다고 서술한다. 나와 같은 순진한 독자들로서는 가히 충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충격적이라기보다 엽기적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편으로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녀는 죽음으로써 나에게 그 후의 삶에 지침과 같은 걸 마련해주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리면 죽을 자유조차 가질 수 없다는 걸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필요로 하게 되면 그 사람의 자유를 빼앗게 된다는 것도. 나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쉽다고 생각하고 싶다. 기억은 쌓여가지만 그 기억 속에 어떤 불순물도 섞이게 하고 싶지 않다." (p.19~p.20)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인 '나'(도키노리)의 성격 형성이 그 장면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나'는 어머니가 죽은 후 외삼촌의 집에서 성장한다. 외삼촌 집에는 4살 위인 사촌 형 세이이치와 여동생 세이코가 있었다. 외숙모와 외삼촌은 '나'를  무척이나 배려해주었고, 세이이치 역시 '나'에게 잘 대해주었다. 그러나 여동생 세이코는 '나'와 성격이 비슷해서 반항적이고 거침이 없었다. 세이코는 '나'를 이성의 감정으로 '나'를 좋아하는 까닭에 '나'의 방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나'의 사생활을 감시한다. 대학생이 된 '나'는 선머슴 같은 동기생 여사친 '아사코'를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관심이 없으면서도 자신의 속내를 부담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어찌 보면 동성의 친구보다도 더 허물없는 사이였다.

 

"나와 아사코의 기본은 닮은 듯하면서 전혀 다르다. 그녀의 기본은 갈망하는 것을 선택했고, 나는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에게 부족한 걸 항상 갖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채워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기본을 가르쳐줄 세이이치와 같은 남자를." (p.64)

 

아사코와 나는 연인이 아닌 친구로서 늘 붙어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연극을 보는 도중에 속이 좋지 않았던 '나'는 그만 토하게 되고, 걱정이 되었던 아사코가 '나'와 함께 집으로 간다. 그런 인연으로 아사코는 결국 사촌 형의 애인이 된다. 세이이치의 연인이 된 아사코는 조금씩 변해간다. 가장 친한 남동생 같았던 아사코의 돌변이 달갑지 않았던 '나'. 사촌 여동생 세이코가 고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완강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 '나'는 세이코의 보호자로서 여행에 동반한다. 세이코는 '나'를 자극이라도 하려는 듯 급조한 남자 친구를 대동하지만, '나'와 세이코의 다정한 모습을 오해한 그는 결국 달아나고 만다. 세이코의 남자 친구인 다케시는 세이코가 피자 배달을 시키면서 만난 피자 배달부였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세이코와 잤다.

 

"수면에 반사되는 햇빛이 눈부셨다. 태양 아래에 있으면 밤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달빛 아래에 있으면 날이 밝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 순간에 없는 걸 갖고 싶어 한 적이 없다. 낮에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원하지 않으며 밤에 푸른 하늘을 동경하지도 않는다. 그 순간에 존재하는 것만이 내 세계의 전부다. 그걸 전부 먹는다. 씹어 삼켜 포식하고 눈을 감았을 때 세계는 마침내 끝난다. 그런 느낌이 든다." (p.56)

 

세이이치는 아사코의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아사코는 세이이치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지만 세이이치는 결혼을 결정한 후 처음으로 아사코의 집을 방문한다. 아사코는 부모님이 이혼한 후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은근히 소심했던 세이이치는 쑥스러웠던지 '나'를 대동한다. 아사코가 만든 요리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지만 나는 마시지 않았다. 아버지가 먼저 자리를 털고 잠자리에 들자 술에 취한 세이이치마저 술에 취해 쓰러지고 만다. '나'는 싫다고 거부하는 아사코를 범하게 된다.

 

세이이치는 아사코가 임신하는 바람에 결혼을 서두르게 되고, 결혼식장에 참석하기 전 세이코는 '나'에게 학교를 졸업하면 집을 나가 함께 살자고 제의한다. 양복을 입고 결혼식에 참석했던 '나'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집에 들른다. 집 앞에서 '나'는 세이코가 양복 주머니에 넣어 준 쪽지를 읽고 집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다케시와 그가 데려온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데...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와 함께 일본의 3대 여류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야마다 에이미는 여자 '무라카미 류'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성애를 전면에서 다룬다. 그러나 그의 소설이 외설적이라거나 난잡하다고 비판받지 않는 까닭은 솔직하고 간결한 문체 때문인 듯하다. 그럼에도 인간의 연애 심리를 잘 포착하고 있다. 소위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여성이라면 이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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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시답잖고 너저분한 이야기를 깔끔하게 요약하거나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분명한 어조로 정확히 전달해 줄 자신은 없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얘기를 주로 말한다. 어디서 주워 들었거나 먼발치에서 우연히 보았던, 그런 이야기들.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나의 시답잖은 일상에 더해지다 보니 일상은 더욱더 시답잖아지고, 더 시답잖아진 이야기들이 또다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그렇게 전해진 이야기들이 돌고 돌아 언젠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또다시 내게도 전해지고 그렇잖아도 시답잖았던 나의 일상은 더더욱 시답잖게 변해간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 주로 하는 방식이지만 이렇듯 시답잖은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소식이 있다면 가짜 뉴스여도 좋으니 분노와 악담을 마구 쏟아내는 일이다. 예컨대 강원도에 있었던 대형 산불에 대해서도 자유당의 민경욱 의원은 "대형 산불 발생 4시간 후에야 총력 대응 긴급 지시한 문 대통령. 북으로 번지면 북과 협의해 진화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빨갱이 맞다. 주어는 있다."는 글을 공유했다가 네티즌의 물매를 맞고 삭제하는가 하면 같은 당의 김형남 의원은 "문재인 정권 속초·고성 산불이 속초 시내까지 번져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 같다."며 "정말 이 정부의 재앙의 끝은 어디냐"고 비난했다. 박근혜 정권의 대변인이었던 민경욱 의원은 세월호 사건을 브리핑하면서도 활짝 웃었던 인간이기도 하다. 타인의 불행에 공감할 수 없는, 말하자면 사이코패스가 아닌지 의심이 되는 인간들.

 

자신의 시답잖고 너저분한 일상을 가리기 위해 잘 하고 있는 타인을 향해 비난과 악담을 쏟아낸다는 건 의도만 불손한 게 아니라 자신의 찌질한 인성마저 온 세상에 선전하는 일이다. 시답잖은 일상에 자신의 찌질한 인성마저 덧입히는 스킬. 이보다 더 찌질할 수는 없다는 이언주 의원의 비난은 바른당 손학규 대표에게 할 것이 아니라 자유당 의원들에게 할 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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