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세트] 침묵의 거리에서 (전2권) 침묵의 거리에서
오쿠다 히데오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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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유명한 소설가라고 하여도 그가 사는 동안 자신의 작품 모두가 완벽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연이어 좋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다가도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마치 세상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려는 듯, 독자들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엉뚱한 작품을 발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이 전적으로 작가 자신의 잘못은 아닐지라도 독자들 중 몇몇은 그 작가에 대한 더이상의 사랑을 유보한 채, 새로 발견했거나 한때 좋아했던 다른 작가에게로 관심을 옮겨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조금 얄미워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변심한 독자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할 것도 아니다.

 

오쿠다 히데오에게 있어 소설 <침묵의 거리에서>가 그런 작품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는 기획 단계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스토리 전개와 소재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히 꼬집는 대단한 것이라고 한껏 기대에 부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누구나 그렇듯 이런 기대와 바람은 너무나 흔한 것임에도 그 순간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침묵의 거리에서>의 주제는 명확해 보인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날로 지능화, 흉포화되고 있는 청소년 범죄의 실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각 계층의 서로 다른 시선을 조명함으로써 일본 사회 전체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듯하다. 사실 청소년 범죄에 대한 문제는 비단 일본에서만 심각한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의 실상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그래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일본의 작은 도시 구와바타의 시립 제2중학교에서 시작된다. 학교 교정에서 발견된 한 학생의 주검을 두고 단순 추락사인지, 타인에 의한 살인 사건인지, 아니면 자살인지 추측이 분분한 가운데 경찰의 조사가 시작된다. 죽은 학생은 그 지역에서 포목상을 하는 부유한 집안의 외동 아들이었다. 주검에서는 추락과는 상관없는 다수의 상흔이 발견되었고, 경찰은 사고사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학생들을 조사한다.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학생들 간의 집단 따돌림, 폭력, 금품갈취 등 지속적인 범죄가 있었음이 밝혀지고, 폭력에 가담했던 14세 이상의 두 소년은 경찰에 구속되고 14세가 안 된 두 소년은 아동 상담소로 보내진다. 경찰의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경찰과 학교,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 가족, 언론과 학생들 등 그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각자의 입장에서 그려진다.

 

"중학생이 되자 같은 학생들 사이에도 어렴풋이 계층이 나눠지기 시작했다. 인기가 많은 아이, 없는 아이, 인정받는 아이, 무시당하는 아이, 모두 자신의 위치에 무관심할 수 없어졌다. 어떤 그룹에 속하느냐에 따라서도 학교생활이 180도 달라진다." (1권, p.302~p.303)

 

가해자로 지목된 4명의 학생과 침묵하는 주변인들. 가해자 학생들 부모의 직업은 다양하다. 그 중에는 싱글맘도 있고, 평범한 직장인도 있고, 할아버지가 현 의원인 지방 유지도 있었다. 가해자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백방으로 손을 쓴다. 학교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중간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갈팡질팡한다. 반면 사건 사고를 다루는 언론은 정보를 캐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아직은 어린 학생들에 대한 취재는 삼가자고 결의하기도 한다. 경찰에서의 수사가 종결되고 사건이 검찰로 이송되면서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학생들이 풀려나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바짝 긴장했던 학생들도 수사가 장기화 되자 조금씩 느슨해지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난다. 단순히 테니스부에 속했던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피해자 주변의 문제 학생들과 선후배 간의 문제,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 했던 피해자 집안의 가정 교육 문제,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자녀를 지키려 하는 가해자측의 입장 등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각종 부조리가 하나의 사건을 통하여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학생들이 오히려 체구가 작고 사회성이 부족했던 피해자를 지켜주려 노력했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문제 학생들의 폭력과 협박에 시달리면서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었던 피해 학생의 현실이 극명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요즘 학생들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일방적인 시각도 드러난다.

 

"아이들은 누구나 그런 잔혹성을 가지고 있지만 커 가면서 서서히 사라지는 게 아닐까. 중학생은 아직 그 성질이 남아 있고. 학교 폭력, 집단 괴롭힘이 가장 심한 연령도 중학생이야. 고등학생이 되면 강도를 조절할 줄도 알고 동정심도 생기지." (2권, p.306~p.307)

 

좁은 지역사회에서 한 사건으로 어느 날 갑자기 가해자와 피해자로 양분되는 갈등의 모습을 작가는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의 삶은 계속되는 까닭에 갈라진 틈을 메우고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할 필요성 또한 작가는 주장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직은 미성숙한 아이들 사이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안타까운 사건을 두고 어찌 됐든 결말을 써야 하는 작가의 고민도 깊었으리라.

 

"하시모토는 그렇게 말하며 깨달았다. 중학생들은 일의 심각성을 모른다. 때문에 단순한 영웅주의에 도취되어 주변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아이들은 생명의 존엄성도, 인생의 의의도, 사람의 마음도, 자신의 마음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2권, p.287)

 

이 소설에서는 오쿠다 히데오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유머와 재치가 보이지 않는다. 한시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도록 만드는 흡입력도 찾기 어려웠다. (당연하겠지만) 다분히 추리소설의 성격을 띠는 이 소설은 만만찮은 작품의 분량 탓인지 긴장감이나 빠른 사건 전개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느슨하고 헐렁한 느낌마저 들었다. 다만 작품의 주제만 전면에 강하게 드러나는 것 같았다. 독자를 계도하려 하거나 어떤 다른 의도가 깔린 소설은 실패하게 마련이다. 주제가 작품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선명성은 돋보일지 모르지만 독자의 호응은 기대하기 어렵다.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현실의 재구성이다. 작가는 일반인의 생각과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고 소설 속에서 생동감 있게 그려내야 하지만 독자들에게 소설을 읽는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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