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느낌이 조금씩 달라지는 게 사실이지만 하늘만큼 그 선명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도 드물 것입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습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하늘을 바라볼 때의 자세에 따라 우리가 받는 느낌은 사뭇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걸으면서 우연히 보게 된 석양, 찬란한 일출의 풍경 등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그런 특별한 하늘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매일 볼 수 있는 하늘, 평범하다고도 할 수 있는 그런 하늘에 대해 하는 말입니다.

 

제가 매일 아침 오르는 산의 능선에는 운동기구가 여럿 비치되어 있습니다.  저는 본격적인 산행을 하기 전에 그곳에서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고 윗몸 일으키기, 스트레칭, 철봉 등 가벼운 운동을 하곤 합니다.  윗몸 일으키기대는 경사진 것과 수평의 것이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저는 경사진 윗몸 일으키기대에서 대략 25회 정도를 하는데 위몸 일으키기대에 누워서 보게 되는 하늘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나무의 우듬지와 넓은 하늘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때 저의 느낌은 마치 어릴 적 내 가슴에 엊혀지던 어머니의 따뜻한 손의 적당한 무게감과 그것으로부터 받았던 안온한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르르 잠에 빠져들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죠.  걸으면서 쳐다보던 하늘의 느낌과는 너무도 다른 것입니다.  제 몸 전체가 하늘에 빠져들 듯한, 누군가 적당한 무게로 가슴을 누르고 있는 듯한 행복하고 충만한 느낌.  말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그런 것입니다.

 

제가 지금껏 가슴에 담아 두고 있는 하늘이 또 하나 있습니다.  호주의 사막에서 보았던 밤하늘.  그때도 역시 사막 한가운데 벌러덩 누워서 보았습니다.  온 몸 곳곳에 박힐 듯 쏟아지던 별빛과 완벽한 암흑.  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낮에도 이따금 창유리를 통하여 하늘을 바라보곤 하지만 그런 감동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하늘은 역시 누워서 보는 게 제맛입니다.  저는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가끔 권하곤 합니다.  누워서 하늘을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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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기 에세이 신간평가단을 시작하는 첫번째 미션.

잠을 깨우던 간밤의 빗소리처럼 일손을 잠시 멈추게 하는 이 일이 어쩌면 내게는 달콤한 휴식처럼 반가운 게다.  새책을 받아 들고 책장을 넘길 때의 '빠닥'하는 탄력 넘치는 소리는 듣지 못할지언정 새로 출간된 책을 구경하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재래시장에서 한나절 봄나물을 구경하듯.

 

 

 

 

독일의 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저서 <작가의 얼굴>을 통해서였다.  처음 접하는 작가는 으레 낯섦과 서먹함에서 오는 부대낌이 있게 마련인데 작가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문체에는 독자를 배려하는 친숙함이 베일처럼 깔려 있었다.  나는 그의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비평에 감탄해마지 않았다.  독자의 변덕은 사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은 것이지만 나는 기꺼이 그의 팬이 되기로 작정했다.  비평서가 아닌 그의 자서전 <나의 인생>을 읽음으로써 어쩌면 그와 나는 세대를 떠나서 친구가 될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계절의 풍경이 하도 아름다워서 자연이 아름다워 사랑하는 것인지, 사랑하기에 자연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사랑의 담론을 읽는다는 건 자연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피터 트라튼버그의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또 다른 방랑이 아닐까.

 

 

 

 

 

 

 

내가 호주 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거라지 세일에 나온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보았었다.  너무나도 사고 싶었지만 내게는 돈이 님아있지 않았다.  그때의 아쉬움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이 책을 보자 나는 그때 느꼈던 아쉬움이 첫사랑의 추억처럼 되살아났다.

 

 

 

 

 

 

 

 

 

다비드 르 브르통이라는 이름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다.  우연히 읽었던 그의 저서 <걷기 예찬>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좋은 책이었다.  그러나 사회학자인 그가 내놓는 책은 몸과 관련된 어려운 책뿐, <걷기 예찬>과 같은 순순 문학은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이 책을 보고 저자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지금도 흥분과 설렘을 가누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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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간편한 운동복을 입고 인근의 산을 오릅니다.  아주 오래된 습관이자 취미생활인 셈이죠.  아침과 한낮의 기온차가 심한 요즘은 초여름을 방불케하는 한낮과는 달리 아침에는 제법 한기가 돌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옷을 두껍게 껴입었다가는 산을 다 오르기도 전에 흥건한 땀으로 목욕을 하게 됩니다.  저는 오늘도 간편한 차림으로 기분 좋은 한기를 느끼며 산행에 나섰습니다.

 

작년에는 4월 초순에도 눈이 내렸었는데 올해는 3월 말부터 기온이 높아진 탓에 산에는 봄꽃들이 다투어 피고 있습니다.  진달래는 말할 것도 없고 산벚꽃이며 민들레, 싸리꽃까지 하얗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요즘의 산은 그야말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하나 아쉬운 점은 날씨가 풀리면서부터 등산객이 부쩍 늘었다는 점입니다.  한겨울에는 혼자만의 여유로운 산행을 즐길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지요.

 

제가 다니는 산은 대략 왕복 5km의 거리로 시간으로 따지면 1시간 20여분이 걸립니다.  산길은 그닥 넓지 않아서 두 사람이 함께 걷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능선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마지막에는 가파른 고개가 나타납니다.  저는 그 고개를 올라 숨을 돌리고는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곤 합니다.  아무튼 오늘도 능선을 따라 걷고 있는데 저 멀리 주황색 등산복을 입은 사람이 걷고 있었습니다.  산길에 익숙하지 않은지 걸음은 빠르지 않았었죠.

 

저와 앞서 가던 그 여자분과의 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깝게 좁혀졌습니다.  일부러 꽉 끼는 등산복을 입었던 것인지 아니면 등산복보다 체구가 커서 그랬던 것인지 그 분의 엉덩이 부분에는 속옷 라인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고, 민망함에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그 여자분도 자신의 엉덩이 쪽이 몹시 신경쓰였던지 한 손으로 엉덩이 부분을 가릴려고 애쓰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어색하게 한참을 걷다가 마지막 고갯길에서 그분은 갑자기 멈춰서서는 나에게 앞서 가라는 듯 딴짓을 하고 있었죠.

 

저는 그분과 다른 코스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등산을 마치고 되돌아 오는데 앞서 걷는 그분을 또 다시 만났습니다.  나는 걸음을 빨리하여 그 여자분을 앞질렀고, 서둘러 산을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이런 비슷한 일을 몇 번 겪고나니 이젠 산행길이 그닥 즐겁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시간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더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무리가 있고, 늦추자니 그것도 어렵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제가 꼭 무슨 변태 성욕자나 관음증 환자로 취급받는 듯한 찝찝한 기분입니다.  그런 옷을 입은 여자분들이 더 이상 산에 오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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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4-04-02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좀 즐거운 경험으로 생각하시면, 그것도 죄가 될까요?

꼼쥐 2014-04-03 21:30   좋아요 0 | URL
본인이 죄책감을 느끼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사람에 따라 많이 달라질 듯싶어요. 어찌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인데 말이죠, 제가 소심해서...

비로그인 2014-04-02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옷 입는 추세가 워낙 타이트 한 건 있어요. 게다가 오르막에서 그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헐렁하게 입어도 엉덩이 라인이 눈앞에 떡하니 보일 수밖에 없으니 서로 참, 민망하기도 할 거예요. 인적없는 작은 등산로에서 그렇게 맞딱드리면 남자든 여자든 서로 신경쓰이기 마련이구요(쓰신 페이퍼 다시 복습하고 있네요 제가 ㅎㅎ) 먼거리도 아닌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고 있다고 느끼면 저라도 좀더 빨리 걷던가 아예 뒤쳐지는 상황을 만들던가..(사진 같은 거 찍는 척 하면서) 그렇게 할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아예 대놓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죄송해요.(뭐가 죄송한지는 몰라도) 먼저 지나 가세요...

(물론, 상대방이 아주 위협적으로 보인다거나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면 이런 말도 못하겠지만요)


꼼쥐 2014-04-03 21:33   좋아요 0 | URL
제가 다니는 등산로는 워낙 폭이 좁아서 비켜설 만한 장소를 찾기도 어렵답니다. 그저 뒤에서 서로 민망하지 않게 행동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셈이죠. ㅎㅎ
 

어제는 3월의 기온치고는 다소 더운 날이었습니다.

산에는 이제 막 쌀알만한 새순이 돋고 있는데...

성마른 계절이 모퉁이를 돌 것도 없이 남의 집 담장을 훌쩍 뛰어 넘어 마당을 가로지른 것처럼 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듯했습니다.  세월은 제각기 혼자 부담해야 할 무게만 남겨놓은 채 지나가는 거라지만 계절의 순환을 교과서처럼 믿는 사람들의 당혹감마저 지우지는 못하는 듯하였습니다.

 

급히 먹은 점심이 부담스러웠는지 위 속의 음식물들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한참을 메슥거렸습니다.  소화도 시킬 겸 들렀던 동네 공원.  생선 비늘 같은 마른 햇살이 함뿍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왁자한 소란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3월의 기이한 여름 속에서 머물렀습니다.

 

세상의 자유를 다 얻은 듯한 표정들.

미세먼지의 공포를 잊게 한 것도, 우중충한 집안을 과감히 벗어나게 한 것도 모두 설익은 햇살의 도발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때이른 초여름 더위보다는 반소매 차림으로도 집을 나설 수 있는 간편함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형 마트의 '원 플러스 원' 상품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제 절망과 희망도 함께 오는 것이라 여깁니다.  미세먼지의 공포도, 이상 고온의 절망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희망에 한껏 가벼워진 듯 보였습니다.  나는 그 속에서 메슥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한동안 서성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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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근처에는 제법 큰 규모의 시립도서관이 있습니다.  어쩌다 여유 시간이 생기면 딱히 할 일을 찾지 못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놀이공간도 없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와 비교하면 요즘의 도서관은 시설도 좋고 장서 규모도 놀랄 정도이지요.  몇 년째 그곳을 뻔질나게 드나들다 보니 도서관 직원들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취향의 단골 이용자들 얼굴도 이제는 제법 눈에 익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도서관 로비를 들어서는 순간부터 인사를 받거나 인사를 하게 됩니다.

 

어제도 나는 한참이나 늦은 시각에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찢어지거나 구겨지지 않은 일상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금간 데 없이 매끈한 시간을 파노라마 영화처럼 즐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느낌표의 아랫점을 정성스레 찍는 일처럼 자연스런 일상이었습니다.  어두침침한 로비를 지나 도서관 2층으로 향하는 모퉁이를 막 돌아서려는데 공중전화 앞에 서있던 한 여인으로부터 인사를 받았습니다.

 

희미한 조명 아래서 얼굴을 확인하는 데만 한참이 걸렸습니다.  도서관의 식당 아저씨와 애기를 나누는 도중에 서너 번쯤 얼굴을 마주친 적이 있는, 학생인지 아가씨인지 잘 알지 못하는 그 여자와 나는  한두 번쯤 멀리서 인사를 하던 그런 사이였습니다, 우리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저만치 멀어지려는데 아가씨도 바삐 전화를 끊고 내 뒤를 좇아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2층 열람실에서 책 한 권을 빌리고 3층 휴게실을 둘러보려는데 그 아가씨와 다시 마주쳤습니다.

 

휴게실에는 혼자서 서성이던 그녀와 원탁에 둘러 앉은 서너 명의 아줌마들이 보였습니다.  "여자친구 있어요?"  그녀의 뜬금없는 질문에 그 대상이 나라는 사실도 미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각자의 얼굴에 고정되었던 아줌마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건너왔습니다.  나는 그때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려 애쓰면서 살짝 미소를 띄웠던 것 같아요.  그 상황은 마치 상영시간이 훌쩍 지난 영화관 안에서 지정된 좌석을 찾느라 기웃대는 것처럼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나는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고, 조명이 꺼진 계단을 통해 건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가는 봄비가 소리도 없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등나무 벤치에 앉아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물었을 때 그 아가씨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대답을 꼭 들어야겠다는 표정으로 "여자친구 있어요?" 똑 같은 질문을 재차 물었습니다.  "아니, 없는데요.  왜요?"   감색 후드티와 비슷한 색깔의 스키니진을 입은, 등에는 군청색 백팩을 맨 그 아가씨는 "나도 남자친구 없는데..."가늘게 말하며 어둠 속으로 흩어졌습니다.

 

한쪽 눈에 약간의 사시 기가 있는, 정상인에 비해 조금쯤 지능이 낮다고 들었던 그 아가씨는 이 봄 살구꽃처럼 다른 사람의 사랑이 궁금했었나 봅니다.  어쩌면 그녀는 보풀거리는 꿈이 자랄 나이를 지나 목련꽃처럼 순결한 사랑을 할 나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위가 한켜씩 벗겨질 때마다 색깔을 달리하던 나무들이 사랑처럼 빨간 꽃망울을 터뜨리려나 봅니다.  오늘 아침에는 수줍게 핀 목련을 보았습니다.  꿈처럼 순결한 봄입니다.  누구의 가슴엔들 사랑이 움트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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