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3월의 기온치고는 다소 더운 날이었습니다.

산에는 이제 막 쌀알만한 새순이 돋고 있는데...

성마른 계절이 모퉁이를 돌 것도 없이 남의 집 담장을 훌쩍 뛰어 넘어 마당을 가로지른 것처럼 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듯했습니다.  세월은 제각기 혼자 부담해야 할 무게만 남겨놓은 채 지나가는 거라지만 계절의 순환을 교과서처럼 믿는 사람들의 당혹감마저 지우지는 못하는 듯하였습니다.

 

급히 먹은 점심이 부담스러웠는지 위 속의 음식물들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한참을 메슥거렸습니다.  소화도 시킬 겸 들렀던 동네 공원.  생선 비늘 같은 마른 햇살이 함뿍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왁자한 소란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3월의 기이한 여름 속에서 머물렀습니다.

 

세상의 자유를 다 얻은 듯한 표정들.

미세먼지의 공포를 잊게 한 것도, 우중충한 집안을 과감히 벗어나게 한 것도 모두 설익은 햇살의 도발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때이른 초여름 더위보다는 반소매 차림으로도 집을 나설 수 있는 간편함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형 마트의 '원 플러스 원' 상품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제 절망과 희망도 함께 오는 것이라 여깁니다.  미세먼지의 공포도, 이상 고온의 절망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희망에 한껏 가벼워진 듯 보였습니다.  나는 그 속에서 메슥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한동안 서성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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