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듯 잔뜩 찌푸린 하늘입니다.  오늘 날씨는 이를 테면 오슬오슬 한기를 느낌직한 그런 날이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이런 날이면 언제나 나는 겨울 솜이불의 적당한 무게가 그리워지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불을 덮고 누웠을 때 금세 잠에 빠져들 듯한,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찬 공기가 스며들지도 않는 적당한 무게의, 마치 감기가 들어 열이 펄펄 끓는 어린 시절의 나와 그 곁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 이마에 손을 얹으시던 어머니의 손길에서 느껴지던 그런 무게 말입니다.  내 가슴에 얹혀지던 그 솜이불의 무게와 턱밑까지 이불을 당겨주시던 어머니의 손길이 그리워지는 그런 날입니다.

 

나는 지금 올해가 가기 전에 끝내야 하는 여러 일들의 목록을 책상 위에 올려 놓은 채, 자꾸만 몽롱해지려는 의식을 가까스로 붙잡고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조금 쓸쓸해지는군요.  그저 놀이 삼아 하는 일이라고 해두죠.  개중에는 진즉에 마무리지었어야 했던 일들도 눈에 띕니다.  나는 이런 순간이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아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게으름'을 느끼곤 합니다.  나는 그동안 뭘 하며 지냈던 걸까요?  후회와 자책이 쓰나미처럼 몰려옵니다.  '후'하고 한숨을 쉬어 봅니다.  이 순간에도 시간은 야속하리만치 빠르게 흐르는군요.

 

그렇다고 걱정을 하지는 않습니다.  항상 '시간'이라는 놈은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때가 되면 내 앞에 보란 듯이 펼쳐 놓을 테니까요.  그것을 제 힘으로 막을 도리는 없는 일이죠.  어쩌면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불솜의 적당한 무게와 부드러운 감촉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도 말이죠.  적당한 긴장감은 사람의 건강에도 좋다고 하는데 이런 와중에도 나는 도무지 티끌만 한 긴장감도 느끼지 못합니다.  구제불능입니다.

 

뺀질뺀질 시간을 끌며 딴짓을 하다 보면 시간도 내 보조에 맞춰 느릿느릿 천천히 흐를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아, 그러나 야속한 시간은 그리 하지 않는군요.  이제는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열공 모드가 아닌, 열일 모드로 돌입해야 할 시간입니다.  어릴 적 어느 집 담벼락에서 보았던 '오늘도 무사히!'라는 표어가 떠오릅니다.  아마 그렇게 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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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번호 : 001-A814526125] 저는 일본을 두어 번 다녀왔지만 묘하게도 계절은 항상 여름이었습니다. 일부러 의도했던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인지 제 기억 속의 일본은 약간은 덥고 습한 날씨와 사람들의 지친 표정들로 남아있습니다. 하나의 기억으로 어떤 대상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단조로운 나의 경험 탓에 일본에 대한 인상은 줄곧 후텁지근하고 약간의 짜증이 섞인 그런 것이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제는 여름이 아닌 다른 계절에 다녀오고 싶네요. 참고로 제가 주문했던 책은 <도쿄의 서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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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렸습니다.

첫눈입니다.  '처음'이 갖는 막연한 설레임으로 나는 그렇게 눈 내리는 풍경을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처음'은 곧 '익숙함'으로 쉽게 변질될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눈이 시작되는 아득한 허공과 내 시선이 닿을 수 있는 이쪽 끝에서 저쪽 끝에 이르기까지, 마치 나는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목을 길게 늘인 채 한동안 하염없었습니다.  이편(현실)과 저편(과거)의 경계가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자'던 내 유년 시절의 막연한 약속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허망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지켜질 수 없는 허망한 약속을 누군가에게 수도 없이 약속하며 빈 세월을 건너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떠오른 후회 한 모금을 쓴 커피와 함께 마셨습니다.  내가 지키지 못한 많은 약속들이 첫눈이 녹듯 누군가의 가슴으로부터 말끔히 지워지기를 간절히 바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깨를 짓누르는 월요일의 무게를 잠시 잊었던 듯합니다.

다들 말이 없었고, 침묵 속에서 각자의 추억들이 눈발처럼 나부꼈습니다.  세월은 결국 두려웠던 대상을, 달아나고 싶은 어떤 미래를 우리의 눈앞에 야멸차게 펼쳐놓곤 합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겨울이 성큼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말입니다.

 

첫눈이 내렸습니다. 

겨울을 맞이하는 통과의례처럼 2013년의 겨울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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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여린 마음을 위로하려는 듯 부드럽기 그지없는 비다.  나는 잠깐 산책을 했고, 속삭이는 빗소리를 들었고, 이따금씩 우산을 옆으로 젖힌 채 한두 방울의 비를 맞곤 했다.  겨울을 준비하는 모든 생명체의 바쁜 일상은 잿빛 어둠에 묻혀 가뭇하다.

 

아침에 처음으로 내복을 꺼내어 입었다.  사는 게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구나, 생각하며 맥없이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날씨이고, 기온인데 몸은 오슬오슬 추위를 탄다.  어렸을 때는 내복 입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었다.  요즘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몸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거나 유행을 좇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내복을 입었을 때의 답답한 느낌이 싫었을 뿐이다.  예전에는 내복의 두께가 어찌나 두껍고 투박했던지...

 

수능 예비소집 때문인지 수업을 일찍 마친 아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채 저희들만의 언어로 조잘거린다.  이따금 들리는 웃음소리가 유난히 맑다.  은행나무 가로수의 노란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간다.  바람을 머금은 듯한 투명한 빛깔이다.  계절은 또 이렇게 말없이 지나가나 보다.

 

한 잔의 커피를 옆에 두고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었다.

대입 학력고사가 멀지 않았던, 딱 이맘 때쯤에 나는 이 책을 읽었었다.  나는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이나 <1984 >보다 르포 형식의 이 책을 더 좋아했었다.  나는 그때 생각하는 것과 경험하는 것의 차이를 분명히 알았다.  나의 부모님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광산촌에서 살고 계셨다.

 

추억이란 때로 까닭도 없이 깊은 슬픔으로 빠져들게 한다.

내가 내복을 꺼내 입은 것도, 하루가 훌쩍 스러지는 것도, 피곤에 절은 후배의 얼굴도 괜스레 슬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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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여린 마음을 위로하려는 듯 부드럽기 그지없는 비다.  나는 잠깐 산책을 했고, 속삭이는 빗소리를 들었고, 이따금씩 우산을 옆으로 젖힌 채 한두 방울의 비를 맞곤 했다.  겨울을 준비하는 모든 생명체의 바쁜 일상은 잿빛 어둠에 묻혀 가뭇하다.

10월에 출간된 에세이를 둘러본다.  반가운 이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윤기, 이외수, 잭 캔필드, 안셀름 그륀 신부님...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책'이라는 단어가 있는 책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아주 오래된 습관처럼 나도 모르게 스르르 끌리는 것이다.  저자의 이름에 '잭 캔필드'가 보인다.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이다.  물론 다른 많은 작가들이 등장하지만, 나는 오직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의 저자인 잭 캔필드만 보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바라볼 수 있는 권리'가 내게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딱히 종교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나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안셀름 그륀 신부님을 사랑한다.  그의 따뜻함이 좋고, 밝고 투명한 그의 영혼이 좋다.  게다가 나는 한 때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던 그 순간에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책을 통하여 위로를 받았다.  <자기 자신 잘 대하기>를 비롯하여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머물지 말고 흘러라>, <삶을 배우는 작은 학교>, <노년의 기술> 등 신부님이 쓴 주옥같은 책들을 지금도 가끔 들춰보곤 한다.  나는 그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져 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이윤기 작가를 다시 평가할 수 있었던 계기는 그의 산문집 <무지개와 프리즘>을 읽은 직후였다.  나는 이제껏 무릇 작가라고 통칭되는 사람들에게 가장 결여된 것은 '일관성'이라고 여겨왔었고, 내가 읽었던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것을 확인하곤 했었다.  작가에게 있어 '변신'이란 '문학적 재능', 또는 '창의성'으로 과대포장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수시로 얼굴을 바꾸는 작가들의 행태에 나는 얼마 간의 역겨움을 느끼곤 했었다.  그러나 이윤기 작가의 일관성과 뚜렷한 주관, 그리고 두 말 할 필요도 없는 빼어난 글솜씨는 금세 나를 사로잡았다. 

 

 

 

 

 

 

작품 속에서 작가의 진면목을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나 노련한 작가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세간에 떠도는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작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대담집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그런 데 있다.  세상에 드러낼 수 없었던(때로는 드러내는 것을 꺼렸던) 자신의 생각들을 과감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이외수의 생각을 소설가 하창수와의 대담에서 얼마나 보여줄지 자못 궁금하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물의 가족>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의외성'이었다.  그것은 '독창성'과는 구별되는, 당돌함이나 특이함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책을 읽지 못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다만 잊고 있었을 뿐이다.  에세이의 제목 또한 도발적이다.  삭발을 한 그의 얼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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