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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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이라는 가사가 있는 노래가 많다. 시간을 원하는 곳으로 맞춰 놓으면 지워버리고 싶은 그때로 돌아가서 새로 시작하거나 처음부터 없는 일로 만들어 놓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한번쯤은 가졌을 것이다. 내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사실 한번이 아니다. 수무한 일들중 지워 버리고 싶은 순간은 간혹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것은 기억의 일부분일 것이고 나만 괜찮다고 생각하면 시간이 다 지워버리는 일이다. 기억은 그렇게 지워졌으면 하는 것은 오로지 내가 살아 있어야 생기는 일이다. 다시 시작하는 시점도 내가 세상에 존재 할 때의 일이다. 그렇다면 내가 준비 없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때는 감추고 싶은 것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누군가는 매일 미루다 못 지운 야동을 발견한다거나 부모에게 혹은 아내에게 혹은 남편에게 발견이 되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취미, 혹은 비밀스러운 것들이 고스란히 죽음으로 인해서 세상을 나오게 될 것을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감추고 싶은 것들은 무엇이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악어빌딩 4층에는 이런 사후에 벌어질 곤란한 상황을 정리해줄, “딜리터”라는 직업을 가진 구동치가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은 아주 깊은 우물 같은 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자신에게 들려주는 얘기는 밖으로 세어나가지 않으며 어느 순간 당신에게 찾아올 죽음 이후에 없애줬으면 하는 문서나 물건들을 처리해 준다고 한다. 그토록 왜 사람들은 구동치를 찾아와 딜리팅, 즉 지워 주는 일을 원했을까.


 

 

“ 죽은 사람들의 휴대전화기를 찾아주고 없애주고, 죽은 사람의 컴퓨터를 망가뜨리고, 죽은 사람의 일기장을 찾아서 갈기갈기 찢고 불태웠다. 자신이 한 일이 딜리팅이라는 것을,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딜리팅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는 무언가를 세상에서 없애버린다는 죄책감도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많은 걸 없애려고 했다. 자신의 평탄 때문에, 비밀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해서,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서, 수많은 이유 때문에 많은 걸 없애려고 했다.” P84



 

처음 딜리팅을 시작할 때 불법적인 일이라는 생각에 죄책감을 가졌다면 차츰 흔적을 없애려고 하는 이들의 소원을 들어 준다는 생각으로 깔끔하게 처리되는 자신의 딜리팅에 만족감을 가졌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의뢰자들의 조건을 들어줘야 했지만 딱 한번, 아니 두 번이었을 것도 같은 그날 딜리팅을 하러 들어간 집에서 의뢰자의 딸을 만나게 됐다. 그때부터 이 소설의 큰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다.


 

 

처음 구동치의 딜리팅과 의뢰자들의 얘기만 주를 이루다가 이내 구동치의 실수로 점점 확대되는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새로운 사건을 만나게 된다. 자신이 이 딜리팅일에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는 상당히 책임감이 있었고 입이 무거웠으며 침착했었다. 자신이 없애려는 물건이 혹 어떤 힘으로 연결되어 있어도 그것을 가로 챌 수 있는 듬직한 체격이 있었으니 얼마나 적절한 일이었는지. 하지만 그가 마주친 의뢰자의 딸과 엮이면서 그는 지금의 이 딜리팅이라는 일을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하지만 그는 끝내 그에게 주어졌던 마지막 딜리팅도 그가 생각하는 적절한 직업의식으로 해결을 해 놓았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너무 많이 들어서였을까, 구동치의 대사들이 자꾸만 김중혁 작가의 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실시간으로 생동감 있게 들렸다. 그래서 구동치의 대사들은 모두 김중혁 작가 톤으로 읽히고 말았다. 그래서였을까, 구동치의 체격이며 말하는 투의 느낌이며 모두 김중혁 작가를 그냥 앉혀 놓은 것 같다고 할까.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은 빨간 책방을 자주 들었던 사람이 구동치를 김중혁화 해서 듣게 되는 것은 아닐까.


 

 

<펭귄뉴스>라는 단편을 읽으면서 참, 재미있는 글을 쓰는 작가였다고 생각했던 그의 장편을 읽을 때마다 그가 장편보다 단편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호흡을 가지고 있는 작가는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상당히 두꺼운 이 장편 소설에는 주인공의 심리보다 대사가 훨씬 많은 지문을 할애하고 있다. 단편에서는 훨씬 많은 심리묘사가 있는 반면 이 장편은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그렇지만 단편보다 장편소설을 훨씬 많이 읽은 이유는 그저 그의 소설이 좋기 때문이다.

 

만약 구동치 같은, 혹은 김중혁 작가로 빙의된 구동치에게 찾아 간다면 나는 어떤 비밀을 지워 달라고 할까, 책을 읽는 동안 고민이 되는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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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1-20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김중혁님의 장편소설이였군요ㅎ 빙의의 실체를 깨달았어요 소설의 소재가 상당히 흥미로워요ㅋ 그런데 저는 오후즈음님처럼 허삼관 매혈기 글이 자꾸 하정우씨 톤으로 읽혀요 아직 영화를 보지않았는데도 말이죠 ㅠㅜㅎ

오후즈음 2015-01-21 14:19   좋아요 0 | URL
정말로 그럴때가 있는것 같아요. 감정이입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막 감정이입이 되는.

북드림캐쳐 2015-01-2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싶은 궁금한 책이네요^^*

오후즈음 2015-01-21 14:20   좋아요 0 | URL
상당히 두껍지만 빨리 읽으실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
 
전쟁의 물리학 - 화살에서 핵폭탄까지, 무기와 과학의 역사
배리 파커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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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끊임없는 전쟁을 치러왔다. 그 전쟁은 끝나지 않고 지금도 어느 나라에서는 계속 현재진행형이다. 좀 더 많은 영토를 갖고자 하는 욕망과 욕심 또는 이념과 항쟁하며 싸우는 전쟁은 많은 살생이 따랐지만 꾸준하게 진화된 무기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기는 싸움을 하기위해서 무기는 진화해야 했고 그 진화된 무기는 전쟁이후에 다른 용도 변경되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전쟁의 물리학]은 물리학을 기본 토대로 만들어진 무기들을 소개하며 전쟁의 이면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이 책은 물리학의 거의 무든 갈래를 다루면서 군사적으로 어떻게 응용됐는가를 보여준다. 인간이 만든 활과 화살부터 전차를 거쳐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다. 저자가 전쟁과 물리학이라는 책을 쓴다고 하니 주변에서 전쟁과 물리학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냐고 물었다고 했는데 사실 나도 처음에 책을 읽으면서 그들과 같은 질문을 했었지만 읽으면서 느끼는 흥미로움은 상당하다.



 

책은 초기 영불 전쟁부터 다루지만 가장 근접했던 1차, 2차 세계대전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쓰인 X선과 가시광선, 적외선 활용 부분에서는 사실 이토록 과학적인 준비를 하고 전쟁을 치렀다는 것에 놀랐다. 너무 무지한 부분으로 전쟁을 바라보았다. 그저 오래전에 치러진 전쟁이라고 하면 중세 시대의 화약으로 쏘는 총, 대포 혹은 전차나 그 이후에 탄환을 넣은 총이나 탱크로 싸웠다고 생각했었던 부분인지라 이런 과학적인 활용으로 전쟁이 치러졌는지 몰라서 놀랐다고 할까. 앞서 얘기 한 부분에 말했듯 전쟁으로 쓰인 무기들은 다소 변형되어 다시 쓰이고, 그때 발명했던 것들은 새로운 산업의 주축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때로는 좋은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전쟁에 쓰이기도 했다. 비행기 또한 발명되자마자 없어서는 안 될 전쟁 무기가 되었다고 하니. 하늘을 날고자 해서 만들었던 비행기가 욕망의 그늘에 있는 전쟁을 도울 무기가 되고 말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맹렬하고 파괴적인 전쟁이었다는 2차 세계대전에서는 항공학이 발전을 했고 최초의 제트기를 만들어졌고, 대형 탄도 로켓이 등장하면서 점점 최첨단화가 되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원자폭탄이었으니 이보다 더 무시무시한 전쟁의 결과물이 있을까. 히틀러가 더 강력한 무기를 가지지 못해서 다행인 2차 세계대전 또한 얼마나 많은 희생자를 낳았는지.

 

과학자들만이 무기와 결부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예술가도 헬리콥터나 낙하산, 잠수복, 기관총과 같은 군사용품들을 스케치하고 노트에 기록했다고 하니 그저 과학자들만이 물리학과 연관 지어 무기를 만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늘 이후 간절한 소망은, 점점 넓고 깊게 물리학을 이해함으로써 전쟁 같은 대량 학살이나 이미 흔한 일이 돼 버린 살육 무기가 아니라,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갈등을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하는 일일 것이다.” P512


 

저자의 바람처럼 나 또한 소망한다. 간혹 뉴스에서 깜짝 놀라는 살인 사건 소식은 점점 잔혹해져만 가고 있다. 좋은 의미로 개발되었던 것이 잔혹한 욕망의 무기로 변질되질 않길 바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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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자로 살아가는 것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이게 나야, 나는 이런 사람이야 뭐 이렇게 얼굴 내 놓고 살아가는 것도 즐기지 않는. 그러니까 적당하게 맞춰 나가길 원하는 사람이라고 나를 스스로 정의 내리지만 어떤 이면으로 보면 은근히 나를 내세우는 것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도 같다. 뭔가 선물을 받았을 때보다 뭔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보상을 받는 것에 당연히 즐거울 수밖에 없겠지만 그걸 또 드러내 놓고 싶어 하는 속물근성인지도 모르겠고.




 

 

 

요즘 네이버 블로그가 이런 저런 이유로 잘 들어오지 않고 있다. 이유는 알라딘에서 11월쯤 만든 북플 (Bookple) 때문이다. 어플 깔기 귀찮아서 안 깔다가 12월부터 완전 빠졌다. 그간 나의 블로그의 정체성은 어떤 것인가 고민했던 적도 있었는데 큰 고민을 하지 않고 그냥 쓰면 되는 것으로 정의했다가 요즘 알라딘 서재 활동을 하는 북플 어플 사용으로 인해서 그동안 깊지 않은 나의 독서 활동에 반성을 하고 있다.


 

 

그간 신간 평가단을 하느라 알라딘 서재에 리뷰 올리는 정도로만 사용했지 전혀 알라딘 서재에 활동하는 이들의 글을 정독해서 읽어 보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북플 어플 사용으로 인해서 그들의 글을 읽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도 책과 관련된 블로거들도 있지만 진정한 고수들이 여기에 있었구나, 감탄을 하면서 글을 읽고 있다. 특히 몇몇 유명한 분들의 박식한 리뷰에 깜짝 놀라며, 아니 왜 그동안 이런 훌륭한 고수들의 글을 읽지 못했나 안타깝다. 책과 관련된 사이트에 만들어진 블로거이기 때문에 당연히 책 얘기가 많지만 소소한 그들의 생활을 엿보는 것도 재미있는 시간이고, 같은 책을 읽고 서로 공감하는 “좋아요”를 눌러주는 그 수고스러움에도 감동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


 

 

진정한 고수들을 만난 황홀한 기분, 그러면서 점점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는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지는 공간. 나도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과 욕구로 가득한 요 며칠을 보내면서 정작 책 한권을 다 읽기도 힘든 시간이라서 좀 안타깝지만 나아지겠지.

 

 

그런 나에게 주는 알라딘의 선물

11월, 12월, 1월 모두 <이달의 리뷰> 당선으로 적립금 2만원씩 주셔서 감사할 따름. 이달의 페이퍼에도 도전해 보자!

 

 

 

 

이렇게 매달도 뽑아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그나저나....책장을 사야 합니다....

이 책이 대부분 11월 28일 대란이 일어나기 전에 질렀던 책들. 

사실은 이만큼의 두배가 거실에 방치되어 있어서...같이 살고 있는 짝짝꿍씨에게

매일 갈굼을 당하고 있다. 다 버릴거라고.............버릴거라고.....

안 읽으면....버릴거라고....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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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1-14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을 한 100개 누르고 싶네요 ㅎㅎ 북플을 하다보니 정말 고수님들이 많으시구나를 자주 느끼고 그래서 더 고맙게 배울 수 있는 공간 같아요.그래서 참 좋고 정이 가는 어플같습니다. 책탑을 보니 힘드시겠지만 부러운 마음도 드네요 ㅎㅎ 모쪼록 정리 잘하시구 당첨되신거 축하드려요^0^~~~!!!

오후즈음 2015-01-14 13:01   좋아요 0 | URL
저는 네이버 블로그도 이웃을 잘 안만들고 혼자 노는데...이곳은 정말 깜짝 놀랄 글솜씨에 반성 모드 키고 있어요.
저의 책탑은...조만간 좀 정리를 하면 되겠지만 쉽지 않네요. 축하 감사합니다~~ 더 좋은 리류를 써야 하는데 말이죠.

yamoo 2015-01-17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야무라고 합니다^^
저도 공감 100개 정도 누르고 싶어요~ㅎ

이곳 알라딘에는 정말 숨은 고수들이 많습니다. 화제의 서재글이나 이달의 당선작에 없지만...한 달에 한 두 번 올리시는 분들 중에 정말 초고수분들이 있습니다. 오직 알라딘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랄까요~^^

잘 둘러 보시면 정말 예기치 않은 곳에서 엄청난 글을 쓰는 분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이곳이에요.

어쨌든, 오후즈음님도 알라딘 서재에서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오후즈음 2015-01-18 23:11   좋아요 0 | URL
야무님 반갑습니다~ ^^
야무님 서재에 놀러 갔다 왔네요.
그간 네이버에서만 놀았더니 이런 귀한 곳이 있는줄 몰라서 아쉽네요.

꽃핑키 2015-01-17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ㅋㅋ 저도 공감 100개ㅋㅋㅋ

오후즈음 2015-01-18 23:11   좋아요 0 | URL
ㅋㅋ 그중에 꽃핑키도 있돠~~
 
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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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대에게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사람은 자신에게 얼마나 진실 된 것일까. 내가 알고 있는 기억이 나의 온전한 기억은 맞는 것일까. 언젠가 본 홍상수 영화의 <오! 수정>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어떤 하나의 진실과 상황은 모두 나의 기준에 의해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그 장면은 나에게 맞게 혹은 나에게 유리하게 바뀌어 기록되어 저장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야하는데 간혹 내가 본 , 내가 느낀 이 전부라는 생각으로 타인이 말했던 것을 부정하는 일은 없었나 반성하게 됐었다.

물론 그것은 그때의 반성으로만 지나칠 뿐 더 달라지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성찰이 되지 않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유년시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스릴러 드라마를 본 후 며칠 밤을 잠을 자지 못했던 기억으로 남겨 있었던 작가 에거사 크리스티는930년에서부터 1956년까지 필명으로 총 여섯 권의 장편 소설을 썼다. 그녀가 필명으로 쓴 이 여섯 권의 작품 중 <봄에 나는 없었다>를 읽고 나면 그녀의 나머지 작품은 안 읽을 수 없을 것 같다.

 


영국부인 조앤, 그녀는 모든 것이 평화로웠고 아늑했다. 그녀를 위해 애써주는 자상한 변호사 남편. 공부도 잘하고 자기 일은 알아서 잘하는 기특한 아이들. 평온한 집안에서 그녀는 부유한 부인일 뿐이었다. 이것은 그저 조앤이 생각하는 자신의 표면적인 모습일 뿐이었다. 그녀의 딸의 병간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만 바그다드에 발목이 묶이고 만다. 그녀가 출발해야 할 기차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풍족하게 자랐던 그녀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날들의 시작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의 기대, 책 한권이면 집으로 올 시간은 충분히 버티겠지 생각했지만 문제가 생긴 기차 때문에 그녀가 읽을 책은 더 이상 없었다. 사막에 불어대는 모래바람처럼 마음의 공허했고 어지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모래바람만 그렇게 불었던 것이 아니었다. 우연치 않게 만났던 조앤의 친구를 통해 그녀는 바람 뒤에 헝클어져 있는 자신의 모습들을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문득 그녀는 애써 품지 않았던 의문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한다. 고립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지나간 날들을 떠 올려 보기 마련일까. 그녀는 문득 자신이 딸의 병간호를 하기위해 떠나려 했을 때 자신의 남편 로드니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 로드니는 왜 기차가 역을 떠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을까?” P76

 

그녀는 로드니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걸음을 서둘러 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태운 기차가 역을 빠져나가는 광경을 차마 지켜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것이 자신의 남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녀는 상상으로 자신의 입장에 맞게 남편의 행동을 맞춰보려 애쓰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조앤은 그저 소란스러운 삶이 싫었을 수 있다. 그래서 농장을 가꾸며 농사를 짓고 싶은 남편에게 변호사로 남아 살아가길 원했고,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조앤의 바람대로 살아갔다. 그것 때문에 로드니는 모든 생활이 반짝이지 않았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변호사인 아버지덕에 윤택한 삶을 살았지만 뭐든 자신의 기준대로 행동해주길 원했던 조앤, 엄마로 인해 자유가 없었고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앤은 부유하고 쾌적하고 윤택한 첫째의 사위와 집안이 마음에 들었고 그것으로 그녀의 지난 시간이 흡족했다. 하지만 그런 엄마를 피해 멀리 시집을 간 딸도 있고, 자신을 위로한 진짜 친구가 옆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조앤이 피하고 싶었던 것들은 그저 눈감고 이것은 진짜가 아니리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다.

 

누군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네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고 말해준다면 그것을 어떻게 믿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조앤도 그렇다. 그녀는 좀처럼 자신을 발견하는 모습에서 절대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래 바람이 일고 희뿌옇게 보이는 진짜의 모습에 눈 감아 버리는 것이다.

 

마지막 엔딩에서 화들짝 놀라게 하는 반전은 그런 것이다. 조앤은 그냥, 조앤으로 남는 것이다. 그녀의 쓸쓸한 모습이 불쌍하면서도 안타까웠다. 마치 어느 날 내가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면 나도 그녀처럼 모른척하면서 보지 않을 있겠다는 생각. 한 영화의 장면들처럼 타인이 기억하는 그 장면에 어쩌면 내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나는 얼마나 소중하게 나를 무장하면서 나를 변명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녀가 한동안 떠 올렸다가 지웠던 그 말, 그 봄에 나는 없었다는 그 말이 어쩌면 나에게도 찾아올지 몰라 두려워진다.


 

그동안 스릴러 작가였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장편에 홀딱 반했다. 여섯 편중에 한편이 이런 퀼리티라니. 여섯 편중에 세편이나 나와 있으니 조만간 여섯 권은 다 만나 볼 수 있겠다. 이렇게 멋진 여자였다니. 놀랍고 부럽고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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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1-0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좋았어요. 나머지 두 권도 역시 좋구요. 빨리 다 출간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어린 시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후즈음 2015-01-10 23:19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 나온 세권이 다 좋다는 평에 나머지 두권을 질렀습니다. ㅠㅠ
어린시절 그 드라마는 정말 너무 무서웠어요...밤에 잠을 못잤던 며칠을 보냈다가 가끔 사실...지금도 좀 생각나면 소름이...ㅋㅋ 호러물을 싫어해서 말이죠..제가는 참 힘들었던 기억이네요. 같은 기억을 가지고 계시다니 좋네요 ㅋㅋ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자크 상페의 그림 이야기
장 자크 상뻬 지음, 김호영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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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인들에게 책을 잘 빌려주지 않는다. 물론 잘 빌려 읽지도 않는다. 오로지 내 소유의 책이어야 하며 내가 소장하고 있어야한다. 그런 이유가 생긴 것은 책을 읽을 때 간혹 줄을 치며 읽을 때가 생기면 줄을 치고 싶어 곤란한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빌려서 읽기보다는 사서 읽고 있는데 내가 산책을 잘 빌려주지 않지만 간혹 빌려주는 책 중에 가장 빈번하게 지인들이 집에 놀러와 가지고 가서 돌려주지 않는 책은 장 자끄 상뻬의 책들이다. 집에 놀러 와서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읽겠다고 가져가고 서로 잊고 있다가 다시 읽기위해 찾다보면 지인들과 멀어져 있어서 책 때문에 연락하기 곤란한 상황이 되면 결국 다시 한권을 샀다.

그런데 며칠 전 내게 장 자끄 상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가 3권이나 돌아왔다. 돌아 왔다기 보다는 지인들과 오랜만에 만났고 그들이 잊고 있던 책들을 우연치 않게 가지고 왔는데 그것이 모두 다 똑같은 책이었다.



테이블에 놓인 책을 보면서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다시 만나게 된 두 소년이 내게 다가온 느낌이다. 




평범하다는 말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두 아이가 있다. 한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고 한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를 한다. 멀리서오는 두 아이의 모습만 보더라도 누군지 대번에 알 수 있는 증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누군가 곁에 있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얼굴이 빨개져야 할 때는 정작 빨개지지 않는 마르슬랭은 왜 얼굴이 빨개지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이런 얼굴로 살아야 할지 모른 채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져갔다. 여름 태양에 검게 그을린 모습으로 있는 사람들과 함께일 때가 가장 좋다는 마르슬랭 까이유.

감기 증상이 없는데도 감기에 걸린 것처럼 재채기를 하는 르네 리토는 바이올린도 잘 켜고 훌륭한 학생이었지만 그도 혼자였다.

마르슬랭이나 리토가 대견한 생각이 드는 것은 그들의 어떤 다름을 괴로워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우정이라는 것이 서로 교감에서 오는 소통을 그냥 이해해 준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까이유는 재채기를 하는 리토에게 감기에 걸렸냐는 말을 하지 않고 리토의 재채기가 멋있다고 생각하고 리토는 멋진 얼굴색으로 변한다고 까이유의 빨개지는 얼굴을 좋아한다. 아무 이유 없이 빨개지는 얼굴을 가진 친구가 멋있고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재채기를 하는 친구가 귀찮지 않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 따뜻한 다독임은 무엇일까. 



내게는 유독 땀을 많이 흘리는 친구가 있다. 친구는 늘 허덕였다. 손수건을 두장 이상씩 가지고 다니며 땀을 닦았고, 땀에 젖은 셔츠가 민망하기 때문에 늘 짙은 색의 옷은 입지 않고 흰색의 블라우스나 티셔츠 차림으로만 밖을 나왔다. 이것도 이유가 있을때나 나오는 것이고 여름이 되면 밖을 거의 출입을 하지 않으려하고 술집이나 커피를 마시러 갈 때도 남들이 춥다고 피하는 에어컨 바로 앞에 자리를 하고 숨이 헐떡이면서 앉아 있다. 가끔은 더운 여름날 우리 또한 더위에 힘들어 선풍기 앞에 앉으려고 하면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는 친구 때문에 여름에는 그 친구만 빼고 몇 번 남녀가 만나는 모임을 가진 적도 있었고 여행을 간적도 있었다. 우리는 그 친구의 허덕임이 버거웠던 날들이 많았다. 문득 까이유와 리토를 생각해보니 그 두 친구들이었다면 더위에 허덕이며 땀을 흘리는, 여름이 아니라 겨울에도 땀을 많이 흘리는 친구와 어떻게 지냈을까. 



리토의 이사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그들은 서로의 특별한 부분으로 알아보고 만나게 되는 과정의 장면에서는 가슴이 찡하다. 어쩌면 지금은 자주 연락이 안 되는 그 친구가 어느 날 추운 겨울날 지하철을 타며 덥다고 계속 부채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반가운 인사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사실, 삶이란 대개는 그런 식으로 지나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나고, 매우 기뻐하며, 몇 가지 계획들도 세운다. 그리고 다신 만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간이 없기 때문이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며,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이다. 혹은 다른 수많은 이유들로. 


그러나 마르슬랭과 르네는 다시 만났다. (110P)”



서로 핸드폰 번호가 여러 번 바뀌면서 만나지 못하고 있는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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