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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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이라는 가사가 있는 노래가 많다. 시간을 원하는 곳으로 맞춰 놓으면 지워버리고 싶은 그때로 돌아가서 새로 시작하거나 처음부터 없는 일로 만들어 놓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한번쯤은 가졌을 것이다. 내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사실 한번이 아니다. 수무한 일들중 지워 버리고 싶은 순간은 간혹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것은 기억의 일부분일 것이고 나만 괜찮다고 생각하면 시간이 다 지워버리는 일이다. 기억은 그렇게 지워졌으면 하는 것은 오로지 내가 살아 있어야 생기는 일이다. 다시 시작하는 시점도 내가 세상에 존재 할 때의 일이다. 그렇다면 내가 준비 없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때는 감추고 싶은 것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누군가는 매일 미루다 못 지운 야동을 발견한다거나 부모에게 혹은 아내에게 혹은 남편에게 발견이 되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취미, 혹은 비밀스러운 것들이 고스란히 죽음으로 인해서 세상을 나오게 될 것을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감추고 싶은 것들은 무엇이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악어빌딩 4층에는 이런 사후에 벌어질 곤란한 상황을 정리해줄, “딜리터”라는 직업을 가진 구동치가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은 아주 깊은 우물 같은 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자신에게 들려주는 얘기는 밖으로 세어나가지 않으며 어느 순간 당신에게 찾아올 죽음 이후에 없애줬으면 하는 문서나 물건들을 처리해 준다고 한다. 그토록 왜 사람들은 구동치를 찾아와 딜리팅, 즉 지워 주는 일을 원했을까.


 

 

“ 죽은 사람들의 휴대전화기를 찾아주고 없애주고, 죽은 사람의 컴퓨터를 망가뜨리고, 죽은 사람의 일기장을 찾아서 갈기갈기 찢고 불태웠다. 자신이 한 일이 딜리팅이라는 것을,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딜리팅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는 무언가를 세상에서 없애버린다는 죄책감도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많은 걸 없애려고 했다. 자신의 평탄 때문에, 비밀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해서,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서, 수많은 이유 때문에 많은 걸 없애려고 했다.” P84



 

처음 딜리팅을 시작할 때 불법적인 일이라는 생각에 죄책감을 가졌다면 차츰 흔적을 없애려고 하는 이들의 소원을 들어 준다는 생각으로 깔끔하게 처리되는 자신의 딜리팅에 만족감을 가졌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의뢰자들의 조건을 들어줘야 했지만 딱 한번, 아니 두 번이었을 것도 같은 그날 딜리팅을 하러 들어간 집에서 의뢰자의 딸을 만나게 됐다. 그때부터 이 소설의 큰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다.


 

 

처음 구동치의 딜리팅과 의뢰자들의 얘기만 주를 이루다가 이내 구동치의 실수로 점점 확대되는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새로운 사건을 만나게 된다. 자신이 이 딜리팅일에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는 상당히 책임감이 있었고 입이 무거웠으며 침착했었다. 자신이 없애려는 물건이 혹 어떤 힘으로 연결되어 있어도 그것을 가로 챌 수 있는 듬직한 체격이 있었으니 얼마나 적절한 일이었는지. 하지만 그가 마주친 의뢰자의 딸과 엮이면서 그는 지금의 이 딜리팅이라는 일을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하지만 그는 끝내 그에게 주어졌던 마지막 딜리팅도 그가 생각하는 적절한 직업의식으로 해결을 해 놓았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너무 많이 들어서였을까, 구동치의 대사들이 자꾸만 김중혁 작가의 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실시간으로 생동감 있게 들렸다. 그래서 구동치의 대사들은 모두 김중혁 작가 톤으로 읽히고 말았다. 그래서였을까, 구동치의 체격이며 말하는 투의 느낌이며 모두 김중혁 작가를 그냥 앉혀 놓은 것 같다고 할까.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은 빨간 책방을 자주 들었던 사람이 구동치를 김중혁화 해서 듣게 되는 것은 아닐까.


 

 

<펭귄뉴스>라는 단편을 읽으면서 참, 재미있는 글을 쓰는 작가였다고 생각했던 그의 장편을 읽을 때마다 그가 장편보다 단편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호흡을 가지고 있는 작가는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상당히 두꺼운 이 장편 소설에는 주인공의 심리보다 대사가 훨씬 많은 지문을 할애하고 있다. 단편에서는 훨씬 많은 심리묘사가 있는 반면 이 장편은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그렇지만 단편보다 장편소설을 훨씬 많이 읽은 이유는 그저 그의 소설이 좋기 때문이다.

 

만약 구동치 같은, 혹은 김중혁 작가로 빙의된 구동치에게 찾아 간다면 나는 어떤 비밀을 지워 달라고 할까, 책을 읽는 동안 고민이 되는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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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1-20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김중혁님의 장편소설이였군요ㅎ 빙의의 실체를 깨달았어요 소설의 소재가 상당히 흥미로워요ㅋ 그런데 저는 오후즈음님처럼 허삼관 매혈기 글이 자꾸 하정우씨 톤으로 읽혀요 아직 영화를 보지않았는데도 말이죠 ㅠㅜㅎ

오후즈음 2015-01-21 14:19   좋아요 0 | URL
정말로 그럴때가 있는것 같아요. 감정이입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막 감정이입이 되는.

선샤인♥ 2015-01-2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싶은 궁금한 책이네요^^*

오후즈음 2015-01-21 14:20   좋아요 0 | URL
상당히 두껍지만 빨리 읽으실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