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그대에게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사람은 자신에게 얼마나 진실 된 것일까. 내가 알고 있는 기억이 나의 온전한 기억은 맞는 것일까. 언젠가 본 홍상수 영화의 <오! 수정>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어떤 하나의 진실과 상황은 모두 나의 기준에 의해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그 장면은 나에게 맞게 혹은 나에게 유리하게 바뀌어 기록되어 저장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야하는데 간혹 내가 본 , 내가 느낀 이 전부라는 생각으로 타인이 말했던 것을 부정하는 일은 없었나 반성하게 됐었다.

물론 그것은 그때의 반성으로만 지나칠 뿐 더 달라지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성찰이 되지 않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유년시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스릴러 드라마를 본 후 며칠 밤을 잠을 자지 못했던 기억으로 남겨 있었던 작가 에거사 크리스티는930년에서부터 1956년까지 필명으로 총 여섯 권의 장편 소설을 썼다. 그녀가 필명으로 쓴 이 여섯 권의 작품 중 <봄에 나는 없었다>를 읽고 나면 그녀의 나머지 작품은 안 읽을 수 없을 것 같다.

 


영국부인 조앤, 그녀는 모든 것이 평화로웠고 아늑했다. 그녀를 위해 애써주는 자상한 변호사 남편. 공부도 잘하고 자기 일은 알아서 잘하는 기특한 아이들. 평온한 집안에서 그녀는 부유한 부인일 뿐이었다. 이것은 그저 조앤이 생각하는 자신의 표면적인 모습일 뿐이었다. 그녀의 딸의 병간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만 바그다드에 발목이 묶이고 만다. 그녀가 출발해야 할 기차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풍족하게 자랐던 그녀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날들의 시작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의 기대, 책 한권이면 집으로 올 시간은 충분히 버티겠지 생각했지만 문제가 생긴 기차 때문에 그녀가 읽을 책은 더 이상 없었다. 사막에 불어대는 모래바람처럼 마음의 공허했고 어지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모래바람만 그렇게 불었던 것이 아니었다. 우연치 않게 만났던 조앤의 친구를 통해 그녀는 바람 뒤에 헝클어져 있는 자신의 모습들을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문득 그녀는 애써 품지 않았던 의문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한다. 고립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지나간 날들을 떠 올려 보기 마련일까. 그녀는 문득 자신이 딸의 병간호를 하기위해 떠나려 했을 때 자신의 남편 로드니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 로드니는 왜 기차가 역을 떠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을까?” P76

 

그녀는 로드니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걸음을 서둘러 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태운 기차가 역을 빠져나가는 광경을 차마 지켜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것이 자신의 남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녀는 상상으로 자신의 입장에 맞게 남편의 행동을 맞춰보려 애쓰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조앤은 그저 소란스러운 삶이 싫었을 수 있다. 그래서 농장을 가꾸며 농사를 짓고 싶은 남편에게 변호사로 남아 살아가길 원했고,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조앤의 바람대로 살아갔다. 그것 때문에 로드니는 모든 생활이 반짝이지 않았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변호사인 아버지덕에 윤택한 삶을 살았지만 뭐든 자신의 기준대로 행동해주길 원했던 조앤, 엄마로 인해 자유가 없었고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앤은 부유하고 쾌적하고 윤택한 첫째의 사위와 집안이 마음에 들었고 그것으로 그녀의 지난 시간이 흡족했다. 하지만 그런 엄마를 피해 멀리 시집을 간 딸도 있고, 자신을 위로한 진짜 친구가 옆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조앤이 피하고 싶었던 것들은 그저 눈감고 이것은 진짜가 아니리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다.

 

누군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네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고 말해준다면 그것을 어떻게 믿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조앤도 그렇다. 그녀는 좀처럼 자신을 발견하는 모습에서 절대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래 바람이 일고 희뿌옇게 보이는 진짜의 모습에 눈 감아 버리는 것이다.

 

마지막 엔딩에서 화들짝 놀라게 하는 반전은 그런 것이다. 조앤은 그냥, 조앤으로 남는 것이다. 그녀의 쓸쓸한 모습이 불쌍하면서도 안타까웠다. 마치 어느 날 내가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면 나도 그녀처럼 모른척하면서 보지 않을 있겠다는 생각. 한 영화의 장면들처럼 타인이 기억하는 그 장면에 어쩌면 내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나는 얼마나 소중하게 나를 무장하면서 나를 변명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녀가 한동안 떠 올렸다가 지웠던 그 말, 그 봄에 나는 없었다는 그 말이 어쩌면 나에게도 찾아올지 몰라 두려워진다.


 

그동안 스릴러 작가였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장편에 홀딱 반했다. 여섯 편중에 한편이 이런 퀼리티라니. 여섯 편중에 세편이나 나와 있으니 조만간 여섯 권은 다 만나 볼 수 있겠다. 이렇게 멋진 여자였다니. 놀랍고 부럽고 대단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15-01-0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좋았어요. 나머지 두 권도 역시 좋구요. 빨리 다 출간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어린 시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후즈음 2015-01-10 23:19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 나온 세권이 다 좋다는 평에 나머지 두권을 질렀습니다. ㅠㅠ
어린시절 그 드라마는 정말 너무 무서웠어요...밤에 잠을 못잤던 며칠을 보냈다가 가끔 사실...지금도 좀 생각나면 소름이...ㅋㅋ 호러물을 싫어해서 말이죠..제가는 참 힘들었던 기억이네요. 같은 기억을 가지고 계시다니 좋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