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8월의 런던, 파리의 여행 때문에 나의 9월은 미친 듯이 유럽 관력 여행기를 보는 달이었다. 그냥 떠나고만 싶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니, 이유를 들라고 하면 얼마든지 많았겠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이번에 고른 10월의 에세이들은 유독 여행에 관련된 책이 많다. 여태 그런 책들을 많이 골랐지만 매번 당첨이 안돼 좀 속상하긴 하지만.

얇은 긴팔을 입고 다니면 이제는 조금은 쌀쌀한 날씨의 계절이 돌아왔다. 아마도 나는 또 떠나고 싶을 것이다.

 

 

 

 

 

 

 

 

 

 

 

 

 

 

 

 

 

1. 노정숙_ 바람, 바람

 

미안하게도 잘 모르는 작가다. 잘 모르는 작가이지만, 이상하게 표지 때문에 선뜻 다른 페이지를 넘기며 신간 에세이를 찾지 못하는 마력이 있다. 이런 표지 때문에 작가의 이력을 계속 살펴본다. 그녀가 십여 년 동안 써온 글을 간추려 나온 책이라고 하니 사실 뭔가 재활용된 느낌이 살짝 들기도 하지만 짧게 써 내려간 글에는 분명, 가을에 맞는 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2.  법륜 _ 인생수업

 

언젠가 티비에 나온 법륜 스님이 내 놓는 인생의 질문들의 답에 그만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그래, 뭐가 그렇게 잡고 싶어서 나는 그동안 손 안에 있는 것들을 꽉 들고 있었던 것일까. 버리고 비워지는 삶, 떠나보내고 남겨 지는 삶, 함께 아니라 혼자가 되는 너무도 당연한 삶에 익숙하지 않으니 그저 조금만 어떤 것이 비워져서 이렇게 헛헛한 것일까. 법륜 스님이 내 놓는 인생 수업을 들으면 어쩌면 다른 대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3.  잠수타고 싶은 날 _ 조옥희

 

 

 

그저 어떤 날은 떠나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서 떠나고 싶었고, 우울해서 지금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고, 너무 슬퍼서 자리를 비우고 싶었고, 괴로워서 없어져 버리고 싶었다. 그런 날 잠수를 타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지.

그럴 때 이 책이 내게 온다면 나는 분명 책속에 있는 장소들을 모조리 다 찾아다니며 기쁜 마음으로 떠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있었던 자리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라고 하니 잠수 타고, 현재의 나를 열열이 사랑하고 싶다.

 

 

 

 

 

 

 

 

 

 

 

 

 

 

 

 

4.  노 보더 _ 장은선

 

이런 오타쿠의 삶을 동경한적도 있다. 싸움에는 한 놈만 패야 승산이 있고 삶의 어떤 굴곡진 면에서도 한곳의 우물만 파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왔던 이의 세계여행기라니. 질투가 난다. 뭐 이런 이유라면 나도 떠날 이유가 얼마든지 많을 텐데 부럽기만한 그녀의 세계여행에 숟가락을 올려놓으며 즐겁게 참여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이런 여행을 떠나고 싶어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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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책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한동안은 헌책만 사러 돌아다녔던 적이 있었다. 동대문역 주변에 헌책방이 많았기 때문에 학교 수업이 없는 대학생 시절에는 차비를 아끼며 걸어가 차비로 책을 사오기도 했다. 간혹 마음에 맞는 선배를 만나면 함께 걸으며 많은 얘기들을 하고 선배가 골라줬던 책을 읽고 며칠 후 진지한 얘기로 소주가 눈물이 되어 울었던 진지한 젊은 날도 있었다. 그때 가장 많이 읽었던 책들은 사회과학서적들이었다. 한때 감옥에 들어갔다 온 선배가 추천해준 책들이 전부 그런 책들이었고 나는 한참을 그 불구덩이 속에 갇혀 살았었다. 단골이 된 헌책방 주인과 밥도 먹는 사이가 됐었던 사당동의 어느 서점은 이제 찾아가지 않게 되었지만 아마도 그곳에는 습한 향기 가득한 책들이 더 이상 있지 않을 것 같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으로 유명한 저자 윤성근의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그가 운영하고 있는 헌책방에서 그게 말을 걸어 온 책들을 엮어 놓은 책 에세이다. 그의 처음의 책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읽지 못해 그가 왜 젊은 나이에 헌책방을 운영을 하고 있는지 알수 없지만 그가 분명 이상한 헌책방의 주인인 것은 맞는 것 같다. 헌책방에 가면 가방 많이 보이는 책들은 대부분 문제집과 교과서였다. 그리고 전공 서적 관련한 책들도 많이 보이고 고등학교때 많이 읽었던 로맨스 소설도 많이 보였는데 그의 헌책방에는 이런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로지 그가 읽어 보고 좋은 책, 그가 읽는 책들만 판다고 하니 이런 장인정신이 올바른 주인장이 어디 있을까. 먹어 보고 내가 맛있어야 판다는 식당 주인이라던가, 내가 입어보니 너무 편하고 좋아서 만들기 시작해서 판다는 옷 가게 주인들은 많이 보았는데 읽어보고 좋은 책만 판다니.

 

 

저자에 대한 정보는 몇 년 전 헌책을 찾다가 알게 된 그의 헌책방 소개 글을 읽어 본 것이 전부였는데 그의 이번 에세이를 읽으면서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 사실 좀 놀랐다. 물론 책을 내기 위해 그도 많은 자료 조사도 했을 것이지만 그가 기억하는 80~90년대의 대학 서점가의 분위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 시절의 어린 모습이 떠오른다. 무작정 뭔가를 열심히 해야만 했었던 그 시절에 내가 읽었던 책들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어 버렸다.

 

 

헌책방을 하는 저자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헌책과 생활을 할 것이다. 그가 누군가에게서 받은 책들은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너무 깨끗한 요조숙녀 같은 모습으로 있는 책들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그가 누군가에 권하는 책들은 분명 손때 가득한 추억이 많이 있는 책들인 것 같다. 그런 책들은 간혹 책을 처음 구입한 이들이 적어 두었던 사연과 일기들이 있다. 나의 대학시절에는 대부분 동기들은 생일이라고 하면 선물을 못산 이들이나 많이 친하지 않던 친구들도 문학과지성사의 시집을 선물해주곤 했다. 그때 시집의 가격은 삼천원대였으니 학교 식당 점심값과 바꾼 선물인 샘이었다. 그때 시집의 표지에는 항상 짧은 자신만의 시를 써서 주었다. 그런 풍습 때문에 가끔은 일부러 시집을 몇 권 들고 다닐 때도 있었다. 그 시절의 우리는, 점심 한 끼 안 먹고 바꾼 그 시집이 참 행복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낭만이 없다. 서점에서 표지를 보고, 혹은 먼지 가득한 윗부분을 훅 불며 골라드는 책들도 구경을 할 수가 없고. 이런 낭만을 아는 나조차도 손쉽게 구입할 수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고 있으니.

 

 

“물질과 의식과의 관계는 어느 것이 일차적이냐는 것이지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주된 것이냐가 아니다. _ 변증법적 유물론/ 빅토르 아파나셰프/ 백두/ 1988” P64

 

"나는 지금 나의 청춘을 매장하고 합장(合掌)하여 향(香)을 피우고 싶듯 경건한 마음을 지닌다. _ 사랑과 인식의 출발 / 쿠리다 하쿠조/ 창원사 / 1963“ P65

 

 

책을 읽은 사람의 고민과 마음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던 이 내용이 적힌 책들도 꽤 어려운 인문과학서적이다. 문득 이 글을 적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 오래전에 읽은 [밑줄 긋는 남자]라는 소설이 생각이 난다. 우연치 않게 읽게 된 책속에 적힌 문장 때문에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그런 내용은 어쩌면 이런 멋진 문장의 끌림 때문에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 아닐까.

요즘도 나는 중고서점에서 중고 책을 구입한다. 그럴 때마다 가끔 섬뜩하게 느껴지는 문장을 발견하고 만다. 책의 저자가 분명 아끼는 후배, 선배, 지인에게 줬을 싸인 본이 있고 편지까지 써준 속지가 그대로 중고서점으로 돌아 온 것을 발견할 때다. 분명 그 책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중고서점으로 넘어 왔을 테지만 책 속의 내용은 읽기라도 한 것인지 마음 애절한 내용의 어떤 소설가의 편지를 읽고 차마 그 책을 사올 수가 없었던 책도 있었다. 그들은 왜 그런 추억을 떠나보냈을까.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를 읽는 동안 한동안 나의 서재를 뒤지며 놀 수 있었다. 내게 선물을 했던 그 책들의 표지들을 살피며 몇 번씩 읽고 선물을 주고 이제는 연락이 끊긴 그들을 떠올려봤다. 우리는 그때 왜 그토록 시집을 사랑하고, 책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있었는지. 그들은 내가 밤새 쓴 편지를 동봉한 시집을 잘 간직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한겨레 출판사에서 1992년 초판에 나온 [앵무새 죽이기]라는 책을 1994년에 헌책방에서 샀었다. 그런데 이 책은 어떤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러브레터로 가득한 글이 적혀 있었다. 이것 때문에 오해한 남자친구가 인기 많은 여자와 사귄다고 고생하며 한동안 잘해줬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 시절, 이 책을 받으신 그 여자 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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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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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함께 치유하는 시간들.

 

 

 

서울에서 태어나 삼십년이 넘게 단 한 번도 서울을 벗어나 살아 본적이 없다. 더욱이 아파트에서 살았던 날들은 인생의 절반이 넘는다. 그래서 늘 내게는 마당이 큰 집으로 이사를 가서 온갖 꽃들을 심어 놓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렇다, 내게는 꽃을 심거나 나무가 있는 곳은 정원이라는 개념보다는 마당이라는 인식이 훨씬 강하다. 너희 집 정원이 있어? 라는 물음보다, 너희 집은 마당이 커라는 질문이 훨씬 자연스러운 대사 같다는 생각도 드는 걸 보면, 나는 큰 정원이 있는 집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문고판으로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소설들은 충격적이었다. 사실 어려운 내용도 많아서 이해를 못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에 세상을 뜬 독일 문호의 작품들은 뭔가 지성이 흘러넘칠 것 같은 내용들이 많았다. [데미안],[수레바퀴 아래서],[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을 통해 알게 된 헤르만 헤세이지만 역시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읽으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이 훨씬 많다.

 

 

 

정원이라고 하면 타샤 할머니가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타샤 할머니의 모습에서 헤르만 헤세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는 왜 거처를 옮길 때마다 정원을 가꾸었을까. 밀짚모자를 쓰고, 깡마른 몸으로 정원을 돌보는 그의 모습엔 즐거움도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이 보인다.

 

 

 

“농부가 된다는 것은 놀이처럼 재미로 할 때는 멋있는 일이지만 습관이 되고 점점 더 일이 많아져 의무가 되어버리면 그 즐거움은 사라져버린다. P23 "

 

 

 

이런 그에게 정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재미가 습관이 되고 의무가 되어 그가 원하는 즐거움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그는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소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았다.

 

 

 

 

 

“적당한 즐거움이야말로 두 배의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사소한 기쁨들을 간과하지 마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절제하는 것이다.” P70

 

 

"이런 기쁨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우리가 매일 같이 자연을 접할 때 느끼는 기쁨이다. 특히 우리들의 눈, 너무 많이 혹사당하고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현대인의 눈은 마음만 먹는다면 무한한 즐거움을 누릴 능력이 있다.” P 71

 

 

 

 

수천가지의 사소한 일들에서 우리는 작은 기쁨들을 찾아내 밝게 꿰어서 우리의 삶을 엮어갈 수 있다. 작고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려고 했던 헤르만 헤세는 그간 많은 중요한 역사에 놓여 있었다. 그는 제 1, 2차 세계대전으로 전쟁에 대한 환멸과 고민이 많았다. 평화주의자였던 그가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보았던 많을 사람들의 살생과 죽음의 고통으로 얼마나 괴로웠을까. 거기다 그는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의 조국과 같은 국민이 아닌가. 그런 그에게 정원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살리며 키우는 힐링 장소였다. 죽은 사람들을 살릴 수는 없지만, 죽어가는 꽃들과 나무를 살리며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친구의 죽음에 이런 말들 남겼다.

 

 

 

“그는 비로소 안식을 찾았을 것이다. 그는 그리 자정하지 않은 이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간 것이다. 투쟁과 근심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다른 해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P134

 

 

 

떠난 친구에게는 이 세계로 떨어져 나간 것이 다행이라고 하지만, 죽은 나무는 그런 말조차 들을 수 없다는 것이 힘들기만 하다. 그는 평화와 자유의 세상을 꿈꿨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는 전쟁과 공포의 시대였다. 그런 그를 유일하게 잡아줬던 정원이라는 공간에 문득 나에게는 어떤 것이 정원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 정원이 없었다면 분명 헤르만 헤세는 마음의 평안을 가지지 못하고 한번 저질렀던 자살을 또 했을지 모른다. 이름 없는 풀꽃들도 반짝이며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던 헤세였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살아 숨 쉬는 정원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만약 슬픔에 잠겨 당신이 가진 것들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따금 좋은 구절을, 한 편의 시를 읽어보라. 아름다운 음악을 기억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당신의 삶에서 느꼈던 순수하고 좋았던 순간을 기억해보라! 만약 그것이 당신에게 진지해 진다면 그 시간은 더 밝아지고, 미래는 더 위안이 되며, 삶은 더 사랑할 가치가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리라!” P157

 

 

 

그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떠나버리고 난 후, 그는 친구에게서 말해줬던 것처럼 다정하지 않은 세상에서 떨어져 나가 비로소 안식을 찾았을까. 고국에서 살지 못하고 결국 스위스로 망명하듯 떨어져 나온 그의 삶은 분명 정원으로부터 위로 받으며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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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더 스토리콜렉터 17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가상과 시대는 변해도 사상은 달라지지 않는 것일까.

 

 

 

제목이 [신더]이기에 혹시 신데렐라의 판타지 판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렇다. 84년생이 쓴 판타지 판의 신데렐라의 얘기다.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 중의 첫 번째 소설인가보다. 앞으로 동화를 근간으로 한 판타지 소설이 나온다고 한다. 그중에 많이 알고 있는 [빨간 모자], [라푼젤], [백설공주]라고 한다. 동화로 시작해서 그동안 SD 애니메이션도 보았고 요즘은 3D판으로 내용이 각색이 된 애니메이션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드라마들도 요즘 동화책의 내용을 소재로 빌려와 만들기도 하고, 전래 동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도 만들기도 했다.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던가.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발상의 전환을 많이들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본다면 [신더] 또한 판타지 말로 새롭게 만들어진 신데렐라의 이야기니 발상의 전환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인지. 너무나 뻔 한 발상의 전환이라서 다소 김이 빠진다.

 

 

 

[신더]의 책 속의 주인공이 제목과 같다. 그녀는 동화속의 신데렐라처럼 계모와 피가 다른 자매들과 함께 살고 있다. 더욱이 계모는 동화책속처럼 게으르고 표독하고 이기적이다. 자매들 또한 다르지 않다. 파티에 가기위해 마차를 고치듯 타고 갈 것들을 고쳐 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신더는 한 쪽 다리는 기계로 개조한 사이보그 인간이다. 온갖 집안일을 했던 신데렐라처럼 신더 또한 집안일과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시장에서 간판도 없는 후미진 곳에서 기계를 고치며 살고 있는 정비공이다.

 

 

 

그런데, 신더의 나이의 얼마나 됐을까? [신데렐라]에서는 그녀의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또, 그때는 그런 시대라고 치고 혼자 나가서 살 수 없었겠지만 신더는 기계를 고치며 사는 나름 전문직의 여성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전문직의 여성이 계모의 학대와 가장이 되어 왜 집안을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레투모시스의 전염병이 나라를 덮치고 있다고 한들, 그렇게 죽을 듯이 자신을 학대하고 전염병이 옮은 것 같다며 죄책감 따위 없이 검역소에 마루타로 까지 보내는 그런 엄마와 왜 살고 있냔 말이다. 법적인 보호자라지만, 그녀는 황태자의 안드로이드의 수리까지 하는 여자인데 뭐가 부족해서.

그런데 그녀의 한계를 만들어 준 것이 그녀가 사이보그라는 것에 있다. 그녀는 다리 한쪽과 손을 강철로 만들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머릿속으로 인터넷도 접속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두되를 가지고 있다. 이런 그녀는 사이보그라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다. 이런 ‘루나 클로니클’의 세계에서는 그녀는 소유물로 인정이 되어 소유주가 있는 노예 아닌 노예가 되어 버렸다. 처음에 이런 전문직 여성을 왜 이런 설정을 했을까 했는데 작가의 나름 구성의 묘미가 있다.

 

 

사실 나는 동화 속에 나오는 계모들이 이렇게 다 표독하고 그악스럽게 나오는 것이 싫다. 이런 부분부터 변화를 주고 얘기를 시작했으면 참 좋겠다. 원래 신데렐라의 성인 버전은 훨씬 야하고 왜 12시까지 꼭 들어와야 하는지의 설명에 더 수긍이 갔다. 원래 신데렐라는 좀 노는 여자라서 밖에 나가면 남자들과 노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아 집에서 걸어놓은 통금 시간이 12시라던가 그런 설정에 한참 웃으며 읽었던 책도 기억이 난다.

 

 

다만 다른 것은 신더가 레베나 여왕의 조카이고, 셀린 공주라니. 그러니까 그동안 많은 드라마에서 여자의 신분 상승을 위해 남자를 만나는 것을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한다면, 신더는 이미 공주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으니 계급으로 따진다면 충분히 황태자와 결혼을 할 수 있는 상위 1%의 얘기로 내용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신데렐라는 동물 친구들 밖에 없었는데 그녀의 의붓동생인 피어니와의 모습은 많이 짠한 마음을 가지게 했다. 검역소에서 죽어갈 피어니를 찾으러 다시 간 신더가 피어니와의 대하들은 책속에서 가장 따뜻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신데렐라는 한쪽 구두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잃어버린 구두의 주인을 찾으러 다녔던 왕자는 신데렐라를 만나서 행복하게 잘산다는 동화의 내용과 달리 신더는 잃어버린 구두가 아니라 다리 한쪽을 잃어 버렸고, 사이보그가 되었다. 그런 그녀가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궁금하다. 마지막 장면은 역시 여자는 그냥 찾아오는 남자를 만나서 행복했습니다로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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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케이블에서 한 [로맨스헌터]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무대가 라디오 방송국이었는데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고민거리를 보내면 로맨스 헌터라는 사람이 사람들이 하는 연애의 고민 상담을 해 주는 것이었다. (그 드라마를 통해 양진우라는 배우를 알게 돼서 즐거웠는데 통 나오는 드라마들이 굵직한 것들이 없어서 아쉽지만)

 

 

 

가끔 꼭 연애 상담이 아니더라도 고민을 털어 놓으면 생각지도 못한 해답을 내 놓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선견지명, 해박한 경험에 놀랄 때가 참 많았는데 그들도 그들의 고민 앞에서는 고민을 상담하러 왔던 사람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괴로워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주연애는 기대가 로맨스코치인줄 알고 연락하다 결국 그가 아님을 알게 되고, 자신이 현실에서 나누고 있는 사랑보다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로 주고받았던 그 감정이 훨씬 강하게 느껴진다. 로맨스헌터에서 남에게 연애 코치, 상담을 잘해왔던 주인공 최정윤 또한 라디오 부스 안에서는 연애 신으로 강림하지만 막상 자신의 연애에서는 늘 결정을 할 수 없고, 고민이 따랐다.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쉬운 것은 훈수일지 모르겠다. 남의 판에는 너무 잘 보이는 이기는 게임을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이미 판이 깔려 있는 것을 멀리 볼 수 있는 내가 남에게 코치 해 줄 수 있는 그 여유와 시각은 훈수를 둘때 가장 빛난다.

어쩌면 우리는 나의 인생의 큰 고비를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나에게 스스로 훈수를 둘 수 없는것일까.

 

 

주연애에게 연애를 코치했던 기대 또한 그렇다. 예쁜 애인을 둔 그이지만, 정작 여자가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근사한 프러포즈를 받고 싶어서 둘만의 여행을 떠나지만 정작 기대는 프러포즈는 생각도 못하고 연애가 여행을 떠났다는 것만 생각하고, 프러포즈로 받고 싶었던 반지는 기대의 여자 친구가 아니라, 연애가 받고 말았다.

 

 

 

 

 

 

 

 

 

여자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원하고, 남자는 말해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언젠가 [왕의 남자]의 기사에 났던 얘기가 지극히 공감했던 얘기가 있었다. 여자는 이해를 못하지만 공감은 해주고, 남자는 이해는 하지만 공감을 못한다고 했던가.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을 왜 저질렀는지 모르겠지만 그 심정만큼은 공감한다며 같이 울어주는 것이 여자라면, 어떤 이유로 그런 일이 일어난 부분은 이해하지만, 지금 슬픈 너의 심정은 공감해줄 수 없는 것이 남자라는 것인지.

 

 

 

우리가 원하는 연애는 어떤 것일까. 주연애와 기대와의 대사 속에 많이 녹아들어 있어서 이번 2회로 마무리 되는 이 드라마가 촉촉한 가을비 같아서 좋다. 정규 편성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이유는 이런 여운은 그냥 이렇게 넘어 가서 아쉬운 대로 아쉽게 남겨 졌으면 좋겠다는 느낌. 하지만 최다니엘의 연기를 보려면 정규편성 되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이십대에 이 드라마를 봤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삼십대에 보는 이 드라마는 그냥, 연애가 주는 단어의 어울림과 향수에 나도 모르게 지나간 옛사랑의 그림자들을 들춰보고 말았다. 그때, 우리 참...즐거웠지. 행복했지. 괴로웠던 밤도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더 많이 싸웠다면 어쩜 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싸워서 헤어진것이 아니라 싸우지 않아서. 서로의 마음을 너무 몰라서 헤어졌던 것이라고 생각되는 밤. 나는 그때 왜 밤마다 울지 않고 화를 냈을까. 그때 나의 연애는 왜 이렇게 고민이 없었을까. 나의 연애는 쓸쓸하기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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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3-09-13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TV를 잘 보지 않아서 이 드라마의 내용을 알지 못하지만 오후즈음님의 글은 공감합니다.
남자인 제가 공감한다니 이상한가요? ㅎㅎ

오후즈음 2013-09-13 17:44   좋아요 0 | URL
이상하디니요~ ㅋㅋ
2부작 드라마로 이번주 방송 했는데 많이 재미있게 봐서요..저는 인텔리거든요. (인간텔리비젼~ ㅋㅋ) 그래서 책을 많이 못 읽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