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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평점 :
자연과 함께 치유하는 시간들.
서울에서 태어나 삼십년이 넘게 단 한 번도 서울을 벗어나 살아 본적이 없다. 더욱이 아파트에서 살았던 날들은 인생의 절반이 넘는다. 그래서 늘 내게는 마당이 큰 집으로 이사를 가서 온갖 꽃들을 심어 놓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렇다, 내게는 꽃을 심거나 나무가 있는 곳은 정원이라는 개념보다는 마당이라는 인식이 훨씬 강하다. 너희 집 정원이 있어? 라는 물음보다, 너희 집은 마당이 커라는 질문이 훨씬 자연스러운 대사 같다는 생각도 드는 걸 보면, 나는 큰 정원이 있는 집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문고판으로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소설들은 충격적이었다. 사실 어려운 내용도 많아서 이해를 못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에 세상을 뜬 독일 문호의 작품들은 뭔가 지성이 흘러넘칠 것 같은 내용들이 많았다. [데미안],[수레바퀴 아래서],[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을 통해 알게 된 헤르만 헤세이지만 역시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읽으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이 훨씬 많다.
정원이라고 하면 타샤 할머니가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타샤 할머니의 모습에서 헤르만 헤세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는 왜 거처를 옮길 때마다 정원을 가꾸었을까. 밀짚모자를 쓰고, 깡마른 몸으로 정원을 돌보는 그의 모습엔 즐거움도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이 보인다.
“농부가 된다는 것은 놀이처럼 재미로 할 때는 멋있는 일이지만 습관이 되고 점점 더 일이 많아져 의무가 되어버리면 그 즐거움은 사라져버린다. P23 "
이런 그에게 정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재미가 습관이 되고 의무가 되어 그가 원하는 즐거움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그는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소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았다.
“적당한 즐거움이야말로 두 배의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사소한 기쁨들을 간과하지 마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절제하는 것이다.” P70
"이런 기쁨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우리가 매일 같이 자연을 접할 때 느끼는 기쁨이다. 특히 우리들의 눈, 너무 많이 혹사당하고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현대인의 눈은 마음만 먹는다면 무한한 즐거움을 누릴 능력이 있다.” P 71
수천가지의 사소한 일들에서 우리는 작은 기쁨들을 찾아내 밝게 꿰어서 우리의 삶을 엮어갈 수 있다. 작고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려고 했던 헤르만 헤세는 그간 많은 중요한 역사에 놓여 있었다. 그는 제 1, 2차 세계대전으로 전쟁에 대한 환멸과 고민이 많았다. 평화주의자였던 그가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보았던 많을 사람들의 살생과 죽음의 고통으로 얼마나 괴로웠을까. 거기다 그는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의 조국과 같은 국민이 아닌가. 그런 그에게 정원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살리며 키우는 힐링 장소였다. 죽은 사람들을 살릴 수는 없지만, 죽어가는 꽃들과 나무를 살리며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친구의 죽음에 이런 말들 남겼다.
“그는 비로소 안식을 찾았을 것이다. 그는 그리 자정하지 않은 이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간 것이다. 투쟁과 근심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다른 해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P134
떠난 친구에게는 이 세계로 떨어져 나간 것이 다행이라고 하지만, 죽은 나무는 그런 말조차 들을 수 없다는 것이 힘들기만 하다. 그는 평화와 자유의 세상을 꿈꿨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는 전쟁과 공포의 시대였다. 그런 그를 유일하게 잡아줬던 정원이라는 공간에 문득 나에게는 어떤 것이 정원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 정원이 없었다면 분명 헤르만 헤세는 마음의 평안을 가지지 못하고 한번 저질렀던 자살을 또 했을지 모른다. 이름 없는 풀꽃들도 반짝이며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던 헤세였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살아 숨 쉬는 정원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만약 슬픔에 잠겨 당신이 가진 것들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따금 좋은 구절을, 한 편의 시를 읽어보라. 아름다운 음악을 기억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당신의 삶에서 느꼈던 순수하고 좋았던 순간을 기억해보라! 만약 그것이 당신에게 진지해 진다면 그 시간은 더 밝아지고, 미래는 더 위안이 되며, 삶은 더 사랑할 가치가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리라!” P157
그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떠나버리고 난 후, 그는 친구에게서 말해줬던 것처럼 다정하지 않은 세상에서 떨어져 나가 비로소 안식을 찾았을까. 고국에서 살지 못하고 결국 스위스로 망명하듯 떨어져 나온 그의 삶은 분명 정원으로부터 위로 받으며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