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
이길상 지음 / 푸른숲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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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들어 역사에 대하여 많은 관심이 간다. 얼마전에 읽었던 뉴라이트 교과서에 대한 내용 때문이었나 보다. 뉴라이트 교과서에 대한 비판가운데 한국사에 대하여 잘못된 이미지를 가르치고 있다는 내용이 마음에 많이 와닿았는데, 그렇다면 세계는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간단 명료하게 이야기한다. 역사를 잘못가르치는 것은 둘째치고 역사에 대하여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것이 더 문제라고.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래도 경제 규모에 비례하여 다른 나라에 우리나라의 역사가 가르칠만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 가면서 크나큰 오산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역사는 실상 다른 나라에게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동해를 이야기하고, 독도 문제를 이야기하고, 동북공정을 이야기할 때 세계의 교과서는 한국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말이다. 독도에 관한 일본의 망언이 나올때마다 들끓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서를 보면서 이것은 많이 해결되었으리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감정적인 태도가 일본에, 그리고 중국에 정치적인 입맛에 따라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우리의 이야기가 다른 나라에서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것인가? 더 정확하게 말해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붙어 있는지 조차 모르는 현 상황을 만든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우리모두의 책임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든 예전에 친구가 해줬던 이야기가 떠 올랐다. 아마도 2002년일 것이다. 친구가 선배와 함께 이스라엘의 키부츠에 갔던 일이 있었다. 당시 전세계가 2002월드컵으로 뜨거웠던 때였다. 길을 가다가 차를 얻어탔던 일행에게 운전사가 물었다고 한다. "Where are you from?" 월드컵 성적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담아서 "Korea"를 외쳤던 선배와 친구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설명하면서 중국밑이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 사람은 "Japan"으로 이해하더란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일본 위라고 설명했더니 "China"라고 이해하던란 것이다. 몇 시간 실랑이 끝에도 결국 그 사람ㅇ게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 붙어있는지 설명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외국 사람들의 지리적인 개념에 의하면 중국 밑에는 일본이요, 일본 위는 중국이었던 것이다. 그 어디에도 한국은 없었다.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했던 2002년에 말이다. 

  지금 한국의 현주소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아무리 브랜드 파워를 외치고 찹아오고 싶은 한국을 외친다고 할지라도 결국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은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가? 체계적으로 한국을 알리려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의 저자가 수년을 세계의 교과서를 수집하고 한국을 알리려고 하는 과정에서 부딪혔던 벽이 이것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미국의 똘마니가 되어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린다고 할지라도 결국 한국은 북한보다도 네임 밸류가 낮은 나라라는 것이 현실이다.  

  위에서 정치하는 아저씨들이 이 부분에 대하여 신경썼으면 좋겠다. 그저 독도와 고구려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부분에 관하여 이름을 알리길 원한다. 일단 단 한줄이라도 더 넣으려고 노력하는 것 말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반만년의 역사를 외친다고 할지라도 외국에는 그저 몇십년 밖에 안된 신생국가 일뿐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가에서 나서서 건국절을 이야기하다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한국이란 나라가 그저 경제 성장과 분단국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와 찬란한 문화 유산을 가지고 있음도 알려지는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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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부자
김동호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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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호 목사님의 깨끗한 부자는 돈에 관한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점잖지 못하고 성스럽지 못하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돈에 관하여 설교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내가 김동호 목사님을 존경하는 이유중의 하나도 필요하다 싶으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설교하고, 그리고 본인이 그렇게 산다는 것이다. 이 책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돈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돈과 하나님은 함께 섬길 수 없다. 물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근원이 된다."는 말로 대표되는 기독교인의 가치관은 물질에 대하여 적대적인 것이 아닐까? 그런데 과연 기독교적인 물질관이 적대적이기만 한 것일까? 오히려 유교적인 체면치레와 사농공상으로 대변되는 재물에 대한 이중적인 가치관이 기독교의 재물관을 잘못된 길로 들어가게 한 것이 아닐까? 물질이란 가치 중립적인 것일텐데 물질에 대하여 악한 것으로 이해하는 기독교인들의 가치관을 볼때마다 씁쓰레하다. 

  기독교인이 물질에 대하여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물질은 은사라는 것이다. 언젠가 물질은 은사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더라 설명을 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어서 잘못 생각하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의 한 숨을 쉬어본 기억도 있다.  

  김동호 목사님의 청부론이 교회 안에서 논란을 일으켰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가. 청빈이냐, 청부냐를 가지고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쓸데없는 논란인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청부냐 청빈이냐가 아니다. 부나 빈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청이냐 탁이냐, 정직이냐 부정직이냐라는 것이지 않을까? 물론 부자가 깨끗하기 어렵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깨긋하게 부자가 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깨끗한 부자에 대한 롤모델이 없음 또한 사실이다. 얼마전까지 깨끗한 부자라 칭함받았던 박성수회장의 이미지가 훼손된 이후 더 직면하게 되는 문제이다. 그러나 아무도 없기 때문에 청부는 불가능하다, 기독교인은 청빈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너무 모순된 말이 아닐까? 기독교인은 청빈해야 하는데, 실제로 청빈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으니 기독교인들의 재물관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기독교인의 물질관에 대하여 정립해 주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정도 경제적인 수준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문제는 있지만 말이다. 청년들에게 헌금과 물질관에 관하여 교육하기에 이만한 책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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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참하라 - 하 - 백성 편에서 본 조선통사
백지원 지음 / 진명출판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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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을 참하라." 

  자극적인 제목에 속아 이 책을 산 나는 이 책의 서평을 똑같이 자극적인 제목으로 정하고 싶다. 

  "너를 참하고 싶다." 

  이 책의 상권과 하권을 읽으면서 막말이 요즘 트랜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개같은 조선" "요망한 여편네." "암탉"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쓰는 저자의 말투를 보면서 왠지 역사학계의 진중권이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떠올렸다. 옮은 소리를 싸가지 없이 해서 욕을 먹는 진중권에 비하여 백지원씨는 이름값도 없고, 참신성도 없다. 진중권은 참신함이라도 있지만 저자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들을 작극적인 말로 늘어 놓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나도 자극적으로 서평을 쓸 수밨에. "왕을 참하라. 백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조선은 망해도 진작 망해야 할 나라이다. 왕이 없는 것이 낫다."는 저자의 주장을 보면서 이 양반이 정말 백성의 입장에서 글을 쓰고 있기나 한 것일까 의문을 품게 된다. 그 어디에도 백성은 없다. 실체로서의 백성은 없고 집단과 관념으로서의 백성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마치 요즘들어 서민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정작 어디에도 서민이라는 실체가 없다는 것과 같다. 왕을 참할 주체는 관념으로서만 남아 있고 현재의 역사관에 그나마 차지하고 있던 그 작은 존재감마저 빼앗겨 버렸다. 정작 백성을 위해 썼다는 책이 백성의 설자리를 빼앗았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것은 둘째치고 저자의 역사관에 몇가지 의문을 던져본다. 요즘 한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뉴라이트의 역사관과 상당부분 겹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본인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책을 열심히 읽어본 내 입장에서는 그놈이 그놈같다. 단순히 감정적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문에 대하여 몇가지 집어보자. 

  첫째, 조선의 멸망을 조선 내부의 갈등탓으로 돌린다. 쉽게 말해 조선은 일찍 망해야하는 개같은 나라라는 것이다. 조선의 멸망이란 열강들에 의해서 멸망한 탓도 있지만 일찌기 그 안에 신분제와 붕당이라는 제도적인 요인과 병신같은 왕들의 뻘짓거리로 인해서 애초에 멸망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수가 좋아서 생각보다 오래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일본이 아니더라도 조선은 애초에 멸망할 나라이고, 그중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것을 너무 서러워하지 말아라는 뉴라이트의 이야기와 무엇이 다를까? 정말 조선은 멸망해야만 하는 빌어먹을 세상이었단 말인가? 개같은 나라 그것이 조선의 실체인가? 저자의 역사관에 던지는 첫번째 의문점이다. 

  둘째, 조선은 정말 시대의 조류를 읽지 못한 자폐국인가? 저자는 철저하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조선은 세계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혼자 왕따 놀이한 자폐아로 본다. 프랑스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났을 때,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할 때, 조선은 한심하게 자기들이 최고라는 생각에 빠져서 서로 잡아 먹지 못해서 안달난 지배층의 지배를 받은 나라로 그리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쇄국정책만 고수하니, 아니면 이리저리붙어서 홀로서지 못하니 발전이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그런데 과연 조선은 시대의 조류를 전혀 읽지 못했던가? 또한 세계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자신의 것을 버리고 서구화하지 못한다면 후진국이 되는 것일까? 서구화가 과연 만능일까? 세계화 시대의 경쟁력은 자아 정체성과 자기 문화를 지키는 것에 있다는 것은 과연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셋째, 저자의 사대의식을 비판하고 싶다. 저자는 사대주의를 비판하다. 오랫동안 명과 청의 속국으로 지내온 조선을 비판한다. 사대주의가 조선을 멸망시켰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렇게 사대주의를 비판하는 저자의 역사관 밑바탕에도 사대주의가 숨어 있다. 사대의 대상이 중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유럽과 미국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숭미주의라고나 할까? 본인은 아니라고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왕조의 멸망은 당연한 것이며, 시민국가로 흘러가야 한다, 유럽과 미국은 벌써 이렇게 했다는 것, 과학기술을 최우선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의 밑바침은 결국 숭미가 아닌가? 나에게 있어서 숭미나, 숭명이나, 숭청이나, 숭일이나 그놈이 그놈이다. 

  넷째, 백성은 어디로? 저자는 백성의 입장에서 쓴 조선 통사라 주장하지만 마지막까지 다 읽고 난 다음 나의 평가는 지금까지 배워온 엘리트 역사관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천재들의 세기, 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중심으로 쓴 이야기에 그들의 신비감을 덜어내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인용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역사는 영웅에 의하여 흘러간다. 그리고 시대를 잘못만난 영웅은 얼마나 비참했던가? 이런 이야기는 있지만 당시 백성들의 이야기는 없다. 양반이 잘못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은 양반이라 말하는 오만함, 버젓이 호를 달아놓은 표지는 자가당착과 엘리트 지상주의를 그대로 대변한다. 

  다섯째, 호칭의 문제. 가장 크게 문제 삼고 싶은 호징은 민비이다. 물론 나도 역사를 민비라는 말로 배워왔지만 지금은 민비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명성황후라는 말을 쓴다. 책은 적어도 공식적인 이야기이다. 아무리 싫어도, 그 사람의 행적이 혐오스러워도 공식 명칭을 적는 것이 예의요 도리가 아닐까? 내가 아무리 이명박 대통령을 싫어한다고 해도 책을 출판하면서 명바기, 2메가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책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민비라는 말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사용된 말이라면 말이다. 민비의 정식 명칭은 명성황후이다. 고종은 고종이라 부르는데 왜 명성황후는 민비라고 부르는가? 명성황후의 실정과 척족 정치는 별개로 하고 공식 명칭을 쓰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도적으로 민비라 칭한다. 일본의 제국주의적인 야심에 의하여 사용된 깔보기 식의 민비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자기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기를 자학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 호칭 하나만으로도 저자의 의도를 알 것 같다.(최소한 뉴라이트의 대안 교과서 한국근현대사에서도 민비라는 호칭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섯째, 숭무주의! 어찌보면 저자는 숭무라는 말보다 군사독재라는 말에 더 기울어 있는 것 같다. 조선 역사상 군인을 대우한 왕들은 좋은 왕, 아닌 왕들은 등신같은 놈들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위험하지 않을까? 분명 국방력은 중요하다. 저자가 전쟁사가이기 때문이라고 이해도 한다. 그렇지만 너무 무쪽으로 치우쳐서 문의 부분을 이빨까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몰이해가 아닐까? 간단한 예로 "예송논쟁"을 들어보자. 예송논쟁을 저자는 단순히 먹물든 것들의 이빨까기라고 말하지만 예송논쟁은 단순한 이빨까기가 아니다. 왕의 정통성을 다루는 아주 민감한 문제이다. 자칫잘못하면 왕권이 무시되는 정통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심각했던 것을 단순히 옷입는 문제로,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몰이해가 아니겠는가? 

  일곱째, 이상한 사고. 과거가 부끄러워도 지금은 부끄러워하지 말자. 잘먹고 잘살지 않는가? 잘먹고 잘사는 것은 박정희의 작품이다. 우리나라는 한번조 잘살아 본적이 없다. 대충 감이 잡히시는가? 거기에다가 요즘은 정신을 쇄신해야 한다는 저자의 결론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지금까지 900페이지 넘게 물질의 중요성, 실학의 중요성과 정신세계와 명분에 경도된 성리학을 비판하더니 결론은 윤리관이라는 성리학적인 명분을 꺼내는 것인가? 그저 우스울 뿐이다. 결론을 읽고 "그럼 나는 900페이지가 넘는 부분을 왜 읽었지?"라는 황당함을 맛보았다. 

  이 외에도 이 책을 비판하자면 한도 없겠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뉴라이트의 사고와 왠지 상당히 흡사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은 상당히 읽을만한 구석들이 많다. 역사적인 사료도 많이 인용하였다. 그렇지만 비판의식을 갖고 읽지 않는다면 조금은 위험할 수 있는 책이다. 읽어볼만한 책이기는 하지만 강추하고 싶은 책은 아니다. 그저 패관문학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시라. 열하일기와는 격이 많이 다른 패관문학!! 베스트 셀러가 능사는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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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참하라 - 상 - 백성 편에서 본 조선통사 우리역사 진실 찾기 1
백지원 지음 / 진명출판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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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들 편에서 본 조선통사"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 "왕을 참하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인지라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가지고 봤다. 역사란 정말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저자의 말에 십분 동의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조선은 존재해서는 안되는 그런 개같은 나라였다는 평가를 가지고 조선을 평가해가겠다는 그의 직설화법에 마음이 끌렸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한권당 400페이지가 넘으며 두권 합하여 900페이지가 넘는 꽤 두꺼운 분량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조선의 역사에 관하여 300페이지 안팎의 한권짜리 책들을 많이 접해왔기 때문에 많은 분량만큼 내용에 더 충실하겠꾸나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솔직하게 실망하게 된다. 내용이 부실해서 실망하는 것이 아니다. 내용은 재미있다. 역사적인 사료들도 충분하게 사용한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실망하는 이유는 조선사에 대한 참신한 해석이라는 부분에서 충족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왕을 참하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나왔지만, 백성들 편에서 본 조선 통사라는 말은 하지만 정작 백성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조선 멸망의 가장 큰 원인으로 성리학을 꼽는데 성리학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비판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때가 있다. 저자가 성리학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이 성리학에 정통하여서라기보다는 서구적인 사고로 동양적인 것들은 구시대적이고, 비생산적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것과 그렇게 달라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니라고 부정하겠지만 그의 글을 읽다보면 과연 이렇게 비판하는 것이 합리적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성리학적인 명분 때문에, 주변에 강력한 라이벌이 없었기 때문에, 당쟁때문에 조선이 멸망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던 사실이 아니던가? 도대체 여기 어디에 참신한 역사적 해석이 들어 있단 말인가? "선비들의 배반"같은 책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시각이 아니던가? 그저 말투가 참신하다는 것 정도? 역사책에 어울리지 않게 깐족거리는 말투가 참신하다면 참신하달까? "참신한"이라는 말을 뺀다면 이 책은 읽을만한 책이다. 이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백성들 편에서 본 조선통사"라는 부제 또한 이 책에 안 어울리기는 마찬가지이다. 백성들의 시각에서 봤다는데 과연 무엇이 백성들의 시각이란 말인가? 민중의 눈으로 백성의 눈으로 바라본 것보다는 그저 자신의 시각을 가지고 지배층들을 절단하고 평가한 것이 전부가 아니었던가? 그러면서도 백성의 시각이라고 말한다. 읽다보면서 "백성은 과연 어디있는가? 왕을 참할 주체는 어디 있는가?"하는 의문을 던진다. 그저 자신의 견해를 백성의 견해로 이야기하면서 자기의 시각으로 제단하고 깎아 내리는 것이 왕을 참하는 것이 아니던가? 차라리 소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견해를 밣힌다고 하는 것이 더 솔직했으리라. 

  마지막으로 저자가 대단한 역사학자인 것은 충분히 알겠다. 사료들을 비판하고 의심하면서 조심스럽게 가져다 쓴 노력 또한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아무리 사료라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사용한 부분이 많은 것은 필자의 자가당착이 아닐까? 간단한 예로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은 것은 확실한 것이 아니다. 안 지었을 수도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다음 문단에서 "허균은 서얼들의 한을 마음에 품고 그들 입장에서 홍길동전을 지었다."고 단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역사 사료를 비판하면서 이런 오류가 쉽게 나타난다. 차라리 솔직하게 이런 견해도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이런 견해가 있으니 이 견해를 따르겠다고 확실히 밝히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를 늘어 놓아서 이 책의 가치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책은 몇 가지 사실들만 감안하고 본다면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사료에 충실하다는 것과 분량이 900페이지를 넘어갈 정도라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전체적인 평은 하편을 읽은 다음에 하겠지만 역사를 재미있게 만드는 힘은 충분히 가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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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마스터 - 성경에서 배우는 리더의 시간관리
한홍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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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읽었던 책이다. 한때 한홍목사님의 책을 전부 구해서 읽었던 적이 있는데 그 대 읽었던 책이다. 기독교 서적이면서도 비기독교인이 읽어도 부담이 없을 좋은 책이다. 그러나 분명히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는 책이다. 기타 일반 자기 관리 서적은 자기 관리를 통하여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지만 이 책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세울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책이 아닐까? 

  우리는 속도의 세상을 살고 있다. 마치 군대 훈련소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숨막히게 살아간다. 아침에 일어나 꾸역꾸역 밥을 채워 넣고 숨돌릴 시간도 없이 러시 아워를 겪는다. 그리고 무엇에 쫓기듯이 하루를 마감한다. 이렇게 정신없이 살아가지만 과연 그 안에서 나는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가는가? 내 인생의 목적과 시간 관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저 집 평수를 한 평 더 늘리고, 통장 잔고를 조금더 채우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며, 내 시간의 의미인가? 분명 그것은 아닐 것이다. 시간 관리가 의미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무엇을 위해 시간 관리를 하는가라는 것이다. 축구 선수들은 하프 타임에 후반전을 위하여 체력을 비축한다. 오직 그날 경기의 승리를 위해서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하여 힘을 축적하는가? 여기에 시간 관리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숨막히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한 숨돌리는 것이 시간 관리는 아니다. 시간 관리는 그런 저급한 차원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된다. 시간 관리의 목적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쓸 시간을 축적하는 것이 아닐까?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쓸데없이 군살만 붙어있는 자기 욕심의 시간을 잠시 내려놓고 한숨 돌리면서 그것들을 남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조율하는 것 이것이 시간 관리의 진정한 목적이 아닐까?  

  거룩한 낭비를 할 수 있도록 군살을 빼는 것 이것이 기독교인의 시간 관리일 것이다. 얼마나 길게 살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밀도 있게 살았는가가 우리가 시간 관리하는 가장 큰 목적이 아닐까? 인생의 방향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나는 과연 하프타임을 무엇을 위하여 소비하는가? 진지하게 생각해볼 물음이다. 청년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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