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 있는 교회는 첫인상부터 다르다
마크 L. 왈츠 지음, 서진희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으로 교회에 나온 사람들. 

  혹은 지나가다가 들른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에게 교회는 어떻게 첫인상을 만들 것인가? 

  교회의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가 전도라면 처음으로 교회에 인도되어 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편안하게, 그리고 어떻게 친근하게 다가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례를 제시한 책이다.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을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소비자를 배려하듯이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교회로부터 발걸음을 돌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결론이다. 

  교회를 성장의 측면에서, 그리고 전략적인 차원에서, 교회를 방문한 이들을 소비자로 이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대형교회에 더 적합한 시스템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거부감이 들긴하지만 교회의 안내팀이나 새신자 맞이팀에게 꼭 한번은 읽혀보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 아고라 - 조선을 뜨겁게 달군 격론의 순간들!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 몇 가지 법안을 묶어 미디어법이라고 지칭하는 법안들이 논란 끝에 통과 되었다. 여야협상 결렬, 여야 국회 동시 점거, 배후에서 작전지휘하는 국회의장, 일선에서 경호권 발동과 동시에 직권상정하는 국회부의장, 빠른 시간내에 투표하는 한나라당 의원들, 허를 찔릴 야당 의원들,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 등등 국회는 간만에 활발한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곳이 되었다. 물론 활발한 에너지가 넘펴 흐른다고 모두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가르쳐 줬지만.  

  권력의 무상함이랄까? 불과 몇년 전에 헌법 수호라는 명목하에 의장석을 점거하면서수세에 몰렸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제는 법안 통과를 위해서 국회 의장석을 점거하는 공세의 입장이 되었다. 야구처럼 공수 교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짓거리도 참 재미있겠다 생각을 해본다. 미디어법 통과에 맞추어 국회는 우리에게 블랙코미디를 선사해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쪽팔려 못살겠다하고, 어떤 사람들은 국회를 개들이 점거했다고까지 표현한다. 미디어법이 통과되어야지만이 서민경제를 살릴 수 있다, 서민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미디어법이 통과되어야 한다면서 서민경제를 인질로 삼아 국민을 협박하는 한나라당의 오만함과 독선은 민주주의의 죽음을 보여준다. 도대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국회의 결정을 다수결의 원칙을 따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민주주의라 표현한다면 세상에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 어디있겠는가?  

  각설하고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문득 "그 때도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의 역사에 수없이 많은 논쟁들이 있었는데, 이 논쟁의 마지막이 혹시 이번 국회의 모습같지는 않았을까? 왕을 앞에 두고 문방사우가 날아다니고, 상대방의 수엽과 상투를 잡아 뜯으며 개싸움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즐거우면서도 씁쓸한 상상을 해본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의 주장을 정력적으로 개진하면서 싸운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지금 국회는 활발한 토론의 장이다. 그러나 토론의 모습이 예송논쟁을 거치면서 보여줬던 서인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를 용납하고 의견을 좁혀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없애야 할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성을 보이는 모습, 그리고 자기편의 주장은 항상 옳다고 생각하고 반성하지 않는 모습, 무슨 수단을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모습은 조선의 왕마저도 택할 수 있다며 택군을 이야기했던 서인들의 오만함이 아니던가? 그들의 모습과 다수결의 원칙으로 통과되었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생각이 국민의 생각이요, 자기와 반대하면 빨갱이요 헌법 파괴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한나라당의 모습과 무엇이 닮았는가? 거기에 더하여 박근혜 대표의 기가막힌 낚시질까지 감안한다면 닮은꼴이 아니라 판박이가 아니겠는가?  

  만약에 그렇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왕 앞에서 멱살잡고, 상투잡고 수염뽑으며 드잡이질 하다가 왕이 발동한 경호권에 의해서 내시들에게 손발이 잡혀서 끌려나가는 대신들, 아수라장 끝에 바닥을 치우면서 한숨쉬는 상궁들. 충분히 가능한 상상이 아닐까? 

  조선 아고라, 다음의 아고라를 빗대어 잡은 주제일 것이다. 책을 시작하면서 저자는 질문한다. "토론이란 소모인가 상생인가?" 그리고 스스로 대답한다. "토론은 상생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는 진짜 토론의 모습이 없다." 그러면서 조선 시대 격론을 소개한다. 한양천도, 공법실시, 1, 2차 예송논쟁, 문체반정 이렇게 다섯가지의 토론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격론들이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충분히 토론을 거친ㄷ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간다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나는 이 논쟁을 보면서 저자의 의도와는 모순되게 묘한 생각을 가져본다. 이 책이 현재 한국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말이다. 

  한성천도 논쟁은 결국, 기득권 세력인 왕과 신하 사이에서 좀더 막강한 권력을 가진 태조와 태종이 신하들을 얼르고 달래서 밀어붙인 일이 아니던가? 흡사 군부독재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다. 태조와 태종이 무인출신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억측은 아닐 것이다. 한성천도는 말이 논쟁이지만 사실은 왕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었던가? 국민들의 여러가지 말과 의견을 무시하고 독재를 저질렀지만 다행이도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는 면에서 본다면 어떨까? 

  공법 논쟁은 YS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충분히 고민하고 토론끝에 시작했지만 그 내용을 보완하는데 오랜 세월이 걸린 공법의 시행 과정을 보면서 분명히 필요하지만 외호아 위기를 기점으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열어버린 개방은 당연히 부작용이 나타나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법은 오랜 세월토론을 거쳐서 보완했지만 우리는 과연 세계화에 대해서 얼마나 숙고하면서 폐해를 보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가? 

  예송논쟁은 DJ 놈현 MB시대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우리편 아니면 적이라는 생각으로 숫자와 권력으로 밀어 붙이는 모습, 왕까지도 택했던 오만함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초유의 사태를 밀어붙인 한나라당의 모습은 달마도 너무 닮아 있다. 서인(산당과 한당)과 남인, 북인으로 나누어져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모습은 한나라, 친박연대, 자유선진당과 민주당, 민노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의 이합집산산과 다를 거이 무엇인가? 

  문체반정은 논쟁이라기보다는 왕의 독단이 아닌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이 아니었던가? 결국 문체반정은 실패로 끝났는데 요즘 MB정권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들, 청와대의 독주. 조만간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들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편지를 날릴지도 모를일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토론의 부재라는 역사도 돌고 돈다. 토론의 문화가 없다. 현재 한국에서 토론은 상생이 아니라 소모일뿐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토론을 가장한 감정싸움이 아니겠는가? 감정싸움은 서로를 소모시키고 죽이는 일일뿐 발전을 가져오지 못했다. 감정싸움 끝에 사라져간 인물들이 한둘이었는가? 토론부재의 역사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되풀이 되고 있다. 토론의 장인 아고라가 아니라 아집과 고집과 구라의 아고라만이 한국 사회에 편만해 있다. 토론의 부재, 감정대립, 내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PS 사진의 출처는 연합뉴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 장하준의 경제 정책 매뉴얼
장하준.아일린 그레이블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 / 부키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쌍용 자동차 사태가 꽤 오랫동안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노조원들의 생존권 사수를 지지하는 측과 기업의 손해는 국부의 손해라 생각하면서 회사를 지지하는 측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미 쌍용 자동차 사태는 노조와 회사의 다툼이 아니라 브루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으로, 좌와 우의 이념 투쟁으로 번져 가고 있다. 평택에서 최루액과 볼트, 화염병이 날아다니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면 인터넷에서는 노조와 사측으로, 빨갱이와 꼴통 보수로, 전라도와 경상도로, 민주당 지지자와 한나라당 지지자로 나누어져 서로에게 화염병보다 더 거센 감정의 불길을 지피고 있으며 곤봉이나 너트보다 더 치명적인 촌철을 뱉으며 살인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좌우 우로 갈라진 양 진영들은 서로를 도무지 용납하지 못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생존권을 부르짖고 한쪽에서는 국가 경쟁력을 부르짖는 시대에 나는 어찌 해야 하는가? 서로가 국미느이 편이며, 서민이라 주장하지만 도무지 진짜 서민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날이 갈수록 대중은 정치에 대하여 무관심 해지고 시니컬 해지고 있으며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설득과 토론을 통하여 타협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이기고 죽이고 없애야 하는 적이 되었다. 이런 모습이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전쟁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돌아서서 한마디 욕하고 말았는데 왜 요즘은 이렇게 서로를 죽여야할 필사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었을까? 

  난 신자유주의를 이것으로 이해한다. 이웃을 이웃이 아니라 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대상으로 사물화 시켜버리는 것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라 이해한다. 무한경쟁의 논리 가운데에서 단 한번이라도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호의를 베푼다면, 잠시라도 상대방을 이웃으로 생각한다면 상대방은 기꺼이 나를 밟고 올라설 것이라는 두려움을 우리에게 심어주면서 "경쟁은 좋은 것이여."라는 신자유주의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자유는 좋은 것이고, 경쟁은 좋은 것인가? 시장은 모든 것을 조정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위대한 손이 되는가? 장하준은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의 신화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다. 그것도 감정적인 제기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을 들어서 조목조목. 거기에 더하여 단순한 반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책까지 제시한다. 그것도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정말 존경해 마지 않는 경제 대통령 박정희의 정책과 치적을 실증으로 들어가면서.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신자유주의를 복음으로 생각하고, 박정희의 유산을 물려받은 한나라당과 MB정권에서 장하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하준을 친박계로 분류해 놓은 것인가? 

  몇십년전 영국에서 대처 수상이 "대안은 없다."라는 말을 모토로 영국의 경제를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게 재편한 일이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레이건이 레이거노믹스를 표방하면서 같은 일을 하였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자들의 사상이 정책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영미식 경제라는 무한경쟁의 경제체제가 생겨났다. 미국의 꼬봉인 우리나라는 박정희의 뒤를 이어 미국의 인정을 간절히 원하던 전통 노통을 비롯하여, YS DJ 놈현을 거쳐 MB까지 이르는 동안 영미식 경제제도를 착실하게 이식하였다. 그래서 왠만한 경제 관료들은 민영화는 좋은 것이며, 경쟁은 사회를 활력있게 만든다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고용 안정보다는 고용으니 유동성이 더 필요하며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하고, 파이가 작으니 파이를 더 키워야 한다면서 4만불 시대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다워졌는가? 

  이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하면서 밀어붙이는 방식들이 과연 바른 것인가? 합리적인 것인가? 왠지 이 물음에 대하여 자신이 없어지는 것은 내가 애국자가 아니기 때문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모순 때문인가? 날이 갈수록 깊어져만 가는 감정의 골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다시 발전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장이 만능이 아닐진대 시장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거는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 히틀러의 등장과 양차 대전을 불러 일으켰던 역사적인 사실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시장에 대한 막연한 희망, 만능주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시장 때문에 망하게 될 것이다. 쌍용차 사태는 이것을 가르는 기준이 되지 않으까? 쌍용차 사태를 어떻게 푸는가에 따라 앞으로 한국이 발전할 것인가 퇴보할 것인가가 결정난다고 보는 것은 너무 무모한 생각인가? 쌍용차 사태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그저 무겁기만 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림토 2009-07-23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평을 처음 읽을 때, 카테고리를 잘못 설정하셨구나 싶었습니다.
오늘, 일식이 있었구, MB악법은 통과됐구, 저는 술 한잔 했습니다.
이 글, 안 읽고 잤더라면 후회했을 뻔 했습니다.
신자유주의,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치 및 경제에 관한 탄탄한 생각이 단단하게 보입니다.
저는 철학도, 정치도, 이념도 잘 모르지만 탄탄한 글은 제법 구별합니다.

대위님이시네요, 남은 군생활 잘 마치시구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saint236 2009-07-2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2년 전에 전역했구요 사진이 없는 관계로 이 사진을 올려 놓았습니다.^^ 전 기독교인지라 한잔할 수는 없었고요 어제는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한나라당이 보수 꼴통이라 싫은게 아니라 그들이 오만하고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 싫어하는데 어제는 오만과 독선의 끝을 본 것 같았습니다.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를 리뷰해주세요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윤용인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제대로 나이를 먹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저 그때가 되면이라는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다면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나이 먹음을 당한다고나 할까? 말장난이지만 나에게 있어서 나이를 먹는 것과 어쩔 수 없이 나이 먹음을 당하는 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나이를 먹는 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라면 나이 먹음을 당한다는 것은 그저 철없이 살다 보니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는 느낌이랄까? 능동과 수동, 성택과 강요의 차이라고나 할까? 어찌 되었든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갖게 되는 생각은 저자가 부럽다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면서 마흔의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시간에 따른 피해의식이나 1년만 젊었어도라는 후회가 없다. 그저 주가가 처한 상황이 즐거울 뿐이다. 아니 즐겁지 않더라도 즐겁게 받아들이려하고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일까?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세월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는 데에서 그 사람의 연륜도 경력도, 그리고 지혜도 나올 수 있을테니까!  

  스무살 때로 기억한다. 그때는 그저 멜랑꼬리한 것이 좋았다. 이유도 없다. 그냥 좋았다. 비가오면 비가 온다고 기숙사 방 불을 끄고 포터블에 이승훈의 비오는 거리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걸고 몇시간이고 들었다. 가끔 방으로 들어오던 형들이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들어오다가 깜짝 놀랐던 적이 종종 있을 정도로 노래에 심취해 있었다. 그냥 좋았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왠지 낭만적이라 생각이 들었고, 그때가 되면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결혼해서 아바가 되어 있을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현실적인 감각도 노력도 없이 그저 서른이라는 나이를 기다렸다고나 할까? 그러다가 서른이 되어 보니 황당하다. 아니 허무하달까?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리 감상적인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에 걸맞는 노력이 없다면 주책없음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른 둘을 지나 마흔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에게 마흔이란 어떻게 다가올까? 그저 학부형이 되어 있고 중년의 나이, 유혹에 흔들림이 없다는 불혹의 나이를 맞을 수 있을까? 10년을 돌아보면 글쎄올시다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성숙한다는 것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신변잡기를 통하여 가르쳐 주는 저자가 고맙다. 그러면서도 딴지 일보의 경력 대문인지 여전히 딴지를 걸고 있는 저자의 말투 가운데 나이 먹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멋진 마흔을 향하여 지금부터라도 조금식 준비해야겠다. 멋있는 성숙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번쯤은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PS 엄밀히 따지면 심리학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심리학적인 설명이라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자기의 생각을 설명하는 에세이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겠는가?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 왕자의 귀환>을 리뷰해주세요
어린왕자의 귀환 -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
김태권 지음, 우석훈 / 돌베개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왕자의 귀환이라? 어린 왕자라는 소설을 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기대감을 가지고 펴본 책은 날 당황스럽게 했다. 어린왕자의 귀환이라는 제목에서 나는 따뜻한 동화나 어른들에게 삶에 관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편 순간 눈에 보이는 것은 만화였다. 그것도 데모하는 현장에서나 볼법한 찌라시에나 실릴법한 만화책은 어린 왕자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너무나 간단한, 그러면서도 대충 그린 것 같은 그림체는 과연 이런 책까지 봐야 하는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나 한장씩 넘기면서 나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잡게 되었다.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 결코 가벼운 내용들이 아닌 까닭이다.  

  내가 아는 한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이렇게 가벼우면서도 쉽게 설명한 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중고등 학생들에게 신자유주의를 설명하기에도 적합한 책이며, 대학생들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신자유주의식 경제를 설명하기에도 매우 적절한 책이다. 비교우위론, FTA, 그 안에 담겨진 독소 조항들, 민영화와 같은 것들에 대하여 이렇게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다니 대단히 존경스럽다. 만화에 덧붙인 우석훈의 주해가 만화에 깊이를 더했다고 할까? 

  그러나 한편으론 아쉬움을 느낀다. 만화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무겁다. 시사만화는 현실을 비꼬아 그 안에 촌철살인의 즐거움을 담아야 하는데, 이 만화는 내용을 설명하기 위하여 동원된 느낌이 강하다. 만화가 없다고 할지라도 내용이 이어진다면 만화책으로서의 가치는 많이 반감될 수밖에. 만화라고 보기에는 내용이 무겁고, 책이라고 보기에는 내용이 너무 가벼운 것도 이 책이 가지는 아쉬움이 아닐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주로 좌로 치우치거나 우로 치우친 책들에는 재미가 없다. 어려운 말을 늘어 놓고, 그것들을 사상적으로 설명하려는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내용을 가볍게 할지라도 만만치 않다.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이 책이 가지는 한계 또한 마찬가지다.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재미가 없을 수 있다. 촌철살인의 유머가 약하다.   

  마지막으로 책의 제목이 왜 어린 왕자의 귀환일까 생각을 해봤다. 아무리 읽어봐도 어린 왕자의 귀환보다는 어린 왕자의 실종 내지는 멸종, 혹은 변절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함에도 말이다. 책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결국 어린 왕자는 로또에 당첨이 되어 멀리 사라져 유유자적하고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그런데 왜 어린 왕자의 귀환이라고 했을까? 어린 왕자의 귀환이라는 제목을 통해서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린 왕자를 귀환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린 왕자를 귀환시키고 싶다는 작가의 꿈을 제목으로 삼은 것이 아닐까?

                    

  어린 왕자를 어린 왕자로 만드는 것은 순수함이다. 그 순수함이 때묻는 순간 어린 왕자는 이미 어린 왕자가 아니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어린 왕자를 어린 왕자가 아니게 만든가.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순수함 대신에 자본의 논리에 때묻고 쫓겨서 생활 전선에 뛰어든다. 장미의 존재 가치를 배우기 전에 교환 가치아 사용 가치를 먼저 배워야 하는 어린 왕자들에게 어떻게 장미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도록 만들어 줄 것인가?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절대 약자일 수밖에 없는 어린 왕자들에게 어떻게 자신의 존재의 중요성을 말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인가? 좀더 솔직하게 말해서 어린 왕자가 멸종된 시대에 어떻게 어린 왕자를 다시 귀환시킬 수 있을 것인가? "얼마짜리냐?"는 대답 대신에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감탄사가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고민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린 왕자의 실종 시대,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린 왕자의 멸종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고민이어야 하지 않은가?

  위에 있는 사진을 보면서 다시한번 다짐한다. 생활 전선에서 자신을 상품화하는 것을 배우기에는 아직 어린 저 아이에게 다시 한번 웃음을 찾아 주자고. 다시 한번 어린 왕자로 꿈꿀 수 있도록 하자고. 아니 평생 어린 왕자의 꿈을 꿔보지 못한 저 아이에게 세상이 이렇게 상품 가치로 결정되는 냉혹한 곳이 아님을 알려 주겠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유니세프 회원이며, 유니세프 회원이 되도록 권한다. 그리고 열심히 책을 읽는다. 

PS. 신자유주의 전도사 역에 봉이 김선달을 캐스팅 한 것은 최고의 캐스팅이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적절한 말발로 사기치는 봉이 김선달이나 신자유주의가 최고라고 말하면서도 자기들은 다른 방법을 선택하는 이들이나 동일한 부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