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박웅현, 강창래 지음 / 알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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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달 전에 종로 알라딘에 갔다가 경험했던 일이다. 난 마음이 답답하면 서점을 찾는다. 교보 문고도 가고, 알라딘 종로점도 가고, 알라딘 대학로점도 간다. 무엇인가 뚜렷하고 사고 싶어서 간다기 보다는 답답하니까, 기분이나 풀어보려는 마음으로 가는 것이다. 여러 책들을 열어보면서 내가 사고 싶었던 책들이 과연 살만한 것인가 점검을 해보기도 하고, 꽤 흥미로운 책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에 나도 모르게 답답했던 마음들이 풀어지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서점에 들리려고 노력을 한다.

 

  그날도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알라딘 종로점을 찾았고, 이책 저책 뒤적거리다가 최근 6개월 신간 코너에서 평소 내가 관심이 있었던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그대 두명의 젊은 처자들이 들어왔다.(왠지 아가씨라고 하면 오해를 살 것 같은 마음에 처자라고 표현한다.) 아마도 대학생, 취업을 앞두고 있는 졸업반인것 같았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두 처자가 내 옆에 와서 서더니(결코 나를 보러 온 것도 아니고, 내 가슴이 설렐리도 없는 상황이다.) 인문학 책들을 뒤적거리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문학이라는 재미없고, 취업에도 도움이 안될 것 같은 책들을 뒤적거리는 둘을 보면서 마치 알라디너를 보는 것 같아서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 마음은 채 3분도 못되어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옆에서 들리는 두 사람의 대화 때문이다.

 

  "OO아 너 그 책 읽어 봤어?"(책 제목이 정확하게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꽤나 재미없는 인문학 책이었다는 것만은 기억한다.)

  "아니. 넌 읽었니?"

  "응 읽었어."

  "그래? 재미있어? 왜 읽었어?"

  "재미는 별로인데 선배들이 읽으라고 하더라고. 취업하는데 도움이 된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인문학이 취업하는데 도움이 된다니...이 무슨 자다가 봉창 뜯는 이야기만 말인가? 그런데 말이다. 이 이해 안되는 상황이 두 사람만의 특별한케이스가 아니라는 것을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알게 되었다. 요즘들어서 인문학이 사람들 사이에서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꽤 읽히는 편인데 그 이유가 취업을 위해서란다. 영어도, 봉사활동도, 인턴 쉽도 모두 고스펙이다 보니까 이젠 인문학이 변별력을 가지게 되었다나 뭐라나...참으로 대단한 자본의 힘이 아닐 수 없다. 인문학마저도 스펙으로 취급하게 만들어 버리다니 말이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복잡한 정의를 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봤다. 네이버 지식 대백과 사전에서 인문학을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영역"이라고 정의해 놓았다. 복잡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이런 저런 이견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인문학이란 인간과 인간의 문화를 학문의 주제로 삼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다보니 내 주변에서 사람들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를 심심해서, 재미있으니까, 좋아서라고 한다. 그렇다. 인문학은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지 그것을 가지고 출세를 하려고 한다면, 돈을 벌려고 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웃기는 상황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으로 광고를 하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똑같은 생각을 해본다. 자칫 잘못하면 이 책이 사람들에게 성공하려면 인문학을 공부해라는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웅현이라는 걸출한 광고 기획자가 내놓은 광고들(현대인의 생활백서라든지, 박카스 광고라든지)은 광고만으로도 다른 광고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사람들이 광고를 몇번씩이나 들여다 보게 만든다. 나도 박웅현의 광고를 몇번이나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찾아보기도 했다. 박웅현의 광고의 이런 차별성이 어디에서 오는가?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에서 온다. 그가 남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원인이 무엇인가? 본인은 독서, 특히 문학과 인문학 분야의 책을 깊이 읽는데서 온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인문학 서적을 읽으면 생각의 깊이와 폭이 달라질 것이고, 그렇게 생각이 커지니 세상을 달리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가 문학과 인문학 책을 읽은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좋은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 읽은 것인가? 아니다. 그의 책을 읽어보면 그가 독서를 열심히 한 이유는 그가 할 일이 없어서였다. 뽑아 놓고 분위기 흐린다고 다른 소리 한다고 일을 주지 않았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서 한권씩 읽다보니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은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의 독서가 그의 일에 도움이 된 것이다. 열심히 책을 읽어도 업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는 운이 좋게도 하는 일과 그의 독서가 궁합이 맞았던 것이다. 이러한 전후 맥락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성공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라는 황당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요즘 그런 황당한 결론을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해서 책으로 판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정론이라기 보다는 권도일 뿐이다.

 

  이런 이유로 인문학으로 광고를 한다는 책 제목은 내 마음 속에 껄쩍지근함을 남긴다. 차라리 할 일 없는 자여 인문학책이라도 읽어라가 낫지 않을까? 꽤나 읽어볼 만한 구석들이 있는 책이지만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얇팍한 성공 지상 주의 때문에 오히려 더 손이 안가는 책이다. 나처럼 할 일없이 읽는 사람, 그냥 좋아서 읽는 사람에게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불온 도서로만 보일 뿐이니 말이다. 또한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은 달고 나왔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내용이 전혀 인문학과는 상관이 없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에 인문학이 아닌 사회과학으로 분류한다. 광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읽어볼만 하지만 성공을 꿈꾸는 자에게는 자게서보다 못한 책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웅현의 광고가 남다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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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11-29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학이 경쟁력인 듯 말하는 책을 보면, 인문학 책을 읽으면 다 그리 되는 것처럼 나오지요. 사실 뭔가 결과와 과정을 이상하게 이해하는 것 같아요. 유MC말마따나 한국의 현 사고로는 '창의'해라! 하면 '창의'가 되는 줄로 오해하는 것처럼 인문학 열풍도 그런 면이 없지 않습니다.

saint236 2013-11-29 15:39   좋아요 0 | URL
스티브 잡스같은 인물도 키워낼 수 있다고 믿는 사회니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oren 2013-11-30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웅현 님이 몇 해 전 '책은 도끼다'로 붕~ 뜰 때 우연히 그 분의 '강의'를 한 시간쯤 들은 적이 있었어요. 물론 자발적 참여는 아니었고 등 떠밀리다시피 가봤던 강의였는데, 다른 건 몰라도 '어린아이와 같은' 독특한 감성이 유난히 뛰어난 분이로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인문학은 우리의 삶을 속세적 성공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깊이있게 가꿔주는 데 가장 큰 보탬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게 곧 인문학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독서의 힘'이겠죠. (매우 길지만) 오래전에 읽었던 신문 칼럼 하나 덧붙여 봅니다.

* * *

독서와 항심(恒心)

운세가 좋지 않을 때는 독서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홀로 존재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독립불구’(獨立不懼:홀로 있어도 두렵지 않음)하고 ‘둔세무민’(遁世無悶:세상과 떨어져도 근심이 없음)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독서의 습관에서 나온다. 독서를 통하여 불운을 견딜 수 있었던 사람 가운데는 중세 피렌체 공화국의 서기관이었던 마키아벨리도 포함된다.

마흔셋의 나이에 반체제 사건에 연루되면서 잘 나가던 인생이 곤두박질친다. 직장에서 잘리고, 10년 봉급에 해당하는 액수의 벌금을 물었는가 하면, 감방생활을 거쳤다. 그는 피렌체에서 쫓겨나 시골의 허름한 산장에서 처자식과 함께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였다.

낮에는 주막집에서 시골의 장돌뱅이들과 어울렸지만, 밤이 되면 흙으로 더러워진 평상복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책이 가득한 서재로 돌아가 독서에 몰입하곤 하였다.

시오노 나나미는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한길사)에서 그 대목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예절을 갖춘 복장으로 몸을 정제한 다음, 옛 사람들이 있는 옛 궁전에 입궐하지… 그곳에서 나는 부끄럼 없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물어 보곤 하지. 그들도 인간다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대답해 준다네. 그렇게 보내는 네 시간 동안 나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네. 모든 고뇌를 잊고, 가난도 두렵지 않게 되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느끼지 않게 되네.”

만약 마키아벨리가 독서하는 습관이 없었더라면 이 시절에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다.

동양의 식자층들은 어땠는가. 중국 당나라의 관료들은 관청에서 퇴근하면 부인 자식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후에 곧바로 서재로 들어가곤 하였다.

가장이 한번 서재로 들어가면 누구도 그 독서를 방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정년 퇴직을 하면, ‘그 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이제야 마음놓고 실컷 읽을 수 있겠구나!’ 하면서 더욱 독서에 몰입하였다고 한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조기 퇴직이 대세이다. 항산(恒産)도 없는데, 항직(恒職)도 없으니, 항심(恒心)도 어려운 ‘삼난항’(三難恒)의 시대가 된 것이다. 삼난항의 시대에서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책을 붙잡아야 한다.

saint236 2013-11-30 20:32   좋아요 0 | URL
저도 답답하면 서점을 찾는 이유가 여기 있지요. 제가 알라딘에 글을 한두편씩 쓰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당시 너무 힘들어서 책을 붙잡게 되었지요. 책 읽고 글 쓰고 그러면서 버텼습니다. 물론 글의 퀄러티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요. 다만 책을 읽고 무엇인가를 끄적거린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습니다. 요즘도 책을 붙잡게 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