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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ㅣ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시골의사 박경철!
그리고 그리스 문명!
두 가지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읽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박경철에 대한 이미지야 좋고 나쁠 것이 없다. 내가 유달리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그의 책을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 혁명"이라는 책을 이북으로 사서 짬짬이 읽고 있을 따름이다. 나에게 박경철은 작가 박경철이 아니라 안철수의 동료 박경철일 뿐이다. 작가 박경철이라 함은 그저 자기 계발서를 썼다고 생각하는 정도?
그렇지만 그리스에 대해서는 환장한다. 그리스 신화는 물론이고, 그리스 문명에 대한 책들은 꽤나 찾아서 읽는 편이다. 서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철학을 알아야 하고, 그리스 철학은 기독교 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지론 때문이다. 물론 신화가 재미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신화와 문화에 대해 십덕후는 아니지만 최소한 오덕후, 혹은 삼덕후는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가 꼽는 그리스에 대한 한국의 대가는 이윤기와 천병희이다. 해석의 이윤기, 번역의 천병희! 편견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책을 읽어 본 후에 갖게된 편견이니 너무 타박하지 않기를 바란다. 언어학자의 시선에서 번역하기 때문에 깔끔한 맛은 있지만 철학서를 읽을 때에는 꽤나 고민하게 만드는 천병희, 직접 발로 뛰어다니면서 그리스의 문명에 대해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이야기하면서 그 깊이를 자랑하는 이윤기! 이윤기가 죽었다는 사실에 꽤나 애석해 하면서 그의 마지막 작품을 야금야금 아껴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요즘은 천병희 역의 시학을 읽으면서 역시 번역은 천병희라는 생각에 숲에서 나오는 그의 번역서를 모조리 읽어보겠다는 야심만 품고 있다.
이런 내게 있어서 박경철의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읽는다는 것은 꽤나 큰 모험이었다. 그것도 실패할 가능성이 다분한 그런 모험 말이다. 그래서 굳이 읽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덜컥 알라딘 서평단의 도서로 받게 되었다. 그래도 박경철이라는 이름값에 그리스라는 문명이 더해지면 홈런은 아니더라도 평타는 치지 않겠다는 생각에 읽기 시작했다. 일단 시작은 꽤나 괜찮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품고 그리스 여행을 했다는 그의 말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정말로 감명깊게 보고 영화를 봤던지라 그에 대한 덕후력을 거리낌없이 표방하고 있는 박경철이 부러우면서도 기대가 되었다. 내용도 꽤나 재미있었다. 그저 유명한 예술품들만 보고 와서 대충 쓰는 그런 책이 아니라 그리스의 곳곳을 누비면서,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현지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글을 읽으면서 이거 꽤나 괜찮겠는 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그를 그리스로 이끈 카잔차키스가 그로 하여금 그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 내지 못하게 했다. 가끔 글이란 것을 끄적거려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머리에 맴도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그 이야기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버리기 아까운 것들이 많을 때 그 때가 글을 쓰기가 가장 어렵다. 그 순간에 가장 먼저 할 일은 과감하게 가지 치기를 하는 것이다. 박경철의 책은 이것이 부족하다. 그리스를 여행하는 곳곳에서 그가 카잔차키스를 만난 것은 그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직접 그 현장에 간 것이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불행한 일이다. 이야기에 몰입할 만하면 여지없이 카잔차키스가 튀어나온다. 뭔가 분위기가 무르익을만 하면 카잔차키스의 작품이 인용되고 있으니 어찌 글 속으로 몰입할 수가 있겠는가? 마치 여자 친구를 위해 여러가지 책을 읽으면서 이벤트를 준비했던 남자가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여자친구가 감동할 시점에 "감동스럽지, 어느 책에 보니까 이러면 감동받을 거라고 하더군."이라면서 초를 치는 격이랄까?
그냥 카잔스키가 그의 안으로 갈무리 되었으면 좋았겠을 것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굳이 카잔차키스의 작품들을 인용하면서 그의 사고의 단편들을 무리하게 연결시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책의 절반이 넘어가면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카잔차키스의 작품을 인용하는 대목이 오면 과감하게 건너뛰는 것이다. 그러니 한결 책읽기가 수월하다. 그리고 꽤나 흥미진진해 진다. 카잔스키를 품고 그리스로 날아간 박경철은 결국 카잔차키스 안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독자인 나는 꽤나 안타까움을 느낄 뿐이다. 물론 내가 글을 쓴다면 이만큼은 못쓰겠지만 말이다. 그저 그리스 오덕후 내지는 삼덕후로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 꽤 재미있다. 그렇지만 그의 이름값에 비해 아쉬움이 있다. 마치 이대호가 결정적인 순간에 홈런이 아니라 일루타를 친 것을 봤을 때 느끼는 아쉬움과 안타까움 같은 것이다. 또 다시 고민이 된다. 후속편이 나오면 또 사야할까라는 고민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