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커피를 참 좋아한다. 설탕을 넣지 않고 마시는 아메리카노! 오로지 그것만 마신다. 회의 전에도 마시고, 회의 후에도 마시고, 식사 전에도 마시고, 식사 후에도 마신다. 그렇다고 내가 친미주의자는 아니다. 숭미주의자도 아니다. 내가 할리우드 영화를 즐겨 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친미주의자는 아니다. 물론 숭미주의자도 아니다. 내 아이들에게 영어 공부를 시키기 위하여 조기 유학을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고, 영어를 배우기 전에 한국어나 제대로 하라고 후배들을 갈구는 사람이다.

 

  아침부터 왠 친미주의와 아메리카노, 외국 영화 타령이냐? 아침에 황당한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통진당의 백승우 전 사무부총장이 유시민과 심상정을 겨냥하여 회의 전에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비난의 글을 올린 것이 문제가 되었다. 세상 살다 보니 별 사람들이 다 많다 싶은데 도대체 이런 것까지 문제를 삼는 이들을 보면서 여병추라는 말이 생각이 난다. 이 논쟁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첫째, 유시민, 심상정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친미주의자이다. 구당권파 입장에서는 유시민과 심상정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구들이 들어와서 자기들을 찍어 버렸기 때문이다. 공격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중에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메리카노다. 회의 전에 꼭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이들의 사상은 미제국주의에 쩔어사는 썩어빠진 무리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생각을 해보자.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친미인가? 이름이 아메리카노라서 그런가, 아니면 고급커피를 마신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이름 때문이라고 그런다면 앞으로 유시민과 심상정은 라떼나 드립커피, 혹은 에스프레소를 마시면 해결이 될 것이며, 고급 커피를 마셔서라면 이 땅에서 진보의 세력이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 치고 커피숍 안가는 사람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들은 잘 모르나보다. 술집가서 술먹는 돈보다 훨씬 싼 가격에 오랜 시간동안 앉아서 책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커피숍 외에 어디에 있겠는가?

 

  백에게 묻고싶다. 그렇다면 초밥을 좋아하면 친일파고, 바게트를 좋아하면 친불파인가? 짜장면을 좋아하면 친중파이고, 스파케티를 좋아하면 친이태리파인가? 커피와 콜라를 마시고 스포츠 신문을 보면 정권의 3S정책에 놀아나는 미련한 짓이라고 후배들을 갈구던 그 선배들의 모습과 당신들의 권위주의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진보가 자기의 생각만으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라면 누가 진보를 지지하겠는가? 앞으로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은 한국 영화만 보고, 한국 음식만 먹고, 믹스 커피만 먹어야 된단 말인가?

 

  둘째, 유시민, 심상정이 비서나 비서실장을 시켜서 커피를 배달했다는 말이다. 진보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시켜서 커피를 배달시키냐는 말인데, 글쎄다. 내 개인적인 상식에 의하면(그것이 잘못되었든 아니든) 비서가 하는 일 중에 커피를 배달해 주는 역할도 있지 않나? 물론 비서가 커피 심부름만 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문맥상으로는 전혀 그런 것 같지는 않고..그럼 사람을 시키지 않기위해서 비서나 비서실장이 회의에 참석하고 유시민, 심장정이 커피사러 가면 되겠나? 도대체 말이 될 걸 가지고 공격을 해야지... 앞으로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은 커피 전문점에 가서도 셀프로 본인이 내려 마시던지 해야겠네. 물도 셀프, 밥도 셀프, 커피도 셀프! 결국 빅엿도 셀프해 드시는 놀라우신 셀프정신! 그런데 그거 아시나 모르겠다. 셀프 정신에 충만하신 그분들의 행적이 결코 남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셀피쉬해보인다는 것을 말이다.

 

  점심으로 돈가스를 먹고, 책상에 앉아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나는 매국노인가보다...

 

  PS.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거의 모든 신문이 유시민의 아메리카노를 기사로 썼다. 도대체 기사거리가 이렇게 없는 것인가? 아마 새누리당의 전략이 아닐까하는 소설을 써 본다. 유시민 아메리카노가 여당의 현기환 현영희 사건보다 더 핫이슈라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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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8-18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도에 가서 물어 보세요~
할 말이 없네~ ㅋ~ (이거 좀 야하다~ ㅍㅎㅎ)
저는 친이태리파네요. ㅎㅎ 아메리카노를 싫어하는거 보면 반미주의자인 듯... ㅎㅎ

말하면 입만아프고 투표를 해야죠. 바꾸네~ 이름 참 죽이죠?

saint236 2012-08-18 22:40   좋아요 0 | URL
바꾸네라..이름이 그냥 끝내주네요.

부자베짱이 2012-08-19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고 갑니다.
글을 정말 잘 쓰시네요.
읽으면서 기분이 좋아질 정도~.
감사합니다.

cyrus 2012-08-19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기사 보면서,, 참,, 요즘 통진당이 이석기 이후로 아웃 오브 안중이던데
어떻게든 언론에게 눈에 띄고 싶은가보네요 ^^;;

saint236 2012-08-20 23:09   좋아요 0 | URL
아웃 오브 안중보다야 이슈가 되는 것이 좋지만 그래도 조롱받는 쪽으로 이슈가 되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결코 선택하지 말아야할 것인데...통진당과 노회찬, 심상정이 동반 몰락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진보의 간판인데 말이예요

세실 2012-08-22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이렇게 멋진 글을 쓰셨구나^^ 통쾌합니다.
저두 초밥 좋아하니 친일파네요.
억지, 억지, 이런 억지를 기사라고 쓰는 기자도 웃겨요!

saint236 2012-08-23 09:56   좋아요 0 | URL
저도 친일파입니다. 초밥하고 회 엄청 좋아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