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3부작을 읽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은 거의 대부분 구해서 읽는다. 시오노 나나미를 특별히 좋아하기보다는 역사에 관하여 꾸준하게 책을 출판하기 때문이다. 역사에 흥미가 있어서 관련 책들은 기회가 날 때마다 하나씩 사모으고, 꾸준하게 읽는 편이다. 전쟁 3부작 중 2부인 로도스 공방전도 이런 책 중의 하나로 읽었다. 꽤 오래 전에 읽었고, 서평도 오래 전에 작성해 놓았기 때문에 덮어 놓고 있었지만 며칠 전 서평에 달린 댓글 때문에 다시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책을 떠들어 보았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은 http://blog.aladin.co.kr/759552125/3742373이며, 여기에 달린 댓글은 이것이다.

 

 

 

 

 

  일단 솔직하게 말해서 댓글이 기분이 나쁘다. 마치 나를 무시하듯이 달아 놓은 댓글. 무례하게 느껴진다. 어떤 의미에서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생각이 드는지 그 이유도 달지 않고 밑도 끝도 없이 읽어는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그 누가 좋게 생각하겠는가? 반박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으면 그것은 비판이 아니라 비난일 뿐이다. 내 서재에 누군가가 난입하여 저런 테러는 저질러 놓고 갔다는 사실 자체가 맘에 들지 않는다.

 

  다음으로 내가 굳이 이 페이퍼를 작성한 이유는 이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로도스 공방전의 중요한 의미는 질에서 양으로의 전환이다. 중세 사기 캐릭 기사단이 투르크의 허술한 일반 병사들의 다구리에 패배한 것이 로도스 공방전의 요지이다. 군사적인 면에서 살펴보자면 이것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봉건주의가 몰락하고 새로운 영토 국가가 설립되고 발저하는 과정과 맞물려 생각한다면 이것은 로도스 공방전의 핵심이다. 여기에 더하여 전술적인 연계를 말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핵심은 질에서 양으로의 전환이다. 그런데 이것이 지엽적인 부분이라고 하니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로도스 공방전의 핵심이 무엇이냐? 혹 여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해 주셨으면 한다.

 

  역사계의 숨어 있는 기인 이사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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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4-0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도스 공방전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바가 없어 참여할 수는 없지만
특히 역사는 이를 해석하려는 사람의 의지와 사유 방식에따라
전혀 다른 각도의 접근이 가능한 분야인데요...

역사이든 그 무엇이든 획일적인 방향으로 진행시키는 사유방식은
지극히 독선적인지라 쩜 위험^^
나찌가 괜히 나찌가 아니 듯이 말이죠 ㅠ.ㅠ

너무 개의치 마세요
댓글을 다신 분의 사고가 매우 직선적이고 독선적이라
그 어떤 말도 잘 먹혀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저의 ...ㅠ.ㅠ


saint236 2012-04-05 12:19   좋아요 0 | URL
처음에는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다음에는 로도스 공방전의 의의가 무엇이냐 궁금해지고요.

노이에자이트 2012-04-05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을 볼 수 없어서 자세한 것을 잘 모르겠습니다만...

로도스 섬에서 사실상 기독교동맹국들의 도움도 없는 고립무원 상태에서 엄청난 수의 오스만 병사들과 맞붙은 기사단의 감투정신도 대단하다고 봅니다.다섯달 가까이 버텼으니까요.오스만 병사들은 잡다한 민족으로 구성된 징집병이었다 해도 대포가 있었으니 무기로는 기사단을 압도했다고 봐도 되겠죠.무기의 질은 오스만 쪽이 더 나았고...하지만 그 숫자와 우세한 무기로도 기사단을 단시간에 제압하지 못하고 질질 끌었으니 그건 오스만의 문제점이기도 하죠.
징집병이긴 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군대와는 달리 오스만은 결집력이 부족했고, 외국에서 온 용병들이 정치에 간섭하는 등 이런 문제 때문에 결국 점점 약해집니다.용병에 의존하다가 몰락한 로마제국과 비슷하다고도 하겠죠.비록 로도스 공방전에서 오스만이 이겼지만 그 약점도 드러난 전투라고 봅니다.
알라딘은 이런 군사문제에 대해서는 댓글토론이 활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다른 분들이 몇 분 더 오셔서 좋은 정보를 주면 좋을텐데...



saint236 2012-04-06 10:19   좋아요 0 | URL
오스만 투르크에 뚜렷한 장수가 없다는 것은 그러한 오스만 투르크의 단점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이름을 올리는 사람들은 왕인데 아마도 잡다한 민족이고, 유기적인 연계까 어렵지만 압도적인 물량을 끌어 모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개별적으로는 압도적인 우의를 차지하고, 성채를 통해 방어를 했지만 압도적인 물량과 반드시 이기겠다는 승리의 의지가 합쳐지만 질보다는 양이 우세하지 않을까요? 전투 집단의 유기적인 연계가 있다면 질을 표방하는 쪽이 우세할 수도 있겠지만요.

노이에자이트 2012-04-06 17:03   좋아요 0 | URL
좀 더 이야기를 진행하려는데 saint236님의 댓글 내용 파악이 안 됩니다.
"그렇지만 개별적으로는 압도적인 우의를 차지하고,성채를 통해 방어를 했지만 압도적인 물량과 반드시 이기겠다는 승리의 의지가 합쳐져지만 질보다는 양이 우세하지 않을까요?"는 무슨 뜻인지 읽어도 모르겠습니다.이 문장을 좀 더 정리해서 고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만...

saint236 2012-04-07 00:01   좋아요 0 | URL
기사단이 오스만 투르크에 대하여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저는 두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는 오스만 투르크에 투르크 전체 세력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부재했었다는 것. 이는 살라딘과 살라딘의 상관이었던 사람들의 등장으로 해결이 됩니다. 다음으로 살라딘이 등장했음에도 오랫동안 기사단이 맹위를 떨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스만 투르크 측에서 기사단을 비롯해서 십자군 진영을 전멸 시키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까지는 유리한 상황에서 휴전을 맺는 것이 전쟁의 목적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4차 십자군 전쟁 이후 오스만 투르크 측의 전쟁의 목적이 유리한 입장에서의 휴전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에서의 십자군의 축출로 바뀌었다고 봅니다. 데미지가 크더라도 십자군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낸다 이렇게 보면 되겠지요. 오스만 투르크의 압도적인 물량에 포를 이용한 전술적인 연계, 여기에 십자군 축출의 확고한 의지는 십자군의 몰락과 팔레스타인에서의 기사단의 축출이라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saint236 2012-04-07 00:08   좋아요 0 | URL
반면 기사단은 개개인의 전투력 우위와 성채, 그리고 이태리 도시 국가의 해군력을 적절히 이용한 전술적인 연계로 버티기를 시도했으나 종래에는 투르크의 양과 전술적인 연계, 십자군 축출의 확고한 의지에 밀려서 패했다고 생각합니다. 후반에는 십자군 각 구성원들 간의 정치적인 계산 때문에 전술적인 연계마저 깨졌기 때문에 더 쉽게 패배했던 것이고요. 제 컴 자판이 요즘 이상해서 "면"이 "만"으로 오타가 많이 났네요. 그래서 제가 읽어도 이야기의 흐름이 이상해졌네요. 이상이 제가 생각하는 초장에 비해 후반에 그렇게 쉽게 십자군이 몰락한 이유입니다.
제 서평은 위에 링크된 주소로 들어가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십자군을 차에, 오스만 투르크를 상과 마의 보조를 받는 5개의 졸에 비유했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4-07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과 거의 비슷한 총평입니다.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평가를 내릴 것 같습니다.
아...그리고 저 링크된 주소로 들어가려는데 링크가 안 되네요.제 컴퓨터만 그런지...

saint236 2012-04-08 06:47   좋아요 0 | URL
수정했습니다. 저도 안 들어가지더군요.

노이에자이트 2012-04-08 13:50   좋아요 0 | URL
예. 이젠 읽을 수 있네요.

2012-04-11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2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2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usader 2013-04-21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군사적인 여담입니다.

투르크 측 비전투병력포함 12만 중 5만명 사망에 비전투 손실만 적어도 1만 이상입니다.

협상에서 괜히 투르크측이 엄청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게 아닙니다.
기사단 측에서도 식량은 아직 많이 있어도 탄약,석궁화살 등 전투소모품도 다 떨어졌었고요.

몰타 공방전에서조차 7:1킬/데스 비율 자랑하면서 스페인 지원병 8천명 오자마자
오스만 병사들 깨갱하고 도망간건 아무도 말 안하죠.

700의기사와 4000의민병대및용병과선원들로 그 정예라는 7천의 예니체러와 6천의 시파히(중장기병)등 3만의 정예군대를 말이죠.

결국 오스트리아 빈 공방전에서 죽어라고 빈 도시 안으로 들어가라고 쪼고 갈구고
쪼고 갈구고해도 예니체리들은 안 들어갔습니다.

또한 심지어 어떤 기사는 로도스 공방전에서 총 가지고 500킬 했습니다.

투르크측에는 끽해야 사슬갑옷 입은 백병전 담당 예니체리 부대가 있었지만
서유럽의 발달된 갑주와 그에 조합되는 우세한 근접전투력 전통,
그리고 주 백병전 외 부분을 담당해주는 종자들,용병들,징집병들 등의 조합도 있었고요.
거기에 훌륭한 축성기술까지 더해지는 등 로도스 공방전은
중세유럽의 전투력의 결정체(최고기술+기사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을 위한 특수집단의 빛과 한계지만
투르크가 유럽국가 vs 국가로 제대로 뜬 다면 얘기는 달라지죠.
오스만은 결국 중세말까지 끝발 다 하고 예니체리와 시파히에만 의존하던 댓가를 톡톡히 치룹니다.

시대가 가면 갈 수록 양적인 면의 힘이 강화된다는 점에서는 잘 짚으셨지만
당시 군사적인 면에서는 많이 부족해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팔레스타인에서의 십자군 축출과 오스만 투르크 그리고 살라딘 <- 세 개 다 시대적으로 같은 시간대가 아닙니다 뭔가 잘못 적으신듯 팔레스타인에서의 십자군 완전축출은 바이마르스 때고 오스만 투르크는 아무리 적어도 13세기 후고 살라딘은 3차십자군~4차십자군

saint236 2013-04-21 21:44   좋아요 0 | URL
오스만 투르크라고 적었군요. 적다보니 이런 실수도 하고, 그냥 지나가서 저도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저 위의 글은 오스만 투르크대신 셀주크 투르크가 맞겠고요. 술탄 메메드 2세하고 살라딘하고 잠시 헷갈렸나 봅니다. 보통은 안헷갈리는데 당시 너무 뚜껑이 열렸던지라. 십자군 축출은 사자심왕 이후이긴 하죠. 그렇지만 제가 보기엔 살라딘 이후로 십자군은 사실상 축출의 단계로 지나갔다고 보는지라...

위에서 이야기한 것은 양과 질이라는 측면에 집중했던 것이고요, 실제로 여러가지 군사적인 기술과 전술적인 측면들을 입체적으로 놓고 본다면 이야기는 여러모로 또 달라지겠지요. 총으로 500킬은 저도 처음 들어 보는 말인지라 왠지 흥미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Crusader 2013-04-23 20:1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총 얘기 나와서 말인데,

몰타 공방전에서도 기사들이

각종 화염병기들과 화승총,대포,공병술 등까지 조합하고

방어대비 지형 작업[우물독,식량확보 등등]질까지 다 해대며

정치/임의적 세속기사들 모임이 아닌 종교기사수도회의 전투력 효율을

극단적으로 좌우좌지 하는 지휘관 역량도 훌륭하고

휘하 기사단원들과 그리고 같이 싸운 지원/소속의 타국 출신 세속기사들마저

샤티옹 같은 배교자+무대뽀 아니라 다들 최소 적절한 수준 머리+신념도 되니

"낭만적인 중세 기사도의 상징 성 요한 기사단은 실상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한 낙오자가 아닐까?"

라는 구절은 영 아닌 것 같습니다.

Crusader 2013-04-2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지막으로 시오노 나나미의 책은 전형적인 좋게 말해서
'대중 읽기 쉽게 쓰는 역사소설가'답게 오류가 많습니다. ;;;;
http://cafe.daum.net/shogun/9xm/7774 다른 것에 대해서는
이 링크가 많은 도움이 되실 듯

saint236 2013-04-21 21:46   좋아요 0 | URL
그의 책은 역사서와 역사소설 사이에 끼어 있는 책이긴 하겠지요. 그렇지만 꽤나 흥미있는 부분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흠...저 카페를 주로 사용하시나요? 전 문명과 삼국지 쪽 카페를 주로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