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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하여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대표 단편들 ㅣ 펭귄클래식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안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2월
평점 :
인생은 아름답다. 체호프 식으로!
체호프 삼부작을 완성한 긴카스의 평가란다. 책을 다 읽고 뒤부분의 작품 해설을 읽다가 발견한 부분인데, 어쩜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하는지? 이 한 문장에 이 책에 대한 평가가 끝나버린다. 여기에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 것인가? 사족같아서 쓰기가 망설여지지만 이 책이 특별히 cyrus님에게 받은 책인지라, 감사한다는 말과 함께 책에 대한 감상이라도 올려 놓는 것이 선물해 주신 분에 대한 예의 같아서 간단하게나마 적어본다.
굴이라는 글로 시작하여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으로 끝이 나는 이 책의 지은이는 체호프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러시아 문학이라고는 도스트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의 작품이 전부인지라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톨스토이와 도스트예프스키의 작품을 접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두 문호의 작품은 무엇인가 상당히 교훈적이고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읽으면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얻은 것 같지만 그냥 즐기기에는 무거운 감이 있다. 죄와 벌을 읽고 그냥 재미있다고 넘어갈 수 있겠는가, 아니면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혹은 톨스토이 단편선을 읽고 그냥 재미있게 읽었다고 넘어갈 수 있겠는가? 아니다. 그것들을 읽는 순간부터 머리를 팽팽 돌기 시작한다. "러시아 문학은 왠지 읽기 난해하고, 머리가 팽팽 돌아가게 만드는 철학서에 가까운 책이다." 내가 러시아 문학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편견이 이것이다. 그렇지만 체호프의 책은 상당히 다르다. 그냥 읽는 것이 즐겁다. 재미있다. 들고 다니면서 어디에서나 읽어도 편안하다. 그러면서도 천박하지 않다. 가볍지도 않다.
체호프의 성장 배경이 그래서인지 이 책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둡다. 굴이라는 첫 소설부터 시작해서 사회배경이라든지, 경제적인 부분이라든지, 사람들의 생각이라든지 패배주의도 나타나고, 굶주리기도 하고, 돈이라는 천박한 것들에 의하여 휘둘리기도 한다. 부인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장부를 펴서 손해본 돈을 헤아려 볼 정도로 몰인정하기도 하다. 진정한 사랑이라고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것이 불륜이요, 평생 상자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도 있다. 체호프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면면이 이렇게 우울하다. 그렇지만 이 우울함 때문에 눈을 돌리는 순간, 우리는 그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된다. 긴타스의 말처럼 체호프식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읽었던 책이 생각 버리기 연습이다.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갖기 위해서 자기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는데 묘하게도 바로 다음에 읽은 이 책에서는 마음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보다는 그냥 자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기괴스럽고, 때로는 우습기도 하고, 때로는 벽창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체호프식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다.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는 것. 문학이란 굳이 계몽적이지 않아도 좋고, 억지스럽지 않아도 좋다. 그냥 삶을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여도 좋다. 상자 속에 갇혀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등장 시켜도 좋다. 자기 욕심에 빠져서 인생을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아도 좋다. 그것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며,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다. 이게 바로 체호프식의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러시아 문학에 대한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준 cyrus님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