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먼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에 대한 세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본다. 

 에피소드1 

  휴가철만 되면 난다긴다하는 인사들의 휴가철 도서 목록이 중요한 이슈로 떠 오른다. 얼마나 책을 읽지 않으면 휴가 기간에 저렇게 생색을 내면서 나 책을 읽습니다라고 광고할까 하는 생각도 들어 씁쓸하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책을 읽으면서 사회를 읽으려는 눈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을 하다. 리스트에 오르는 책들의 면면이 국제 관계나 자기 계발서에 머무르는 것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정치인들이 휴가를 가면서 "불편해도 괜찮아", "시민의 불복종", "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 "삼성을 생각한다." 같은 책들을 가져간다면 이 나라가 훨씬 더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혼자만의 상상 속에 빠져도 본다. 

  올해도 무슨 책들을 가져가나 궁금한 마음에 도서 목록을 쭉 훑어 보던 중 신기한 책을 하나 발견했다.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해서 박근혜씨를 비롯한 많은 정치인들이 가져가는 책의 목록에 이 책의 이르이 버젓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행보와 정의라는 말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혼자만의 상념에 다시 한번 빠져들면서 사놓고 아직 읽지 않고 뒤로 미루어 두었던 책을 펼쳤다. 궁금해서였다. 도대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무엇이길래 내 기준에서 생각하는 정의와 거리가 먼 행보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던 그들이 휴가를 가면서까지 가져가겠다고 하는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이 이 책을 읽게 된 첫번재 이유이다. 

  에피소드2 

  알라딘 서재에 올라오는 글들과 내가 즐겨 찾는 이들의 글은 꼼꼼이 읽어 보는 편이다. 그런데 그렇게 올라오는 글들 중 10~20% 정도는 이 책에 관한 글들이었다. 10~20%의 비율이라고 무시할 것이 아니다. 매순간 알라딘에 올라오는 많은 글들이 10개 중 1~2개는 이 책에 관한 것이라면 무시할만한 숫자가 아니다. 오히려 더 관심을 가지고 꼼꼼이 체크해야 한다. 게다가 이 책에 관련된 글들은 단순히 리뷰 수준이 아니라 이 책을 비판하기도 하고, 옹호하기도 하면서 꽤 활발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알라디너들이 이렇게 열정을 보이는 책이라니..이런 책은 꼭 읽어봐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을 읽게 된 두번재 이유이다. 

  에피소드3 

  이 책을 구입해 놓고 한달이 지났다. 절반쯤 읽다가 지루해서 잠시 외도를 했는데, 그 외도가 그렇게 오래 갈 줄이야. 장장 보름을 수호지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열권을 쉼 없이 다 읽고 나서 다시 이 책을 읽으려니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중에 도저히 이 책을 볼 수 없는 곳이라 생각한 장소에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그곳이 어디냐? 놀라지 마시라. 영화마을이다. 영화마을은 주로 장르 소설이나 만화책, 그리고 DVD를 대여하는 곳이다. 내가 주로 출몰하는 곳 중에 하나인데 하루는 새로나온 만화책이 없을까하는 기대감으로 영화마을에 들렀다가 신간 코너에 꽂혀 있는 이 책을 보았다. 주인 아저씨가 혹 실수로 자기가 보던 책을 꽂아 놓았나 했더니 아니었다. 워낙 베스트셀러다 보니 간혹 찾는 사람이 있어서 일부러 구해다 놓았다고 한다. 우석훈씨가 그랬던가? 사회과학 서적은 2~3만권 팔리면 대박이라고. 그럴 정도로 인기가 없는 분야의 책이 재밋거리를 제공하는 영화마음에 꽂혀 있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흥미거리로 다가왔다. 이게 내가 이 책을 마지막가지 읽게 된 세번째 이유이다. 

  왜 이렇게 긴 부분을 리뷰를 쓰기 전에 할애하는가? 이 책이 얼마나 세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지 말하기 위함이며, 돌풍을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인지가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나의 소감이자 결론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내가 주의 깊게 살펴본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의의 주체에 대한 이야기요, 다른 하나는 정의의 가치 중립에 대한 이야기이다. 

  첫째 정의의 주체가 누군인가?

  이 책은 정의에 대하여 크게 두가지의 태도를 취한다. 정의를 공동체의 입장에서 볼 것인가, 아니면 개인의 입장에서 볼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시작해서 존 룰즈, 마이클 월쩌까지 많은 철학자들의 입장과 사상을 소개하지만 결국 샌델이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정의란 공동체의 영역인가, 아니면 개인의 영역인가? 정의 자체를 정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의를 고민하고 다루어야 하는 주체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한다는 샌델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왜 정의를 다루는 주체가 중요한가? 여기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정의는 정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기 때문이다. 정의가 이렇게까지 귀걸이가 되고 코걸이가 되는 순간 정의는 정의가 아니요 부정의가 된다. 이미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보고 있지 않은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불의가 자행되지 않는가? 정의와 법치라는 미명하에 사회적이 약자들을 떼쟁이 혹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빨갱이요 적으로 만들어 철저하게 짓밟아 버리지 않았는가? 용산에서, 대추리에서, 상암동에서, 종로에서, 광화문과 시청에서, 그리고 멀리 부엉이 바위에서. 정의가 강물처럼 공의가 하수처럼 흐르는 아모스 선지자의 꿈은 그의 후예로 자처하는 한국 기독교에 의하여 철저하게 부정되고, 나만을 위한 혹은 우리만을 위한 정의로 왜곡된지 오래이다.  

  왜 그럴까? 정의를 개인의 차원으로 끌어 내리기 때문이다. 정의를 개인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덕목으로 치부해버리고 한계지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무책임함 때문이다. 샌델은 분명히 이 부분에 지적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좋으나 이것이 도를 지나쳐 공동체의 정의라는 덕목, 공공선이라는 부분을 무시해 버린 것이 이 시대의 문제점이라는 그의 판단이 대한민국의 현실과 꼭 들어 맞기에 이 책이 그렇게도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분명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있다. 공공선을 이야기하고, 공동체의 책임과 정의를 이야기하면서 샌델은 서사적인 역사를 말한다. 그런데 그 논리가 어디선가 많이 봐왔던 논리와 흡사하다. 파시즘과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의 논리와 샌델의 이야기가 교묘하게 같이 얽힐 수도 있겠다 싶다. 이 부분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정의의 주체에 관한 논의는 자칫 전체주의로 흐를 수도 있지 않을까? 

  둘째 가치 중립적인 정의는 존재하는가? 

  지금까지 정의에 관한 논의, 법치에 관한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것,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하나 있다. 정의는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샌델은 의문을 표한다. 진정으로 가치 중립적인 정의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샌델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례로 서구 사회를 만들어 온 기반인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떠나서 내리는 가치판단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샌델은 선언한다. 한 가지 예로 인공유산을 들수 있다. 우리가 흔히 낙태라는 용어로 사용하는 인공 유산은 기독교 특히 가톨릭과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이다. 인공유산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인공유산이라는 가치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려고 하지만 이 또한 낙태라는 말로부터의 가치 중립 혹은 반대를 의미하기 때문에 낙태라는 용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가치 중립이라는 말에 그렇게 목숨을 거는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꼭 가치 중립적이어야만 하는가? 절대로 가치 중립적일 수 없고, 가치 중립적이어서도 안된다. 가치 중립적이라는 말은 곧 우리의 정치적인 책임과 견해를 포기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우리가 어떤 사안에 대하여 판단을 하고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절대로 가치중립적이어서는 안된다. 가치중립이란 말에 현혹되어서 자기들의 정치적인 입장과 이득과는 상관없는 한나라당에 표를 던지고 있는 답답한 대중들이 우리 주변에 널리고 널리지 않았는가?  

  샌델은 확실하게 말한다. 자신의 가치와 입장을 포기하지 말라.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정의는 불의가 되고, 정치는 쇼가 되고 자위의 도구가 된다고. context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text는 존재하지 않는다. context에 맞추어 text를 해석하는 것, 나 자신의 삶에 비추어 정의를 해석하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갖게 된 결론이다. 

  그렇다면 사회가 너무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너무 소모적인 논쟁이 발생하지 않겠는가? 너무 때 이른 걱정은 아니함만 못하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건설적인 에너지 소모와 토론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있었는가? 당연한 것은 걱정의 대상이 아니라 인정의 대상이다. 전혀 반론도 없는 만장일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다. 제발 반장선거만도 못한 국회의원 선거는 그만하고 일단 한번 해보자. 더 나아지기 위한 에너지 소모는 낭비가 아니라 투자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정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실천을 다짐한다.  

  여러가지 고민과 논란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충분히 읽을만한 책이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은 정치인들이 이 책을 휴가 때 읽겠다고 가져갔는데 공공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지, 특히 10장의 주제와 내용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앞으로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면 이들이 이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대번에 알아챌 수 있으니 거짓말은 못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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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09-06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억만년째 방치중인데...
이런 내용이라니 읽어볼만 하겠는걸요~

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saint236 2010-09-06 13:46   좋아요 0 | URL
한번 읽어 보세요. 읽어 볼만 합니다.

마녀고양이 2010-09-06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엄청난 선전을 저도 봤는데,
저는 선전 너무 하는 책은 읽기 싫어지는 청개구리 성향이.. ㅡㅡ;;
그런데 세인트님의 리뷰에 맘 고쳐먹습니다.

saint236 2010-09-06 23:12   좋아요 0 | URL
선전이 엄청나긴 했죠? 아프님은 강의가지 다녀 오셨다던데. 그나저나 샌델의 생명 윤리도 결국 샀습니다.

책 읽는 아저씨의 회심 2010-09-10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출간되자 마자 구입해놓고서도 아직 읽지 못한 책입니다.
리뷰를 보니 조만간 읽어야 할 거 같네요... ^^

saint236 2010-09-10 10:10   좋아요 0 | URL
책은 읽어야 맛이죠^^ 한번 읽어 보세요. 재미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