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여, 낮은 곳에 서라
한완상 지음 / 포이에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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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 성서의 복음서에 보면 변화산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한 산에 올라가셨다. 산 꼭대기에서 기도하던 중에 예수님의 용모가 신비롭게 변화하더니 홀연히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의 내용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십자가를 지고 죄인의 모습으로 처형된다는 것이다. 대화의 내용을 듣지 못하고 모세와 엘리야를 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가서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선생님 여기 터가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 역사상 이렇게 위대한 선지자였던 모세와 엘리야를 볼 수가 있다니 말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여기에 집을 짓고 꾹 눌러 앉으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제자들이 이러한 제안을 하던 바로 그 순간 산 밑에서는 귀신들인 아들을 데리고 와서 간절하게 예수님을 찾는 한 아버지가 있었다. 

  서평을 쓰기 전에 왜 뜬금없는 성경의 내용이냐구? 변화산에서 제자들이 저지른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한국 교회가 똑같이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고, 고난받는 이들, 병자들, 죄인으로 사회에서 따돌림 당하는 낮은 자들을 위하여 없는 시간도 쪼개어 돌아다니시는데, 소위 예수님의 수제자요 애제자라는 사람들이 그런 예수님의 마음과 정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 참 미련하다. 세 제자의 미련함을 비판하는 한국 교회도 크게 다를바가 없다. 어느새 한국 교회는 성공이라는 가치관에 혼을 팔아버려서 모세와 엘리야에서 홀린 제자들처럼 변화산 꼭대기에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아니 오히려 기를 쓰고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 한다. 그러한 이들에게 산 밑에서 고통받는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의 눈물이 눈에 들어 올리 없고 한숨소리가 귀에 들릴리 없으며 그 고통을 헤아릴 수도 없음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변화산 꼭대기을 대한민국의 상위 1%로, 제자들을 한국 교회로,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를 비정규직을 포함한 빈곤층으로 치환하여 생각하면 현재 한국 교회의 실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진보든 보수든, 친MB든 반 MB든 한국 교회가 장로 대통령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이상 그들은 모두 꼭대기를 사랑하며 오르려는 세 제자일뿐이다. 얼마 전 한상렬 목사가 방북하여 MB정권의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그의 비판을 듣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이 사람도 결국은 똑같구나 생각한 이유가 무엇이냐? 다름아닌 "이명박 장로"라는 호칭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 실책을 비판하는 그 자리에서 이명박 장로라는 호칭은 내가 보기에 절대로 불필요한 호칭이다. 목사로 꾸짖고 싶으면 교회에서, 아니면 교계에서 할 노릇이지 정치의 자리에서 할 노릇은 아니다. 차라리 쥐박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물론 공적인 자리에서 아무리 맘에 들지 않아도 그렇게 부르는 것은 실례를 넘어 무례인 것을 감안한다면 그가 이명박 장로라고 부른 것은 실수를 넘어 무개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지금 한상렬 목사의 정치적인 견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한국 교회의 꼭대기 지향주의를 비판하기 위하여 그의 말을 인용하고 있을 뿐이다. 

  비단 이뿐이랴? 몇년전 상암 월드컵 운동장에서 교계의 난다 긴다하는 목사들이 전부 모여 회개집회를 가졌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옥한흠 목사가 대표로 기도하면서 "주여 우리를 살려 주시옵소서. 우리는 죄인입니다."라는 요지의 설교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설교를 하면서 그는 강남에서 대형 교회를 세우고 목회하면서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한 자기의 잘못을 철저하게 회개하였다. 그리고 함께 모인 모든 성도들에게 1907년의 부흥의 불길이 다시 타오르도록 회개의 운동을 시작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상암 운동장 바로 옆에서는 이랜드 계열의 비정규직원들이 모여서 김성수 회장과 이랜드 운영진의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경영정책과 처사를 규탄하고 있었다. 그 기사를 보면서 한 목사님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있다. "과연 하나님은 어느 편의 이야기를 들으셨을까?" 적어도 상암 월드컵 구장 안의 기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그렇게 열렬히, 그리고 철저하게 회개했던 사람들이 전혀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어저면 그것은 한편의 멋지게 잘 짜여진 종교적인 쇼가 아니었나 싶다. 한국 교회가 얼마나 꼭대기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얼나마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님을 외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리라.

  이 책은 나온지 30년도 더 된 책이다. 그런데 정말 기독교인으로서 쪽팔린 것은 이 책이 오늘날 한국 교회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지난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 교회가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대도시의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한국 교회가 돌아가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한부분을 인용하자면 이렇다.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 배고픈 사람에게 좋은 것으로 배불리고 싶어 하시는 예수의 정신을 우리 현실에서 다시 한 번 되살려야 할 때입니다. 가난한 자, 배고픈 자,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근로자를 외면하고 학대하는 교회와 크리스천이 있다면, 이는 결국 예수를 외면하고 학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주님이 지극히 작은 우리의 형제와 이웃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P 178) 

  당시에 이랜드는 없었다. 그럼에도 이랜드를 비롯하여 기독교 계열의 기업체에서 일어나는 일을 저자는 비판하고 있다. 아마 당시의 다른 기독교 계열의 기업이 그랬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러한 일이 고쳐지지 않는가?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지막으로 기독 기업인은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음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위한, 크리스천에 의한, 민중의 산업'을 추진하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산업은 곧 사회복지와 사회 정의를 위한 사업이고, 크리스천에 의한 사업은 청부의 실현자들이 주관하는 사업이며, 민중의 사업이란 민중을 수탈하지 않고 근로자를 저임금으로 착취하지 않으며 민중의 이웃이 되는 일에 모범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민중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된다는 뜻입니다.(P 188 ~ 189) 

  기업의 운영진들이 기독 기업인이 아니라 교회를 다니는 기업인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기업체에 들어오지 못하고 자본주의 논리로 충만하다. 단지 기독교라는 가면을 쓰고 행세를 하고 있을 뿐이다. 왜 이런 양면적인 태도를 취하는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자면 많은 이윤을 포기해야 할 것이요, 기독교인이라는 타이틀을 포기하자면 1/5에 이르는 기독교인이라는 시장을 잃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결국 그들도 이곳이 좋사오니 하면서 변화산 꼭대기에 부동산을 사두고 있는 것이다.  

  비단 기업만의 문제일 것인가?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변화산 꼭대기에 부동산을 사두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그것을 잘못되었다 가르쳐야 할 목사중에도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포장하면서, 비난하는 이들을 마귀새끼로 몰아간다. 그저 답답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의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님을 외면한다. 암하레츠들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정죄한다. 

  이런 한국 교회를 향하여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님게서 말씀하신다. 

  "한국 교회여, 공감의 능력을 회복하라. 변화산 꼭대기에 부동산을 사두지 마라. 그곳이 바벨탑인줄 너희는 정녕 모르느냐?" 

  한국 교회가 이러한 예수님의 꾸지람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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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08-27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여~다섯번째 문단이여...30년이 아니고 3년 아닐까여?

저는 기냥은 읽지 않을 책이지만,이렇게 리뷰로 간접 독서 하게 되네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saint236 2010-08-27 12:44   좋아요 0 | URL
30년 맞습니다. 예전에 나왔던 책을 이리저리 손봐서 다시 낸 책이죠.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오늘의 군부독재라는 구절이 나오기도 하죠.^^

yamoo 2010-08-31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십니다~~~아, 한완상 선생이 저런 책도 쓰셨군요..다시 간행 됐다니 얼른 구해봐야 겠습니다~ 세인트님 서재의 기독교 서적 리뷰는 정말 최곱니다..제 맘이 다~ 후련합니다..제가 하고 싶은 말을 책을 읽고 좌~~~악 해주시니...넘넘 고마운거 있죠^^

아, 근데 혹시 아우구스트 프란츠의 <세계교회사>읽어 보셨나요?

saint236 2010-09-01 10:24   좋아요 0 | URL
아뇨. 한번 구해서 읽어봐야겠군요. 요즘은 열심이 토저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한완상씨의 책이 날카로우면서 진보성향이라면 이어령씨의 책은 보수적인 면이 있으면서도 표현이 일품이고요, 권정생 선생님의 책은 마음을 따듯하게하면서 커다란 깨달음을 주지요. 위의 책은 예수 없는 예수 교회와 함께 읽으면 좋을거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