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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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회장이 전격적으로 복귀를 선언했다. 삼성 그룹의 대표이사가 아니라 삼성전자의 회장으로 복귀했기에 주주총회같은 공식적인 절차를 밟을 필요는 없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주주총회를 우회하기 위한 하나의 꼼수일 뿐이다. 복귀를 선언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 

  도요타를 비롯하여 여러 초국적 기업의 현 상황을 바라보면서 위기 의식을 느끼셨단다. 그래서 구사의 일념으로 일선 복귀를 선언하셨나 보다. 그런데 왜 난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것일까?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는 말이 왜 자기의 과거를 묻지 말라, 뭘 그런걸 꼬치꼬치 캐물으려고 하느냐라는 말로 들릴까? 아침부터 마음이 참 아프다. 이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의 실체란 말인가? 법에 저촉되는 행동을 할지라도 돈으로 틀어막을 수만 있다면, 국가 경제 운운하면서 협박할 정도의 재력을 가지고 있다면 초법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의 실체가 아니란 말인가? 그저 조금 근신하는 척하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혹은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이 크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특사 처리되는 대한민국의 웃기는 꼬락서니들 때문에 국민들이 자조적으로 개한민국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삼성을 생각한다는 벌써 한 달 전에 읽었다. 그런데 그 동안 서평 쓰기를 미뤄왔다. 책이 어려워서도 아니다. 술술 넘어가는 내용이고 그동안 기사에 나왔던 부분들과 많은 부분들이 겹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서평을 쓰기가 꺼려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저 이 사실이 씁쓸하고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에서 법에 기대어 만민에게 평등한 법치를 기대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나 속상해서였고, 이런 나라에서 나뿐만 아니라 내 아들과 딸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짜증이 나서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1988년 지강헌이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했던 철지난 말이 아니라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사회질서라는 점이 애석하기만 하다.  

  왜 미국의 엔론은 해체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이보다 더한 삼성은 면죄부를 받고 존재할 수 있을까? 그것도 법의 이름으로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삼성은 과정은 위법이나 결과는 합법이라는 판결을 내리는 대한민국 법조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홧김에 쓰는 서평인지라 두서가 없다. 정말 쓰기 싫은 서평이다. 그럼에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서 자판을 두드린다. 오늘부터 분명히 선언한다. 앞으로 나는 삼성 물건을 더 이상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기왕에 산 물건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앞으로 삼성 외에 다른 대안이 있다면 삼성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불편하고 고생스럽더라도 말이다. 

  문득 2005년 8월 삼성 X파일 떡값 검사 공청회에서 했던 노회찬씨의 "법은 만민에게 평등하지 않습니다. 법은 만명에게만 평등합니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날이다. 법이 만명에게만 평등한 지금이 진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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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3-24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에는 엔론보다 더 쎈 기업들이 많으니 엔론이 해체된거겠지요.국내에서 삼숑,휸대,엘쥐같은 걸 해체할수 있는 강심장을 가진 정치인이 있을까요?

saint236 2010-03-24 14:21   좋아요 0 | URL
속상합니다. 정말로. 이러면서 자식들에게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치겠죠?

호기심만빵 2010-03-26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읽는 내내 씁쓸한 기분이였습니다. '우리나라 법은 평등하지 않다는것'이 무섭다고나 할까...

saint236 2010-03-26 11:12   좋아요 0 | URL
정말로 서평을 쓰고 싶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이건희 회장 복귀만 아니었다면 안 썼겠죠. 이러고도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라는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