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를 정밀하고 부지런히 하기로는 포희씨만한 사람이 없다. 그 정신과 의태(意態.마음의 상태)는 천지만물을 포괄망라하고 만물에 흩어져 있으니, 이것은 다만 글자로 쓰이지 않고 글로 되지 않은 글일 뿐이다."
가장 높은 단계의 독서를 말하는 연암 박지원의 글이다. 연암은 팔괘를 만들었다는 고대 중국의 전설적 인물 포희씨를 가장 정밀하고 부지런히 책을 읽은 사람으로 평가한다.
문자도 없었던 그 시대에 책이 있을 리 없다. 박지원은 하늘과 땅을 살펴 팔괘의 원리를 깨달은 그가 천지만물이라는 살아있는 책을 읽어냈다고 풀이한 것이다.
박지원의 이 글은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의 저서 '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태학사 펴냄)에 실린 논문 '고전 독서 방법론의 양상과 층위'에서 인용한 것이다.
정 교수는 이 글에서 옛 선인들의 글 읽기를 반복해서 소리 내 읽는 인성구기(因聲求氣)의 독서, 정보를 계열화하는 독서, 읽으면서 의문을 품고 심층적으로 읽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독서, 글쓴이의 생각으로 거슬러 올라가 융합되는 이의역지(以意逆志)의 독서, 텍스트를 넘어서는 독서로 구분하고 박지원 등이 강조한 '텍스트를 넘어서는 독서'를 가장 높은 단계의 독서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이와 같은 선인들의 여러 독서법이 지금의 교육 현장에서도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성구기 독서는 유아기 모국어 문장 학습에서, 정보를 계열화하는 독서는 논술 지도에서, 격물치지 독서는 토론 수업에서, 이의역지 독서는 문학작품이나 역사에서, 그리고 텍스트를 넘어서는 독서는 영화와 그림, 사회현상을 읽는 데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어 이 독서론이 글쓰기 교육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현대적 독서론ㆍ작문론의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책은 저자가 1996년부터 쓴 고전문장과 관련한 논문을 모은 것으로, 박지원의 예술론과 산문미학을 정리한 전작 '비슷한 것은 가짜다'의 자매편 격이다.
중앙일보 문화 신간소개 : http://news.joins.com/article/052/4185052.html?ctg=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