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지> 가제본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삼한지 세트 - 전10권
김정산 지음 / 서돌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조금 바쁜 일이 있어서 그랬지만 근 10일을 이 책에 몰두해서 살았다. 많이 읽는 날에는 두 권에서 두 권반 정도, 조금 읽는 낡에는 반권 정도. 그러다 보니 평균 하루에 한권은 읽은 셈이지만 실상 그 열흘 중에도 놀고 먹은 날이 있거나, 잠으로 충당한 날이 있으니 정작 책을 읽은 것은 일주일 정도일까? 매일 인문 철학과 사회과학 서적들만 읽다가 간만에 문학책을 읽으니 책장이 쭉쭉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나? 게다가 책이 한번 잡으면 놓기 힘들정도로 재미가 있기에 책장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고, 이렇게 넘어간 책장을 헤아리는 재미가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니 이 책이 가진 매력이 가히 마력적이지 않겠는가?  

  책을 받아서 읽으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이 저자의 서문이다. 중국에 삼국지가 있어서 어릴 때부터 중국의 역사에 관해서 관심을 갖게 되고, 중국의 영웅 호걸을 우러르게 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는 저자의 말이 오버 센스로 들리긴 하지만, 분명 우리 나라에도 역사가 있고, 그 역사를 이끌어간 영웅 호걸들이 있는데 그들에 대하여 딱하리만치 무지하다는 그의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중국의 동북공정 이야기만 나오면 발끈하지만 정작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조차 없고, 국사마저 선택으로 가르치는, 그것도 암기할 사항들만 잔뜩 늘어놓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피하려고 하는 현 세태에 한가롭게 한국의 영웅을 언급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 아니겠는가? 차라리 그 시간에 이건희, 정주영, 김우중의 성공담을 읽고 돈벌 궁리를 하나라도 더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일게다. 그럼에도 이 미친 짓을 선뜻 선택한 이유는(문학 분야 서평단들도 피했던 10권의 압박을 선뜻 택했으니 미친 짓이 아니겟는가?) 그냥 재미있어서이다. 원체 이런 것들을 재미있어하는 편이다보니, 게다가 서평써주고 한질을 받는 것이 어디겠는가라는 단순계산에서 시작을 했는데, 예기치 않게 지난 열흘이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얼마전 MBC에서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했었다. 고공의 시청율을 기록하면서 국민 드라마로 자리잡았지만 글쎄다 과연 선덕여왕을 사극으로 분류해야 할까? 곳곳에서 역사적인 사실을 제작자의 입맛에 따라 왜곡하고, 시청자들의 의견에 따라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는 드라마를 과연 사극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단 선덕여왕 뿐이랴? 주몽이 그렇고, 이순신이 그렇고, 태왕사신기가 그렇지 않은가? 그저 사극에서 이름만 빌려온 그런 드라마를 열심히 봐왔던 사람이라면, 특히 선덕여왕을 참 열심히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은 가히 충격적일 것이다. 드라마 선덕 여왕이 얼마나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했는지 이 책을 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덕만은 천명의 아우가 아니라 언니라는 점, 그리고 덕만이 여왕에 등극했을 때의 나이가 50대라는 것, 덕만을 향한 로맨스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담이 사실은 왕의 아들이 아니라 노래자이의 아들이라는 것이 간단한 예이다. 

  각설하고 중국의 삼국지에 비견되는 역사 소설을 쓰는 것이 저자의 소망이라고 했는데 일단 그 소망은 이룬 것 같다. 게다가 이 책은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쓰려고 철저하게 노력했기 때문에 70% 정도의 사실에 30% 정도의 저자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완성된 작품이다. 그러니 왠만한 역사 교과서보다 삼국의 정세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삼한을 셋으로 나누어 정족지세를 유지했던 고루려, 백제, 신라의 형세와 이들이 어떤 인물을 만나서 어떻게 발전하고 어떤 꿈을 꾸었는지, 그리고 왜 유독 변방의 구석 땅 신라에서 삼한 통일을 이루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삼국의 역사에 흥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쯤을 읽어 보는 것도 꽤 유익할 것이다. 

  이 책은 삼국사기를 그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삼국유사와 여러 역사책에 나오는 야사까지 포함시켜 역사적인 내용에 흥미롭고 신비한 분위기를 덧 입혀 연출한 책이다. 어릴 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어가면서 이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내용이고, 저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내용인지 알아가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참고로 드라마 선덕여왕과 왜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가? 드라마 선덕여왕이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한 것도 참 많지만 역사책을 참고하였다고 해도 그 진위여부가 논란이 되어 위서로 분류되는 화랑세기를 기본으로 했기 때문이다.  

  10권이라는 긴 분량의 책을 읽으면서 삼국의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가장 강대했던 고구려도 아니고, 넓은 곡창지대를 가긴 백제도 아니고 변방의 작은 나라요, 동네 북이었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유가 어디 있을까? 의자왕이 3천 궁녀를 거느리고 음행을 일삼아서라고 무식한 소리를 하지 말자. 연개소문의 폭정때문이라고 그저 배운대로 말하지 말자. 당나라 때문에 신라가 통일해서 한반도가 작아졌다는 무식한 소릴랑 그저 속으로만 하자. 왜 신라일까? 저자는 이렇게 평가한다. 

  삼국이 서로 존망을 걸고 각축하던 시기에 묘하게도 하늘은 삼국이 골고루 불세출의 영웅 한 사람씩을 점지해주었다. 바로 성충과 연개소문, 그리고 김유신이다.
  그러나 백제 성충은 의자왕의 방탕함으로 그 뜻을 펴지 못했고, 연개소문은 비록 천하를 호련했으나 수명이 짧아 일찍 죽었다. 천명과 소임을 끝까지 마친 이는 오로지 김유신 한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
  제아무리 뜻이 높아도 우뚝하면 꺾이기 쉽고, 당대의 형편과 시류를 벗어난 독선적인 기개는 설혹 뒷사람을 유혹할 수는 있을지언정 스스로는 대개 비참한 말로를 걷게 마련이다. 누가 당대에 실패한 영웅을 진정한 영웅이라 하겠는가. 형편 가운데 뜻을 세우고 시류 속에서 기개를 펼친 김유신과 같은 이가 진실로 참다운 영웅호걸이 아니랴.(10권 173페이지) 

  같은 시기 삼국에 모두 걸출한 영웅이 났지만 뜻한 바를 이루고 이루지 못한 까닭은 그들이 일할 자리를 만들어준 국가에 있다고. 성충과 연개소문은 세상을 경영할만한 뜻과 재주를 가졌지만 결국 그들이 몸담고 있는 국가가 그들이 일할 기반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반면 변방의 소국 신라는 김유신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마음껏 일하도록 있는 힘껏 뒤를 밀어 주었다. 그렇다면 결국 영웅은 그 사회의 포용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오늘날 우리 주변에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지 않는 이유가 과연 여기 있지 않은가? 서로를 깎아 내리고, 흠 잡고, 끌어 내리고 짓밟기에 몰두하고 있는 이 곳에서 내편 아니면 적이라 생각하는 편협한 시대 속에서 영웅은 과연 다시 등장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아직 더 난세의 풍파를 겪어야 하는 것일까? 탁월한 재능과 그 재능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파트너와 시대를 만난 김유신이 한없이 부러워지는 하루이다. 

사족 

1. 삼한지를 읽는 내내 황산벌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 그럴까? 

2. 오타. 9권 154p 각주 22 3번째 문단 5번째 줄 "외삼촌이 부여풍 => 외삼촌인 부여풍"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행 2010-02-18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서평에 감사드립니다.
전체를 보는 눈이 보기에 선하고 뻥뚫려서 좋습니다.
좋은 서평 남겨 주셔서 저에겐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