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는 마음은 남다르다. 우선 추억의 영화다. 옛 영화를 보면 왜 그리도 애틋하고 아련해지는지. 1998년 산이다. 출연한 배우도 이젠 노년으로 접어 들었다. 특히 영화속 김 캐리의 풋풋함과 유머러스한 연기란 참...! 

 

처음 봤을 당시에도 좀 충격적이다 싶은 게 있었는데 지금 다시 봐도 세월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벽해 보인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렇게까지 완벽한 쇼를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니까 가능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의미하는 것에서 우리는 뭔가 조정 받고 있다는 묘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요즘 각 방송국마다 보여주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은 이 영화의 오마주라고 보면 될 것이다. 어느 정도의 컨셉과 동선을 보며 킬킬대고 웃다보면 TV가 사람을 바보 만들지 싶다. 그뿐인가, 우린 감시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영화는 이걸 더불어 꼬집어 주고 있다. 허위만이 진실이란 묘한 역설이 성립되는 느낌이다.

 

솔직히 올초 코로나가 터졌을 때 정말 믿고 싶지 않았다. 혹시 뭔가에 조정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날씨와 기후도 조작한다는 말이 있던데 말이다. 누군가 코로나의 아비규환으로 몰아넣고 킬킬대고 웃으며 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의심을 했더랬다. 물론 지금은 그 보다는 인류가 언젠가 치르게 될 재앙을 치르고 있는 거겠지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긴 하지만 그런 상상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어딜 갈 때마다 QR 코드를 찍어야 하는 것도 뭔가 편치마는 않고. 

 

그런데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님께선 이걸 꼭 나쁘게만 보지 않고 있어서 좀 의외이긴 했다. 그는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디스토피와와 유토피아 동시에 보고 있는데 지금 유럽의 통제 불능의 상황을 보면 세계는 디스토피아로 갈수도 있고, 비교적 코로나 방역을 성공적으로 하는 한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를 보면 유토피아로 갈수도 있다고 했단다. 결국 통제만이 살 길인가 싶기도 한데 그것을 꼭 나쁘게 보지마는 않는 것 같았다. 이를 달리 보면 서로를 위한 마음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즉 내가 그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나 역시도 피해 받지 않으려는 그 통제 가능함이 유토피아로 갈수도 있다나 뭐라나. 그렇게 보니 그런가 싶기도 하다. 뭐 영화도 나중에 해피엔딩 아닌가. 아, 나의 팔랑귀란...

 

아무튼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허리우드의 시스템이 부럽기도 했다. 그나저나 감독 아저씨는 요즘 뭐하시는지 모르겠다. 지난 2010년 이후 필모가 없는 걸 보면 은퇴하고 놀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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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1-06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코로나19로 3차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는 느낌도 들더군요.

stella.K 2020-11-06 19:21   좋아요 0 | URL
다들 그 얘기하죠.
지금은 또 그냥 덤덤하네요.
첨엔 진짜 큰 일 나는 줄 알았는데.
아, 이러면 안 되는데...
그저 빨리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어요.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에 <기생충>이 된 것에 대해 투덜거렸다는데 이 작품을 보니 과연 그럴만도 하다 싶다. 솔직히 <기생충>은 작품만 보면 나쁘지 않지만 이 작품과 비교하면 이 작품이 월등히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왜 아카데미는 <기생충>에 작품상을 수여했을까. 하긴 이 영화는 작품상만 안 탔다뿐이지 주요 부문을 석권하지 않았나. 그렇게 따지자면 나름 공평했다고 봐야할까?

 

이 작품 정말 스산하게 잘 만들었다.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긴 하지만 원 톱의 영화다. 한 명의 주인공이 임무를 완료할 때까지 이처럼 실존적이고 카메라가 끝까지 추적하는 영화 방식이란 쉽지 않아 보인다. 아마 큰 스크린에서 봤다면 엔딩 때 일어나 박수를 쳤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지난 주일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 설민석의 말에 의하면 발발 직후 전염병이 확산해서 세계1차 대전은 흐지부지 끝난 전쟁이라고 했다. 전쟁을 이긴 게 전염병이라니. 전염병 이길 장사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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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1-06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그 무엇도 심사위원이 무얼 중요시했는가 하는 게 문제라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긴 어려울 것 같단 생각을 했어요.

stella.K 2020-11-06 19:18   좋아요 1 | URL
그런 것 같아요.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잘 만드는 건 사실이지만
작품상은 좀 의외였거든요.
내부에 어떤 사정이 있겠죠. 한류 때문일수도 있고.
암튼 전 전쟁 영화 별로 안 좋아하는데
<기생충> 때문에 본 것도 있고 더빙으로도 볼 수 있어서
본 것이기도 해요.
자막 읽는 게 갈수록 귀찮아서..ㅋ
 

                                     

                       

 

오랜만에 연극을 보았다. 정확히는 스테이지 무비다. 즉 연극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 물론 중간중간 영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올레 틔비 회원 12년쯤 하니 이런 것도 보여준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함부로 공연장 가기도 뭐한데 괜찮은 시도 같다.

 

이 연극은 2인극이다. 황혼의 사랑을 그렸다. 내용은 그냥 고만고만 하다. 젊어서 테일러였던 홀아비가 독립을 한다고 예전에 알던 국밥집 할멈의 집에 들어가 하숙을 하다 사랑하고 사별하게 되는 과정을 사계절에 비유해 그렸다. 연극이란 장르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으니 스케일을 크게하기도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결국 배우의 힘이 작품의 성패를 가른다. 두 노배우의 연기가 볼만하다. 그래서 연극을 배우의 예술이라고 했는가 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대본이 좀 아쉽다. 조금 더 디테일하면 좋을텐데.  

 

우리는 노년의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늙어서 황혼 이혼하는 경우도 많고 송장 치워주러 결혼하냐, 늙어 무슨 로맨스냐며 거북함을 숨기지 않고 스스로도 위축되어 있다. 하지만 사랑은 나이를 타지 않는다. 노년의 사랑은 죽음이 가깝기 때문에 더 강렬하고 실존적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을 별로 어렵지 않은 대사에 잘 담아냈다. 나중에 할멈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데 그 장면에서 잠시 울컥했다.    

 

비록 TV이긴 하지만 괜찮은 느낌이다. 지금 공연계는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가 되면서 조심스럽게 공연을 재계하는가 본데 언제쯤이면 코로나가 물러가고 예전처럼 자유롭게 공연을 보러 다니게 될까 아득한 느낌이다. 미국의 브로드웨이의 살아 있는 전설이란 한 여자 배우는 살면서 별 일을 다 겪었지만 이런 때는 처음 본다고 절망적으로 말하면서 공연계의 도움을 호소한다. 미국이 이럴진대 우리나라 공연계는 오죽할까. 이렇게 스테이지 무비라도 보면 공연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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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0-22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연극연 배우를 눈앞에서 보면서 봐야하는 예술인데... 그쵸. 연극은커녕 극장 간지도 너무 까마득합니다. 공연이나 문화계 사람들도 정말 힘들것 같아요

stella.K 2020-10-23 18:50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연극을 영상으로 찍어 유료 상연하는 극단도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솔직히 연극은 돈 생각하면 못하죠.
연극 한다는 그것 하나 보고 할뿐인데
이런 기업에서 한시적로나마 도움을 준다면 좋을텐데 어떤지 모르겠어요.

페크pek0501 2020-10-23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다가 왜 재미가 없는 거지, 하고 보면 디테일 문제였어요. 작가도 건성으로 쓰고 독자도 건성으로 읽게 되어요. 독자를 그 내용에 빠져 들게 하는 핵심적 요소가 디테일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stella.K 2020-10-24 15:31   좋아요 0 | URL
연극이 나쁘진 않은데 좀 아쉽다는 거죠.
그런데도 두 사람이 90분 정도되는 연극을 이끌어 간다는 게
새삼 놀랍더군요. 두 사람의 연기는 정말 괜찮았어요.^^
 

올해는 이래저래 코로나에 발목 잡힌 한 해로 기록될테지만 이게 또 아주 나쁜 것마는 아니어서 전반으로 울고 웃는 분야가 있는가 보다. 물론 당연 우는 분야가 더 많겠지만 말이다. 그중 의외로 도서 분야야가 웃고 있단다. 그동안은 매년 울상만 지었다고 하는데 올해는 반전의 해로 거기엔 코로나가 효자 노릇을 했다는 것. 사람들이 집에만 있게되니 비로소 책 읽을 마음도 생겼다는 것이다. 특히 오디오북의 약진이 눈에 띈다고.

 

나도 가끔 인터넷 서점에서 맛보기로 들어보곤 했는데 나쁘진 않지만 아직은 구매할 생각은 별로 없다. 나이가 좀 더 들고 책을 보는 게 어려워지면 모를까 현재로선 책이 주는 물성을 더 좋한다. 요즘 책이 얼마나 멋지게 잘 빠졌는가. 하지만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은 그 느낌을 100% 느낄 수가 없다. 아무리 디자인이 좋아도 덥개 씌운 예쁜 인형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문득 독서의 원형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일설에 따르면 원래 사람들은 책을 소리내어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묵독 즉 소리내지 않고 눈으로만 읽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전에 소리내어 읽은 사람은 놀랐다고 하지 않는가. 솔직히 난 소리내서 읽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 조용히 읽는 묵독이 맞는 것 같다. 요즘의 그런 진화된 형태의 독서 방법에 대해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난 역시 책은 종이책이 아직은 유효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책에 대한 욕심 있는 사람이라면 두꺼운 책에 대한 로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영원한 것 같지는 않다. 나이가 들면들수록 너무 두꺼운 책은 꺼려진다. 눈도 안 좋은데다 손목의 힘이 예전 같지가 않이 부담스러워지는 것이다. 덕분에 손목의 힘이 아직 남아있을 때 사 놓은 두꺼운 책들이 내 방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코로나로 책의 매출이 늘어난다고 하니 알라딘은 '집콕 독서의 도전, 1000쪽(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210883&start=pbanner)이란 기획전을 하고 있는가 보다. 그러다 보니 난 왜 이 코로나 시대에 그동안 쌓아놓은 이 1000쪽 내외의 책을 읽어 볼 생각을 못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안 그래도 본능은 어디 가지 않았을까? <한동일의 공부법>을 읽으니 갑자기 산에라도 오르는 마음으로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 놓은 박종호의 <불멸의 오페라> 1, 2권을 읽겠다고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오래 전 <박종호의 황홀한 여행>을 읽고 감동해 저 두 권의 책이 중고샵에 뜬 것을 보고 냉큼 샀다. 더구나 이 두 권의 책은 절판이다. 솔직히 절판 딱지만 안 붙어 있어도 아무리 싸게 팔아도 사지 않았을 것이다. 그놈의 절판이 뭐라고 살까 말까하다 과감하게 질러버렸는데 아직도 못 읽고 있다. 그게 벌써 4년 전 일이다. 작년 이맘 때 책박스를 집에서 탈출시켰는데 그때도 차마 내보내지 못했다. 책박스 수거하는 아저씨가 열 몇 박스나 되는 책을 날로 먹으려고 하는데 이 책을 어떻게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지금도 어디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는데 이 책을 깨우려면 또 들쑤셔야 한다. 

 

 

꿩 대신 닭이라고 마침 인연이 있으려니 모처에서 <도미니언>을 이벤트 한다. 이 책은 기독교가 어떻게 서양의 세계관을 지배할 수 있는가를 추적한 책으로 무려 800쪽이 넘는다. 이것도 순전히 한동일 교수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 도전한 것 자체는 후회하지는 않는데 정말 읽는 건 좀 고역이다. 하루에 25페이지씩 읽겠다고 했는데 그것 조차도 어떤 땐 지키지 못하는 날도 있다. 이제 겨우 반을 남겼다. 물론 서평 기일 또한 당연히 넘었다. 주최측에겐 좀 미안한 일이지만 늦게라도 완독하고 서평을 올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냥 완독과 상관없이 조만간 올려야 할 것 같다. 더 늦어지면 마음에 부담감이 쌓여 편치않게 되니.   

 

 <한동일의 공부법>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데, 가끔은 뭐 이런 분야를 연구하나 싶을 때가 있다. 그야말로 그거 공부 한다고 인류가 그렇게 크게 바뀔 것 같지 않은 분야 말이다. 한동일 교수만 해도 라틴어를 한국어도 풀이한 사전 같은 걸 누가 본다고 세븐일레븐이란 별명을 들어가며 (아침 7시에서 밤 11시까지 공부한다고 하여)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나 역시도 그렇다. 까짓 두꺼운 책 좀 안 읽는다고 살아가는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새삼 내가 왜 이러나 싶기도 하다. 그거 아니어도 읽어야 할 책은 쎄고 쎘는데 말이다. 

 

그런데 내가 <도미니언>을 읽으면서 느끼는 건 내가 참 공부 근육이 없구나 하는 거였다. 사람의 육체의 근육은 25세를 깃점으로 매년 얼마씩 감소한다던데 내가 학교를 졸업한 세월이 얼마며 그나마 학원 조차도 안 다닌 세월이 얼만가. 그동안 나의 공부 근육은 퇴화될 때로 퇴화되었다. 물론 난 지금까지 책을 손에서 놓은 책이 없는데 알고보면 그다지 어렵지 않은 고만고만한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았던 건 아닐까 반성됐다. 한동일 교수는 공부란 몸을 가두고 그냥 하는 힘이라고 했다. 몸을 가둔다. 우리의 몸은 편하고자 하면 한없이 편해질 수 있다. 물론 두꺼운 책을 읽는 것과 공부를 하는 것과는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두꺼운 책을 읽는 건 공부의 각을 잡아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인데 최근 읽고 싶은 두꺼운 책을 드디어 찾았다. 이건 정말 그렇게 밖에는 설명을 못하겠는데 그동안은 아무리 찾아도 못 찾았던 책이다. 그것은 양선희 기자겸 작가의 <여류 삼국지>다. 무려 5권이고 한 권 당 분량이 500페이지가 넘는다. 

 

여류란 단어가 붙어 무슨 시대착오냐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여성 작가가 썼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여류란 그 여류라기 보단 '여류(나余 흐를流)'로 나만의 스타일이란 뜻이란다. 즉 자기만의 스타일로 쓴 삼국지란 뜻이란다. 사실 삼국지는 중국 작가가 본류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이문열, 황석영, 정비석 같은 남성 작가에 의해 쓰여지기도 했는데 그렇게 따지자면 여류가 아닌 작품이 어디있겠는가. 그런데 양선희 작가는 이렇게 여류란 단어를 짖궃게 사용하므로 겸손을 가장한 차별화를 시도하려고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내가 이 책을 기억하기론 여성이 쓴 것도 그렇지만 여성을 위한 삼국지로 잘못 기억하기도 했다. 그렇다기 보단 여성의 관점에서 썼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여성이 보는 삼국지는 다를 수도 있으니. 어쨌든 이게 처음 발간됐을 때 한번쯤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곤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러다 최근 이 양반이 글쓰기에 관한 책을 내면서 다른 책은 뭐가 있나 찾아보다 우연히 발견하고 어찌나 반갑던지.

 

그런데 배포가 좀 큰 것 같긴하다. 여성으로 삼국지를 쓴 것도 그렇지만 최근에 쓴 책도 스스로를 '대기자'라고 했다. 그 대기자가 대기하고 있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기자만으로도 바쁠텐데 다른 소설도 계속 써 오기도 했다.

 

아무튼 난 평소에도 집콕족이라 특별한 독서 계획을 세우고 그러진 않았는데 알라딘의  기획전을 보니 별개로 잊고 있었던 책을 찾았겠다 나만의 두꺼운 책으로 <여류 삼국지>에 도전해 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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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0-22 0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만의 스타일이라는 여류의 뜻이 맘에 들어요 ^^ 저에게 두꺼운 책이란 그저 학교다닐때 교과서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ㅋㅋ 요즘 조금 지루한 집콕생활이 길어지다보니 긴이야기로 그 시간을 채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ㅎㅎ

stella.K 2020-10-22 18:42   좋아요 1 | URL
고전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버전으로 계속 나와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밝혔다시피 삼국지가 대표적인 것 같아요.
그런데 여성 작가가 그 행렬에 동참했다는 게 기대를 갖게 하더군요.
전 사실 삼국지 변변히 읽지 못했거든요.
전에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인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현대 버전으로
쓴 소설이 있는데 못 찾겠어요. 외국 작간데...
두꺼운 책 기회가 좋은 것 같은데 한님도 도전해 보시죠.^^

han22598 2020-10-23 05:59   좋아요 1 | URL
어릴때부터 책장에 삼국지 10권 떡하니 버티고 있었는데 ㅎㅎ
몇번 시도는 해봤는데 1권 또는 2권에서 항상 중도포기했었어요 ㅋ
도스님 책도 여러버전이 있나보네요.

여러버전 섭렵은 저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될 것 같고,
이번 기회에 길다란 이야기 한개라도 끝맺음 해볼께요. ^^

페크pek0501 2020-10-23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전, 좋은 생각이십니다. 저는 삼국지를 정비석 저자 걸로 읽었는데 총 6권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한참 독서에 빠져 지낼 때이긴 해도 꼭 끌리지는 않아서 10권짜리 대신 6권을 택한 거였어요. 내 스타일의 책은 아니더라도 꼭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완독했죠.
천 쪽 도전이라고 하면 저도 한 셈이죠.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 두 권짜리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두 권짜리를 완독한 걸 들 수 있겠어요. 이젠 두꺼운 책은 자신 없어서 피하게 되더군요. 350쪽 이상이 되면 구매하지 않으려 해요. 꼭 사고 싶은 책이 아니라면...

오디오북을 저는 좋아합니다. 2년 전부터 애용하고 있어요. 폰에 저장해 두고 들어요. 눈의 피로를 줄일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종이책 읽다가 피로하면 오디오북을 켜요. ㅋㅋ
(저 오디오북에 대해 너무 길게 써서 댓글로 페이퍼 쓸 일 있나 싶어서 밑으로는 지웠어요. 하하~~)

stella.K 2020-10-24 15:38   좋아요 0 | URL
의외로 삼국지를 안 읽은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ㅋ
저도 이문열의 삼국지 첫 권을 읽다 포기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이내 안 읽고 있는데 이 책은 웬지 관심이 가요.
언제고 사 볼까 생각중이어요.
저 <도미니언>은 협찬 받은 거라 서평을 써야하는데
좀 걱정이더군요. 읽는대로 잊어버려서 뭘 써야할지 모르겠어요.ㅠ
저도 300페이지 내외의 책이 좋더군요.^^
 
한동일의 공부법 - 한국인 최초 바티칸 변호사의 공부 철학 EBS CLASS ⓔ
한동일 지음 / EBS BOOKS / 202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하기에 따라선 한동일 교수를 조금 일찍 만날 수도 있었다. 몇 년 전 모처에서 주관하는 독자와의 만남에 당첨이 됐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 가지 못했다. 책을 쓴 저자라는 것도 그렇지만 신부님이라고 하니 과연 어떤 분일까 궁금했다. 그땐 그가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라는 것엔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변호사야 흔하고(?) 단지 이탈리아 그것도 이를테면 교회에서 받은 셈인데 그게 어떤 의민지 잘 몰랐다.) 아무튼 그렇게 허망하게 기회를 날리고 과연 그를 만날 기회가 다시 올까 싶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효자였을까? 뜻하지 않게도 비대면 시대가 도래하면서 TV로나마 그를 볼 수 있어서 행운 같이 느껴졌다. 더구나 그 유명하다던  <라틴어 수업>으로 강연을 한단다. 그렇게 해서 보게 된 그는 신부라기 보단 어느 기업의 전무(?)처럼 보였고, 기대했던 강연은 의외로 그다지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학교 때 우등생이 아니어서일까 역시 나는 '수업'과는 친한 운명이 아닌가 보다 했다.     


그러다 한 달쯤 지났을까? 그가 같은 프로에 또 나왔다. 이번엔 자신의 이름을 단 공부법을 소개한다. 공부도 못한 주제가 자존심은 있어서 난 어떤 수재의 공부 비법을 소개하는 책이나 간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왠지 이 분은 좀 남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면서 신부가 아닌가. 뭔가 공부에 대한 깊은 철학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연은 정말 감동이었다. 난 아무리 좋아도 재방을 보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머리에 남으라고 재방을 봤고, 마침 그 프로 제작진들이 휴가였는지 삼방도 하길래 그것까지 봤다. 그걸 보면서 혹시 이 강연 내용이 책으로 나온다면 난 기꺼이 보겠다고까지 했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여서 나는 약속처럼 책으로도 보았다. 사실 TV 강연은 워낙 짧게 해서 아쉬움이 있었으니. 


학교를 졸업한 지 꽤 오래됐지만 지금도 지식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식욕을 항상 채우고 살았다는 건 아니다. 그냥 욕구만 있다.) 그런데 왜 난 한 번도 이런 공부에 대한 강의나 책을 찾아볼 생각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세월이 좋아졌단 생각이 든다. 교과에 맞는 온갖 정석과 비법을 소개한 그렇고 그런 참고서류는 많아도 이런 책은 나 때는 없었는데 지금이라도 나와주니 말이다.    


우린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공부를 시작한다. 물론 이유는 있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 이유가 너무 깊이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너무 강력하기도 하다. 대학에 가기 위해 초등학교에 첫발을 내딛는다고 생각하면 그 아이의 시작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입시를 치를 때쯤 되면 모든 사람이 다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텐데 그 출발선이 오직 한 가지에만 집중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대학을 가는 것도 아닌데 대학을 나오면 일류가 되고 못 가면 이류가 된다. 시스템이 문제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어느 시점에서 이런 강의를 듣는다면 아이들의 공부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그나마 대학을 가도 그 속에도 또 나뉘고 걸러진다. 설혹 자타가 공인하는 일류대학을 나왔다고 해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열등감을 불태우는 것을 목도하기도 한다. 반대로 지나친 우월감에 타인으로 하여금 당황하게 만들 때도 있고.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성숙해져야 하는데 별로 가까운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숨마 쿰 라우데'란 라틴어 단어가 있다고 한다. 이건 유럽 대학이 성적 평가에 쓰이는 표현으로 '최우등'이란 뜻이란다. 이 말은 타인과 비교해서 가장 우수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거둔 성적 중 가장 우수하다는 표현이라고 한다. 상대평가를 하지 않고 절대평가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까지가 그나마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나 초등학교 때만 해도 막 학교에 들어온 입학생에게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하면 '참 잘했어요'와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셨다. (이 두 도장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그 시작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걸 계속 고등학교 3학년까지 가져갈 수 있어야 하는데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상대평가를 한다. 

 

나는 학교 내내 내가 왜 학교를 다녀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주입식 수업 방식이 너무 재미가 없었다. 오로지 공부만을 위해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게 너무 소모적이고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가 여러 개였다면 나의 학창 시절은 그렇게 불행하지마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친구를 사귀고 도시락을 까먹고 자유롭게 상상하는 게 인정되었더라면 나의 학교 생활도 그리 나쁘지마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아예 성적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그런 거야 대학 들어가면 실컷 하는데 뭣 때문에 그런 걸로 시간 낭비를 하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학교는 오히려 좋은 친구를 사귀는 데 있지 않고 친구를 경쟁상대로 삼으라고 조장하고 부추기며 자유로운 생각을 억압한다.  


그나마 그 시절을 버티게 해 줬던 건 독서였다. 학교가 너무 싫어서 책 속으로 숨어버렸다. 하지만 이 역시 학교 생활에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책 그만 읽고 공부하라고 할까. 독서가 공부고 공부가 곧 독서여야 하는데 이것이 분리되어 있다. 언젠가 누구라고 하면 알만한 독일인 예능인이 TV에 나와 독일의 교육의 모토는 좋은 친구와 독서와 여행하는 것에 있다고 하는데 어찌나 부럽던지. 그 부러움은 이 책을 읽을 때 또 한 번 마주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수능이라고 할 수 있는 바칼로레아 그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수능에 해당한다. 나는 프랑스의 학생들도 우리나라처럼 혼자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어려운 시험인 줄 알았다. 하지만 프랑스는 철학과 논술이 아예 국민적 관심 대상이라 입시 문제가 발표되면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 그걸 주제로 토론을 하고, 지식인들은 그 문제에 대한 답안을 작성해서 신문에 기고할 정도라고 한다. 즉 바칼로레아는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축제 같은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수험생들이 겪는 시험 공포 같은 건 없겠구나 싶다. 우리는 어떤가. 수능이 끝나면 죽을 때까지 수능에 무슨 문제가 나오는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나라 수능이 문제가 많고 해로운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언젠가 외국에서 우리나라 수능을 평가했는데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걸까? 문제는 학교가 공부하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도록 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공포로 몰아간다. 아이들을 닦달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문제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 때는 시험 문제를 틀리면 틀린 수만큼 매를 맞아야 했다. 완전 스파르타식이다. 그게 얼마나 서럽고 창피하던지. (그런데 중세시대 유럽의 귀족 가문의 자제들도 맞으며 공부를 했나 보다.) 


물론 공부를 말랑말랑하게 하자는 말이 아니다. 말랑말랑한 건 공부가 아닌지도 모른다. 공부가 그리도 중요한 거라면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자세로 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린 이제까지 그런 것도 없이 그저 해야 하니까 하고, 남들이 하니까 했다. 엄밀히 말하면 승자독식이란 구조하에 합격생을 배출하기 위해서만 교육 시스템을 운영해 오지 않았는가. 이는 역으로 합격생을 배출하기 위해 그처럼 많은 사람을 불합격생으로 떨어트려 왔다는 얘기다. 너무 소모적이다 못해 말살적이기까지 하다. 거기에 우린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런 교육에 저항하라고 부추기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은 그저 저자의 공부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한 책일 뿐이다. 오히려 현실은 불합리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실존적이고 능동적으로 공부하라고 조언한다. 내용에 보면 부모를 떠나라는 말이 나온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해냈다면 비상한 머리와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을 것 같지만 저자는 똑똑하지도 않거니와 부모는 항상 싸우기만 했다고 한다. 부모가 서로 화목해도 부족 할판에 늘 싸웠다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저자는 어느 날 부모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물리적인 독립이 아니라 정신적인 독립을 한 것이다. 부모는 자신을 낳아준 것만으로 부모의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단다. 그것도 청소년 시절에.


공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교과는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어쨌든 시스템에 맞추어야 다음 기회도 도모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 교과는 교과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지식을 쌓아 가는 건 어떨까. 어차피 천재는 학교에서 만들어 주지 않는다. 천재는 어느 특정 분야에서 나오는 법인데 그 특정 분야는 전문 분야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니 교과는 기본으로만 하고 자기 좋아하는 분야를 파라. 누가 아는가 천재가 될지. 농담이다. 말하자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내가 어떤 환경에 처해있든 자신은 자신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나의 중학교 3학년 때 국사 선생님이 생각이 난다. 사실 그 선생님은 아이들 사이에선 그다지 인기 있는 선생님은 아니었다. 선생님은 이제 청년을 지나 중년으로 접어들기 시작했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더구나 고리타분한 국사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과 좀 달랐다. 다른 선생님은 교과 이상을 벗어나는 적이 없었는데 이 선생님은 일단 가르치는 것을 너무 좋아하셨고 교과 이상을 가르쳐주셔서 중 3의 교실이었지만 일순간 어느 대학 강의실이 되기도 했다. 그 선생님은 단정하지만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다. 공부는 그렇게 하는 것일 게다. 


저자는 학교 때 성적이 좋지 못했다고 하는데 난 그 말을 믿는다. 정말 아이들 중엔 종종 공부를 잘할 것 같은데 못하는 아이가 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은 진단 내리기를 머리가 나쁘거나 방법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학교 공부는 못했어도 그 역시 책을 좋아했고 책을 통해 얻은 그 많은 인문학적 지식은 나중에 그가 학문의 길을 걷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그렇게 오래전부터 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배경이나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하는 일이 그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이에 해당하는 라틴어 격언이 있다. '목수는 목수의 일을 함으로 목수가 된다.' 그러려면 변함없이 매일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즉 루틴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또한 그것이 운을 만드는 길이 되기도 한다. 알다시피 행운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에게 오는 법이다. 그는 그가 교수가 될만한 자질과 배경이 있어서라기 보단 그의 루틴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자신을 가리켜 공부하는 노동자라고 했다. 공부하면서 노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부를 노동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공부로 수행 또는 수도한다는 말일 게다. 우리가 오로지 수능이나 무슨 자격증만을 위해 공부하는 것과는 차원이나 자세가 다르다. 그는 10년마다 한 번씩 공부 계획을 짠다고 한다. 짤 때는 그저 만만하게 해낼 수 있는 정도로 짜는 것이 아니라 이게 가능하겠나 싶게 짠단다. 그 자신도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안단다. 하지만 그렇게 짜고 그는 하루하루 루틴을 실천하며 그걸 감당해 간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그 방대한 라틴어 사전이기도 하다.) 


유학을 하게 되면 언어 때문에 고생하는 건 차치하고라도 (그건 누구든 겪는 거니까) 그는 건강이 발목을 잡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가 안 되었다기 보단 건강관리에 대한 지혜와 요령이 생겼다고 한다. 난 일찌감치 공부의 뜻을 접었던 이유 중 하나가 건강 때문이기도 했다. 더 정확히는 건강염려증 때문이다. 괜히 공부한다고 암에라도 걸리면 어쩌나 했는데 뭐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꼴이다. 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뜻을 세웠다면 그 길을 가 봐야 한다. 가다가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늑대가 울어도 먹이를 주지 말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늑대는 사람들이 갖는 걱정과 근심을 말한다. 그놈에게 먹이를 주면 어찌 되겠는가. 


공부는 암벽 타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건강을 위해 때로 운동으로 스스로 다지는 것처럼 공부는 우리의 정신을 다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린 하기에 따라선 최소의 수고만 하고 게으르게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바로 앎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짐승이 되어간다고 하지 않는가.


공부하는데 금지 언어가 있다. 바로 공부해서 남 주냐는 말이다. 공부로 경쟁하고 입신양명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아직 유효한 말이긴 하다. 그러나 이 책에선 그런 말은 해당하지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공부해서 남을 주라고 한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에게 한 학생이 인류문명의 첫 신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부러졌다가 붙은 흔적이 있는 넓적 다리뼈'라고 했단다. 그것은 뼈가 부러진 사람이 회복할 때까지 누군가 곁에서 도와주었다는 흔적이고,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돕는 게 문명의 시작이라고 했다(319p). 앞으로의 우리의 공부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  


저자가 정말 공부 노동자를 자처해서일까, 그는 신학교 때 두꺼운 철학사 두 권짜리를 독파하기도 하고, 잘 사 보지도 않는 라틴어 사전을 번역하기도 하고 지금도 끊임없이 공부한다고 한다. 우리가 느낄 땐 참 쓸 때 없는 공부 같아 보인다. 더구나 라틴어는 사어가 아닌가. 그런 남아 알아주지도 않는 공부를 매일 아침 7시에 시작해서 밤 11시에 마친다고 해서 세븐 일레븐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나마 이 별명도 최근에 떼었다고 한다. 건강이 받혀주질 않아서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심기일전하여 다시 공부해야지 싶다. 뭐 꼭 공부란 게 학교나 학원을 가야 하는 건 아니다. 평생 공부하려면 결국 혼자 공부해야 한다. 저자가 마지막에 얘기하는 것도 독학이다. 그게 또 공부하는 노동자에 맞고. 그런데 이렇게 리뷰까지 써도 공부는 참 쉽지가 않다. 이 책에 은혜받아 오랜만에 어렵고 힘든 책에 도전해 보는 중이다. 그나마 나는 두꺼운 책 한 권인데도 갈수록 하루 동안 읽는 양이 점점 얇아지고 있다. 눈도 아프고 몸이 꼬이고 언제 다 읽을는지 모르겠다.


난 이 책을 읽기 전 그 강연이 너무 좋아 늦게나마 <라틴어 수업>을 읽었다. 알다시피 <라틴어 수업> 은 그가 모 대학에서 라틴어를 강의했던 것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라틴어 격언이나 속담을 풀이하면서 저자의 생각을 덧붙인 것이다. 이 책은 그 연장이기도 하다. 라틴어에 관심이 없어도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라틴어 격언과 함께 공부에 대한 깊은 울림과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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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0-14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탁환 저자의 책 리뷰로 이달의 당선작에 뽑히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한동일 저자의 다른 책 - 라틴어 수업, 인가 읽었었는데 괜찮았어요.
그런데 어려운 공부를 하는 너무 대단한 분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이 들었었어요.
하나는, 그런 능력이 있어 좋겠다, 였고(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도 있으니.)
또 하나는, 그렇게까지 힘들게 살 필요가 있나, 하는 거 였어요.ㅋ

stella.K 2020-10-14 18:46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렇죠? 맞아요. 근데 이 책 읽으니까 내가 너무 말랑말랑거리며
살았지 싶더라구요. 솔직히 전 학교 때도 요리조리 힘들고 어려운 건
피하고 살았거든요. 그랬더니 나이들면서 문제에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지
않나 싶기도 하더라구요. ;;

언니 책으로 됐으면 좋았을텐데 그 리뷰에 너무 힘을 뿜뿜 준 것 같습니다.
근데 생각해 봤더니 저의 책은 아무도 당선작이 된 분이 없더라구요.ㅎ

레삭매냐 2020-10-14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독서 모임에서 <라틴어 수업>
이란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진짜 라틴어에 대한 수업 이야기라
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어서 실망 했
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

stella.K 2020-10-14 20:12   좋아요 0 | URL
ㅎㅎ 맞아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근데 라틴어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이런 접근법이 괜찮은 것 같아요.
우리도 중학교 때 처음 배우는 문장이
I am a boy 등 말도 안 되는 굉장히 단순한 문장이잖아요.
그에 비하면 한동일 교수는 라틴어 명언이나 격언 가지고
했다면 좋은 건데.
모르긴 해도 이 분은 거의 모든 책을 그런 식으로 풀어가지 않았나
싶어요. 어떤 사람은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어찌보면 그건 저자의 시그니처 같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작가들은 자신만의 문체가 있잖아요.

축하 고맙습니다.^^

han22598 2020-10-15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스텔라님처럼 어릴 때부터 독서에 빠져 많은 책을 섭렵하셧던 분들이 가장 똑똑한 것 같아요^^ (많은 알라디너분들이 그런 것 같고요) 실제로 한 분야를 오랫동안 공부하는 박사님 (^^)님들과 그것을 업으로 하신 분들은 한분야만 드립다 파기 때문에 오로지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만 알기 때문에 (조금 오바해서) 그외에는 굉장히 무식(ㅋㅋ)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stella.K 2020-10-15 17:56   좋아요 0 | URL
ㅎㅎ han님의 생각엔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만
제가 또 생각만큼 많이 읽지는 못했습니다.
예전에 블로그라는 게 없었을 땐 정말 비교가 불가능해서
전 책을 얼마나 읽는지 몰랐습니다.
근데 말씀마따나 알라디너분들 정말 책을 많이 읽더군요.
그런 걸 보면 저도 분발하려고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는 않더군요.
암튼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애(厚愛) 2020-10-19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 챙기세요.^^

stella.K 2020-10-19 21:16   좋아요 0 | URL
네. 후애님도요.^^

scott 2020-10-19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분 건강도 좋지 않으셔서 책을 쓰실때 스탠딩 책상에서 쓰시고 눈도 한쪽이 온전한 시력이 아니신데 이렇게 줄줄이 책도 써내셔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학생들한테 히스텔 부리는 여자 선생들 너무 싫어했네요
stella.K님 말처럼 교과서 밖 그이상을 가르쳐준 선생님들이 가장 기억에 남고 배운것도 많았어요.
독일어시간에 연극 영화 비디오 보여주고 음악시간에 오페라 공연 보여주고 영어수업 시간에 애거사 크리스티 원서 읽으며 토론했던 (물론 시험범위를 다마친후에) 수업들....

stella.K 2020-10-19 21:56   좋아요 2 | URL
오, 앞으로 스코트님과 친하게 지내야겠어요.
어떻게 제가 모르는 걸 알고 계시죠? ㅎ

그렇구나. 건강이 안 좋으시구나.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세븐일레븐으로 공부한다니
너무 열심히 공부하셨나 봅니다. 눈이 나빠지고 앉아만 있어
좌골이며 다리도 안좋아졌겠죠.
그래도 강연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하던지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선생님은 꼭 어느 학년 어느 시절이나 꼭 계시는 것 같아요.
정말 산소 같은 선생님이시죠.^^

카알벨루치 2020-10-27 19:58   좋아요 1 | URL
남들이 다 보는 걸 못 보는 분은 남들이 볼수 없는 부분을 볼수있는 혜안이 있으시겠습니다...

카알벨루치 2020-10-27 16: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인싸 모임 하는것 같군요! 전 인제 앗싸 ㅋㅋ한동일 작가가 신부님이셨구나 저도 <라틴어수업> 읽다가 말았는데 신부님이시라니...암튼 띠엄띠엄한 이 성격은 참 어쩔수 없네요 대학때 라틴어수업을 들었는데도 까막눈이네요 ㅋ

일본의 작가가 그런 표현은 하더라구요. “길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비로소 등산이 시작된다” 공부가 그런듯 합니다 평생공부...인제 4차산업시대는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가 더 되어가겠지요 ㅎ

stella.K 2020-10-27 18:32   좋아요 1 | URL
아, 그렇지 않아도 카알님 글이 오랜만에 올라와
인사를 전할까 하다가 좋아요만 누르고 나온 게
죄송해지려고 하네요.
잘 지내시죠? 이렇게 가끔씩이라도 뵐 수 있다는 게
반가운데 표현도 못하구.ㅠㅠ

그거야 책 좋아하는 사람의 공통점 아니겠습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전 한동일 교수 글 마음에 듭니다.
라틴어 수업 재미없으셨다면 이 책도 재미없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분은 모르긴 해도 이런 스타일로 쓰는 것 같습니다.

하~! 한숨 나오네요. 4차산업 시대라고 공부하며 살아야 한다니
전 그냥 저 읽고 싶은 책이나 읽으며 안빈낙도 하고 싶은데 말입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