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유리세상

                                                                                                        (퍼옴)





      *조선시대의 여인*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여성은 점차 권력에서 배제되었다.
      남자만이 학문을 하게 되어 관직에
      나갈 수 있는 과거를 볼 수 없어 관직에 진출할 길은 전혀 없었다.

      물론 관직에도 내명부라
      하여 남편의 지위에 따라 그 부인도 관품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실권이 전혀 없는
      오히려 여성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도 외국처럼 결혼한
      여자의 성을 없애는 일은 없었다.

      조선사회에서 결혼은 개인의 만남이 아니라 집안간의
      결합이었으므로 각자의 가문에 대해서는 존중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조선시대 전체에 걸쳐 여성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보면 곤란하다.
      조선전기에는
      유교적 가치관의 남녀관이 정립되지 않아 여성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남성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재산의 상속도 남녀의 차별 없이 균등하게 이루어졌으며 조상에
      대한 제사도 형제간에 돌아가면서 지내는
      윤회봉사(輪廻奉祀)가 보편적이었다.

      또한
      아들이 없어도 딸이나 사위, 외손이 제사를 지낼 수 있어서
      대를 잇기 위해 양자를
      들일 필요가 없었다.

      특히 남녀간을 맺어 주는 결혼은 여성의 입장이 더 유리하였다.

      결혼식은 신부집에서 치러졌으며 자식을 낳아
      한 가정을 이룰 때까지 친정살이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조선사회의 남녀 관계는 17세기 이후 성리학의 지배이념이
      확고하게 성립되면서 반전된다.
      이후 조선사회는 철저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강요되어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점점 열악해진다.

      특히 결혼이 시집살이를
      강요하는 형태로 변모하자 여성들의 지위 향상은 물론이고
      사회진출은 완전히 차단되게 된다.

      전통사회의 결혼은 임신, 출산, 양육, 가사노동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결혼에 따른 시댁에
      대한 여러 가지의 의무사항은 여성으로 하여금 더 이상
      사회활동에 관심을 두지 못하게 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제약이 성립된 후의 조선시대 여성은 일반적으로
      방갓을 쓰거나 장옷을 입고 얼굴만 조금 내민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모습이다.

      그렇지만 모든 여성이 집안일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농민과 하층민의 부녀자들은 얼굴을 가리지도 가릴 것도 없었다.

      오히려 19세기가 되면 영남의 일부와 관북지방에서는
      여자가 장터에 나가 상인과 상대하며 흥정을 벌였다.

      특히 관북의 여성은 목축과 밭일을 남자 이상으로 하였다.
      이것은 제주도의 여성이 바다에 나가 일하는 것과 같은 현상으로
      삶의 터전이 척박한 곳의 일반적 현상이었다.


      18세기 이후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민중의 생활상을 그려낸
      풍속화를 중심으로 조선 여성들의 생생한 삶의 체취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여인네들이 사진 촬영을 꺼려했을 뿐 아니라 외국인에 의해 촬영되어
      대부분의 자료가 국외에 소장되어 있다는 시대적 특수성에 의해 빚어진 매우 귀한 자료입니다.

      16세기 이후 서양인의 눈에 비친 한국여성을 삽화를 통해 살펴봄으로
      우리 여성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항아리 이고 가는 촌부 1900년대




      이완용의 부인 (1880년대)





      명성황후(?)상궁!(?) 확인 안됨 1890년대





      조선여인의 전통복장 1890년대





      1890년대초창기의 이화학당 학생들





      한국 여인1895-1901년





      가족사진1900년대





      결혼 예복을 입은 신부
      1902-1903년





      귀족 1900년대





      기생을 지도하는 여인 1900년대





      양반댁 여자아이






      "조선 말 일제시대, 장안에 이름을 날렸던 기생 장연홍" 이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입니다.


      사진의 주인공은 새하얀 한복에 양산을 들고 있는 모습, 짙은 눈썹에 순진해 보이는 눈,

      도톰한 콧날과 작은 입술로 단아한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왕실 여인 1900





      윤비(순종비)와 궁중 여인들1900년대





      이화학당의 소풍행렬 1908년





      일반 부녀자의 모습 1900년대





      일본 장교와 두 기녀 1901





      젖가슴을 드러낸 기생 1900년대





      중산층 가족사진






      신식결혼 1910년대





      이화학당 졸업생들 1911년





      조선회화: 달구경 "경직도 병풍" 중에서19세기 이후






      서양인이 그림 조선여인"널뛰기






      색동 겨울옷





      조선여인의 식사





      조선여인들의 빨래












      죄 지은 여인의 매질 "행정도첩 (刑政圖帖)" 중에서19세기 말 작품






      단오추천 "기산풍속화첩 (箕山風俗畵帖)" 중에서 19세기 작품





      1780년 경 작품으로 추정 행상 "풍속화첩 (風俗畵帖)" 중에서





      다림질 19세기 초 작품





      춘야밀회 (春夜密會) 19세기





      기방무사 (妓房無事) "혜원풍속도첩 (蕙園風俗圖帖)" 중에서1805년 이후 작품으로 추정





      조선회화: 청금상연 (聽琴賞蓮)"혜원풍속도첩 (蕙園風俗圖帖)" 중에서1805년 이후 작품으로 추정





      여인풍속 (女人風俗) 18세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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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4-12-16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유용한 정보네요. 추천하고 퍼 갑니다.

물만두 2004-12-16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stella.K 2004-12-16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비연 2004-12-16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nemuko 2004-12-16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좀 얻어갑니다. 추천도 당근이구요^^

stella.K 2004-12-16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옙!^^

로드무비 2004-12-17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니임, 늦게 봤어요. 저도 누르고 가져가요.^^
 
 전출처 : 갈대 > 지극히 주관적인 올해의 책 20권 - 표정훈

지극히 '주관적인' 올해의 책 20권.

1. <개혁의 덫> 장하준 지음, 부키.
개혁의 '철학'은 있는 것 같지만 개혁의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방법이 무언인지 혼란스러워 보이는 개혁, 요컨대 '철학 과잉, 프로그램 빈곤'의 혼란스러운 개혁(?)에 일침을 가하는 책. '올해의 책'에서 더 나아가 앞으로도 계속 참고할 가치가 있는 쓴 소리!

2.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김태완 엮음, 소나무.
왕은 물었고 젊은 그들은 답했다. 물음은 절실했고 답은 솔직하고 대담하기까지 했으니, 그 절실함, 솔직함, 대담함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까지 여운을 남기기 충분하다. 그런 그 많던 '젊은 그들'은 오늘날 다 어디로 갔을까?

3.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혜초 지음, 정수일 옮김, 학고재.
원문의 40배에 달하는 500여 개의 주석을 단 최초의 역주본. 역주자의 공력도 공력이지만.표지 디자인, 본문 편집, 부록으로 첨부한 축소본까지, 책의 만듦새가 매우 훌륭하다.

4. <화전: 근대 200년 우리 화가 이야기> 최열 지음, 청년사.
20세기 전반 한국 미술사는 '이식과 모방'의 역사 이상이 못 되는가? 결코 아니다. 이식과 모방을 거쳐 독창과 창조의 길을 걸었다. 저자는 말한다. "이처럼 독창과 창조의 길을 재빨리 걸었던 역사를 지닌 나라가 또 있는지 알지 못한다."

5. <로마네스크와 고딕> 앙리 포시용 지음, 정진국 옮김, 까치.
현대 미술사학의 거장들의 저작 가운데 번역되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 포시용을 빼놓고 현대 미술사학을 논하기 힘들다.

6. <중국철학의 중심 : 주희> 조남호 지음, 태학사.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논지는, 나 개인적으로는 철학과 학부 3학년쯤에 경학 공부를 통해 터득한 것들이지만, 새삼스럽게 단행본으로 이런 주장을 펼치는 책이 나온 걸 보니 '감개무량'하다. 우리나라 중국 사상사학계(그런 게 있다면)는 지금까지 뭘 했던 걸까?

7. <망가진 시대: 에리히 케스트너의 삶과 문학> 클라우스 코르돈 지음, 배기정 옮김, 시와 진실.
<하늘을 나는 교실>을 통해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만났던 케스트너. 그의 삶이 이다지도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니...... .

8. <프로테스탄티즘 혁명의 태동> S. 오즈맹 지음, 박은구 옮김, 혜안.
막스 베버가 Grand theorist라면........이 책으로 그 Grand의 '뻥뻥 난 빵구들'을 채워 볼 필요가...... .

9. <표해록> 최부 지음, 서인범 외 옮김, 한길사.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9세기 일본 승려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와 함께 외국인(중국인이 아닌)이 쓴 3대 중국 기행문으로 꼽히는 책. 이번에 나온 번역본은 학문적으로 엄정하고 자세한 주석을 단 정본.

10. <책과 혁명: 프랑스 혁명 이전의 금서 베스트 셀러> 로버트 단턴 지음, 주명철 옮김, 길.
책과 사회의 관계에서 책은 늘 일종의 종속변수이기만 할까? 단턴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책은 역사를 기록할 뿐 아니라 만들기도 한다.'" 도서사(Book History) 분야의 기념비적 저작이자 미디어의 역사, 지성사, 사회사 분야에서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책.  

11. <한국 마르크스학의 지평> 정문길 저, 문학과 지성사.
마르크시즘으로서의 마르크스학이 아니라 막솔로지(Marxology)로서의 마르크스학의 지평을 일관되게 추구해 온 저자의 역작. 이제야말로 마르크스를 평심(平心)하게 조망해볼 수 있는 상황, 요컨대 막솔로지의 가능 조건이 성숙된 게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

12.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저,이난아 역, 민음사.
현대 터키 문학의 기린아 오르한 파묵의 역작 소설. 각 등장인물이 번갈아 화자(話者)로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형식. 살해당한 시체, 그림 속 개와 나무, 빨강(색), 악마, 금화까지 말을 합니다.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갈마들면서 큰 이야기가 완성된다. <다빈치 코드>가 올 한해 우리나라에서 100만 부 팔렸다고? '지극히 주관적인 질적 평가'를 한다면, <내 이름은 빨강> 한 부가 최소한 <다빈치 코드> 100백 부 몫을 한다. 요컨대 일당백!

13. <식객> 허영만 저, 김영사
2년간의 취재 끝에 3박스 분량의 음식사진과 A4지 1만장이 넘는 자료를 수집하여 만든 "명품" 만화. 일본에 "맛의 달인"과 "미스터 초밥왕"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식객"이 있다.

14. <발견 하늘에서 본 지구 366> 얀 아르튀르-베르트랑 저, 조형준 정영문 역, 새물결.
인간은 지구에 산다는, 자명한 사실이 결코 범상치 않다는 깨달음을 주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인문(人文)을 글자 그대로 풀이해서 "사람의 무늬"라 한다면, 이 책은 때로는 추하고 때로는 아름답기도 한 인문을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

15. <헌법의 풍경> 김두식 지음, 교양인.
올 한해 우리 사회의 키워드를 뽑는다면, 단연 헌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 제목은 "헌법의 풍경"이지만 내용은 법조계, 법률, 법학, 법학 교육 등, 법을 둘러 싼 우리 사회의 제반 문제점들을 두루 담고 있다. 법조계에 엮이지 말고 살자! 법 없이도 사는 게 제일이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X같은 법조계!

16.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기광서 외 지음, 웅진닷컴.
우리는 북한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북핵 문제"의 북한이 아닌, 그냥 북한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17. <성화의 미소 : 노성두의 종교미술 이야기> 노성두 지음, 아트북스.
저자가 대중들에게 다가가려 나름대로 애쓴 결과가 아닐까 추정하고 싶은 일부 '미끄러운'(오! 리마리오?) 표현들이 '지극히 주관적으로' 거슬리기는 하지만, 옥의 티가 옥의 빛을 가리지는 못하는 법.

18.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1880-1918> 스티븐 컨 지음, 박성관 옮김, 휴머니스트.
이 책을 '지극히 주관적인 올해의 책 20'에 꼽은 이유는 단 하나다. 번역자 박성관 씨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개별적인 하나 하나의 번역문 표현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아주 없지는 않지만, 어설프게 10종 내외의 번역서를 내 본 번역자의 입장에서, 박성관 씨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19. <정본 윤동주 전집> / <원전 연구: 정본 윤동주 전집> 윤동주 지음, 홍장학 엮음, 문학과 지성사.
그 많은 국문학 연구자들은 '쪽 팔린줄' 알지어다!  

20. <탐서주의자의 책> 표정훈 지음, 마음산책.
아무리 '지극히 주관적인 올해의 책'이라고 해도, 자기가 쓴 책을 '올해의 책'으로 꼽다니....정말 (나 자신이 생각해도) 아니꼽다.^^ 하지만 어차피 "지극히 주관적인"...이니, 개인적인 소회를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짓자. 이 책...저자인 내가 알기로 초판 1쇄 3천 부 찍었다. 정가 1만1천 원이니 저자 인세 10%로 할 때 3백3십만 원이다. 몇몇 인터넷 서점의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5위-10위 권에 비교적 오랜(?) 기간 머물렀다. 내용에 관해서도 저자 입장에서 후회가 없다. 쓰고 싶은 걸 쓰고 싶은 분량만큼 맘대로 쓴 책이다. 그러나 인문 분야 순위는 순위일 뿐. 그래서 깨달았다. 이런 책만 쓰면 나 혼자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족을 부양하지는 못한다는 것. 물론 그럼에도 이런 책 꾸준히 쓰겠다. 열심히, 부지런히 쓰고 또 쓰자! 파이팅!

출처 : http://www.kungree.com/kreye/kreye26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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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95 2004-12-15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책은 < 내 이름은 빨강 >뿐이네요.. ㅡㅡ;;; 에공~~ 부끄러버라~~

stella.K 2004-12-15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탐서주의자의 책> 한권뿐이 없어요. ㅜ.ㅜ

icaru 2004-12-1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면...세상엔 책이 참 많아요 저 중에서 제가 알만한 책은(읽은것두 아니고...) 발견 하늘에서 본 지구...뿐이넹 ㅜ. ㅠ

stella.K 2004-12-18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오랜만이어요, 복순이 언니.^^
 
천안문
샨 사 지음, 성귀수 옮김 / 북폴리오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우선, 문체가 좋다. 중국인인 저자가 프랑스에 가서 7년만에 써낸 프랑스어 소설이란다. 7년 동안 죽어라고 프랑스어 공부하면 이렇게 써낼 수 있는 걸까?

  책 제목이 암시하듯 천안문 사태를 배경으로 인간의 내면을 그려낸 소설이다. 읽고 난 느낌은 참 아련하다. 겉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천안문 사태의 가담자 중 한 사람인 아야메를 체포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그녀를 쫒는 장교 자오의 추격이 소설의 중심축이다. 그러나 둘은 쫓고 쫓길 뿐 만나지 않는다. 단지 아야메를 쫓는 자오의 쌍안경을 통해 먼발치에 있는 그녀의 모슴을 줌으로 끌어 당기는 데서 소설은 끝난다.

그리고 병사 하나가 자오의 귀에다 대고 "뭘 보셨습니까?" 할 때 그는 병사를 돌아 보며, "아니, 아무 것도."라고 말하며 이 소설을 끝맺는다.

보통은 드라마 <모래시계>처럼 그런 혁명을 배경으로 했다면 뭔가 진한 감동의 러브 스토리를 생각했을 것이다. 뭐든 평온하고, 충만할 때 인간의 내면은 고여있는 법. 외부에서 요동칠 때 인간은 과격해 진다든지, 더 치열해지고 강한 인간애를 표출해 내는 법이다. 그것이 남녀간의 사랑이건, 진한 동료애건 간에 말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참으로 특이하게도 두 남녀 주인공이 옷깃조차 스치질 않는다. 자오는 오직 아야메의 집을 수색할 때 발견한 그녀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그녀의 삶을 추적할 뿐이다. 그녀의 삶을 느끼고 유추해 내는 과정에서 그녀의 행방을 쫓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단순히 상부의 지시와 명령에 순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실제로 어떤 모습인가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아야메는 중등시절 전학 온 짝 민을 돌봐주다 서로의 우정을 키워간다. 그러나 민은 전학 올 때부터 열등생으로 낙인찍혀 같은 반 아이들로부터 심지어는 담임 선생에게 까지 달돌림을 받는다. 선생님은 그런 민을 아야메와 짝이 되게 한건 아야메가 공부를 잘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의 우정이 알려지면서 담임 선생은 둘을 갈라 놓게되고 결국 민에게 퇴학 처분을 내리는 강경한 조처를 내린다. 이에 민은 학교에서 쫓겨나고 어느 학교에서도 자기를 받아주지 않자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결국 아야메는 학교와 사회에 강한 불만과 울분을 쌓아가게 되고 결국 천안문 사태의 가담자로 쫓기는 신세에까지 이른다.

자오는 그런 아야메의 일기를 읽으면서 무조건 그녀를 잡아들이려 하기 보단, 과연 이 여자는 과연 누구인가 궁금즈을 품게된다는 내용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현 정권에 대한 강한 불만이 증폭되어 터져 나오는 것을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역사적인 사건 그 어느 한 순간에도 인간이 이슈가 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만큼 인간은 역사의 주체다. 하지만 역사학자는 그런 역사의 소용돌이를 객관적인 측면에서 서술하기에 노력해야겠지만, 작가는 그런 주체인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데 더 주력한다. 그것이 아무리 허구일망정 말이다.

작가 샨사는 참으로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작가다. 그의 문체는 깔끔하고 유려하다. 아마도 자오가 쌍안경을 통해 아야메를 발견하는 것에서 소설을 끝낼 생각을 한 것은 어떤 면에선 뜬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인간 내면을 끊임없는 객관적인 시야로 탐미하려고 했던  보다 열린 결말이란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사족을 달자면,  요즘 프랑스에선 아멜리 노통과 샨사가 문단에서 주목을 받는단다. 나 개인적으론 리뷰는 쓰지 않았지만, 이전에 읽은 노통의 <살인자의 건강법>보다 샨사의 이 작품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솔직히 별 네 개를 주기엔 많고 세 개 주기엔 인색해 보이 작품이 이 작품이다. 세 개 반이라면 딱 좋을텐데 말이다. 그래도 네 개 주는 것이 세 개 주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서 네 개를 준다.

* 리뷰 제목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는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에서 인용한 말인데, 책장 말미에 나오는 역자의 글도 새겨 읽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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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12-15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인간 내면을 끊임없는 객관적인 시야로 탐미하려고 했던 보다 열린 결말".... 이라는 말... 읽어보지 못한 소설임에도 끄덕끄덕 동조하게 만듭니다.

stella.K 2004-12-15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호! 내가 잉크님의 추천을 봤다니...기뻐요.^^

놀자 2005-01-29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몇일 전에 이 책 읽었는데..^^~

바둑두는 여자도 진짜 재미있게 봐서 샨사의 작품에 관심이가서

천안문도 봤는데 바둑두는 여자보다는 아니지만.

재미있었거든요...^^ 그 뒤로 샨사 팬! 샨사의 최신작도 보고 싶네요.

글구 리뷰 넘 멋져요~! 추천 찍고 갑니다!

1616067

 


안녕, 토토 2005-04-25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제 취향이예요. 너무 노골적이지 않고 누군가의 삶을 관찰하다니 멋지잖아요.. (음... 첨보는 작가인데 일단 담아둬야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
 

‘매트릭스 광’ 현각스님 ‘‥2 리로디드’ 관람기

 


위험한 질문‥종교도 매트릭스?

 

 

1편‥'더 원'이 세계를 구할것이다

 

종교는 때때로 위험하다. 진실한 믿음은 마음을 해방시키는 혁명이다.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에게 이러한 혁명은 종파에 상관없이 매우, 매우 위험한 것이다. 혁명을 두려워하는 종교적 도그마 자체가 매트릭스이고, 우리는 그 매트릭스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한다.

 

지난 주, 이집트 정부는 <매트릭스 2 리로디드>(이하 <리로디드>)의 상영을 전면금지했다. 금지된 이유는 폭력이나 선정성 때문이 아니라, 인류창조에 대한 전통적 종교관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것이 중동지역 특정종교 하나의 편견에만 국한된 문제일까 아니다. 이집트 문화검열국장이 밝혔듯, “이 영화가 금지된 이유는 인간의 실존과 창조같은 주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가 존중하고 신봉하는 3대 유일신 종교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 모두와 관련된다.”

2003년 현재의 “현실세계”에서조차 이처럼 곤란한 질문은 위험하다. 실존의 본질 자체에 대한 질문은 기존 종교체제를 전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또 왜 창조되었는지 묻는 것은 위험하다. 종교의 권위자들은 말한다. “시스템이 만들어졌고, 우리는 단지 거기 놓였을 뿐이다. 시스템에서 자유로운 선택의 자유는 우리에게 없다. 당신은 매트릭스를 믿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실한 믿음을 위해 매트릭스에 도전해야만 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왔는가” “맹목적 신앙은 진실한 길인가 아니면 거짓인가” “이 방대한 시스템의 설계자 내지 프로그래머는 선한가, 악한가”

<리로디드>는 매우 변혁적인 영화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안주해온 맹목적인 종교적 믿음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서 놓지 못하는 믿음을 뿌리부터 뒤흔든다. 내가 접한 대중문화 가운데 이만큼 멋진 통찰을 보여준 영화는 드물다. 인간 밖의 유일한 권력을 믿는 제도화된 종교들은 또다른 형태의 통제와 지배, 즉 인간의식을 지배하는 매트릭스에 불과하다.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종교 자체가 일종의 매트릭스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 '매트릭스 2 리로디드' 장면들

2편‥구원자 '더 원'은 없다

 

<매트릭스> 1편은 스스로 깨달은 니오가 인간의식을 지배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인 매트릭스에 승리하는 것으로 끝난다. 초영웅적 존재인 니오가 인류를 구원하러 옴으로써 선지자의 예언이 실현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사실 겉으로 보면 감독들이 이런 생각을 은근히 유도하면서 관객이 모피어스처럼 맹목적으로 생각하도록 유혹한다 - 우리가 예언을 따르기만 하면 초인적인 ‘더 원’(The One)이 세계를 구원할 것이다.

 

그러나 <리로디드>는 이런 생각을 완전히 전복시켜 버린다. 모피어스가 절대적 신념을 가지고 떠받드는 예언자 오러클은 매트릭스의 권력에 봉사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일 뿐이다. 오러클은 매트릭스의 “어머니”이고 시스템의 완전통제를 돕는다. 니오가 모피어스에게 말하듯 “예언은 거짓이었다. ‘더 원’의 목적은 그 어떤 것도 끝내는 게 아니야. 그건 또 다른 통제 시스템에 불과했어.” 바로 이런 전복성이 이 영화의 뛰어난 면이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 용어와 상징만 보고 이 영화가 자신들의 종파적 종교관을 입증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1편에선 세계를 구원하는 ‘더 원’이 단순한 정답인 듯도 하다. 그러나 2편은 “정답” 대신 모든 위대한 종교들이 가르쳐온 일, 즉 질문을 제시한다. 사람들이 안주해온 신앙체계를 전복하고 무너뜨린 다음, 우리 실존의 본질 자체에 대한 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맹목적 신앙은 정답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니오는 오러클로부터 모피어스에게 전해진 맹목적 신앙을 이제 버려야 한다고 깨닫는다.

 

따라서 <리로디드>는 종교적 확실성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어떤 도그마나 예언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쉬운 신앙을 주창하는 영화도 아니다. 쉬운 정답 대신 위험하고 심오한 질문을 제시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집트에서 상영금지된 것이다. 정치적이건 민족적이건 종교적이건 아무리 확실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우리는 맹목적으로 따르는 대신 질문해야 한다.

 

니오와 설계자의 만남 역시 많은 것을 시사한다. 니오는 두개의 문 가운데 선택해야 한다 - 한쪽으로 가면 시온을 구하지만 연인은 죽는다. 다른 한쪽으로 가면 연인을 구하지만 시온주민 모두가 멸망한다. ‘더 원’의 사명은 인류의 구원이다. 예언에 따르면 그것이 니오의 목적인 것이다. 시온을 구하지 않으면 니오는 ‘더 원’이 될 수 없다.

 

 

당신 자신이 당신을 구한겁니다

 

그러나 니오는 예언으로부터 자유롭게 행동하기를 선택하고 트리니티를 구함으로써 설계자에 맞선다. 예언의 계획 대신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을 따름으로써, 궁극적인 힘은 설계자가 아닌 바로 인간 자신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인과법칙을 넘어서고 매트릭스 시스템의 설계자와도 대결한 니오는 홀로 서있다. 인간의 도덕적 조건에 대한 책임은 오직 인간 자신에게 있을 뿐, 개인의 자유의지보다 더 큰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 니오의 말처럼 “선택, 문제는 선택이다.”

 

만일 신앙에 대한 전통적 지지를 철회했다면, <리로디드>에서 종교적 믿음이란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1999년 인터넷 채팅 인터뷰 중 “이 영화에서 신앙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감독 워쇼스키 형제 스스로 답한 바 있다. “(우리가 관심 있는 문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니오가 시온에 돌아왔을 때 한 청년이 “당신이 나를 구했어요”라고 외친다. 그러나 니오는 퉁명스럽게 답하기를 “아니요, 당신 자신이 스스로를 구한 겁니다.”

 

그는 예수와 마찬가지로 “너를 구한 것은 네 믿음”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은 누군가 “다른” 이가 “나를” 구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더 원’이 필요한 이유이다. 허나 니오도 인간 밖의 수퍼맨이 구원자라고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우리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이뤄진 <리로디드> 비평 가운데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불교적 영향을 받았는지 언급한 것은 드물다. 1999년 인터뷰에서 시나리오를 쓴 워쇼스키 형제는 불교가 그들의 사상과 시나리오에 큰 영향을 끼쳤느냐는 질문을 받고 “예스!”라 대답했다. “불교와 수학, 특히 양자물리학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고 그 둘이 접합하는 지점은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둘 다 오래 전부터 불교에 매혹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많은 관객이 이 점을 놓치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는 무지와 미몽에 빠져 잠들어 있으며,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만 스스로 깨닫고 또 다른 사람들이 깨닫도록 도울 수 있다. 한편 니오가 오러클을 만나러가는 장면에선 종교물품 벼룩시장이 등장한다. 힌두교 신, 성모 마리아, 예수상 등이 보인 후 마지막으로 카메라는 불상을 비춘다. 화면 속의 부처는 명상자세로 앉아 자기 마음의 본질을 관조하고 있다. 니오가 오러클을 만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비춰진 종교의 이미지가 바로 이것이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1편의 마지막 부분에서 니오는 마치 최후의 초영웅 ‘더 원’처럼 보인다. 하지만 2편에서 밝혀지는 놀라운 사실에 따르면 니오는 “수학적 완성”의 여섯 번째 예외, 여섯 번째 구원자이다. 흔히 상징 기법을 사용하는 영화에서 과연 이 여섯 번째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불교에 매료된 감독들의 답은 명료하다 - 불교에서 2500년 전 나타난 석가모니 부처는 고해의 매트릭스인 이 우주에 나타난 여섯 번째 부처로 간주된다. 고전불경에 따르면, 새로운 우주가 나타날 때마다 새로운 부처가 나타나 미몽에 빠진 중생을 제도한다. 만물이 유전하므로 우주 또한 끊임없이 변하고 이윽고 쇠하여 적멸한다. 그러면 새로운 세계가 나타나고 따라서 새로운 부처가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태어나고 다시 또 태어나고 - 나는 중생들 가운데 다시 태어날 것이다.”

 

<리로디드>가 던지는 화두는 바로 믿음이다. 이 영화를 감상하기에 따라서는 대중문화가 성서나 불경처럼 올바로 종교적 믿음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출처: 본효아줌마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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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4-12-14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매트릭스 세 편을 모두 보면서 현각스님과 비슷한 느낌을 가졌어요.. 사실 매트릭스를 본 이유도 불교 관련 영화였기 때문이었죠... 3편의 마지막 장면.. 스미스와 오러클이 동일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감독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알기는 아는구나라구요.. 여기서 보니 그 때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퍼 갈게요~^^*

stella.K 2004-12-1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전 2편까지만 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