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갈대 > 지극히 주관적인 올해의 책 20권 - 표정훈
지극히 '주관적인' 올해의 책 20권.
1. <개혁의 덫> 장하준 지음, 부키.
개혁의 '철학'은 있는 것 같지만 개혁의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방법이 무언인지 혼란스러워 보이는 개혁, 요컨대 '철학 과잉, 프로그램 빈곤'의 혼란스러운 개혁(?)에 일침을 가하는 책. '올해의 책'에서 더 나아가 앞으로도 계속 참고할 가치가 있는 쓴 소리!
2.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김태완 엮음, 소나무.
왕은 물었고 젊은 그들은 답했다. 물음은 절실했고 답은 솔직하고 대담하기까지 했으니, 그 절실함, 솔직함, 대담함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까지 여운을 남기기 충분하다. 그런 그 많던 '젊은 그들'은 오늘날 다 어디로 갔을까?
3.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혜초 지음, 정수일 옮김, 학고재.
원문의 40배에 달하는 500여 개의 주석을 단 최초의 역주본. 역주자의 공력도 공력이지만.표지 디자인, 본문 편집, 부록으로 첨부한 축소본까지, 책의 만듦새가 매우 훌륭하다.
4. <화전: 근대 200년 우리 화가 이야기> 최열 지음, 청년사.
20세기 전반 한국 미술사는 '이식과 모방'의 역사 이상이 못 되는가? 결코 아니다. 이식과 모방을 거쳐 독창과 창조의 길을 걸었다. 저자는 말한다. "이처럼 독창과 창조의 길을 재빨리 걸었던 역사를 지닌 나라가 또 있는지 알지 못한다."
5. <로마네스크와 고딕> 앙리 포시용 지음, 정진국 옮김, 까치.
현대 미술사학의 거장들의 저작 가운데 번역되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 포시용을 빼놓고 현대 미술사학을 논하기 힘들다.
6. <중국철학의 중심 : 주희> 조남호 지음, 태학사.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논지는, 나 개인적으로는 철학과 학부 3학년쯤에 경학 공부를 통해 터득한 것들이지만, 새삼스럽게 단행본으로 이런 주장을 펼치는 책이 나온 걸 보니 '감개무량'하다. 우리나라 중국 사상사학계(그런 게 있다면)는 지금까지 뭘 했던 걸까?
7. <망가진 시대: 에리히 케스트너의 삶과 문학> 클라우스 코르돈 지음, 배기정 옮김, 시와 진실.
<하늘을 나는 교실>을 통해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만났던 케스트너. 그의 삶이 이다지도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니...... .
8. <프로테스탄티즘 혁명의 태동> S. 오즈맹 지음, 박은구 옮김, 혜안.
막스 베버가 Grand theorist라면........이 책으로 그 Grand의 '뻥뻥 난 빵구들'을 채워 볼 필요가...... .
9. <표해록> 최부 지음, 서인범 외 옮김, 한길사.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9세기 일본 승려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와 함께 외국인(중국인이 아닌)이 쓴 3대 중국 기행문으로 꼽히는 책. 이번에 나온 번역본은 학문적으로 엄정하고 자세한 주석을 단 정본.
10. <책과 혁명: 프랑스 혁명 이전의 금서 베스트 셀러> 로버트 단턴 지음, 주명철 옮김, 길.
책과 사회의 관계에서 책은 늘 일종의 종속변수이기만 할까? 단턴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책은 역사를 기록할 뿐 아니라 만들기도 한다.'" 도서사(Book History) 분야의 기념비적 저작이자 미디어의 역사, 지성사, 사회사 분야에서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책.
11. <한국 마르크스학의 지평> 정문길 저, 문학과 지성사.
마르크시즘으로서의 마르크스학이 아니라 막솔로지(Marxology)로서의 마르크스학의 지평을 일관되게 추구해 온 저자의 역작. 이제야말로 마르크스를 평심(平心)하게 조망해볼 수 있는 상황, 요컨대 막솔로지의 가능 조건이 성숙된 게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
12.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저,이난아 역, 민음사.
현대 터키 문학의 기린아 오르한 파묵의 역작 소설. 각 등장인물이 번갈아 화자(話者)로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형식. 살해당한 시체, 그림 속 개와 나무, 빨강(색), 악마, 금화까지 말을 합니다.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갈마들면서 큰 이야기가 완성된다. <다빈치 코드>가 올 한해 우리나라에서 100만 부 팔렸다고? '지극히 주관적인 질적 평가'를 한다면, <내 이름은 빨강> 한 부가 최소한 <다빈치 코드> 100백 부 몫을 한다. 요컨대 일당백!
13. <식객> 허영만 저, 김영사
2년간의 취재 끝에 3박스 분량의 음식사진과 A4지 1만장이 넘는 자료를 수집하여 만든 "명품" 만화. 일본에 "맛의 달인"과 "미스터 초밥왕"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식객"이 있다.
14. <발견 하늘에서 본 지구 366> 얀 아르튀르-베르트랑 저, 조형준 정영문 역, 새물결.
인간은 지구에 산다는, 자명한 사실이 결코 범상치 않다는 깨달음을 주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인문(人文)을 글자 그대로 풀이해서 "사람의 무늬"라 한다면, 이 책은 때로는 추하고 때로는 아름답기도 한 인문을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
15. <헌법의 풍경> 김두식 지음, 교양인.
올 한해 우리 사회의 키워드를 뽑는다면, 단연 헌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 제목은 "헌법의 풍경"이지만 내용은 법조계, 법률, 법학, 법학 교육 등, 법을 둘러 싼 우리 사회의 제반 문제점들을 두루 담고 있다. 법조계에 엮이지 말고 살자! 법 없이도 사는 게 제일이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X같은 법조계!
16.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기광서 외 지음, 웅진닷컴.
우리는 북한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북핵 문제"의 북한이 아닌, 그냥 북한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17. <성화의 미소 : 노성두의 종교미술 이야기> 노성두 지음, 아트북스.
저자가 대중들에게 다가가려 나름대로 애쓴 결과가 아닐까 추정하고 싶은 일부 '미끄러운'(오! 리마리오?) 표현들이 '지극히 주관적으로' 거슬리기는 하지만, 옥의 티가 옥의 빛을 가리지는 못하는 법.
18.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1880-1918> 스티븐 컨 지음, 박성관 옮김, 휴머니스트.
이 책을 '지극히 주관적인 올해의 책 20'에 꼽은 이유는 단 하나다. 번역자 박성관 씨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개별적인 하나 하나의 번역문 표현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아주 없지는 않지만, 어설프게 10종 내외의 번역서를 내 본 번역자의 입장에서, 박성관 씨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19. <정본 윤동주 전집> / <원전 연구: 정본 윤동주 전집> 윤동주 지음, 홍장학 엮음, 문학과 지성사.
그 많은 국문학 연구자들은 '쪽 팔린줄' 알지어다!
20. <탐서주의자의 책> 표정훈 지음, 마음산책.
아무리 '지극히 주관적인 올해의 책'이라고 해도, 자기가 쓴 책을 '올해의 책'으로 꼽다니....정말 (나 자신이 생각해도) 아니꼽다.^^ 하지만 어차피 "지극히 주관적인"...이니, 개인적인 소회를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짓자. 이 책...저자인 내가 알기로 초판 1쇄 3천 부 찍었다. 정가 1만1천 원이니 저자 인세 10%로 할 때 3백3십만 원이다. 몇몇 인터넷 서점의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5위-10위 권에 비교적 오랜(?) 기간 머물렀다. 내용에 관해서도 저자 입장에서 후회가 없다. 쓰고 싶은 걸 쓰고 싶은 분량만큼 맘대로 쓴 책이다. 그러나 인문 분야 순위는 순위일 뿐. 그래서 깨달았다. 이런 책만 쓰면 나 혼자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족을 부양하지는 못한다는 것. 물론 그럼에도 이런 책 꾸준히 쓰겠다. 열심히, 부지런히 쓰고 또 쓰자! 파이팅!
출처 : http://www.kungree.com/kreye/kreye26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