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의 소설 인간학]누가 피를 흘리는가
박민규 ·소설가
입력 : 2005.08.26 17:58 18' / 수정 : 2005.08.26 18:02 32'
역사소설을 지지리도 싫어하는데, 몇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는 무조건 외워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선지 무의식 중에 암기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비참해진다. 두번째, 이제 한물 갔구나 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대부분의 작가들이 역사를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뭔가 큰 이야기를 쓴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서 비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지막, 그래서 하는 얘기가 결국은 자기(혹은 우리의) 얘기를 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외우지 뭐, 그래서 묵묵히 또 하나의 역사를 외우는 기분이었다, 그래서다.
조두진의 ‘도모유키’는 그래서 특별한 역사소설이다. 정유재란을 다룬 이 책의 주인공은 조선의 왕도, 장군도, 그 흔한(소설의 주인공으로서) 이 땅의 민초도 아니다. 순천 신성산성에서 농성하던 고니시 휘하 사사키 부장의 제 십칠 군막장 도모유키다. 적군인가? 적군이다. 이쯤 되면 이 소설이 그간의 역사소설과는 사뭇 다른 성질 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래서 인간이 사뭇 다르지 않음을, 그래서 역사가 암기과목이 아님을 ‘도모유키’는 일깨워준다. 이것은 중요한 업그레이드다. 그렇다면 내가, 너의 입장에서 그 문제를 한번 생각해 주마. 대저 이토록 강자의 위치에서 쓰여진 한일간의 역사가 또 있었던가. 이 싸움은, 그래서 작가 조두진의 또다른 한판승이다. YOU WIN!
역사의 업그레이드는 우리의 얘기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혹은 적의) 얘기를 흡수하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외우고 자위해봤자 그것은 우리의 소사(小史)일 뿐, 역사(歷史)가 아니다(역사라고 믿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도모유키’는 우리의 역사소설에 새로운 항로(말로만 듣던 블루오션인가!)를 열어준 작품이다. 운하의 문이 열렸다. 뭐야, 이제 싫어할 수도 없게 되버렸군. 책꽂이 한 켠의, 지지리도 싫어했던 역사소설들을 바라보며 나는 중얼거린다. 쌓여있던 먼지를 툭툭 털고, 한 동안 저 책들을 다시 꺼내 읽어야겠다. 이리하여 고전이 소중해진다는 것을, 살아온 경험으로 또 미루어 짐작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역사는 이런 식으로 발전한다.

▲ 박민규·소설가 | |
이 작품을 그래서 나는 이 보드에 올려 놓고 싶었다. 다른 누구보다 도모유키를 몰랐던 당신에게 ‘도모유키’를 만나게 해주고 싶어서다. 당신도 누군가의 도모유키고, 나 역시 누군가의 도모유키다. 대장장이의 아들이자 굼뜨고 모자란 도네도, 다이묘의 성에 갔다 조선으로 출병된 히로시도, 결국 상극의 세계에 서있던 또다른 이름의 민초일 뿐이었다. 어느 시대에도 전쟁을 선동한 인간들은 피를 흘리지 않았다. 전장에서 피를 흘리고, 또 훗날 그것을 뉘우치는 것도 결국엔 민초들의 몫이었다. 싸움도 화합도, 실은 그래서 도모유키를 알거나 도모유키를 흡수한 - 도모유키 그 자체인 우리들의 몫인 것이다. 그래서 당신에게 ‘도모유키’를 보낸다. 사랑이란 조선말을 배우고도, 결국 명외(도모유키가 사랑한 조선여성)에게 사랑한다 말못한 도모유키를 생각한다면, 사랑한다고 언제든 말할 수 있는 우리의 눈은 보다 크게 확장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침은 드셨냐는 것이다. 바로 당신, 도모유키상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