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드라마를 아주 성실하게 보는 편이 못되긴 하지만 나는 왜 이 드라마가 종기종영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늘 그렇듯 처음부터 이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점점 보면서 코믹스럽기도 하지만, 배역들이 튀지 않고 그 나름대로 자기 역할을 충실히 잘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 드라마에 애정이 간다.

배역이 튀지 않고 자연스럽기가 어디 그렇게 쉬운가? 더구나 주제 또한 그럴 법하다. 사람들은 신데렐라나 온달 장군이 되면 무조건 행복할거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어찌 어찌해서 그런 운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꼭 행복한 것마는 아니라는 걸  그럴듯하게 보여주고 있다.

요즘엔 김영호가 드디어 원하던 이혼을 했는데 시원하지 않으며 사실 자기가 정말로 좋아햇던 사람이 김여진이 아니라 하희라였다는 것을 말해 주는 대목에서 역시 결혼은 배경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는 것임을 자인하도록 만든다.

작가가 누군가 했더니 윤정건 씨라고 한다. 그는 KBS [TV 손자병법] SBS [도깨비가 간다], [자전거를 타는 여자] [꿈의 궁전], [서울탱고][당신은 누구시길래], [왕의여자] 등을 썼다고 하는데, 나는 유감스럽게도  [꿈의 궁전] 정도만 본 것 같다.

이렇게 주제도 선명하고 재미있는 드라마가 조기종영을 한다니 좀 이해가 안 간다. 뭐든 좋은 드라마의 척도가 인기가 있느냐 없느냐고 평가되는 발상은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안녕, 프란체스카>도 여전히 잘 하고 있는데, 이 드라마가 프란체스카 보다 못할 건 또 뭐가 있는가? 물론 번지 수가 다르다고 할지 모르지만, 난 솔직히 프란체스카가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다. 그것도 계속 보고 있으면 나름대로 좋다고 했을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캐릭터가 그다지 내가 빠져들기에 좋은 것은 아니었다. 캐릭터에서부터 질리다 보니 빠져들기가 영 쉽지 않다.

지난 여름까지 사람들은 <안녕, 프란체스카>에 열광했었나 보다. 사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작품을 폄훼하거나 그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프란체스카만 좋아하란 법도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이것이든 저것이든 좋아할 권리는 자유라고 본다. 위의 드라마가 프란체스카 만큼이나 인기가 있었다면 조기종영이란 말이 쉽게 나왔을까?

그놈의 '인기'라는 것도 어차피 주관적일 뿐인데, 인기 축에도 못들면 좋아할 자격도 없단 말인가? 이놈의 방송의 생리 정말 마음에 안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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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icaru > 번역의 힘....

요즘 자기 앞의 생을 다시 읽고 있다. 예전에 빌려서 읽은 문예출판사의 그것이 아니라, 문학동네에서 나온 그것으로.... 그런데...번역의 문제에 있어서...두 출판사는 이렇게 다르다.  다음은 같은 부분에 대한 번역을 불러온 것.

 

  

 

 

 

문예출판사 에서 나온...<자기 앞의 생>

   무언가 무서운 것이 폭발할 것 같았다. 그 감정은 내부로부터 치미는 것이었다. 정말로 괴로운 일이다.
외부로부터 일어나는 일 ─ 만약에 엉덩이를 걷어채였다든가 하는 것 ─ 은 도망쳐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은 그럴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처럼 속에서 격렬한 감정이 일게 되면 난 그만 뛰쳐나가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가 않다. 그것은 마치 내 안에 또 다른 존재가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소리소리지르고 울부짖으며 땅바닥에 나뒹굴고 그 속에서 뛰쳐나오려고 머리를 벽에 짓찧었지만 허사였다.
나오려 해도 다리가 없어 걸어나올 수가 없었다. 우리의 내부에는 다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기분이 좀 나아지는데, 그러니까 마치 그 내부의 것이 밖으로 좀 나가는 것 같다.


 

 

 

 

 

 

문학동네 에서 나온...<자기 앞의 생>


그 사건이 내 감정을 건드렸고, 나는 너무 열이 올랐다. 그런 감정은 내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것이었고,
그래서 더욱 위험했다. 발길로 엉덩이를 차인다든가 하는 밖으로부터의 폭력은 도망가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안에서 생기는 폭력은 피할 길이 없다. 그럴 때면 나는 무작정 뛰쳐나가 그대로 사라져버리고만 싶어진다.
마치 내 속에 다른 녀석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울부짓고 땅바닥에 뒹굴고 벽에 머리를 찧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그 녀석이 다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아무도 마음속에 다리 따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까 기분이 좀 나아진다. 그 녀석이 조금은 밖으로 나가버린 기분이다.

 

이 소설의 화자가 여덟살짜리 아이인 것을 감안한다면, 후자의 번역이 더 훌륭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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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9-04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주셔서 스텔라 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러 왔지요~
요즘 예전보다 더 자주님의 닉네임을 볼 수 있어서... 이 마을이 더 친근해집니당 ^^

stella.K 2005-09-04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고맙긴요...저도 이카루님 계셔주셔서 좋아요.^^
 

지난 여름동안엔 그다지 많은 책들을 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몇권 안되는 책 중에 가장 좋은 책을 꼽으라면 저는 단연 김훈의 책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가는 꼭 읽어야지, 읽어야지. 마음에만 담아 놓은 책들이 한 둘이겠습니까마는 문학에 관심이 많다고 뻥치고 돌아다니는 제가 이제사 그의 책을 붙들 었습니다.

오래전 책 읽는 나무님께 싸게 산 책, <밥 벌이의 지겨움>과 그 유명한 <칼의 노래>를 운빈현님께 받고 연달아 읽은 것입니다.

 같은 경우는 문체가 약간은 건조한 듯 하면서도 그의 독특한 사유가 드러나 있어서 내내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지금도 잘 잊혀지지 않는 글귀 하나가 있습니다.

남자로 태어나는 일은 유전적으로 세습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는 운명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한 시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특권'이라는 것의 본질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비애로운 것인가. ......남성성의 본질이란 아마도 '결핍'일 것이다. 스스로 결핍이 아니라면 남자들이 여자를 그리워할 리가 없을 것이다. 

오입을 하고 바람을 피울 수 밖에 없는 남자들도 다 그 결핍 때문인 것이다. 나는 남자의 '특권'을 이 사회에 반납하고 싶다. 그리고 마누라 보다 오래 살아서, 내 마누라가 죽을 때 이 마누라를 이 세상의 가장자리까지 배웅해 주고 싶다. -<남자도 오래 살고 싶다> 중에서   

과연 그렇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홀아비 보다 과부가 많은 이 세상에서 꼭 여자가 남자를 배웅해 줘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나에게 결혼을 한 친구들은 말합니다. 이 세상엔 아직도 남성우월주의가 남아 있어서 여자가 결혼하면 손해라고. 그 말이 틀리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의 시각이고, 남자는 남자들 나름의 고충이 있겠죠. 김훈은 그것에 대해 참 청승스럽게 잘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아버지를 먼저 보낸 우리 엄마를 보더라도 이건 좀 불공평한 처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30년 결혼 생활동안 시집살이에, 남편 바람피워 속썩이고, 자식들 시집 장가를 재대로 보내지 못해 끙끙매는 그 모든 것을 엄마가 아직도 고스란히 뒤집어 쓴다고 생각하면 엄마의 삶은 어찌보면 가혹하고 피곤해 보입니다.

남자들도 여자 보다 조금은 오래 살아서 여자의 마음이 어땠을런지를 헤아려 봐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앗, 쓰고보니 저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 봅니다. 남자를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결국 이렇게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책은 읽으면서 오랫만에 비장미가 느껴지는 흔치 않은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존의 고독이 느껴져 읽어내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런 문체의 경우 자칫 감상주의로 빠져 신파조로 흐를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는 김훈의 내공이 또한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김훈은 사랑스러운 작가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이 경우 존경을 표해야 마땅한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에겐 사랑하고픈 흔치 않는 작가입니다.

지난 여름 이 책들을 읽어냈기에 그냥 허투로 보내지 않았다고 자위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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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9-03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들은 김훈을 이러니 저러니 비난하지만 난 그의 육체적 글쓰기를 존경
딸도..흐흐^^

stella.K 2005-09-03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어머니 딸이 어디 가겠습니까?^^

바람돌이 2005-09-03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벌이의 지겨움은 제목이 너무 맘에 들어서 꼭 읽고 싶은 책인데....
칼의 노래는 저도 비장미가 흐름에도 감상적이 되지 않는, 그리고 그 역시 인간이었을 이순신의 마음을 본 것 같아 즐거운 독서였어요. ^^

stella.K 2005-09-03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하이 파이브요!^^

mira95 2005-09-04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칼의 노래>재미있게 읽었는데요,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더군요..
 

[토요연재/18C 미친 바보들]나는 존재한다 고로 기록한다

잡식성 기록정신… 듣고 본 것은 모조리 적어
일기는 생활사자료 보고… 곡식값·제사음식까지 적혀
기록통한 '지식경영 노하우' 총서편찬 열기로 이어져
정민·한양대 국문과 교수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다보면, 말 위에서 외 무릎을 세우고 빈 공책에 수시로 메모하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객관에 들면 그는 매일 많은 시간을 그날 보고 들은 내용을 메모하고 정리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환희기(幻戱記)’ 같은 글은 중국서 본 요술 공연을 기록한 것인데, 무려 20가지의 요술 레파토리가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지금 같으면 캠코더로 촬영하여 온다고나 하지만, 당시 20가지나 되는 레파토리를 하나하나 상세히 묘사해 낸 것을 보면, 공연 현장에서도 그의 눈과 손은 동시에 바빴을 법하다.

홍대용이나 박지원을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에 간 당시 사신들의 필담 기록은 말 그대로 한 편의 온전한 녹취록이다. 두 사람은 양편에 종이를 수북히 쌓아놓고 필담을 시작한다. 대화에 따라 종이가 오가다 보면, 나중에는 내 앞에 있던 종이는 상대에게 가 있고, 상대의 종이는 내 앞에 쌓인다. 대화가 끝나면 서로 적은 것을 맞바꿔 한 벌씩 베껴 적는다. 나눠 가지면 두 벌의 완벽한 녹취록이 완성된다. 그러면 그 기록을 가지고 돌아와서 문답에 맞춰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지금 남아있는 수많은 연행록은 모두 이런 꼼꼼한 기록 정신의 산물이다. 그들이 무슨 기억력의 대가여서 훗날에 기억해낸 것이 아니다.


▲ 연암 박지원도 같은 공연을 봤을까? 중국 기예단의 공연 모습. 박지원은‘환희기’에서 20가지가 넘는 공연의 레퍼토리를 캠코더로 찍듯 상세히 기록했다. 조선일보 DB
이전 시기에도 ‘미암일기(眉巖日記)’나 ‘난중일기(亂中日記)’가 있었지만, 18세기의 일기문학은 이 시기 잡식성의 지식 경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만주(兪晩周·1755-1788)의 ‘흠영(欽英)’은 21세 나던 1775년부터 죽기 한 해 전인 1787년까지 13년 간 매일 써내려 간 일기이다. 모두 24책 156권의 거질이다. 황윤석(黃胤錫·1729-1791)의 ‘이재난고(?齋亂藁)’ 또한 평생에 걸쳐 쓴 일기로 52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이들 일기는 한마디로 18세기 생활사 자료의 보고다. 경제활동과 문화 예술 활동, 독서 편력과 과학사 관련 자료, 시정의 풍습까지 없는 내용이 없다. 유만주는 60년간 일기를 쓸 것으로 생각하여 60부, 1000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계획했다. 그는 일기에 고금아속(古今雅俗)을 막론하고 듣고 보고 느낀 것을 다 적었다. 제사 때 올린 과자와 고기의 종류부터, 아픈 데 쓴 약의 종류, 언제 옷을 갈아입었으며, 당시 곡식의 값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내용까지 시시콜콜히 다 적었다.

이들은 일기를 단순히 나날의 기록으로 생각하는 대신 한질의 백과전서적 전작으로 인식했다. 18세기 백과전서적 지식 경영의 실상이 이 일기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유만주는 “’흠영’이 없으면 나도 없다”고 했을 만큼 자신의 생애를 걸고 이 일기를 써내려 갔다.

그들은 사소한 일상의 기록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쉴새 없이 메모하고, 틈만 나면 정리했다.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도 말 그대로 듣고 보고 말하고 생각한 것을 적어둔 비망록이다. 나를 거쳐간 생각과 정보는 모두 기록으로 남겼다. 편지를 보낼 때도 반드시 부본을 한 부씩 남겨 두었다.

이덕무가 세상을 뜬 후, 이서구는 평생 이덕무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글을 한 장 한 장 펴서 배접하여 책으로 만들어 이덕무의 아들에게 보내주었다. 문집에 실린 수십통의 편지는 그렇게 해서 온전하게 전해질 수 있었다. 최근 서울대박물관에서 공개한 연암 박지원의 편지첩은 안의 현감과 면천군수로 있을 때 집에 보낸 30여통의 편지를 날짜 순으로 정리해 둔 것이다.

기록과 정리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 다양한 지식 경영 노하우의 축적은 총서(叢書) 편찬 열기로도 이어졌다. 중국에서 ‘한위총서(漢魏叢書)’나 ‘소대총서(昭代叢書)’ 또는 ‘설부(說?)’, ‘단궤총서(檀?叢書)’와 같은 총서류 저작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우리도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발동했다. 그들이 한 일을 우리라고 못 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박지원은 ‘삼한총서(三韓叢書)’를 기획했다. 중국과 우리 옛 문헌에서 우리나라와 외국과의 교섭과 관계된 기록들을 가려 뽑아 한 질의 총서로 만들려 했다. 현재 남아있는 목록에는 모두 178종의 서책이 나열되어 있고, 이는 당초 계획의 10분의 1,2에 불과한 분량이다. 이 책이 완성되었더라면 고대로부터 근세까지의 한중교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만주는 ‘해내총서(海內叢書)’와 ‘해외총서(海外叢書)’를 동시에 기획하고 그 서목을 정리했다. 중국에는 ‘한위총서’가 있는데, 문헌의 역사가 천년이 넘는 우리는 그 많은 문헌들이 흩어져 있어 하나로 정리되지 못하고 있으니, ‘해내총서’를 정리하지 않을 수 있겠냐며, 시대별로 묶어 384종의 목록을 정리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설부’를 본떠 ‘통원설부(通園說?)’를 엮었다. 통원은 그의 호다. 모두 28목(目)으로 구분하여 우리나라의 온갖 기이하고 희한한 이야기를 가려 모았다. ‘설부’의 조선 버전을 엮은 것이다.


▲ 정민·한양대 국문과 교수
서유구(徐有?·1764-1845)는 ‘소화총서(小華叢書)’를 기획했다. ‘삼한총서’와 달리 역사와 문화, 학술을 아우르는 방대한 종합적 총서였다. 우리나라의 저술을 경익(經翼)·별사(別史)·자여(子餘)·재적(載籍)의 4부로 나누어 경전 해석과 관련된 저술, 역사와 관련된 것, 그밖에 경세실용서들을 망라하고자 했다. 체재는 ‘한위총서’를 본뜬 것이었다. 애초에 이같은 방대한 총서의 기획은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평생에 걸쳐 모은 방대한 장서와 의욕적인 독서, 주변 동지들의 협조를 믿고 이 작업에 착수했다. 결국 모두 힘에 부쳐 완성을 보지는 못했지만 당시 이들의 고양된 문화적 자신감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기록한다> 멋진 말이긴 하다.

하지만 기록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허접한 글나부랭이나 쓸 생각말고 기록이나 해야할 것 같다.

일기를 써 본지는 또 얼마나 오래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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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09-0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한때는 다이어리 참 열심히도 썼는데 요새는 전혀...
한 7~8년동안은 거의 안쓴것 같아요.. 헉...
ㅡ,.ㅡ

stella.K 2005-09-0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엉...
 

육체의 감옥서 탈출한 '큰 사람'의 '큰 목소리'

빅맨 빅보이스
토마스 크바스토프 지음 | 김민수 옮김 | 일리 | 350쪽 | 1만5000원
김성현기자 danpa@chosun.com
 


 

1977년 독일 하노버음대 학장실. 1m32㎝의 단신에 손가락은 7개 밖에 없고, 팔·다리도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장애 학생이 방에 들어왔다. 이름은 토마스 크바스토프. 이 학생은 성악도가 되기를 진지하게 소망했지만 학장의 답변은 차갑기만 했다.

“이것 보세요. 독일의 교육법상 성악과에 입학하려면 최소한 한가지 악기는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피아노라든지….”

크바스토프의 아버지는 “아들의 손가락은 열개가 안된다”며 항의했지만 “자제분은 입학 자격 미달”이라는 쌀쌀한 거절만 날아왔다.

크바스토프. 그래미상(賞)을 2차례 수상하고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래틀, 콜린 데이비스, 정명훈 등 세계적 지휘자들과 협연하고 있으며 2010년까지 공연 스케줄이 꽉 차있는 정상급 바리톤. 하지만 그의 출발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1950년대 유럽의 임산부들이 입덧을 없애기 위해 복용하던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으로, 크바스토프는 손과 발이 앞으로 제대로 뻗지 못하고 물개처럼 뒤로 꺾인 채 태어났다. 육체가 악기인 성악가에게 그 육체가 감옥이 된 것이다. 홍역과 볼거리, 10차례가 넘는 감기로 갓난 아이때부터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져야했고, 의족을 한 채 운동장을 걷느라 학교 친구들의 조롱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음대 입학 허가를 받지 못해 법대에 진학해야 했고, 은행 홍보실 직원, 라디오 방송 진행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하지만 끝끝내 하고 싶었던 일이 음악이고 노래였기에 그 길을 묵묵히 걸었다. 때로는 “노래하는 기계인간”라고 ‘자조(自嘲)’했지만, “50㎝ 높이의 단상과 1m 정도의 의자에 앉은 키 70㎝의 바리톤이 앉는다면 지휘자와 충분히 눈을 맞추며 노래할 수 있다”며 ‘자조(自助)’하기도 했다. 마침내 1988년 ARD 국제음악 콩쿠르에서 1등상을 수상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발판을 마련했다.


무대에서 오페라 배역을 소화하기 힘든 신체적 조건을 이겨내기 위해 정적(靜的)인 자세로 노래할 수 있는 슈베르트나 슈만의 가곡을 치밀하게 연구하는 대목에 이르면, “사람들이 내 신체에 흥미를 갖기를 원치 않는다. 단지 연주로만 평가받고 싶을 뿐”이라는 그의 포부가 얼마나 치밀하면서도 원대한 것인지 눈치챌 수 있다. 크바스토프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의 도움으로 오페라 ‘피델리오’에 출연하며 또다시 자신의 한계를 깨나갔다.

크바스토프가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인 형의 도움을 받아 쓴 이 책은 신파극 같은 과장으로 억지 눈물을 쥐어짜기보다는 대체로 진솔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나는 장애인의 성공 사례도, 인생의 충고자도 아니다. 단지 장애인들의 신체적 결함이 심각한 핸디캡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티눈 정도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는 크바스토프의 꿈에는 분명 소박함이 깃들어있다. 그렇기에 ‘큰 사람 큰 목소리’라는 책 제목이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일 지 모른다.

크바스토프는 “삶 자체는 오류의 연속이며, 부분적으로 고통스럽다. 하지만 삶을 순수하게 바라보거나 끊임 없이 예술을 표상하다보면 고뇌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인용한다. 슬픔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듯하다가도, 그것을 삼키고 너무나 온화하고도 담담한 목소리로 불러낸 크바스토프의 ‘겨울나그네’(슈베르트) 음반을 듣다보면 이 경구(警句)가 그의 삶에 얼마나 크나큰 힘이 됐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휠체어를 타고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을 누비는 한국인 의사, 이승복 씨의 자전적 에세이. 촉망받는 체조선수에서 사지마비 장애인으로, 하버드 의대 인턴과정을 거쳐 재활의학과 수석 전공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들려 준다.

여덟 살에 미국으로 이민 간 지은이는 체조선수의 길을 걷는다. 올림픽 메달을 꿈꿀 정도로 착실하게 기량을 다져 나가지만, 불의의 사고를 겪게 된다. 꿈을 잃고 텅비어 있던 그는 어느 날 의학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고, 이후 고통스런 재활훈련을 이겨내며 모든 에너지를 학업에 쏟아붓는다.

'슈퍼맨 닥터 리'란 별명을 가진 이승복 씨의 이야기는 KBS '인간극장'을 통해 한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많은 환자들에게 신뢰와 믿음, 삶의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그의 지치지 않는 열정과 노력을 만나 볼 수 있는 책이다.

소설은 허구가 많고,

이론서는 딱딱하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건조하다.

요즘엔 이런 책이 읽고 싶어졌다.

하도 인생을 거지같이 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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