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동안엔 그다지 많은 책들을 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몇권 안되는 책 중에 가장 좋은 책을 꼽으라면 저는 단연 김훈의 책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가는 꼭 읽어야지, 읽어야지. 마음에만 담아 놓은 책들이 한 둘이겠습니까마는 문학에 관심이 많다고 뻥치고 돌아다니는 제가 이제사 그의 책을 붙들 었습니다.
오래전 책 읽는 나무님께 싸게 산 책, <밥 벌이의 지겨움>과 그 유명한 <칼의 노래>를 운빈현님께 받고 연달아 읽은 것입니다.
같은 경우는 문체가 약간은 건조한 듯 하면서도 그의 독특한 사유가 드러나 있어서 내내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지금도 잘 잊혀지지 않는 글귀 하나가 있습니다.
남자로 태어나는 일은 유전적으로 세습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는 운명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한 시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특권'이라는 것의 본질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비애로운 것인가. ......남성성의 본질이란 아마도 '결핍'일 것이다. 스스로 결핍이 아니라면 남자들이 여자를 그리워할 리가 없을 것이다.
오입을 하고 바람을 피울 수 밖에 없는 남자들도 다 그 결핍 때문인 것이다. 나는 남자의 '특권'을 이 사회에 반납하고 싶다. 그리고 마누라 보다 오래 살아서, 내 마누라가 죽을 때 이 마누라를 이 세상의 가장자리까지 배웅해 주고 싶다. -<남자도 오래 살고 싶다> 중에서
과연 그렇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홀아비 보다 과부가 많은 이 세상에서 꼭 여자가 남자를 배웅해 줘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나에게 결혼을 한 친구들은 말합니다. 이 세상엔 아직도 남성우월주의가 남아 있어서 여자가 결혼하면 손해라고. 그 말이 틀리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의 시각이고, 남자는 남자들 나름의 고충이 있겠죠. 김훈은 그것에 대해 참 청승스럽게 잘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아버지를 먼저 보낸 우리 엄마를 보더라도 이건 좀 불공평한 처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30년 결혼 생활동안 시집살이에, 남편 바람피워 속썩이고, 자식들 시집 장가를 재대로 보내지 못해 끙끙매는 그 모든 것을 엄마가 아직도 고스란히 뒤집어 쓴다고 생각하면 엄마의 삶은 어찌보면 가혹하고 피곤해 보입니다.
남자들도 여자 보다 조금은 오래 살아서 여자의 마음이 어땠을런지를 헤아려 봐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앗, 쓰고보니 저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 봅니다. 남자를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결국 이렇게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책은 읽으면서 오랫만에 비장미가 느껴지는 흔치 않은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존의 고독이 느껴져 읽어내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런 문체의 경우 자칫 감상주의로 빠져 신파조로 흐를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는 김훈의 내공이 또한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김훈은 사랑스러운 작가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이 경우 존경을 표해야 마땅한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에겐 사랑하고픈 흔치 않는 작가입니다.
지난 여름 이 책들을 읽어냈기에 그냥 허투로 보내지 않았다고 자위해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