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에 사는 친구가 마침 귀국을 했길래 오늘 그 친구의 시댁으로 책 한 박스를 정리해서 보내 주었다. 지금까지 나는 1년에 한번 정도는 책 한 박스를 그 친구에게 보내줬다. 그러면 그 친구는 또 그곳 한국 학교에 그 책을 보낸다. 전에는 친구가 직접 도서관을 운영을 했지만, 지금은 시내에 살다 외곽으로 이사한 상태라 더 이상 도서관을 운영할 수 없고, 아들내미가 다니는 한국 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 책을 보내는 계절은 주로 봄이나 여름 더위가 지나고 난 후에 보내는 편인데 이번엔 딱 여름의 한가운데서 책을 보내 게 됐다.  그러니 얼마나 더우랴. 그렇게 책을 정리해 보내 게 되면 방안을 한바탕 뒤짚어 초토화를 시킨다. 그래서 내가 읽을 책과 다시 안 볼 책을 골라내야 한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지난 봄쯤 보내야 할텐데 조금 늦어진감이 없지 않다. 그만큼 보내 줄 책도 많을 줄 알았다. 더구나 작년 가을무렵 M님이 고맙게도, 언제고 책 보낼 때 같이 보내라고 여러 권의 책을 알라딘에서 직접 신청을 해서 보내 주셨다. 그것과 합치면 한 박스는 쉽게 채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이번에도 역시 겨우 한 박스를 채웠을 뿐이다. 그만큼 책을 읽으려고 사 들이는데 비해 읽는 것은 더디다는 말도 된다. 

그런데, 한 박스나 비워냈으니 그만큼 빈 자리도 많이 날 줄 알았다. 전에는 그만큼 비워냈으니 또 다시 뭘로 채울까 기대가 있었고, 실제로 금방 채워지기도 했다. 그러면 또 그 친구에게 보내면 될텐데 무슨 걱정이야 하며 낙관적으로 생각했다(나는 책에 대해서만큼은 정말 낙관적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책 한 권 정도 쌓아둘 자리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며 슬금슬금 사들이기도 많이 사들였다. 하지만 오늘 보니 그렇게 비워내도 별로 비워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저 내 책상위의 세 줄로 쌓아놨던 책을 이제 두 줄이 되었다는 정도다. 항상 마음 먹기를 책상 위엔 절대로 두 줄 이상 책을 쌓아두지 않겠다고 했는데 또 어느새 모르게 세 줄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내 책상이 넓으냐면 그렇지도 않다. 그냥 그야말로 코딱지만하다. 그리고 거기에 노트북 올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더 이상 무엇을 올리는 건 용량초과다.  

난 왜 이리도 책에 대한 욕심이 줄지 않는지 모르겠다. 지난 달부터 지금까지 사들이고, 또 아는 곳에서 받기도 한 책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더구나 알라딘 평가단에서 보내 준 책까지. 아는 곳에서 받는 책이나 알라딘 평가단이 보내 준 책 읽는 것만으로도 한달은 빨리간다. 더구나 앞으로 모처에서 하는 문학토론회 참가하려면 의도하지 않게 그책도 읽어줘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정작 내가 읽을려고 산 책은 언제 읽을지 기약이 없다.  그렇게 언젠가 읽겠지 하는 책이 언젠가는 못 읽고 대신 몇 년씩 묵혔다가 그 친구에게 보내는 형국이 되고만다.  이제 꼭 필요한 책 외엔 가급적 책을 안 사는 방향으로 해야겠다. 그리고 한 줄로 세우면 천장 끝에 닿을 이 언젠간 읽겠지 하는 책을 읽어야겠다.  

하긴, 내가 친구에게 보내는 책 한 박스를 겨우 채운 것도 정말 오래두고 볼 책들 위주로 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점점 책을 보내 줄 것이 없고 쌓여만 가는 것이다. 어쨌든 오늘 이렇게 책을 빼내니 살이 빠진 느낌과 맞먹는 느낌이긴 하다.  물론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이 기분을 만끽해도 좋을 것 같긴하다.   

아, 참고로, 난 그 친구에게 다시 안 볼 책을 보내준다고 생각하는데 꼭 지나놓고 괜히 보냈다 싶은 책 한 두권은 꼭 있다. 줬다 뺐을 수도 없고. 오늘 보낸 책도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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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8-06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사는 속도와 책을 읽는 속도 사이에는 항상 버퍼링이 존재하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리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지. 그러면서도 왜 자꾸 플래티넘 회원 자리는 고집하는지...

stella.K 2011-08-06 15:49   좋아요 0 | URL
ㅎㅎ 진정한 플래티넘이시군요!
저는 어부지리형인데...ㅋㅋ
사실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잡아야 하는데...
그래도 뭐 우리의 에코 할배가 계시지 않습니까?
그 할배 <책의 우주>에서 그랬다며요, 자기 집에 무슨 책이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나 뭐라나...!ㅋㅋ
 
두 번째 사랑 - Never Forev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김진아
주연 : 하정우, 베라 파미가(2007)

영화의 분위기가 매우 이국적이다. 그렇다고 배경이 꼭 미국이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한국 사람(아마도 한국계 미국인이 아닐까?)인 것 같지만, 이 작품 외에 이렇다할 필모그래피가 없다. 또한 스텝진들이 다 미국 사람들이다. 특히 이 영화는 촬영 감독의 덕을 톡톡히 본 영화는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난 또 이 독특한 영화적 분위기 때문에 영화를 끊어보지 않고 한번에 볼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만큼 몰입도가 좋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 보고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겹쳐 약간은 혼란스러워졌다. 감독은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아무리 미국에 뿌리를 박고 사는 한국 이민자라도 깊이 뿌리 박힌 자녀를 낳아야 한다는 것과 핏줄에 대한 집착만큼은 어쩌질 못하겠는가 보다. 아마도 감독은 그것을 고발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불임부부인 경우 우리는 전통적으로 남자 보단 무의식적으로 여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것은 아무리 불임의 문제가 여자에게 있지 않고 남자에게 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또 하나의 독특한 설정은 여자가 미국 본토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외국인인 경우 우리나라의 이 기묘한 사고방식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긴 하다. 여자가 문제가 있는 경우 시댁식구들의 냉대를 받아내거나(이혼할 의사가 없는 경우) 그것을 거부(이혼을 불사하고라도)하면 그만이지만, 남자가 문제가 있는 경우 그 문제의 양상을 달라진다. 남자는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사가 없다. 오히려 회피하므로 여자를 또 다른 국면에서 옥죄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남아선호사상의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이 영화는 말해주는 듯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댁에서는 대놓고 며느리를 구박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 소피(베라 파미가 분)는 한국 시어머니로부터  50일 금식기도 후에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너의 남편을 갖게 된 거라며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듣지만 확실히 이건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말하자면 시어머니가 50일 금식 기도를 했으니 자신도 50일 금식을 해 보라는 무언의 압력이기도 한데, 당신이 그렇다고 해서 남의 집 귀한 딸까지 그래야 한다는 정당성은 없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 나름의 삶이 있는 것처럼, 며느리는 며느리 나름의 삶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아이를 낳고 못 낳고의 그것으로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때 또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은 이 파란 눈의 며느리 소피에겐 얼마나 낯선 하나님인가?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그냥 아이없이 그냥 살자던 남편 앤드류가 어느 날 자실을 시도한다. 거기엔 이렇다할 이유가 확실히 나와있지 않다. 삶이 무료하고 지쳤던 것인지, 우울증 때문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제3의 뭔가의 원인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소피의 짐작으론 남편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그것 때문에 자살을 하려고 했다고 생각하고 더 많이 아이에 집착 한다.  

그런데,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질 것이라고, 소피는 자신이 임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중 병원 불임클리닉에서 우연히 불법이민자 김지하(하정우 분)를 만나 거래를 만난다. 하정우는 정자를 팔아 돈을 모르려 하지만 불법이민자의 정자는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소피는 이에 의도적으로 지하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아이를 갖게만 해 준다면 얼마의 현금을 주겠다고 제안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거래는 성립이 된다.    

              

결국 여기서 묻고 싶은 건, 과연 인간에게 아무런 감정을 갖지 않는 섹스란 가능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돈은 있지만 감정은 없다.  이것이 전형적인 남창의 화대는 아니라고는 해도 어찌보면 짐승의 교미 보다 못한 것일 수도 있다는 걸 지하가 깨닫는데는 별로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지하는 자신의 정자를 소피에게 제공하고 매번 그녀로부터 돈을 받지만 그도 사람이다. 아무런 느낌도 없이 이름도 모르는 여자에게 자신의 정자를 제공한다는 것이 하면 갈수록 허탈한 공복감으로 다가왔었나 보다. 그래서 그는 섹스 후에 소피에게 밥을 좀 먹겠다고 했는가 보다. 그런데 비해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처리하려고만 하는 소피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긴,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는 게 또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지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리라. 그것을 지하는 알까? 결국 그런 그 두 사람의 감정적 괴리는 충돌을 빚게 된다. 또 그것은  아무리 비지니적 관계여도 최소한의 인격적 관계는 되야되지 않겠냐는 지하의 바람이 담긴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싸움은 서로의 마음을 열어보이는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들이 하는 일은 비지니스적 관계가 아닌 좀 더 의미있고 조금은 편안한 감정을 교류하는 쪽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던 중 마침 소피는 임신을 을 하게되고 감정이 더 발전하기 전에 이들의 관계를 마무리 할 수 있게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소피의 임신으로인해 남편도 생기를 되찾고 다시 행복이 찾아 온 것만 같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다. 만나고 있을 땐 덤덤하던 관계가 이제 더 이상 만날 필요가 없게 되고보니 격정적인 그리움으로 이들을 지하와 소피를 강하게 묶어놓다. 그 과정에서 남편 앤드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되고, 지하가 불법이민자라는 점을 들어 두 사람의 관계를 끊어 놓으려고 한다. 그리고 소피에게는 아이를 지우면 이제까지의 일은 없던 것으로 해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소피는 뱃속의 아이를 지우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버틴다.  

여기서 감독은 초두에 말했던 남아선호사상을 꼬집는 것을 넘어 결혼의 허구를 꼬집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임신을 하려고 했던 소피는 이제 아기를 지키기 위해 가정을 버리는 쪽으로 바뀐다. 그것은 또 새로운 가정을 만들겠다는 의미도 된다. 결국 여자에게 있어서 가정은 자신의 2세를 안전하게 지켜내고 키워내기 위한 둥지와 같다. 그러므로 이제 가정은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자신을 위한 성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은 몰라도 가정만큼은 여성의 성(城)이며 여자는 그 안에 사는 군주다. 아무리 한국의 가정이 가부장이라고는 하지만 그 가부장을 움직이는 것은 여성인 것이다. 단지 소피는 이것을 지금까지 깨닫지 못해 혼란스러워 했던 것이다.  또 그것은 여자는 남자에게서 자신의 존재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는 것을 통해 여성의 존재가 완성된다는 것을 가장 불온하게 보여준 영화가 아닐까 한다.    

 하정우를 나름 좋아하긴 하지만, 이 영화는 하정우 보단 베라 파미가의 연기가 더 돋보였던 여성 영화란 생각이 든다.  주인공을 맡은 베라 파미가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불행과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 그리고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 복잡한 자아를 사실적으로 잘 보여준 배우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녀는 <오펀:천사의 비밀>(2009)이나 최근 <소스코드>에도 나왔던 누구라면 알만한 배우였다. 가히 <소피의 선택>의 메릴 스트립을 떠올릴만 하다. 그런 배우를 난 이제야 알게 되었다니, 영화를 좀 더 열심히 봐야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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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앤피스 2011-07-3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베라 파미가에 주목한 영화리뷰는 처음인데요.. 소스코드와 오펀에 나왔던 배우라니... 전 하정우에 좀 이입해서 본 기억이 떠오르네요.. 영화는 잘 모르지만요. 글 잘 보았습니다. 무더운 여름! 잘 이겨내세요.

stella.K 2011-08-01 11:56   좋아요 0 | URL
이 배우를 아시는군요.
좋은 배우인 것 같아요.^^

pjy 2011-08-0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본 영화는 아니지만 듣기는 많이 들었죠~
다들 하정우에 대해서만 말들이 많았지 실질적인 영화내용이나 다른 배우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네요
이런 관점의 리뷰는 낯설면서도 참, 좋네요^^

stella.K 2011-08-01 15:43   좋아요 0 | URL
헉, 하정우에 대해서만 얘기하던가요?
뭐 하정우가 나름 비중있게 나온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소피가 주인공이고,여성 영환데...
어쨌든 pjy님의 귀중한 추천 한표는 정말 고맙습니다.흐흑~

2011-08-01 1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2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11-08-04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한편을 본 것 같은 리뷰였어요. 잘 읽었어요. 하정우에게 어울리는 영화 같아요^^

stella.K 2011-08-04 14:04   좋아요 0 | URL
오, 오랫만에 들어왔네. 읽을만 했어?
하정우 나온다고 해서 혹해서 봤는데 하정우 보단 여자 주인공이
더 많이 보이더군. 나름 괜찮았어? 그럼 추천 좀 하지 그래.ㅋ
책은 잘 나가는지 모르겠네.^^
 
순교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이책을 읽으니 머리에서 안 쓰던 근육들이 "우드득" 소리를 내며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우린 자아나 욕망을 주제로 한 문체주의 소설에 너무 많이 길들여져 온 것은 아닌지?  그 깊이에 있어서는 가히 거장이라 칭하는 황석영이나 김훈이 따라 올 수 없는 묵직함이 있지 않나 싶다. 그것은 또  이 소설을 굳이 분류하자면 관념주의 소설에 놓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보면 말마따나 관념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도스토옙스키와 가히 맘먹지 않나 싶기도 하다.   

사실 난 이 작품을 20년 전쯤에 읽어었다(잘 기억은 안 나지만 김은국씨가 직접 번역한 책이었던 것 같다) . 뭐 20년 전에 읽었으니 내용이 그다지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그 느낌마는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김은국 그는 참 흔치 않는 작가란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무엇보다 여느 작가는 잘 다루지 않을 법한 신의 존재에 대해 정면으로 묻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책이 서술적인 측면에서도 완벽함을 추구했다고는 볼 수 없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특징은 인물과 인물의 차이를 보여주는 캐릭터 구사면에선 다소 떨어진다.  무엇보다 화자를 비롯해 등장인물들이 하나 같이 비슷한 언어 수준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으로봐 교양 꽤나 갖춘 하이클래스다. 그래서 인물의 구분이 용이하지 않다. 또한 이 작품은 처음부터 그 속내를 드러내주지 않을뿐만 아니라 (추리 기법을 차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끝까지  결말을 보여주지 않고 있어서, 다시 읽어도 처음 읽는 것처럼 여전히 어렵다.  

무엇보다 6.25 그 신산했던 시절 공산당에 의해 12명의 기독교인이 죽었다. 하지만 그 중 신 목사와 한 목사는 살았다. 그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보는 사람마다 해석을 달리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그 두 사람은 왜 12명과 죽지 않고 살았는가? 하나님을 배반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오독의 여지를 두고서라도) 읽어보면 알겠지만 딱히 살기 위해 배반했던 것도 아니다. 또한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12명이 정말 순교했을까에도 의문의 여지는 남는다.  오히려 보기에 따라선 살아남은 두 사람이 죽은 자보다 더 진실해 보일 수도 있다.  

더구나 그들은 살아 남았기 때문에 왜 12명의 순교자와 함께 죽지 않았냐고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남은 자로서의 자기 사명이 있는 것처럼 일을 수행할뿐이다. 이를테면 살아남았다고 해서 신 목사나 한 목사나 그다지 행복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들은 살아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고, 12명의 순교자들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간증하며 교세 확장을 위해 쓰임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이 또 전도와 신앙 전파를 위한 확신에 찬 행보도 아닌듯 싶다. 이책 중반을 조금 넘어서면 신 목사의 자조 어린 대사가 나온다. "...... 교인들에게 필요한 건 그들에게 위안과 학신을 줄 작고 멋진 얘기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의미있게 하고 고난을 값진 것으로 해줄 그 어떤 것이 아니겠나? ...... "(228p) 가히 신앙적 회의가 뚝뚝 묻어나는 대사다. 6.25의 참상을 몸소 겪으면서 두 패로 나뉠 수 있을 것 같다. 신이 있다면 어떻게 그런 상황을 침묵만 할 수 있는가? 진한 회의 내지는 원망을 하거나, 이 고난의 시기를 신앙으로 이겨 보겠다는 절대 신앙파. 하지만 그 후자쪽엔 바로 신 목사의 저런 회의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두고 읽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 어떤 사람은 신앙을 부정하는 책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신앙에 대해 더 진지한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즈음 묻고 싶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보다도 작가가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결말을 얘기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작가는,  신앙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작가 나름으로 얼마든지 결말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찌보면 문학의 도를 넘어서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들면, 인간이 고난 당할 때 신은 어디에 계시고,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그것에 답을 다는 쪽은 작가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성경학자나 변증학자가 할 일이다. 작가는 그저 인간의 다양한 삶을 규명하거나 풀어 헤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작가는 인간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지 신을(또는 신앙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문학 안에서 신의 유무를 가린다는 건 의미가 없어 보인다. 

단지 그런 생각은 든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작가가 손을 대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건 12명의 순교자일 것이다. 그들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말이 없다. 그러므로 작가는 무엇으로도 그들을 대변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들은 겉으로는 순교자라고 말하겠지만 문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영구미제로 남았다고 할 수 밖엔 없을 것 같다. 그점에 있어서 작가가 제목을 '순교자'로 했다는 건 어찌보면 아이러니 일지도 모르겠다.  

단지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지난 2004년도에 이라크에서 죽어간 김선일씨를 통해 순교자의 내면을 유추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당시 기독교계에선 그를 순교자로 추대를 했다. 그그는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다고 부르짖다 죽어갔다. 그건 뭘 의미했을까? 신에 대한 원망이 없었을까? 아니면 신앙과 상관없는 단말마의 부르짖음이었을까? 또는 이 나라와 대통령에 대한 원망이었을까? 당시 사회에선 한 사람이 죽어가는데 기독교계에서는 순교자라고 한낱 감상주의에 젖어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또 한쪽에선 그렇게 부르짖는 것으로 보면 신에 대한 원망이 있는데 그것을 온전한 순교라고 볼 수 있냐고 잔인한 잣대를 들이대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순교자다. 그것은 죽은 자에 대한 산자의 최고의 예의는 아닐까? 산 목숨을 끊어내는 일인데 그가 죽는 순간 그렇게 부르짖는 거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의 죽음을 기독교에선 교세를 확장하고 신앙을 견고히 하는데 쓴다고 비난할 법도 하다. 하지만 성경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믿지 않는자에게는 미련한 것이나, 믿는 자에겐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나와있다. 그러니 믿지 않는 자의 그런 비판도 정확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순교자에 대해선 이 정도로만 하자. 

이 작품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배경만 한국이라는 것뿐, 흐르는 정서는 미국의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이 미국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수도 있었고,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작품 전반에 흐르는 정서가 한국의 그것을 표현했다면 이만큼 주목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오리엔탈리즘적인 작풍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순수 한국 작품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작품으로 한국의 문학작품이 미국에 알려지는 개기가 되기도 했으니 이 작품이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또 그만큼 당시는 노벨문학상이 아무리 세계적 권위를 갖기 위해 동양권 작품에도 관심을 가졌다 하더라도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뛰어넘지는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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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7-2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작년에 이 책을 읽었을 때 그레이엄 그린의 <권력과 영광>이랑
같이 읽어보려고 했었어요. 작년 기억이라 좀 가물가물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이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타락한 종교인.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순교자>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가끔씩 읽었는데 잊혀져간 책이 있으면
다시 읽어보면 이전과 다른 새로운 감정을 얻을 수 있어서 좋은거 같아요 ^^

stella.K 2011-07-28 11:32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그레이엄 그린이라...!
타락한 종교인은 안 보이는데요. 갈등하는 종교인은 있어도.
혹시 오독한 건 아닌지...?ㅋ
토론 때 한 회원이 전쟁 상황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리얼하게 보여줬다.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해서 막 웃었어요.
뭐 전쟁이 나오지만 그 번짓수는 아니잖아요.ㅎㅎ
확실히 이 책은 오독할만해요. 그만큼 어렵다능.ㅠ
 

주문 문의하신 예약상품 [생각하는 일요일들]의 알사탕 증정 이벤트는 15일부터 페이지 오픈하였으나 이벤트페이지에 7월 16일부터 시작으로 표기 안내드렸습니다.

16일이 토요일이다보니 15일 오후 3시에 이벤트 페이지를 오픈하였으며, 실제 적용은 16일부터 시작되어 아쉽지만 이전 구매하신 분들은 적용대상이 아니셔서 알사탕 발급이 어려운 점 양해말씀 드립니다.
수상하다 싶으면 삭제하고 다음 날 다시 주문할 걸 그랬다. 이책 상품소개란엔 15일부터 31일까지 알사탕이 붙는다고 했고, 알사탕 메인 페이지엔 16일부터라고 했다. 내가 신청한 날은 15일. 잘됐다 싶기도 하고, 뭔일 있으랴 싶었다. 

그런데 왠걸, 알사탕이 지급이 안 됐다. 속았다. 문의를 했더니 저 따위 답변만 받았다.  내 성미에  "어머, 그럼 제가 잘못 알았네요. 제가 잘못 알았군요." 그랬을 것 같은가?  일개의 고객이 알사탕 붙는다는 걸 15일 1시에 했는지, 3시에 했는지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시간 같은 건 나오지도 않았다. 알라딘이 고객을 헷갈리게 하고, 우롱한 했다는 생각은 안하나? 하여간 알라딘, 찌질하다...쩝.    

 

알라딘 서평단이 매월 선정된 책에 대해 너무 어려운 책을 선정한다는 컴플레인이 많이 들어와 앞으로 선정에 수위조절을 할 모양인가 보다. 각 분야의 MD들의 검수를 받은 후 진행을 한단다. 아무래도 그렇게 된데는 내의 입김도 적잖이 보태졌을 것이다. 정말 책이 어려워 죽을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내가 불만을 토로했던 건 리뷰 쓰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빵가게 재습격님의 페이퍼를(blog.aladin.co.kr/bkinterface3/4936640) 읽으니 마음이 흔들렸다. 물론 내가 빵가게님의 말씀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빵가게님은 내 댓글에, '책이 너무 어려워서 읽히지 않는다'도 신간평가단이 할 수 있는 '평가'는 아니겠느냐고 하셨다. 그러면서 마음없이 써대는 엉터리 서평보다는 그게 훨씬 정직하고 좋은 평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다. 나는 웬지 모르게 그 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서평일까? 나는 그 기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나 싶다.  나는 지금까지 정직한 서평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 역시 싫은 소리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그러다 보니 차츰 좋은 소리를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안 쓰는 것이 좋다는 쪽으로 기운다. 게다가 그런 책 서평 하느라 시간 낭비하는 것도 아깝지 않는가? 가끔 분에 차서 서평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건 정말 어쩌다가인데, 솔직히 해 놓고도 마음은 편하지는 않다. 비록 나 보기엔 한심한 책이더라도 그 사람은 책을 낸 저자다. 잘 나기로야 책을 내지 못한 일개 독자보다 훨씬 낫다. 물론 저자가 하는 일과 독자가 하는 일은 다르다고 우기면 그만이다. 어쨌든 그런 사람을 두고 내가 뭐랄 자격이 있는것 같지는 않다. 나중에 드는 건 앞서 말했지만 리뷰어로서 드는 자책뿐이다. 그럴 바엔 안 쓰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느냐는 것이다. 댓글 하나에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세상인데, 괜히 안 좋은 소리했다 그 저자의 날개를 꺾는 건 아닌지? 다행히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작품에 대해서 뭐라고 할뿐 인격을 가지고 뭐라고 한 것은 아니다에 그 사람은 얼마나 동의를 할까? 그렇게 그 책임을 리뷰어는 지고 싶지 않은 거다. 그러니까 점점 좋은 소리 못할 바엔 안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빵가게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닌데, 내가 만약 알라딘 평가단 주최측이라면 평가단으로부터 이번 달 선정도서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는 식의 칭찬을 듣고 싶지, 이것도 책이라고 뽑았냐? 나 차라리 평가단 그만 두는 것이 날 것 같다. 뭐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할 것 같지는 않다. 사람의 마음은 다 인지상정 아닌가? 게다가 난 어려운 책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다. 물론 평가단이 성숙해서 어려워 소외 받는 책에도 애정을 가져준다면 그도 보기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동의할 서평단이 얼마나 될까? 알라딘도 고민하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려운 책도 읽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좋은데 안 알려진고 묻혀질 것 같은 책을 살려내기 위한 평가단이라면 그게 오히려 지금 알라딘이 고민하는 취지와 맞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나는 좀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정말 빵가게님 말씀대로 어렵다면 어렵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 또한 그 책에 대한 예의라면 예의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왜 나는 그것을 못 참아내는 걸까? 나는 서평 쓰기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악평 보다 더 안 좋은 건 무관심이 맞기나 한 걸까? 나는 늘 남들이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길 원했다. 나는 서평단이 공짜책 받는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거의 부르짖다시피 했다. 읽는 시간, 서평 쓰는 시간 그건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서평단에서는 왜 이런 책만 보내주는 것이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나도 칭찬할 수 있는 책을 받아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제 발 저림일 것이다. 왜 난 읽는 책마다  좋은 소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나는 지금도 모처로부터 심심찮게 서평도서를 받고 있는데, 공짜책이라고 순순히 안 봐준다. 해서 솔직히 쓰려고 노력했지만, 내 마음 저 밑바닥엔 공짜로 책을 받았으니 좋은 평을 쓰고 싶은 마음이 무의식중에라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또 아니면 악역을 맡고 싶지 않은 본능 같은 것일 수도 있고. 그러고 보면 이게 다 밑바닥에 깔린 상업주의의 흔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몇년 전, 시나리오를 공부했을 때, 선생님은 자기 작품에 대해 무조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을 적으로 여기라고 하셨다. 나는 그말에 동의한다. 왜 서평자란 이유만으로 좋은 평만 해야하는가? 이것에 대해 알라딘 서평단이 인내할 수만 있다면, 좀 더 성숙한 서평 쓰기가 가능할 수 있을까? 저자나 역자나 아니면 일반 독자들까지도 그 모든 평을 냉정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건 좀 이상인 것 같다. 단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어떤 식으로 쓰든 (모든) 서평은 정직하지 않으며, 자유롭지 않은 것마는 사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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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3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3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7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7-28 11:27   좋아요 0 | URL
언제부턴가 서평과 리뷰를 같이 혼용해서 쓰기 시작했어요.
리뷰는 개인적 잡글을 말하는 것이겠죠?
개인의 생각이나 경험이 들어간. 근데 그걸 알라딘같은 갑쪽에선
더 원한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서평 보단 리뷰를 더 선호하는쪽이
되버린 것 같아요.
서평이든 리뷰든 쓴다는 건 다 어려운데 앞으로 성실하게 쓸려구요.
형편없는 책에도 별점 주고, 가급적 정직하게 쓰려구요.
만날 별 4,5개 달아주는 리뷰만을 쓰는 사람 왠지 저는 구라 같아서 싫더라구요.ㅋ
 

신애라씨가 어제 <무릎팍 도사>에 나왔다. 그녀의 가식적이지 않은 타고난 밝음이 좋았다. 그런데 그게 다 알고 보면 어머니의 영향이라는 것.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5학년까지 아버지와 떨어져서 살았다는데, 짧지않은 세월 자칫 우울하게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많이 안아주셨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어머니는 늘 부족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셨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오래 전 남편 차인표씨와 함께 두 아이를 입양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녀는 아이들이 입양된 사실 모르길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이 아이가 커서 누가 "너 입양됐다며?" 물어 온다면 "그런데 뭐?"하며 그 사실 앞에 떳떳하길 바랬다고 한다. 물론 그 아이들이 입양된 사실을 끝까지 감출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만, 살면서 그럴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차라리 그 사실 앞에 당당하길 바랬다고. 그런 그녀는 참 현명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아들을 위해서는 1년간 홈스쿨링을 했다고도 한다. 그 기간 동안은 정말 아들과 특별한 시간을 가졌고, 아들에게 추억이 될 것이라고.  그렇다. 연예인들 나름 자식들을 잘 키우겠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를 많이 돌보지 못했다고 인터뷰 같은 때 질질 짜며 마치 굉장한 모성애나 부성애를 과시하는 것 보다, 단 한 시절만이라도 아이와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그들이 후에 아무리 바빠 시간을 갖게 되더라도 아이는 부모 원망 같은 건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바쁘고 어려워도 자식을 잘 키울 방법은 어딘가 꼭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아이들 유치원비가 대학등록금과 맞먹는 시대에 감히 어디에서도 그것의 배에 해당하는 등록비를 줘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 MC 강호동은 차인표씨가 두 번째 책을 냈다고 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 마침 나도 아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이 책을 얻게 됐다(나는 왜 이책을 자꾸 '일기예보'로 착각해서 읽는지 모르겠다). 나는 연예인들이 책 내는 것에 별로 관심없다. 그래도 차인표는 첫 번째 책을 낸 것에 이어 두번째 책을 내는 것을 보면 모르긴 해도 이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책을 낼 모양인가 보다. 그렇지 않아도 그의 오랜 꿈이 작가가 되는 거라고 하니 말이다. 마침 이 책에 '무릎팍 도사'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고 강호동이 좋아라 한다.  

책에 대한 반응도 좋으니 선입견은 거두고 한번 읽어봐야겠다. 어제 신애라도 그런 말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서 차인표라는 사람이 얼마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좀 의외의 사실은, 신애라씨가 선행으로 상을 받아 본적은 있지만, 연기로 상을 받아 본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해서 놀랐다. 아, 요즘 일일연속극에 나오던데, 올 연말엔 뭐라도 하나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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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7-21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부러운 부부예요 션과 정해영부부처럼

stella.K 2011-07-21 17:50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이들도 참 아름답게 사는 부부죠.
얼마 전 네째 낳다고 하던데, 참 다복해요.^^

메르헨 2011-07-2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흠...연예인의 책 저도 별로인데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스텔라님께서 먼저 읽으시고 리뷰 올려주세요.^^
저는 어제부터 책만 보는 바보 읽고 있습니다.

stella.K 2011-07-22 13:26   좋아요 0 | URL
저도 책만 보는 바보 샀는데...!
언제 읽게될런지는 몰라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