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이책을 읽으니 머리에서 안 쓰던 근육들이 "우드득" 소리를 내며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우린 자아나 욕망을 주제로 한 문체주의 소설에 너무 많이 길들여져 온 것은 아닌지?  그 깊이에 있어서는 가히 거장이라 칭하는 황석영이나 김훈이 따라 올 수 없는 묵직함이 있지 않나 싶다. 그것은 또  이 소설을 굳이 분류하자면 관념주의 소설에 놓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보면 말마따나 관념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도스토옙스키와 가히 맘먹지 않나 싶기도 하다.   

사실 난 이 작품을 20년 전쯤에 읽어었다(잘 기억은 안 나지만 김은국씨가 직접 번역한 책이었던 것 같다) . 뭐 20년 전에 읽었으니 내용이 그다지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그 느낌마는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김은국 그는 참 흔치 않는 작가란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무엇보다 여느 작가는 잘 다루지 않을 법한 신의 존재에 대해 정면으로 묻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책이 서술적인 측면에서도 완벽함을 추구했다고는 볼 수 없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특징은 인물과 인물의 차이를 보여주는 캐릭터 구사면에선 다소 떨어진다.  무엇보다 화자를 비롯해 등장인물들이 하나 같이 비슷한 언어 수준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으로봐 교양 꽤나 갖춘 하이클래스다. 그래서 인물의 구분이 용이하지 않다. 또한 이 작품은 처음부터 그 속내를 드러내주지 않을뿐만 아니라 (추리 기법을 차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끝까지  결말을 보여주지 않고 있어서, 다시 읽어도 처음 읽는 것처럼 여전히 어렵다.  

무엇보다 6.25 그 신산했던 시절 공산당에 의해 12명의 기독교인이 죽었다. 하지만 그 중 신 목사와 한 목사는 살았다. 그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보는 사람마다 해석을 달리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그 두 사람은 왜 12명과 죽지 않고 살았는가? 하나님을 배반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오독의 여지를 두고서라도) 읽어보면 알겠지만 딱히 살기 위해 배반했던 것도 아니다. 또한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12명이 정말 순교했을까에도 의문의 여지는 남는다.  오히려 보기에 따라선 살아남은 두 사람이 죽은 자보다 더 진실해 보일 수도 있다.  

더구나 그들은 살아 남았기 때문에 왜 12명의 순교자와 함께 죽지 않았냐고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남은 자로서의 자기 사명이 있는 것처럼 일을 수행할뿐이다. 이를테면 살아남았다고 해서 신 목사나 한 목사나 그다지 행복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들은 살아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고, 12명의 순교자들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간증하며 교세 확장을 위해 쓰임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이 또 전도와 신앙 전파를 위한 확신에 찬 행보도 아닌듯 싶다. 이책 중반을 조금 넘어서면 신 목사의 자조 어린 대사가 나온다. "...... 교인들에게 필요한 건 그들에게 위안과 학신을 줄 작고 멋진 얘기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의미있게 하고 고난을 값진 것으로 해줄 그 어떤 것이 아니겠나? ...... "(228p) 가히 신앙적 회의가 뚝뚝 묻어나는 대사다. 6.25의 참상을 몸소 겪으면서 두 패로 나뉠 수 있을 것 같다. 신이 있다면 어떻게 그런 상황을 침묵만 할 수 있는가? 진한 회의 내지는 원망을 하거나, 이 고난의 시기를 신앙으로 이겨 보겠다는 절대 신앙파. 하지만 그 후자쪽엔 바로 신 목사의 저런 회의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두고 읽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 어떤 사람은 신앙을 부정하는 책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신앙에 대해 더 진지한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즈음 묻고 싶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보다도 작가가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결말을 얘기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작가는,  신앙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작가 나름으로 얼마든지 결말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찌보면 문학의 도를 넘어서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들면, 인간이 고난 당할 때 신은 어디에 계시고,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그것에 답을 다는 쪽은 작가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성경학자나 변증학자가 할 일이다. 작가는 그저 인간의 다양한 삶을 규명하거나 풀어 헤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작가는 인간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지 신을(또는 신앙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문학 안에서 신의 유무를 가린다는 건 의미가 없어 보인다. 

단지 그런 생각은 든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작가가 손을 대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건 12명의 순교자일 것이다. 그들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말이 없다. 그러므로 작가는 무엇으로도 그들을 대변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들은 겉으로는 순교자라고 말하겠지만 문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영구미제로 남았다고 할 수 밖엔 없을 것 같다. 그점에 있어서 작가가 제목을 '순교자'로 했다는 건 어찌보면 아이러니 일지도 모르겠다.  

단지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지난 2004년도에 이라크에서 죽어간 김선일씨를 통해 순교자의 내면을 유추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당시 기독교계에선 그를 순교자로 추대를 했다. 그그는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다고 부르짖다 죽어갔다. 그건 뭘 의미했을까? 신에 대한 원망이 없었을까? 아니면 신앙과 상관없는 단말마의 부르짖음이었을까? 또는 이 나라와 대통령에 대한 원망이었을까? 당시 사회에선 한 사람이 죽어가는데 기독교계에서는 순교자라고 한낱 감상주의에 젖어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또 한쪽에선 그렇게 부르짖는 것으로 보면 신에 대한 원망이 있는데 그것을 온전한 순교라고 볼 수 있냐고 잔인한 잣대를 들이대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순교자다. 그것은 죽은 자에 대한 산자의 최고의 예의는 아닐까? 산 목숨을 끊어내는 일인데 그가 죽는 순간 그렇게 부르짖는 거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의 죽음을 기독교에선 교세를 확장하고 신앙을 견고히 하는데 쓴다고 비난할 법도 하다. 하지만 성경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믿지 않는자에게는 미련한 것이나, 믿는 자에겐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나와있다. 그러니 믿지 않는 자의 그런 비판도 정확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순교자에 대해선 이 정도로만 하자. 

이 작품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배경만 한국이라는 것뿐, 흐르는 정서는 미국의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이 미국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수도 있었고,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작품 전반에 흐르는 정서가 한국의 그것을 표현했다면 이만큼 주목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오리엔탈리즘적인 작풍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순수 한국 작품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작품으로 한국의 문학작품이 미국에 알려지는 개기가 되기도 했으니 이 작품이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또 그만큼 당시는 노벨문학상이 아무리 세계적 권위를 갖기 위해 동양권 작품에도 관심을 가졌다 하더라도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뛰어넘지는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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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7-2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작년에 이 책을 읽었을 때 그레이엄 그린의 <권력과 영광>이랑
같이 읽어보려고 했었어요. 작년 기억이라 좀 가물가물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이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타락한 종교인.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순교자>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가끔씩 읽었는데 잊혀져간 책이 있으면
다시 읽어보면 이전과 다른 새로운 감정을 얻을 수 있어서 좋은거 같아요 ^^

stella.K 2011-07-28 11:32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그레이엄 그린이라...!
타락한 종교인은 안 보이는데요. 갈등하는 종교인은 있어도.
혹시 오독한 건 아닌지...?ㅋ
토론 때 한 회원이 전쟁 상황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리얼하게 보여줬다.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해서 막 웃었어요.
뭐 전쟁이 나오지만 그 번짓수는 아니잖아요.ㅎㅎ
확실히 이 책은 오독할만해요. 그만큼 어렵다능.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