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에 사는 친구가 마침 귀국을 했길래 오늘 그 친구의 시댁으로 책 한 박스를 정리해서 보내 주었다. 지금까지 나는 1년에 한번 정도는 책 한 박스를 그 친구에게 보내줬다. 그러면 그 친구는 또 그곳 한국 학교에 그 책을 보낸다. 전에는 친구가 직접 도서관을 운영을 했지만, 지금은 시내에 살다 외곽으로 이사한 상태라 더 이상 도서관을 운영할 수 없고, 아들내미가 다니는 한국 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 책을 보내는 계절은 주로 봄이나 여름 더위가 지나고 난 후에 보내는 편인데 이번엔 딱 여름의 한가운데서 책을 보내 게 됐다.  그러니 얼마나 더우랴. 그렇게 책을 정리해 보내 게 되면 방안을 한바탕 뒤짚어 초토화를 시킨다. 그래서 내가 읽을 책과 다시 안 볼 책을 골라내야 한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지난 봄쯤 보내야 할텐데 조금 늦어진감이 없지 않다. 그만큼 보내 줄 책도 많을 줄 알았다. 더구나 작년 가을무렵 M님이 고맙게도, 언제고 책 보낼 때 같이 보내라고 여러 권의 책을 알라딘에서 직접 신청을 해서 보내 주셨다. 그것과 합치면 한 박스는 쉽게 채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이번에도 역시 겨우 한 박스를 채웠을 뿐이다. 그만큼 책을 읽으려고 사 들이는데 비해 읽는 것은 더디다는 말도 된다. 

그런데, 한 박스나 비워냈으니 그만큼 빈 자리도 많이 날 줄 알았다. 전에는 그만큼 비워냈으니 또 다시 뭘로 채울까 기대가 있었고, 실제로 금방 채워지기도 했다. 그러면 또 그 친구에게 보내면 될텐데 무슨 걱정이야 하며 낙관적으로 생각했다(나는 책에 대해서만큼은 정말 낙관적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책 한 권 정도 쌓아둘 자리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며 슬금슬금 사들이기도 많이 사들였다. 하지만 오늘 보니 그렇게 비워내도 별로 비워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저 내 책상위의 세 줄로 쌓아놨던 책을 이제 두 줄이 되었다는 정도다. 항상 마음 먹기를 책상 위엔 절대로 두 줄 이상 책을 쌓아두지 않겠다고 했는데 또 어느새 모르게 세 줄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내 책상이 넓으냐면 그렇지도 않다. 그냥 그야말로 코딱지만하다. 그리고 거기에 노트북 올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더 이상 무엇을 올리는 건 용량초과다.  

난 왜 이리도 책에 대한 욕심이 줄지 않는지 모르겠다. 지난 달부터 지금까지 사들이고, 또 아는 곳에서 받기도 한 책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더구나 알라딘 평가단에서 보내 준 책까지. 아는 곳에서 받는 책이나 알라딘 평가단이 보내 준 책 읽는 것만으로도 한달은 빨리간다. 더구나 앞으로 모처에서 하는 문학토론회 참가하려면 의도하지 않게 그책도 읽어줘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정작 내가 읽을려고 산 책은 언제 읽을지 기약이 없다.  그렇게 언젠가 읽겠지 하는 책이 언젠가는 못 읽고 대신 몇 년씩 묵혔다가 그 친구에게 보내는 형국이 되고만다.  이제 꼭 필요한 책 외엔 가급적 책을 안 사는 방향으로 해야겠다. 그리고 한 줄로 세우면 천장 끝에 닿을 이 언젠간 읽겠지 하는 책을 읽어야겠다.  

하긴, 내가 친구에게 보내는 책 한 박스를 겨우 채운 것도 정말 오래두고 볼 책들 위주로 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점점 책을 보내 줄 것이 없고 쌓여만 가는 것이다. 어쨌든 오늘 이렇게 책을 빼내니 살이 빠진 느낌과 맞먹는 느낌이긴 하다.  물론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이 기분을 만끽해도 좋을 것 같긴하다.   

아, 참고로, 난 그 친구에게 다시 안 볼 책을 보내준다고 생각하는데 꼭 지나놓고 괜히 보냈다 싶은 책 한 두권은 꼭 있다. 줬다 뺐을 수도 없고. 오늘 보낸 책도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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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8-06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사는 속도와 책을 읽는 속도 사이에는 항상 버퍼링이 존재하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리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지. 그러면서도 왜 자꾸 플래티넘 회원 자리는 고집하는지...

stella.K 2011-08-06 15:49   좋아요 0 | URL
ㅎㅎ 진정한 플래티넘이시군요!
저는 어부지리형인데...ㅋㅋ
사실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잡아야 하는데...
그래도 뭐 우리의 에코 할배가 계시지 않습니까?
그 할배 <책의 우주>에서 그랬다며요, 자기 집에 무슨 책이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나 뭐라나...!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