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 한국의 주택, 그 유행과 변천사-임창복(돌베게)

오래 전부터 집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남의 집이 우리집과 다르다고 느낌 때부터. 그러니 얼마나 오래된 관심이겠는가? 물론 이건 남의 부모가 나의 부모와 다르다는 것 만큼이나 당연한 것인데도 이게 나로선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기억하는 것을 기록하고 그중 하나의 쳅터로 내가 기억하는 모든 집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기록은 중요한 것이고, 시시콜콜할수록 좋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내가 너무 게으르다는 것과, 블로그에 뭘 쓴다는 건 뭔가 모르게  압박을 주는 것이 있어 계속 쓴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앞으로 내가 그 작업을 하게될지 안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은, 지금의 집들이 과연 집다운가에 대한 의문은 계속 남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저 잠을 자고 쉬기위한 공간이면 족한가?  

그런 중에 <한국의 주택, 그 유형과 변천사>란 책이 눈에 띈다. 다소 학술서적 같이 딱딱한 느낌을 배제할 수 없지만 이런 나의 막연한 생각을 구체화시켜 줄 수도 있을 것 같아 올려본다.  

2. 명작을 읽을 권리-한윤정 지음 (어바웃어북)

책 제목으로 봐선 꼭 문학쪽일 것 같은데 예술쪽에 분류되어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문학과 영화쪽을 두루 섭렵하고 쓴 책 같다. 

책소개에서, '나의 명작독법'에 관한 책이라고 한다. 작품, 작가, 사회(배경), 독자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함의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또 작품 속에 배어 있는 역사, 이념, 가치관, 작가의 삶 등을 살펴보고, 이를 다시 독자의 삶에 투영해 보도록 돕는다고. 

문학이든 영화든, 감상을 위한 것에 굳이 이런 책을 읽어 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좋아서 보고, 자유롭게 보고, 나답게 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꼭 이런 생각에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내 생각이 맞나 슬쩍 의심도 가져보고. 무엇보다 이런 책은 리뷰 쓰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실용적인 기대도 가져보게 된다. 명작을 읽을 권리라. 만일알라딘 평가단에서 이 책을 선정한다면, 이건 권리이기 전에 의무가 될 것이다. 이런 즐거운 의무 괜찮은 거 아닌가? 

3. 무명화가들의 반란- 정병모 지음 (다할미디어)  

그렇지. 역사도 정사 보단 야사나 민중사가 더 매력적인 것처럼, 미술사도 그러할 것이다. 주류 보단 비주류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정병모 교수의 민화읽기 시리즈 1권이란다. 무명화가들은 전통의 틀을 깨뜨리고, 자연의 느낌을 질박하게 드러내며, 우리 자연의 따뜻한 빛깔과 서민의 친근한 정감을 화폭에 담았다. 그들은 천진난만한 그림을 통해 정통화가들과 다른 자유로운 예술세계를 보였다. 민화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위대한 예술인 것이다.(알라딘 책 소개에서)

한마디로 확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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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9-05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색해보니 최소한 저 맨 위의 책은 거의 전공 책이군요 ㅠㅠ

stella.K 2011-09-05 18:14   좋아요 0 | URL
헉, 정말요?!
와우, 갑자기 hnine님이...와락!ㅋㅋ

hnine 2011-09-05 19:03   좋아요 0 | URL
에궁...저의 전공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거의 대학교재 수준의 책이라는 말씀이었는데 ^^

stella.K 2011-09-06 13:4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군요. 제가 잘못봤네요.
요즘 제가 이래요.ㅠ
그래도 뭐 돌베게니까...^^

아이리시스 2011-09-05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번 제 스타일. 명작,고전,책읽기 뭐 이런 키워드라면 대뜸 클릭부터 하고 봐요, 저는.ㅋㅋ 또 추천페이퍼 날릴 시간이군요. 아이참, 시간이 너무 빨라요.ㅠㅠ

stella.K 2011-09-06 13:38   좋아요 0 | URL
추천페이퍼 좀 귀찮긴하죠?
그래도 뭐 공짜책(이런 말 쓰는 게 전 별로 안 좋아하지만)받으면서
이 정도는 또 해야줘야죠.^^

cyrus 2011-09-06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번도 제 스타일이지만 3번 민화 관련 책도 좋아요. 작년에 민화 관련 책을
읽어봤는데 민화 속에 그려진 동식물들에도 다양한 상징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더군요. ^^

stella.K 2011-09-06 13:36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이번에 이 책 꼭 평가단 선정도서 됐음 좋겠어요.^^
 
검은 꽃 - 개정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그 시대를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역사에 대해 그리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 때부턴가 우리나라의 근세사에 관심이 많아졌다. 그것은 매스컴의 영향도 무시못하겠고, 아무래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시기와 가장 근접한 시기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때를 두고 새삼 부르는 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일제시대란 표현도 하지만, 구한말 또는 개화기란 말을 쓰기도 한다. 어찌보면 다 그게 그거지 싶어도 이 시기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일제시대는 일본의 시각이 많아 보이고, 구한말하면 수탈과 치욕의 우리의 시각이 많은 단어 같고, 개화기하면 이 무렵에 서양 문물이 들어오기도 시작했으니 서양적 시각이 많아 보인다.  

그만큼 여러 가지 시각이 충돌했던 혼란스러운 시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이 시기를 규정하라고 하면 저 세 단어 중 가장 맞는 단어는 역시 개화기가 많지 않을까 싶다. 우린 어쨌든 그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쳐 21세기에 문화를 세계 꽃피웠으니까.  

작가란 무엇인가?  

모든 작가가 다 그렇겠지만, 김영하 작가에 대해서도 호불호는 나뉠거라고 본다. 하지만 작가의 호불호를 떠나 적어도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평가는 기존의 작품과는 다르다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읽어 본 중엔 최고라고 생각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시종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건, 작가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김영하 작가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멕시코로 이민 간 우리 선조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우리나라의 미국이나 하와이 이민사는 알고 있었지만, 멕시코 이민사는 또 좀 생소하지 않은가?  

흔하게 잘 아는 이야기를 작가가 그 자신의 입김을 입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재창조해내는 것도 능력이겠지만, 이렇게 감추어져 있는 이야기를 발굴해 내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김영하 작가가 아니었다면 어디서 멕시코 이민사를 알 수 있었겠는가? 물론 모르지는 않겠지. 하지만 역사 교과서에 한 페이지도 차지하지 않았을 것이고, 후딱 넘기면 금방 잊혀질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나도 좀 그런 것이 이것에 대한 자료가 있다는 게 놀라웠다(이자경의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란 책이 있었다니!). 구한말. 치욕스러운 역사를 사는 것도 괴로운 일인데, 살기 위하여 멕시코로 가야만 했던 또 다른 한쪽의 역사의 사람들. 우리는 그들의 삶이 어떠했을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것을 알려야겠다는 김영하 작가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이 소설은 서울행 비행기에 올라탄 어느 이민사 연구자의 잡담에서 시작되었다.  ......먼 곳으로 떠나 종적 없이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는 언제나 매료되었다. ...... 1905년에 제물포를 떠나 지구 반대편의 마야 유적지, 밀림에서 증발해 버린 일군의 사람들. 그들은 시종일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그들이 떠난 1905년과 그들이 살아낸 1910년대는 작가로서는 정말 매력적인 연대였다. 한 소설을 끝낼 때마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세계의 명예 시민이 되는 영광을 (홀로) 누린다. 지금 이 순간 나는 1905년생이다. (353~354p) 작가의 말 중에서    

과연 이것이 작가인 것 같다. 작가라면 말하지 않고서는 못견디는 족속들. 그리고 쓰는 동안 그 세계의 명예 시민이 되고, 그 시대의 사람이 되는 것. 김영하 작가는 이로써 자신의 작가로서의 임무를 충실하지 않았나 싶다. 

더불어 작품에 보면 박광수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원래는 신부였으나 신내림을 거부할 수 없어 후에 무당이 된 사람이다. 작가란 바로 이런 박광수 같은 존재는 아닐까?말하자면 무당의 영매를 통해 죽은 자가 말하고, 살아있었을 때 한 많은 생을 죽어어서야 비로소 위로를 받듯, 작가를 통해 잊혀진 존재를 오늘 날에 복원하고 그들의 넋을 기리는 것. 이것이 작가의 일은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하면 작가는 미지의 영혼을 위로하는 사람일 것이다. 

국가란 개인에게 무엇인가?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초등학교 때 보았던 알렉스 헤일리 원작 <뿌리>를 떠올렸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뿌리'는 노예의 역사를 다뤘지만, 이 작품은 이민사를 다루었다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책에서 보면, 조선인의 부당한 노동에 대해 항의하자 에네켄 농장주가 채찍을 휘두르자 그들은 당당히 우리는 노예가 아니니 채찍은 휘두르지 말아달라고 요구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들은 오랫동안 노동력 착취를 당해왔다는 점에서 노예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던 것도 사실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는 건, 우리나라는 대대로 힘있는 군주에 대한 갈망이 있어 왔구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알듯 역사적으로 힘있는 군주는 그리 많이 없었다. 나라가 나를 지켜주지 못하니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잡초 같은 근성이 우리에게 있어 왔으리라. 작품에서 이민선이 낮선 나라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불안했다.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진지한 논의가 있었을 때, 박정훈이란 인물을 통해 당시 망국의 백성이 가진 나리에 대한 한이 절절히 베어 나온다.  

저기, 나는 안 돌아가려네. ...... 그까짓 나라, 해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돟아가겠는가. 어려서는 굶기고 철드니 때리고, 살만하니 내치지 않았나. 위로는 되놈에, 로스케 등쌀에, 아래로는 왜놈들 군홧발에 이리 맞고 저리 굽신, 제 나라 백성들한텐  동지섣달 찬서리마냥 모질고,  남의 나라 군대엔 오뉴월 개처럼 비실비실, 밸도 없고 줏대도 없는 그놈의 나라엔, 나는 켤코 안 돌아가려네.(84p) 

박정훈의 이런 나라에 대한 원망은 낮설지지가 않다. 불과 10여 년 전, 화마에 자식을 잃고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이 나라에 잠시도 살고 싶지 않다며 이민을 결심한 어느 전 국가대표 운동선수의 이야기가 오버랩이 된다. 결국 사람에게는 두 가지 선택만이 있을 뿐인 것 같다. 나라 안에서 이리 맞고, 저리 채이며 경쟁하며 살던가, 나라를 벗어나 박정훈의 결의처럼 끝까지 살아 남던가?   

이 이야기는 한마디로 주권을 잃은 일국의 백성들이 낮선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사실적이다. 

제2의 검은꽃은 가능한가?   

역사 소설의 면모는 그 시대의 이야기가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을 가지고 읽힐만한가에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만큼 너무 동떨어져 있거나 개연성이 떨어지면 공감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요즘엔 다른 나라에 번역 수출될 것을 고려해 외국에서도 인정을 받을 것이냐도 중요해졌다. 여담이지만 누구의 말을 들으니, 군대 이야기는 워낙에 특수해 번역해봤자 다른 나라에선 이해받기 어렵다고 한다. 남자들 둘, 셋만 모이면 군대 얘기 빠지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게 세계에 나가선 아무런 소용이 없다니 좀 의외였다. 김영하의 이 소설은 번역이 됐는지 모르겠다. 번역이되면 세계인에게도 과연 무난히 읽힐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보편성과 더불어 과연 이 작품이 현대를 되돌아 볼만한가하는 점 또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북한의 탈북자를 생각했다.1905년의 조선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멕시코로 가는 이민선을 탔다. 오늘 날의 탈북자들은 먹고 살기위해 사선을 넘는다. 그들이 북한 탈출에 성공했다고 해서 당장 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동남아를 비롯해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다고 한다.    

우리가 공감하는 것은 아무리 욕을 해도 나라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을 생각하면 아무리 가난한 나라라도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가난한 나라라고 다 불행한 것마는 아니다. 비근한 예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는 방글라데시라고 하는데, 행복지수는 그 어느 나라 보다 높은 것을 보면. 탈북자들은 북한을 탈출하는 순간 나라없는 난민이 되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들이 국적을 회복할 때까지 제2의 검은 꽃은 씌여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하표 역사소설 

앞으로 김영하 작가가 또 역사 소설을 쓸지 모르겠다. 문학 평론가 남진우 씨의 말대로 그의 역사 소설은 기존의 역사소설이 추구하는 과거 시대의 충실한 재현이나 역사적 인물에 대한 낭만적 영웅화(325p)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역사 소설이 역사적 사실을 근거해서 쓰여진다는 것을 감안할 때 등장인물은 또 어느 실존인물의 재현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인물은 충분히 있을 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의 삶을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게 그렸다고 생각한다(에필로그의 부언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정말 행복한지 불행한지를 결정하는 건 작가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지어진 이야기라도) 그것은 철저하게 그 시대를 살았던 자들이 평가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은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것처럼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은 동정 받고, 이해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위해 작가는 이 작품을 쓰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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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09-0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는 소외된 계층이나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그들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엔 탈북자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도 많습니다. 그들을 배려하기보다 오히려 얕보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도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 씁쓸해져요. 그들을 우리로부터 분리시키기보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로서 배려하며 살아야 하는 건 이제 우리 몫입니다.

멕시코 이민사 같은, 감추어져 있는 이야기를 발굴해 내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읽어볼 만한 책 같군요. 그런데 한 가지, 이렇게 길게 또 많이(거의 매일) 쓰시는 님의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궁금... 홍삼을 드십니까?

^^^잘 읽고 갑니다.

stella.K 2011-09-05 15:11   좋아요 0 | URL
ㅎㅎㅎ 홍삼은...그러면 뭐합니까?
추천도 많이 못 받는 걸.ㅜㅜ
길게 안 쓸려고 하는데 길게 써 지내요. 이상해요.
제가 리뷰 쓴지 10년쯤 돼 오는데 초기에 쓴 건 정말 짧게 썼거든요.
쓴다하는 리뷰어들 흉내내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역시 내 스타일대로 써야 하는 건데...>,<;;
암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리시스 2011-09-05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민사가 충격적이고 감명 깊었어요. 이후로 김영하 작가의 작품들이 썩 좋진 않았는데 그래도 <검은꽃>이 아직까지도 제일 좋거든요. 벗어날 수도 없는 어떤 특수한 시대나 상황을 힘껏 살아내는 그런 이야기를 제가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초등학교 때 본 <뿌리>를 기억한단 말이에요?^^

stella.K 2011-09-06 13:32   좋아요 0 | URL
그럼요. 굉장히 감동하면서 봤는데.
이런 작품을 워낙 깊이 각인이 돼서 쉽게 안 잊어져요.
무엇보다 원작이 백인의 시각이 아닌 흑인의 시각에서
썼잖아요. 다시 보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아이리시스님은 보셨을라나요? 그때가 1977,8년도 작으로 알고 있는데...^^
 

어제, 무릎팍도사 유홍준 편을 마저 보았다. 그는 정말 달변가다. 

그를 있게 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처음 나왔을 때 하도 매스컴에서 떠들어대서 나도 얼떨결에 사서 본 기억이 있다. 뭐 나름 교양 쌓기엔 좋은 것 같은데 그렇게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땐 내가 너무 교양이 없어 뭔가 좋고 나쁜지에 대한 개념이 없었나 보다. 지금쯤 읽으면 감동하지 않을까?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건축에 있어 중국, 일본, 우리나라를 놓고 볼 때 우리나라 건축이 단연 뛰어 나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중국은 그 위용만 자랑할 줄 알고, 일본은 실용성을 앞세우고 정원만 아기자기하게 꾸밀 줄 알았지 대단히 뛰어난 것은 없단다. 하지만 우리나라 건축은 인간과 자연이 최대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지어졌단다. 과연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란 말은 맞는 말이다(어떤 이는 이말 가지고도 시비를 걸기도 하는가 본데, 인정할 건 인정하자. 또 아니면 어떤가? 다른 나라도 자국의 것이 세계적이라고 떠들고 살 것이다. 그만한 자긍심없이 어떻게 그 나라 국민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말은 괴테가 처음 한 말이란다.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아무튼 그의 말을 들으니 지난 달에 읽었던 <안도 다다오의 도시의 방황>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그 책을 읽고, 앞으로 건축은 자연을 이기는 건축이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을 지어야 할 것이라고 리뷰를 썼었다. 물론 이건 당연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해서 쓴 건 아니고,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썼던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선 그런 우리의 건축을 보러 한국을 다녀갔다는 말은 없다. 그렇다면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런 훌륭한 멘트를 나를 생각을 했던 일까? 어쨌든 안도 다다오가 그것을 깨달았다면 그건 그 자신이 처음 깨달았던 것마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난 운이 좋아 이 책도 읽었는데, 이 책은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긴 한데 생각만큼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래도 한국의 건축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고마운 책임에는 틀림없다. 

 

어제 유홍준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우리 유산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한때 국빈은 창경궁에서 만찬을 베풀었다고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는데, 그건 확실히 나도 좀 의문이긴 했다. 프랑스 같은 나라에선 베르사이유 궁에서 국빈만찬을 하는데 왜 우리나라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인가? 정말 '무릎팍도사' 같은 국민 프로가 아니었으면 이건 전대미문의 미스터리로 남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웬 사대주의냐?  

그뿐인가? 우리나라 옛 건물이 거의 목조 건물이 많은데 그것의 특징은 사람의 손과 기를 받아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을 문화재 보존이란 명목하에 접근을 금지시킨 건 정말 넌센스란 생각이 든다. 그것을 유홍준 교수가 깨닫도록 했으니 그것도 적지않은 공일 것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의 문화재청장 재임시 가장 회한이 남았던 건 숭례문 화재 사건일 것이다. 그때 그는 프랑스에서 귀국길에 있었고, 불을 잡으려면 지붕을 해체해야 하는데 그것을 허락해야 하는 그가 공석중에 있어 일이 더 커진 거란다. 지붕 해체 없이는 불길을 도저히 잡을 수가 없어 해체한 소방관은 검찰에 불려 다녔다니 할 말이 없다. 그건 그의 회한이기 전에 우리가 우리 문화재에 대해 너무 무지한 탓이다. 한마디로 우린 문화재가 거기 있는 것만을 알뿐 어떻게 가꾸고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다. 

감상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으로서 그런 회한을 안고 퇴임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나라의 일을 맡으면서 잘한 일만 있을 수 있겠는가? 이보다 더 끔찍한 만행을 하고도 치맨지, 나는 나라를 위해 잘한 것 밖에 없다고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다니는 이 나라의 어느 지도자님(들) 보다 훨씬 나은 일이다. 그만한 회한이 있어야 나라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더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라 돌아가는 꼴 보면 열 받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닌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유홍준 교수 같은 분의 노력으로 우리나라의 몰랐던 부분들을 알아 나가면 우리나라도 그리 형편없는 나라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런 자긍심 없이 이 조그만 땅덩어리를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나라의 자긍심을 높였던 사람은 정치 지도자들이 아니었다. 사니 못 사니해도 자기 일에 묵묵히 해나갔던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래도 배 곪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우리 옛 조상들은 재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서까래를 세우고, 돌에 정을 쪼았을 것이다. 우리의 몫은 그분들이 세우고 만든 것을 지키며 다시금 되새기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다시 유홍준 교수의 답사기 시리즈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가 그리도 찬양해 마지않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서서>도 읽고 싶어졌다.   

유홍준 교수는 현재 부안에 휴휴당이란 집을 짓고 사는데, 이름이 말해주듯 쉬기 위해 지은 집인데 정작 쉬지 못하고 있다고 엄살이다. 오죽하면 부인이 쉬는 것을 쉬게 만든 집이라고 했을까? 캬~! 정말 부창부수라더니 부인 역시 못지 않은 달변인가 보다. 그의 최종 꿈은 빨리 책 쓰는 걸 마무리하고 쉬는 것답게 쉬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꿈은 아마 별로 이루어지지 않을 듯 싶기도 하다. 

그나저나 우리의 무릎팍도사 항상 그렇지만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보다 더 기름을 붓는 격이다. 의뢰인이 청년을 벗어나고 싶다는데 오히려 삿갓 쓰고 만년 청년으로 살란다.그것도 모자라 유세윤 촉새 같이 유삿갓 노래도 불러준다.한마디로 웃기고, 잘하는 짓이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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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9-0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유홍준 님이 출연한 무릎팍 도사는 재방송으로라도 꼭 보고 싶어요.
그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서 받은 그 감동을 아직도 기억해요. 제가 당시 그 영향으로 문화답사모임에까지 들어가지고는 방방곡곡 답사도 다녔다는 것 아닙니까 ㅋㅋ

stella.K 2011-09-02 09:46   좋아요 0 | URL
오, 그런 모임이 있었습니까?
잘하셨네요. 저도 알았으면...?ㅋㅋ
재방송 꼭 챙겨 보십시오.
어제 혹시 내가 전편 방송분을 얼마나 빼먹었나 했더니
거의 다 봤더라구요. 그런데 지난 수요일 방송분이 더 재밌었습니다.
달변인 사람 약간 부러워요.ㅎ

2011-09-02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2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2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9-02 18:32   좋아요 0 | URL
글쵸? 얼마나 달변이던지...!
재방송 꼭 찾아 보세요.
울컥합니다.^^
 
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지음 / 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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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한 작가 은희경 

나에겐, 내가 나이 보다 젊게 산다고 부러워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글쎄, 그렇게 보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문화적인 측면을 많이 알거나 누리고 그것이 나름 세련되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난 그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며 묘한 표정을 짓곤한다.  나 정도에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친구가 은희경 작가에게 매료 당할 확률은 높다.  이 작가는 한마디로 '모던하다'란 말이 딱 잘 어울리는 사람이니까. 그녀의 나이를 안다면 더더욱.  안 그래도 작가가 낸 책들의 제목을 보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등등. 내놓은 작품마다 작가만의 모던함이 느껴진다.  

모던함은 또한 매력적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까지 운이 좋아 작가를 두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녀의 인상은 정말 나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을만큼 젊고 발랄하다.  무엇보다 스타일에서 과감성이 돋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멋지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작가의 매력은 환한 미소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때로는 호쾌하기까지 하다. 술을 좋아하고 그것도 독주를 좋아한다니 말이다(마실 땐 그래도 알고 보면 독주가 깨어날 땐 숙취없이 깨끗하게 깨어난다고 한다고 해서 좀 의외였다) . 아무튼 그녀의 환한 미소와 발랄함을 보면, 이 상큼, 발랄이란 말이 꼭 젊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아니 적어도 중년은 또 중년 나름의 상큼, 발랄함이 있다는 것을 은희경 작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이 들었다고 원숙함, 점잖음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색다른 에세이, 생각의 일요일들

문단 데뷔 이래 줄곧 소설만을 써왔던 작가가 첫 에세이를 썼다고 해서 좀 놀랐다. 지금까지 언젠가 한번은 에세이를 쓰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이제야 첫 에세이를 쓰다니. 그렇게 사람을 유쾌하게 만드는 제주가 있는 작가가. 그리고 그렇게 가감없이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내 보여 줄 줄 아는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말한다는 것이 자신이 없어 지금까지 에세이를 쓰지 않았다니 좀 의외다.  

그런데 이 에세이 참 특이하긴 하다. 우리가 기존에 익숙하게 읽어 온 에세이가 아니다. 무엇보다 특이한 건 모든 장이 다 자신의 생각을 풀어 쓴 문어체가 아니라, 사람과 대화하듯 구어체로 썼다는 것이다. 구어체로 썼다는 건 대상이 있어서 그렇게 썼다는 말도 되겠지만, 또 때론 누가 있거나 말거나, 들어주거나 말거나 혼자 중얼거리듯 쓴 글도 꽤 있다. 왠지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것이긴 하지만, 그런 또 그만큼 상대의 동의와 이해를 구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사람이 혼자서도 말할 수 있다는 건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꼭 누가 없어도 자신만으로도 충만한 상태. 혼자 잘 지내는 사람이 남하고도 잘 지낸다고 하지 않은가? 그리고 또 하나는, 그냥 고독함을 혼자서 이겨 보고자 할 때이다. 가끔은 벽 보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해소가 될 때도 있다잖은가. 이를테면 작가는 주로 이런 상태에서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은희경 작가, 이렇게 호기롭게 첫 에세이를 냈다고는 하지만, 왠지 난 작가가 여전히 에세이를 내는 것을 쑥스러워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에둘러 이렇게 어떤 글은 간단 명료하게, 어떤 글은 낙서 같이(낙서를 폄훼해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것을 통해 그 사람을 아는 단서가 얼마나 많은가?), 단상을 전하듯 토막글로 에세이를 대신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비록 우리가 익숙하고, 기대하는 형식의 글은 아니지만 나름 그녀만의 형식으로 글을 썼던 것 같다.  소위 말하는 '내 맘대로 좋은 글'은 아니었을지. 그리고 이런 글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 것을 어느 정도 감안했을 것도 같다.  원래 모던은 개인주의가 아닌가? 어찌보면 가장 작가다운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난, 그런 사람이 좋더라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자기 일에 대해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말하는 사람. 상대가 알아 듣던 못 알아 듣던 그 일에 대해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는 사람. 난 이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내 입장에선 그 사람의 일을 통해 얻게 되는 정보도 만만치 않지만, 무엇보다 그 사람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지 않고는 결딜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 것처럼 처음부터 내가 하는 일은 말해도 못 알아 들을거라고 생각해서 미리부터 입을 다무는 사람. 난 그런 사람 별로 매력으로 느끼지 못한다. 사람은 사람뿐만 아니라 일에 대해서도 사랑에 빠져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에세이라면서 의외로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바들로 매 페이지를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위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에세이들은 작가의 여러 가지 다양한 관심사들을 담지 않는가. 그런데 이 책은 오로지 소설 쓰는 것에 대한 느낌에 대해서만 집중했다. 작가들이 얼마나 힘들 게 글을 쓰는지, 쓰면서 무슨 일이 있는지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지는 안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아도 난 언제부턴가 작가의 작품보다 작가 그 자체에 대해서 쓴 책들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왜 그 작품을 썼는지, 그 가려진 이면을 알아가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이 책도 그런 책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자신이 꾸미지 않고 툭툭 던지듯 하고 있어 좋다.  

가끔 화장하지 않으면 사람을 못 만나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게되는데, 은희경 작가는 화장을 안해도 언제나 편하게 만나 줄 사람처럼 느껴졌다. 화장을 해야 만나는 사람은 본인은 좋을지 모르지만 때로 상대는 불편하게 느낄수도 있다.  그처럼 소설은 얼마나 많은 제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작업인가? 나는 책을 읽다가 그녀가 소설을 쓰는 과정을 읽고 좀 놀랐다. 그러니 소설은 얼마나 복잡한 공정 과정을 거쳐야하는 것인가. 이런 구절은  작가의 소설 어디에도 읽을 수 없고, 오직 이런 지면이 아니면 읽을 수 없다. 이런 독특한 에세이는, 항상 화장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잘 때도 화장을 하고 자는 줄 안다. 그러다 맨 얼굴이면 놀라게 되는 것처럼,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게 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즉 낮선 느낌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은 싫다고 하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럴수도 있겠지만, 나 개인적으론 작가 특유의 모던한 문체가 그 어느 작품 보다 농축되어 있는 것 같아 소설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한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나는 반드시 새 노트를 산답니다.  

거기에다 전체 테마, 인물, 플롯, 분위기, 장소, 상징, 톤, 디테일, 대화...... 이런 것들의 틀을 일단 세워놓고요. 

연습장에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와 해결해야할 문제들을 적어가면서 소설과 병행하는 거죠. 

<소년을 위로해줘>를 쓰면서 벌써 연습장을 세 권이나 썼군요. 

-'시골은 정말 시끄럽답니다, 살아 있는 것들의 살아가는 소리로요' 중에서(208~209p)

읽는내내 작가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여기 저기를 옮겨 다니며 쓰는가 본데, 집이 아니면 글을 쓸 마땅한 장소가 없는 나로선 그 대담함이 부러웠다. 여기 저기 해외 여행도 하고 그 단상을 적기도 하는 것도 부럽고. 만일 작가가 된다면 롤모델로 삼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문득문득 했다. 

그래도 일요일엔 쉬셔야죠          

책의 말미에 가면 작가가 <소설을 위로해줘>를 쓰면서 달라진 점과 달라지지 않는 점에 대해 밝혀놓은 장이 있다. 소위 말하는 손익계산서 같은 것일 게다.  

작가가 소설 쓰는 작업의 이런 지난한 작업 과정이먼저 1월과 7월 비교!

달라진 점(1월)
1. 비타민 한 일 챙겨먹지 않던 사람이 매일 홍삼을 먹는다.
2. 재미있는 책과 영화 및 개콘과 하이킥을 멀리한다.
3. ......늘 1시 넘어 자던 사람이 초저녁에 전화기를 끄고 잔다

그 후 결과(7월)
1. 역시 비타민을 챙겨 먹지 않는다.
2. 여전히 책과 영화와 텔리비젼을 멀리하는 중.
3. 주 5회 밤샘을 한다.

......(중략)

그리하여 현재 달라진 점은,
1. 매일 쓴 118개의 답글! 산문 쓰는 게 쉬워졌다.
2. 밤새워 할 수 있는 일이 두 가지로 늘어났다.
3. 긴 손톱으로도 자판을 칠 수 있다.
(이하 생략)  
                                          -'그리하여 지금, 무엇이 달라졌냐면' 중에서(316~317p)-

작가의 이면에 이런 자기 관리가 있었구나. 새삼 찡한 느낌이 든다. 특히 주 5회는 밤을 샌다닛! 밤과 친하지 않으면 못하는 게 작가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는 사냥꾼이다. 어떤 얘기가 소설감이 될 수 있을까, 늘 안테나를 곤두세워야 하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는 어릴 때부터 별것도 다 생각한다고 핀잔을 듣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니 일주일 중 어느 한 날이라도 재대로 쉬는 날이 있을까? 제목이 그러니 웬지 작가는 일요일에도 편히 쉴 것 같지가 않다.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은 우선 잘 쉬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주일을 제일 앞에 두셨다는데 말이다. 

그렇지.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글 쓰는 작업을 위해 생각하고 정리하는 일요일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모던함 뒤에 이런 수고의 이면이 있음을 조금만이라도 인정해 주자. 그럼 이 독특하게 쓴 에세이도 기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이말을 음미해 보자. 

       생각하는 쪽으로 삶은 스며든다. 
    마치 소설가의 현재 삶이 소설을 결정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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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1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1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1-08-31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요. 제주에서 글쓰는 거 저도 부러웠어요. 어딘가 기고할 매체가 있는 것도 부럽고. 소설가나 작가가 꿈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쓰고 싶을 때 쓰고, 써지지 않을 때 고민하고 그런 과정들은 이상하게 부러웠어요.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일이 안 될 때 여행도 떠날 수 있으면 좋을텐데요!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모조리 그게 불가능...........ㅠㅠ 가려면 때려치고 가야는데 밥벌이의 소중함을 아는 우리가 어디 그러기 쉽나요........

stella.K 2011-09-01 11:37   좋아요 0 | URL
제주가 맞나요? 만날 헷갈려요.
저것도 제주로 할까 하다가 그렇게 쓴 건데...ㅜ

은희경 작가를 비롯해 몇몇 작가는 정말 꿈의 작가죠.
정말 그러면 얼마나 좋아요?
여행 다니면서 취재하고 글 써서 인터넷으로 송고하고.
김영하 작가가 그러고 사는가 본데 엄청 부럽죠.
그래서 어느 작가는 밥벌이의 지겨움을 설파했잖아요.
내가 볼 땐 엄청 부럽게 사는 거구만.
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하는 거죠.ㅜ
 

청바지는 빨아 입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안 건 3년 전쯤이다. 이걸 알고 얼마나 신기했던지. 촌티팍팍.  

그전까지는 청바지를 사면 열심히 빨아 입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이후에도 습관에 의해 빨아 입었다(어떻게 빨지 않고 입을 수 있니?촌티나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청바지는 파란물이 거의 나오지 않게 되었다. 염색을 했는데 그게 피부에 닿으면 좋을 리 없지 않은가 싶어 빨아 입었던 것.  

그래서 지난 번 여름이 시작되면서 얇은 청바지 하나를 구입했는데, 이것은 한번도 빨지 않고 여태까지 입고 있다. 그래봐야 다리 핑계로 외출을 자제했으니 몇번 입지도 않은 셈이다. 그런데 입을 때마다 이걸 한번은 빨아야 하지 않을까? 매번 유혹을 받는다. 

요즘 은희경 작가의 에세이를 조금씩 읽고 있었다. 그녀의 글은 정말 모던하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단어들이 책 한장을 넘길 때마다 하나씩은 나오는 것 같다.  오늘은 읽으니 '누디 청바지'란 말이 나온다. 청바지의 한 종류가 본데 이건 또 어떻게 생겨 먹은 걸까 했더니, 워싱이 안 된 채로 출고되는 청바지를 일컫는 말인가 보다. 그렇담 어떤 건 워싱이 된단 말인가? 

어쨌든 이건 세탁을 하지 않을수록 그 아이덴티티가 오래 보존이 된단다. 은희경 작가는 세 가지 이유에서 이 청바지를 샀다고 하는데, 하나는 원고를 쓸 때 작가의 습관이 어떻게 표출이 될까 궁금하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고,  

둘째는, 빨지 않을수록 칭찬 받는 옷이라 호감이 가서 샀으며, 

세째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바지에 자기 정체가 담기는 과정을 소설로 써 보려고 해서란다.(210p) 참, 누가 소설가 아니랄까봐...! 동시에 소설가 역시 탐험 정신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여기서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그런데 작가는 그걸 입고 글을 쓰는 동안 손을 네 번쯤 씼었단다. 원고만 썼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바지를 만졌다는 증거. 이로써 첫번째 이유가 증명된 셈이다. 

이것을 트위터에 올렸단다. 손을 씼을 때마다 파란 비누 거품이 나오고, 누디 청바지는 모든 청색을 그것이 닿는 모든 것들에게 옮겨 입힌다고 했다. 벗는다는 정체가 그것이었다고.  그러면서 그 글 끝에,  

내가 벗는 건 남에게 입혀진다? 혹은 내가 벗어도 남이 입고 있다? 내가 벗을수록 남이 입는다? 

암튼 누디 정신!(211p)  

그런데 난 이러고 저러고 지간에 손을 씼으면 파란 비누 거품이 나온다는 말에 아까 말했던 나의 청바지를 여름이 가면 기필코 빨아 넣어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까짓 거 아이덴티티가  좀 망가지면 어떠냐? 지금 당장에라도 빨고 싶지만 앞으로 여름이 몇날이나 남았을까? 그동안 몸 좀 저 청산가리 같은 청바지에 굴리고 있는 거지. 포기한다.  

아, 그리고 이러고 저러고 지간에 청바지 접어 입지 않아도 될만큼 다리 좀 길어 봤으면 좋겠다. 물론 그나마 다행으로 이번에 청바지는 접지 않고도 무난히 입을 수 있는 것이어서 좋긴한데 뽀대는 그리나지 않는다. 펑퍼짐한 한국형 청바지라고 생각하면 됨. 디자인이 좋아서 산 것이 그만...ㅜ       

아무튼 '내가 벗을수록 남이 입는다' 멋진 말이다. 작가란 이렇다는 걸 은희경 작가는 또 한번 통찰한 것이겠지?  이게 뭐 꼭 작가 정신이겠는가? 정말 모두 이런 정신이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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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8-30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작가는 통찰. 맞는 것 같아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소설가는 글재주 뛰어나다고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좀 더 깊은 사색이 담긴 산문집 기대해서 실망도 했는데, 제가 좀 무거운 걸 기대하지 않았나 싶었어요. 지나고 보니까. 너무 소녀같고 너무 발랄해요.

청바지 세탁하죠! 아예 안하면 어떻게 입어요?ㅠㅠ

stella.K 2011-08-30 16:13   좋아요 0 | URL
50넘은 그 나이에도 전혀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 분이죠. 은 작가님은.

글쵸? 빨아야 되겠죠? 흐흐

pjy 2011-08-30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바지를 왜 빨아입으면 안되는건지 전혀 공감못해요^^
내가 입었지만 냄새나고 드럽고~ 얼어죽을 아이덴팃ㅋ 운동화도 빨아신으면 안되는거였나 고민중이예요ㅋㅋ

stella.K 2011-08-30 20:44   좋아요 0 | URL
ㅎㅎ 운동화 빨아 신으세요.
안 그러면 발냄새 납니다.ㅋㅋ

cyrus 2011-08-30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바지를 빨지 않는다,, 작가의 생각이 독특한데요. 청바지를 아이덴티티와
결부시키다니.. ^^;; 이제 프로젝트도 얼마 안 남았네요. ^^

stella.K 2011-08-30 20:45   좋아요 0 | URL
네. 얼마 안 남았어요.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개강하셨죠? 이제 한동안 잘 못 보겠네요. 아쉬워라.ㅜ

페크pek0501 2011-08-3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벗는 건 남에게 입혀진다?- 이거 꼭 자본주의 사회를 말하는 것 같네요. 누군가가 하나를 덜 가지면 누군가가 하나를 얻게 된다는...^^^

stella.K 2011-08-31 19:43   좋아요 0 | URL
그럴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그 말 자체로도 좋은 것 같아요.
서로 이런 마음이면. 공동체적이 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