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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지음 / 달 / 2011년 7월
평점 :
모던한 작가 은희경
나에겐, 내가 나이 보다 젊게 산다고 부러워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글쎄, 그렇게 보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문화적인 측면을 많이 알거나 누리고 그것이 나름 세련되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난 그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며 묘한 표정을 짓곤한다. 나 정도에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이 친구가 은희경 작가에게 매료 당할 확률은 높다. 이 작가는 한마디로 '모던하다'란 말이 딱 잘 어울리는 사람이니까. 그녀의 나이를 안다면 더더욱. 안 그래도 작가가 낸 책들의 제목을 보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등등. 내놓은 작품마다 작가만의 모던함이 느껴진다.
모던함은 또한 매력적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까지 운이 좋아 작가를 두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녀의 인상은 정말 나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을만큼 젊고 발랄하다. 무엇보다 스타일에서 과감성이 돋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멋지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작가의 매력은 환한 미소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때로는 호쾌하기까지 하다. 술을 좋아하고 그것도 독주를 좋아한다니 말이다(마실 땐 그래도 알고 보면 독주가 깨어날 땐 숙취없이 깨끗하게 깨어난다고 한다고 해서 좀 의외였다) . 아무튼 그녀의 환한 미소와 발랄함을 보면, 이 상큼, 발랄이란 말이 꼭 젊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아니 적어도 중년은 또 중년 나름의 상큼, 발랄함이 있다는 것을 은희경 작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이 들었다고 원숙함, 점잖음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색다른 에세이, 생각의 일요일들
문단 데뷔 이래 줄곧 소설만을 써왔던 작가가 첫 에세이를 썼다고 해서 좀 놀랐다. 지금까지 언젠가 한번은 에세이를 쓰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이제야 첫 에세이를 쓰다니. 그렇게 사람을 유쾌하게 만드는 제주가 있는 작가가. 그리고 그렇게 가감없이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내 보여 줄 줄 아는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말한다는 것이 자신이 없어 지금까지 에세이를 쓰지 않았다니 좀 의외다.
그런데 이 에세이 참 특이하긴 하다. 우리가 기존에 익숙하게 읽어 온 에세이가 아니다. 무엇보다 특이한 건 모든 장이 다 자신의 생각을 풀어 쓴 문어체가 아니라, 사람과 대화하듯 구어체로 썼다는 것이다. 구어체로 썼다는 건 대상이 있어서 그렇게 썼다는 말도 되겠지만, 또 때론 누가 있거나 말거나, 들어주거나 말거나 혼자 중얼거리듯 쓴 글도 꽤 있다. 왠지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것이긴 하지만, 그런 또 그만큼 상대의 동의와 이해를 구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사람이 혼자서도 말할 수 있다는 건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꼭 누가 없어도 자신만으로도 충만한 상태. 혼자 잘 지내는 사람이 남하고도 잘 지낸다고 하지 않은가? 그리고 또 하나는, 그냥 고독함을 혼자서 이겨 보고자 할 때이다. 가끔은 벽 보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해소가 될 때도 있다잖은가. 이를테면 작가는 주로 이런 상태에서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은희경 작가, 이렇게 호기롭게 첫 에세이를 냈다고는 하지만, 왠지 난 작가가 여전히 에세이를 내는 것을 쑥스러워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에둘러 이렇게 어떤 글은 간단 명료하게, 어떤 글은 낙서 같이(낙서를 폄훼해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것을 통해 그 사람을 아는 단서가 얼마나 많은가?), 단상을 전하듯 토막글로 에세이를 대신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비록 우리가 익숙하고, 기대하는 형식의 글은 아니지만 나름 그녀만의 형식으로 글을 썼던 것 같다. 소위 말하는 '내 맘대로 좋은 글'은 아니었을지. 그리고 이런 글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 것을 어느 정도 감안했을 것도 같다. 원래 모던은 개인주의가 아닌가? 어찌보면 가장 작가다운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난, 그런 사람이 좋더라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자기 일에 대해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말하는 사람. 상대가 알아 듣던 못 알아 듣던 그 일에 대해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는 사람. 난 이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내 입장에선 그 사람의 일을 통해 얻게 되는 정보도 만만치 않지만, 무엇보다 그 사람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지 않고는 결딜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 것처럼 처음부터 내가 하는 일은 말해도 못 알아 들을거라고 생각해서 미리부터 입을 다무는 사람. 난 그런 사람 별로 매력으로 느끼지 못한다. 사람은 사람뿐만 아니라 일에 대해서도 사랑에 빠져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에세이라면서 의외로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바들로 매 페이지를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위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에세이들은 작가의 여러 가지 다양한 관심사들을 담지 않는가. 그런데 이 책은 오로지 소설 쓰는 것에 대한 느낌에 대해서만 집중했다. 작가들이 얼마나 힘들 게 글을 쓰는지, 쓰면서 무슨 일이 있는지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지는 안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아도 난 언제부턴가 작가의 작품보다 작가 그 자체에 대해서 쓴 책들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왜 그 작품을 썼는지, 그 가려진 이면을 알아가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이 책도 그런 책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자신이 꾸미지 않고 툭툭 던지듯 하고 있어 좋다.
가끔 화장하지 않으면 사람을 못 만나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게되는데, 은희경 작가는 화장을 안해도 언제나 편하게 만나 줄 사람처럼 느껴졌다. 화장을 해야 만나는 사람은 본인은 좋을지 모르지만 때로 상대는 불편하게 느낄수도 있다. 그처럼 소설은 얼마나 많은 제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작업인가? 나는 책을 읽다가 그녀가 소설을 쓰는 과정을 읽고 좀 놀랐다. 그러니 소설은 얼마나 복잡한 공정 과정을 거쳐야하는 것인가. 이런 구절은 작가의 소설 어디에도 읽을 수 없고, 오직 이런 지면이 아니면 읽을 수 없다. 이런 독특한 에세이는, 항상 화장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잘 때도 화장을 하고 자는 줄 안다. 그러다 맨 얼굴이면 놀라게 되는 것처럼,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게 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즉 낮선 느낌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은 싫다고 하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럴수도 있겠지만, 나 개인적으론 작가 특유의 모던한 문체가 그 어느 작품 보다 농축되어 있는 것 같아 소설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한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나는 반드시 새 노트를 산답니다.
거기에다 전체 테마, 인물, 플롯, 분위기, 장소, 상징, 톤, 디테일, 대화...... 이런 것들의 틀을 일단 세워놓고요.
연습장에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와 해결해야할 문제들을 적어가면서 소설과 병행하는 거죠.
<소년을 위로해줘>를 쓰면서 벌써 연습장을 세 권이나 썼군요.
-'시골은 정말 시끄럽답니다, 살아 있는 것들의 살아가는 소리로요' 중에서(208~209p)
읽는내내 작가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여기 저기를 옮겨 다니며 쓰는가 본데, 집이 아니면 글을 쓸 마땅한 장소가 없는 나로선 그 대담함이 부러웠다. 여기 저기 해외 여행도 하고 그 단상을 적기도 하는 것도 부럽고. 만일 작가가 된다면 롤모델로 삼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문득문득 했다.
그래도 일요일엔 쉬셔야죠
책의 말미에 가면 작가가 <소설을 위로해줘>를 쓰면서 달라진 점과 달라지지 않는 점에 대해 밝혀놓은 장이 있다. 소위 말하는 손익계산서 같은 것일 게다.
작가가 소설 쓰는 작업의 이런 지난한 작업 과정이먼저 1월과 7월 비교!
달라진 점(1월)
1. 비타민 한 일 챙겨먹지 않던 사람이 매일 홍삼을 먹는다.
2. 재미있는 책과 영화 및 개콘과 하이킥을 멀리한다.
3. ......늘 1시 넘어 자던 사람이 초저녁에 전화기를 끄고 잔다
그 후 결과(7월)
1. 역시 비타민을 챙겨 먹지 않는다.
2. 여전히 책과 영화와 텔리비젼을 멀리하는 중.
3. 주 5회 밤샘을 한다.
......(중략)
그리하여 현재 달라진 점은,
1. 매일 쓴 118개의 답글! 산문 쓰는 게 쉬워졌다.
2. 밤새워 할 수 있는 일이 두 가지로 늘어났다.
3. 긴 손톱으로도 자판을 칠 수 있다.
(이하 생략)
-'그리하여 지금, 무엇이 달라졌냐면' 중에서(316~317p)-
작가의 이면에 이런 자기 관리가 있었구나. 새삼 찡한 느낌이 든다. 특히 주 5회는 밤을 샌다닛! 밤과 친하지 않으면 못하는 게 작가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는 사냥꾼이다. 어떤 얘기가 소설감이 될 수 있을까, 늘 안테나를 곤두세워야 하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는 어릴 때부터 별것도 다 생각한다고 핀잔을 듣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니 일주일 중 어느 한 날이라도 재대로 쉬는 날이 있을까? 제목이 그러니 웬지 작가는 일요일에도 편히 쉴 것 같지가 않다.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은 우선 잘 쉬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주일을 제일 앞에 두셨다는데 말이다.
그렇지.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글 쓰는 작업을 위해 생각하고 정리하는 일요일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모던함 뒤에 이런 수고의 이면이 있음을 조금만이라도 인정해 주자. 그럼 이 독특하게 쓴 에세이도 기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이말을 음미해 보자.
생각하는 쪽으로 삶은 스며든다.
마치 소설가의 현재 삶이 소설을 결정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