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 스물셋 청년 하용조의 친필 일기
하용조 지음 / 두란노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선 책이 기존의 형태 달라 조금은 놀랍고 신선했다. 아무래도 일기집이다 보니 조금은 다른 시도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건 페이지마다 글자 수가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 난 글자가 빽빽한 책을 좋아하는데 그 부분에선 조금은 실망했다. 하지만 이내 또 놀라운 건 하용조 목사님의 육필을 그대로 실었다는 것이다. 물론 다는 아니고 일부가 그렇다는 거다.  

 

그 육필을 보고 있노라면 하용조 목사님도 어지간한 악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생전 이 분은 일기를 쓸 때 한자를 병행해서 썼나 본데, 물론 한자라 이해하지 못할 독자를 위해 옆에 한글을 덧붙여 놓긴 했지만 이분이 워낙에 악필이니 한글 병용은 불가피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또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이 일기집은 목사님의 청년 시절 지병인 폐병을 앓았던 시절에 쓴 일기다. 아무래도 글 쓰기가 건강할 때 보단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남자가 쓴 일기다. 여자 같으면 주저리 주저리 썼을지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남자는 일기를 잘 쓰지 않거나 써도 길게 쓰지 않는 편이니 그 속성이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이 일기를 쓰고 그는 지금 천국에 있다. 아득하고도 왠지 모르게 가깝게 느껴지는 건 왜 일까? 나의 아버지는 살아생전 일기를 쓰시진 않았지만 가계부 비슷한 것을 쓰셨다. 무슨 생각이셨는지 당신이 가지고 계신 돈 중 하루하루 얼마를 지출하셨는지를 거의 매일 쓰셨다. 돌아가시고 유품 정리할 때 그 수첩을 발견했는데 묘하게도 천국과 지상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걸 누구더러 치우라고 매일 꼬박꼬박 쓰셨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일기였다면 내가 보관했을 텐데. 

 

하용조 목사님의 일기집을 읽고 있으려니 몇년 간 다니던 교회를 잠시 접어두고 이분이 시무하셨던 교회를 다녔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땐 교회 다니기가 몹시 힘이 들었다. 왜 이렇게 상처가 많았는지. 보통 그렇게 되면 교회를 떠나기도 하겠지만 신앙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이분의 교회로 잠시 피신 가 있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하용조 목사님의 교회는 치유나 회복을 위한 교회로 유명했다. 내가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던 때는 목사님 역시 병 때문에 잠시 강단을 떠나 계셨다 복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고 했다. 

 

목사님의 설교는 참 푸근했다. 특별히 설교를 하고 계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냥 뭔가의 얘기를 들려주는 사람처럼 편안하게 설교하는 것이 그분의 장점이었다. 그때 나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건 그분은 하나님의 사역을 너무나 신나고 즐겁게 여긴다는 것이었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난 이렇게 힘들어 만신창이가 된 느낌인데. 그분은 언젠가 설교에서 예수님이 인간의 모든 고난을 다 가져가셨는데 우리가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며, 고통스럽게 사역해야 하냐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셨으니까 우리도 고난 당하는 마음으로 고통을 감내하며 일하는 건 그분의 뜻이 아니라고 했다. 그게  코미디 같은 이야기일 것 같지만 가능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이분이라면 말이다. 

 

그분의 사역의 특징은 특별히 사람을 붙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교회주의를 몹시 싫어하셔서 교회를 6, 7년 다녔으면 다니던 교회로 돌아가던가 아니면 새 교회를 섬기러 떠나라고 하셨다. 그건 정말 훌륭한 목회 마인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떠나 있을만큼 있어서였는지 나는 다니던 교회로 복귀했다. 그리고 거의 이분의 설교는 듣지 못 했다. 그 교회를 떠났으니 안 들었다는 게 더 맞는 얘긴지도 모르지. 그런지 몇년 뒤에 부음 소식을 들었다.

 

일기는 온통 예수님 믿는 감격으로 가득차 있다. 누구는 은유로서의 질병으로 현대는 암이겠지만 3, 40년 전만해도 폐병이라고 했다. 그런 병을 젊은 날 걸리고 일기를 썼다니 뭔가 있어 보이긴 한다. 일본의 저명한 기독교 소설가 미우라 아야꼬도 생각이 나고. 그러고 보면 육체의 질병이 꼭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내면이 더 단단해지고 그래서 질병을 치유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질병이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절망이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말은 진실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하용조 목사는 자신의 병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바울의 가시에 비유하면서. 

 

이 책을 읽으니 하 목사님의 목회 성공의 비결이 어디에 있었을까를 대략 짐작해 본다. 그것은 자신의 질병을 결코 절망적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고, CCC 같은 선교회에서 하는 훈련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감당했다는 것이며, 여러 다양한 사람과 편지를 교류 했다는 것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다 못해 일종의 채무의식으로까지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모르긴 해도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한 세대는 딱 이분 세대까지가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다. 신앙의 순수는 요즘 떠는 보수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요즘은 보수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조차도 구원은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떠드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아예 주일 하루 교회에도 가고, 성당도 다니며, 절에도 가 보라고 권한단다. 신앙을 마음의 수양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 신앙의 순수함이나 진지함이 있을까 싶다. 어느 한 가지도 순수해질 수 없고 진지해질 수 없으면서 수양만을 운운한다는 건 다 가짜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요즘 흔한 테라피나 힐링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믿음의 대상이 그것 밖에 되지 않는다면 굳이 뭐 때문에 신앙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교회에서는 더 이상 설교다운 설교는 없고 강연만 넘쳐난다.  이분의 신앙의 진지함은 예를들면 이런 것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했는가?

평범한 하루가 아니었던가?         

이처럼 귀중한 시간은 없다.

나는 이렇게 살 수가 없다.

생활을 혁명하고, 타성을 깨며, 습관을 혁명하자. 정말 이렇게만 살 수 없다.

 

나를 봐라.

나를 봐라.

이상한 것으로 가득 차 있는 나를 봐라.

 

주님, 나의 사랑하는 주님 비참한 저의 상처 난 마음을 보살펴 주옵소서.

아무리 가도, 아무리 하여도 저는 주님을 울렸습니다.

못된 나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117p)

 

신이 있기에 인간은 참으로 위대하다.

고민과 고통은 그러기에 진실히 부딪히게 된다.

신이 없이 인간을 추구하는 허구,

아! 사랑하는 주님이 있기에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이 역사 속에 살아 계시기에

이렇게 괴로운 것이다.

어찌 이러한 분노를 인간은 아무런 연민 없이 당해야 한단 말인가.       (141p)

이런 진지함이 오늘 날에도 가능할 수 있을까? 스스로 묻지않을 수 없었다. 나 또한 이분만큼은 아니지만 예수님 믿는 감격으로 뜨겁고도 두근두근 했던 때가 있었다. 문득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지금은 교회서가 아니면 찬송을 흥얼거리는 일 조차 거의 없어졌다. 한때는 목사라는 사람이 좀비가 되어 영혼을 잃어가고 있는데도 그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주님께 따져 묻던 나 역시 영혼없는 크리스챤인지도 모른다. 갈수록 침잠해 들어간다. 그러면서 주님을 울리고 있다. 이 책이라도 붙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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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탄생 - 소설이 끝내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
이재은 지음 / 강단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글을 써 본 사람은 안다. 마음은 청산유수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써 보면 정말 쉽지 않는다는 걸. 특히 소설은 그런 것 같다. 하도 안 써지면 그런 생각도 든다. 내 안에 괴물이 있나? 그래서 이 괴물이 못 쓰도록 나를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게다가 이 책에서 이런 문장을 읽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재은: 전업작가로 산다는 것도 나름 고단함이 있을 것 같아요. 인세만으로 살기 괜찮은가요?  

권여선: 그게 좀 함정입니다. 단편집은 4,000~ 5, 000부 팔리는데 인세가 10%죠. 보통 단편집 하나 내면 원고료와 인세 합쳐서 1,000만원 정도 번다고 생각하면 돼요. 3년에 한권 정도 나오니까 연봉이 330만원이네요.(웃음) ......(25쪽)    

 

게다가 심상대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이재은: ...... '대한민국에서 지적으로 우월하면서도, 가난한 직업인으로서 으뜸은 소설가가, 다음은 대학 시강강사, 그 다음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라고. 현실도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심상대: 대개 그렇습니다. ...... 현재 우리나라에서 지속적으로 연수입 1억원 이상인 소설가는 10명도 안 되니 소설가는 여전히 가난한 직업입니다. ...... 실용적 권력이나 실질적 유흥물이라면 모를까, 누가 불편한 이상과 마주 하려고 돈을 내겠습니까. 앞으로도 솔설가는 지속적으로 가난해야 마땅합니다. (305쪽)

 

또는 소설가 정영문이,

우선 나에게는 소설이 치유는 아닌 것 같아요. 소설을 쓰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기는커녕 항상 삶이라는 자체에 대해 혼란을 겪게 됩니다. 오히려 소설을 쓰면 쓸수록 그 혼란이 가중되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일종의 병적 상태를 악화시키는 것도 있고요.  ......(342쪽)                                                               

(물론 정영문 소설가는 저 말 뒤에, '그래도 그런 혼란을 정리할 수 있는 것 또한 글 쓰기'라고 하긴 했다.)이런 글을 읽는다면 멘붕이 오면서 맨정신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소설 쓰는 일이란 것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맨정신으로 할 수 없는 일을 기어이 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들의 그런 정신과 내면을 읽기를 원했다. 그래서 읽게된 책이 이 책 <명작의 탄생>이다.   

 

책에서 소설가 박상우가 이런 말을 했다.

......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구원을 먼저 해야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어느 날부터 글을 쓰고 싶으면 자기구원을 위한 자발적 의지가 의식화한 거라고 봐야죠. 글쟁이들은 공통적으로 정신체계가 약해요. 에고가 강하고, 남과 잘 타협하지 않고, 편협하고 집착도 강하죠. 그러한 것들을 극복하게 만드는 치료제가 글을 짓고 생산하는 일이죠.  ......자신을 구원한 사람의 작품이라야 양분을 지니게 되고, 그것이 세상에 나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는 것이죠. (86쪽)   

 이 말은 확실히 작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 시금석 같은 말인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글 속에서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그것이 과연 나를 구원할만 하고, 남에게 공감과 감동을 줄만한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과정이 없다면 내가 쓰는 글은 끊임없는 합리화와 포장으로 일관하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박상우는 이런 말을 했다. 문학은 단지 내 인생의 도구(tool)일 뿐이죠. 나를 진화시키는 데 필요한 도구라고. 그렇다면 글 쓰는 걸 너무 어려워하거나 크게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19인의 소설가들을 인터뷰한 인터뷰집이다. 읽다보면 작가 개개인이 문학과 글 쓰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어 읽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특히 저자는 40대에서 70대초반까지 비교적 다양한 연령층 작가들을 인터뷰 했다. 무엇보다 8, 90년대 문단계에 주목을 받던 젊은 작가들이 어느덧 4, 50대가 되어 문학을 논했다는게 새삼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들은 무엇으로 밥의 문제를 해결해 가며 소설이란 지난한 작업을 지탱해갔을까? 아무래도 순수하게 쓰는 것 가지고는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프로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들은 거의 대부분 가르치는 일을 병행해 가며 그 작업을 했다. 어찌보면 이젠 쓰는 일을 경제활동에 포함시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순수문학은. 뭐랄까, 그냥 나를 구원하고 고양시키는 정신 활동? 그쯤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걸 경제적인 것과 연결시키지 않을 수 없는 구조에 살고 있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가 되야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순수 예술의 세계에서 돈은 옵션일 뿐이다. 

 

4, 50대 작가는 또 그런데 6, 70대 작가들을 인터뷰 한 것을 보면 깊은 공감과 함께 어떤 감동마져 느끼게 된다. 김원일이나 박범신, 이문열, 조성기, 한승원 같은 작가들을 보면 이분들은 어느새 문단계의 노장이 되었다. 특히 이문열은 읽으면서 찡한 느낌이 있다. 12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아직도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저자의 질문에 순순히 응한 것을 보면 그래도 처음보단 많이 자유로워진 것 같아 다행이다 싶다.       

 

아무튼 이들은 하나 같이 경제적인 걸 생각하면 지금까지 글을 써 오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한승원 작가 같은 경우, 제가 소설을 쓴다는 것은 제 존재의 이유이자 의무예요. 반드시 먹고 살기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고는 못 견디니까 그래서 쓰는 거예요. 생명체로서의 욕구 그것 때문에 쓰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것을 떠나서 쓰지 않고는 못 베기니까요. 나는 살아 있는 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입니다. ...... 소설을 써서 팔리느냐 안팔리느냐, 독자가 읽어줄 것인가, 안 읽어 줄 것인가는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159쪽)라고 했다. 그런 것을 따졌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 글 쓰기 앞에 멈칫하게 만드는 건 그런 것들이 아니겠는가? 얼마나 팔릴까? 어떤 독자가 읽어 줄까? 글 쓰기 앞에 그런 것을 따진다는 건 아직 작가 의식이 없거나 쓸 생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이것과 관련해서 새삼 나의 주목을 받았던 작가는 조성기 작가였다. 그는 지난 90년대 문학계에 누구 보다도 뜨거운 주목을 받았던 작가다. 아마도 소설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 하나 이상은 읽지 않았을까? 나도 그의 작품은 두어 작품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사이 그는 무수히 많은 작품을 꾸준히 내고 있었다.  새삼 속으로 그는 독자가 모르는 사이 이렇게 글을 쓰고 있었구나. 마치 숙제처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애초에 돈 따지고, 대중의 관심을 논했었다면 자신이 숙제처럼 또는 사명처럼 여기고 있을 글을 썼을까? 그러므로 돈을 따지고 독자의 관심을 따진다는 건 우습다 못해 유치한 일이다. 그건 모르긴 해도 돈으로 중무장한 영화나 드라마에 대중의 관심을 빼앗긴 잃어버린 자의 열등감같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소설이 어디 영화나 드라마 보기와 비교가 될 것인가? 앞서 말한 심상대의 말을 기억하며 무소의 뿔처럼 잔말 말고 그냥 쓰는 것이다. 

 

그런데 소설이 여타의 장르 이를테면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그렇게 열등한 분야인 것이냐에 대해 우리는 좀 더 새로운 시야가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 방현석의 말은 우리가 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문학(소설)은 다른 장르에 비해 승률이 높은 장업이라고 말한다. 열심히 쓰면 최소한 소설책을 낼 수 있어요. 소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100% 들려줄 수 있어요. ...... 영화는 아무리 노력해도 못 들려주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 혼자 노력으로 소설은 돼요. ......그러니까 문학하는 사람들이 의기소침해 하지 말고 좀 더 담대해져야 한다는 거죠.

...... 문학이라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신'이에요. 그런데 정신의 깊이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아요. ......소설이라는 게 그렇게 고정된 완결적 형식이 아니거든요. 소설은 과정의 형식이죠. 계속 엎어지고 전복햐야 하는데, 너무나 완고한 틀과 형식에 따라 신인을 선발하는 제도는 아니라고 봐요.

요즘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들을 뽑는 기준이 아예 다 똑같아요. 특징도 없어요. 저는 그게 걱정이고 문학 발전의 저해요인이라고 봐요. 우리나라 등단제도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아주 독특한 제도이죠. 글 쓰는데 무슨 라이선스가 필요해요? 무슨 영업허가서도 아니고.(225쪽)

나는 글을 쓰는 것이 무슨 라이센스나 영업허가서가 아니란 그의 말에 백번 동의 한다. 예전엔 신춘문예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것을 통과하지 않으면 작가로 명함도 못 내미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문학이 그렇게 제도화되도 되는 것일까 묻고 싶다. 

 

또한 앞으로 작가가 될 사람이나 이미 작가가 된 사람이라도 한승원 작가의 말은 두고두고 새겨 볼만 하다.

소설가는 현실세계와 상상의 세계, 그러한 세상과 허공에 뿌리를 내려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속에서 참다운 진리를 찾아내는 사람이죠. ...... 그리스 소설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소설가를 향해 이렇게 말했어요. '이 한심한 영혼아 너는 돈을 주고 고기를 사 먹고 포도주를 사 먹고 빵을 사 먹는 것이 아니라 하얀 종이를 꺼내서 거기에다 빵이라고 쓰고 포도주라고 쓰고 종이라고 써서 그 종이를 먹는구나.' 그래서 한심한 영혼이라고 한 거죠. 현실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면서도 현실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잘못하고 있는 삶을 교정해 주는 노력을 하는 것이 소설가이고 소설가의 역할이죠.

...... 승려나 목회자가 도를 닦으며 살 듯, 소설가도 도 닦듯이 삶을 살아야 해요. 스님들이 욕심과 탐욕을 버려야만 제대로 살 수 있듯이 소설가들도 탐욕을 버리고 그 탐욕에 젖어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든지 창녀처럼 사는 여자의 이야기라든지 바람둥이처럼 사는 사람이라든지 그런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깨달은 것을 쓰는 거예요. 더 잘 사는 삶, 더 아름답고 예쁘게 사는 삶을 꿈꾸는 사람이 소설가죠.(163쪽) 

 

그렇게 해서 탄생한 문학 책 한 권 설혹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옛 성현의 말에 '군자저서전유구일인지지'(군자가 책을 써서 전하는 것은 다만 그 책을 알아주는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다)라고 했다. 꼭 이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시대가 바뀌어도 문학의 고귀한 가치는 지켜졌으면 좋겠다.

 

책 제목이 약간 거창한 느낌이 들긴하다. 인터뷰집인만큼 인터뷰이로 참여한 19인도 훌륭하지만 인터뷰어인 저자의 인터뷰 솜씨도 탁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인터뷰 할 작가의 텍스트를 일일이 다 읽고 인터뷰를 했을까 그 성실함과 독자가 궁금해 할만한 사항들을 잘도 짚어줬다는 생각이 든다. 좀 아쉬운 건 끝에 후기로 마무리를 해 줬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몇년 전, 나는 원재훈의 <나는 오직 글 쓰고 책 읽는 동안 행복했다>를 읽어었다. 그것도 작가들을 인터뷰한 책인데 거기에 몇몇 작가가 이 책과 겹치기도 한다. 그 작가들의 글 쓰기는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비교해 보는 작업도 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더불어 내가 독자로서 우리나라 작가들한테 너무 관심이 없었다는 걸 아울러 반성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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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로 기대 안하고 봤는데 의외로 재밌다.

만화적 상상력이 좋다. 특히 엘리베이터 안에서 키스 싸움 즉 키스를 하려는 쪽과 그것을 저지하는 씬은 정말 웃긴다.

 

개인적으로 주인공 이승재(오정세) 같이 허세 작렬 캐릭터는 별론데 영화를 위해서는 이런 인물이 필요했을 거란 생각이 들긴 한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나 하나 같이 남녀가 만나면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고 그 다음 장면은 건너 뛴 채 그 다음 날 침대에서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는 것일까? 아무리 클레셰라고는 하지만 너무 식상하다.

그리고 남녀가 그 전엔 어땠을지 몰라도 어쨌든 첫날 밤을 지내는데 술 먹고 인사불성이 되어 뭔지도 모르게 훅 보내는 게 가당키나 한가? 왜 그런 건 맨정신으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너무 유아적이란 느낌이 들어 이제 이런 거 좀 안 했으면 한다.

 

  ★★★☆ 

<러브, 마릴린>

 

마릴린 먼로는 내가 그리 좋아는 배우는 아니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 내가 그녀에 대해 얼마나 피상적이다 못해 편견적으로 알고 있었는지 반성하고 싶을 정도였다. 금발은 백치미란 속설이 있기도 하지만 오히려 내가 그녀에 대해서 백치였단 생각이 든다. 그녀는 배우로서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다. 그녀가 개발한 걸음걸이도 있었고, 책도 많이 읽고 연기에 대해서도 연구를 많이 했다. 하지만 불행했던 개인사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삶은 그것을 넘지 못했다. 

 

 

 

 

내내 보면서 같은 여자가 보아도 마릴린 먼로는 정말 매혹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죽은지도 반세기가 넘었는데 아직도 회자가 되고 있고 아직도 그녀에 대한 책과 영상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게 놀랍다. 물론 그녀가 젊은 나이에 요절했으니까 그런 것이겠지. 늦게까지 살았더라면 이만큼 얘기할 수 있겠는가? 영화를 보면서 문득 캐롤 오츠가 쓴 <블론드>란 소설이 읽고 싶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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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5-01-20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정세씨는 사실 잘 기억하지 못한 배우였는데 개과천선에서 김명민의 친구로 나올적에 참 느낌있는 배우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는데 의외로 많는 한국영화에 나오셨더군요.위에 남자사용설명서의 허세작렬 캐릭터도 잘 어울리지만 하이일에서 조폭 두목으로 난폭한 연기를 펼치는 것도 의외로 잘 어울리는 배우더군요^^

stella.K 2015-01-20 13:51   좋아요 0 | URL
오정세는 평생 주인공은 못할 것 같긴하지만 의미있는 조연은
정말 잘할 것 같은 배우죠. 색깔도 좋고.
하지만 개인적으론 연기 잘하는 배우지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어요.ㅋ

blanca 2015-01-20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릴린 먼로 참 궁금해요. 언젠가 사진을 찾아보니 대중에 잘 안 알려진 사진 중에 아주 청순하고 단아한 이미지의 사진도 많더라고요. 아, 스텔라님이 언급하신 <블론드>가 궁금해지네요!

stella.K 2015-01-22 13:09   좋아요 0 | URL
마릴린 먼로는 요절했기 때문에 더 많이 회자가 됐던 것 같아요.
게다가 세계 최초의 섹시 아이콘이라는 점도 한몫했겠죠.
당대 쌍두마차로 엘리지베스 테일러를 꼽기도 하지만
아시다시피 엘리자베스테일러는 아름답지 섹시한 건 아니잖아요.
저 영화 기회되면 한 번 보세요. 아주 괜찮아요.

저는 <블론드>1권을 어제 구입했어요.
마침 중고로 나온 있고, 마일리지가 이번 달로 소멸되는 게 있어서
다른 책과 함께 김에 질렀죠.
그 유명한 캐롤 오츠가 과연 이 여자를 어떻게 소설에서
복원했을까 저도 궁금해요. 그런데 언제 읽을지는 아직 예정에 없다능...ㅠㅋㅋ
 
왕의 한의학 -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
이상곤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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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는 왕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왕을 중심으로 정치과 경제, 문화가 얘기되어진다. 그런데 이 책은 한의학으로 풀어 보는 조선 왕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새삼 왜 이책이 이제야 출간이 된 걸까 싶기도 하다. 솔직히 우리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건 학교에서 배우는 국사 시간이 아니다. TV 드라마를 통해서다. 거기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사약을 받고, 왕이나 세자를 살리기 위해 어의가 진맥을 하고 침을 놓는 장면 등을 보면서 왜 이 부분에 대해선 그리도 무덤덤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대장금>에 와서야 역사 드라마가 좀 달라졌다고 감지하는 정도였다. 그래도 왕의 병에 관해서는 드라마가 다루기를 거부했던 듯 하다. 우리가 아는 정도는 세종이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정도랄까? 책은 세종의 병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줌은 물론 역대 왕들의 병에 관해 비교적 소상히 밝히면서 그 치료에 관한 한의학에 대해 펼쳐 보인다. 읽으면 우리 나라 국왕의 역사에 대해 가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연산군에 관한 부분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우리는 어디가 아프면 단 하루도 못 살겠던데 조선 왕들은 온갖 질병을 안고 정사를 돌봤다니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병만이라면 그나마 나은 것이다. 시시때때로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정적들과 간계들 속에 그야말로 하루하루 버티고 사는 것도 힘들었겠다 싶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지 않던가? 조선 왕들의 병은 천성적이라기 보다 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재밌는 건 저자는 적자에서 왕이 된 사람은 대부분 단명한 반면 영조 같이 방계에서 왕이 된 사람은 오래 장수했다는 통계도 내놓는다. 재밌기도 하지만 저자가 참 꼼꼼하게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들게도 한다.

 

무엇보다 저자는 한의학으로 왕의 역사를 논한만큼 요즘 흔히 다뤄지는 팩션으로 인해 왜곡되어진 역사의 부분을 바로 잡으려고 한다. 팩션은 알다시피 역사와 상상력이 결합된 이야기 형태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는 TV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이 가장 크다. 우리가 그런 매스컴을 통해 역사에 다가가는 것은 좋은데 그러다 보니 왜곡된 부분도 의외로 많다. 물론 역사적 사실이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일견 너무 경도된 면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팩션은 너무 상상력을 강조한 나머지 인물을 왜곡할 수 있고. 그중 하나가 책에서도 다룬 광해군일 것이다. 지금까지 광해군을 직간접으로 다뤘던 드라마나 영화는 하나 같이 그가 올바른 군주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책은 과감하게 광해의 가리워진 부분을 드러내 보여준다. 또한 정조 역시 독살된 것처럼 알려지고 있는데 저자는 한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일견 예견 거라고 한다. 누구는 또 이걸 가지고 옳으냐 그르냐를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만 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으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저자의 관점도 참고해 볼만한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병을 가지고 있지 않은 왕은 없었지만 이걸 가지고 자신을 방어하기도 하고, 이것이 위협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는 건 확실히 생각해 볼만하다. 예를들면 광해나 연산군은 병을 핑계로 정무나 경연을 멀리하기도 했단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내 얘기지만 나도 초등학교 시절 학교가 너무 가기 싫어 병이라도 낫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너무 건강한 것도 문젤까? 그런 일은 나에게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그 마음 알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예전에 대통령의 스트레스를 다룬 재밌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대통령이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인지 대통령직을 수락하는 순간 빠른 속도로 늙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해 영부인들은 활짝 피고. 그런데 스트레스로 팍삭 늙긴 하지만 퇴임 후 생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서 대체로 장수한단다. 그러고 보니 과연 그렇다 싶다. 물론 책의 내용과는 다소 배치가 되는 것도 같지만 그거야 오늘 날은 의학도 발달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 능력이 옛날에 비해 강화되었으니까 그럴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스만 놓고 보자면 그냥 넘길 부분은 아니다.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물론 그런 왕의 병증을 다루면서 한의학은 발전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왕일수록 자신의 병을 어의에만 맞기지 않고 스스로 다스려나갔던 반면 폭군일수록 몸은 돌보지 않은 채 방탕하고 온갖 스태미너에 의존했다. 자신이 자신의 몸을 위해 무엇을 했더란 말인가? 그걸 할 줄 모르는 지도자 그리고 그 밑의 신하들과 백성들은 힘들어진다. 그래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했을까?

 

아무튼 이 책은 역사와 한의학 두 마리의 토끼를 확실히 잡은 것 같다. 좋은 책이다. 일독을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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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1-18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진진한 내용 같네요. 한의학과 조선왕이라.... 한의학적 접근이겠네요.
이런 기획 의도 좋습니다. 신선하잖아요.

stella.K 2015-01-18 17:41   좋아요 0 | URL
그렇죠. 솔직히 개인적으론 제 취향은 아니라 막 좋은 건 아닌데
객관적으로 보면 정말 괜찮은 책이다 싶어요.
무엇보다 저자가 조선 시대 왕에 대한 지식이 좀 해박한 것 같더라구요.
한의학이야 뭐 전공이니까 당연한 거고...^^
 

어젠 오랜만에 지하철 2호선을 탔다.

다른 지하철을 타면 별로 느낌이 없는데, 유독 2호선을 타면 남다른 감상에 젖곤한다.

글쎄..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어서일까?

 

그땐 스무 살 젊디 젊은 나날을 이 2호선을 타고 가기 싫은 학교를 꾸역꾸역 다녔었다. 

버스를 탈 수도 있었겠지만 버스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 때문에 지하철 타는 것 역시

좋아하지 않지만 그냥 꾸역꾸역 먼 길을 돌아 타고 다녔다.

 

어제도 내가 지나온 스무살 앳된 젊은이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내가 20대 때 이들은 인간의 형질도 갖추기 이전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오늘 이렇게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아득한 느낌이 든다.

이들이 오늘의 내 나이가 되었을 땐 세상은 또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그런데도 지하철의 풍경은 거의 비슷하다.

몇년 전엔 앉아 있는 사람은 졸거나 조는 척 하느라 눈을 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 었다면, 지금은 거의 대부분 SNS질이다. 

 

그 가운데 왠 젊은 연인 한쌍이 눈에 띤다. 

만난지 얼마나 됐을까? 어쨌든 한창 뜨거운 사이처럼 느껴졌다.

여자가 앉아 있고 남자는 그 앞에 서 있다. 

손을 서로 깍지끼고 눈을 마주한다. 여자는 위를. 남자는 아래를.

그래야 각도가 맞을테니까.

불편할 수도 있을텐데 그 불편은 사랑 앞에선 당연 아무 것도 아니다.

 

처음엔 웬 내 옆에서 사랑질일까 하다가 이내 이것도 좋다 싶기도 하다.

SNS하는 것 보다  낫지 않을까 싶었다.

이들의 사랑은 언제까지 갈까?

이들의 사랑이 식어지거나 헤어지면 이들은 또 어디선가 SNS를 하고 있겠지?

인간의 사랑이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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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5-01-17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 한달전에 홍대 가다가 진짜 저런 장면 봤는데... 완전 무안. 남자가 여자를 어쩔 줄 몰라 하더라구요.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스킨십에 애닳아 하는 모습... 민망해서 저는 자리 뜨고 다른 곳에 있었어요. 스마트폰 이후 저도 책을 덜 읽긴해요..

stella.K 2015-01-17 12:34   좋아요 0 | URL
어제 제가 목격한 거 보다 더 민망했겠는데요?ㅎㅎ
걔네들은 그냥 그러고만 있더라구요.
하긴 저도 그 보다 더 민망한 것도 봤으니까 어젠 왠지 용서하고 싶더라구요.ㅋㅋ
전 둘 다 거의 안해요.
지하철에선 사람들 구경을 열심히 하죠.
그래봤자 그들은 저 신경도 안 쓸텐데요 뭐. SNS질 하느라...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1-17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두 사람도 일종의 sns죠.
손을 잡는다는 것을 ˝ 접속 ˝ 을 의미하고
무언의 눈빛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딱이네요. 그두 사람 인간 sns 행위를 하는 겁니다.

stella.K 2015-01-17 12:21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전 그래 본적이 없어서 일견 부럽기도 하던데...
사랑하는데 누구 눈치 보지 않을 용기!ㅋㅋ
저는요 SNS하느라 인연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못 만나거나
인간관계를 겁네 SNS에 일부러 자신을 꼬라 박을까 그게 더 걱정이더라구요.
이짓 하느라 전봇대도 들이 박고, 길가다 넘어지고 그런다잖아요.ㅠ

blanca 2015-01-17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무 살 하면 이호선이 떠올라요^^

stella.K 2015-01-17 12:57   좋아요 0 | URL
ㅎㅎ 오랜만이어요, 블랑카님.
블랑카님도 이호선 타고 학교를 다니셨군요.^^

cyrus 2015-01-17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많이 타서 그런지 여전히 서울의 지하철 탑승이 불편해요. 창밖 풍경도 볼 수 없고, 건너 편 사람들의 얼굴들을 마주 봐야하니 괜히 애꿎은 스마트폰만 보게 되요. 그래서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도착지에 가는 데 시간이 걸려도 버스를 타요. 창밖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해요.

stella.K 2015-01-17 15:45   좋아요 0 | URL
그렇구나. 나도 나이가 드니 지하철은 잘 타지 않아.
버스로 바뀌더라구.
그런데 이 지하철만 타면 어색한 건 서울만 그러겠어?
원래 우리나라 지하철이 그렇잖아. 옆으로 앉게 되있는 거.
외국 지하철은 안 그러는데 말야.
그런데 어제는 좀 재밌었어. 특히 이 2호선만 타면 묘해.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