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탄생 - 소설이 끝내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
이재은 지음 / 강단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글을 써 본 사람은 안다. 마음은 청산유수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써 보면 정말 쉽지 않는다는 걸. 특히 소설은 그런 것 같다. 하도 안 써지면 그런 생각도 든다. 내 안에 괴물이 있나? 그래서 이 괴물이 못 쓰도록 나를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게다가 이 책에서 이런 문장을 읽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재은: 전업작가로 산다는 것도 나름 고단함이 있을 것 같아요. 인세만으로 살기 괜찮은가요?  

권여선: 그게 좀 함정입니다. 단편집은 4,000~ 5, 000부 팔리는데 인세가 10%죠. 보통 단편집 하나 내면 원고료와 인세 합쳐서 1,000만원 정도 번다고 생각하면 돼요. 3년에 한권 정도 나오니까 연봉이 330만원이네요.(웃음) ......(25쪽)    

 

게다가 심상대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이재은: ...... '대한민국에서 지적으로 우월하면서도, 가난한 직업인으로서 으뜸은 소설가가, 다음은 대학 시강강사, 그 다음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라고. 현실도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심상대: 대개 그렇습니다. ...... 현재 우리나라에서 지속적으로 연수입 1억원 이상인 소설가는 10명도 안 되니 소설가는 여전히 가난한 직업입니다. ...... 실용적 권력이나 실질적 유흥물이라면 모를까, 누가 불편한 이상과 마주 하려고 돈을 내겠습니까. 앞으로도 솔설가는 지속적으로 가난해야 마땅합니다. (305쪽)

 

또는 소설가 정영문이,

우선 나에게는 소설이 치유는 아닌 것 같아요. 소설을 쓰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기는커녕 항상 삶이라는 자체에 대해 혼란을 겪게 됩니다. 오히려 소설을 쓰면 쓸수록 그 혼란이 가중되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일종의 병적 상태를 악화시키는 것도 있고요.  ......(342쪽)                                                               

(물론 정영문 소설가는 저 말 뒤에, '그래도 그런 혼란을 정리할 수 있는 것 또한 글 쓰기'라고 하긴 했다.)이런 글을 읽는다면 멘붕이 오면서 맨정신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소설 쓰는 일이란 것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맨정신으로 할 수 없는 일을 기어이 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들의 그런 정신과 내면을 읽기를 원했다. 그래서 읽게된 책이 이 책 <명작의 탄생>이다.   

 

책에서 소설가 박상우가 이런 말을 했다.

......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구원을 먼저 해야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어느 날부터 글을 쓰고 싶으면 자기구원을 위한 자발적 의지가 의식화한 거라고 봐야죠. 글쟁이들은 공통적으로 정신체계가 약해요. 에고가 강하고, 남과 잘 타협하지 않고, 편협하고 집착도 강하죠. 그러한 것들을 극복하게 만드는 치료제가 글을 짓고 생산하는 일이죠.  ......자신을 구원한 사람의 작품이라야 양분을 지니게 되고, 그것이 세상에 나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는 것이죠. (86쪽)   

 이 말은 확실히 작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 시금석 같은 말인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글 속에서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그것이 과연 나를 구원할만 하고, 남에게 공감과 감동을 줄만한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과정이 없다면 내가 쓰는 글은 끊임없는 합리화와 포장으로 일관하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박상우는 이런 말을 했다. 문학은 단지 내 인생의 도구(tool)일 뿐이죠. 나를 진화시키는 데 필요한 도구라고. 그렇다면 글 쓰는 걸 너무 어려워하거나 크게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19인의 소설가들을 인터뷰한 인터뷰집이다. 읽다보면 작가 개개인이 문학과 글 쓰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어 읽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특히 저자는 40대에서 70대초반까지 비교적 다양한 연령층 작가들을 인터뷰 했다. 무엇보다 8, 90년대 문단계에 주목을 받던 젊은 작가들이 어느덧 4, 50대가 되어 문학을 논했다는게 새삼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들은 무엇으로 밥의 문제를 해결해 가며 소설이란 지난한 작업을 지탱해갔을까? 아무래도 순수하게 쓰는 것 가지고는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프로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들은 거의 대부분 가르치는 일을 병행해 가며 그 작업을 했다. 어찌보면 이젠 쓰는 일을 경제활동에 포함시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순수문학은. 뭐랄까, 그냥 나를 구원하고 고양시키는 정신 활동? 그쯤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걸 경제적인 것과 연결시키지 않을 수 없는 구조에 살고 있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가 되야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순수 예술의 세계에서 돈은 옵션일 뿐이다. 

 

4, 50대 작가는 또 그런데 6, 70대 작가들을 인터뷰 한 것을 보면 깊은 공감과 함께 어떤 감동마져 느끼게 된다. 김원일이나 박범신, 이문열, 조성기, 한승원 같은 작가들을 보면 이분들은 어느새 문단계의 노장이 되었다. 특히 이문열은 읽으면서 찡한 느낌이 있다. 12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아직도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저자의 질문에 순순히 응한 것을 보면 그래도 처음보단 많이 자유로워진 것 같아 다행이다 싶다.       

 

아무튼 이들은 하나 같이 경제적인 걸 생각하면 지금까지 글을 써 오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한승원 작가 같은 경우, 제가 소설을 쓴다는 것은 제 존재의 이유이자 의무예요. 반드시 먹고 살기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고는 못 견디니까 그래서 쓰는 거예요. 생명체로서의 욕구 그것 때문에 쓰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것을 떠나서 쓰지 않고는 못 베기니까요. 나는 살아 있는 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입니다. ...... 소설을 써서 팔리느냐 안팔리느냐, 독자가 읽어줄 것인가, 안 읽어 줄 것인가는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159쪽)라고 했다. 그런 것을 따졌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 글 쓰기 앞에 멈칫하게 만드는 건 그런 것들이 아니겠는가? 얼마나 팔릴까? 어떤 독자가 읽어 줄까? 글 쓰기 앞에 그런 것을 따진다는 건 아직 작가 의식이 없거나 쓸 생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이것과 관련해서 새삼 나의 주목을 받았던 작가는 조성기 작가였다. 그는 지난 90년대 문학계에 누구 보다도 뜨거운 주목을 받았던 작가다. 아마도 소설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 하나 이상은 읽지 않았을까? 나도 그의 작품은 두어 작품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사이 그는 무수히 많은 작품을 꾸준히 내고 있었다.  새삼 속으로 그는 독자가 모르는 사이 이렇게 글을 쓰고 있었구나. 마치 숙제처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애초에 돈 따지고, 대중의 관심을 논했었다면 자신이 숙제처럼 또는 사명처럼 여기고 있을 글을 썼을까? 그러므로 돈을 따지고 독자의 관심을 따진다는 건 우습다 못해 유치한 일이다. 그건 모르긴 해도 돈으로 중무장한 영화나 드라마에 대중의 관심을 빼앗긴 잃어버린 자의 열등감같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소설이 어디 영화나 드라마 보기와 비교가 될 것인가? 앞서 말한 심상대의 말을 기억하며 무소의 뿔처럼 잔말 말고 그냥 쓰는 것이다. 

 

그런데 소설이 여타의 장르 이를테면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그렇게 열등한 분야인 것이냐에 대해 우리는 좀 더 새로운 시야가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 방현석의 말은 우리가 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문학(소설)은 다른 장르에 비해 승률이 높은 장업이라고 말한다. 열심히 쓰면 최소한 소설책을 낼 수 있어요. 소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100% 들려줄 수 있어요. ...... 영화는 아무리 노력해도 못 들려주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 혼자 노력으로 소설은 돼요. ......그러니까 문학하는 사람들이 의기소침해 하지 말고 좀 더 담대해져야 한다는 거죠.

...... 문학이라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신'이에요. 그런데 정신의 깊이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아요. ......소설이라는 게 그렇게 고정된 완결적 형식이 아니거든요. 소설은 과정의 형식이죠. 계속 엎어지고 전복햐야 하는데, 너무나 완고한 틀과 형식에 따라 신인을 선발하는 제도는 아니라고 봐요.

요즘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들을 뽑는 기준이 아예 다 똑같아요. 특징도 없어요. 저는 그게 걱정이고 문학 발전의 저해요인이라고 봐요. 우리나라 등단제도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아주 독특한 제도이죠. 글 쓰는데 무슨 라이선스가 필요해요? 무슨 영업허가서도 아니고.(225쪽)

나는 글을 쓰는 것이 무슨 라이센스나 영업허가서가 아니란 그의 말에 백번 동의 한다. 예전엔 신춘문예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것을 통과하지 않으면 작가로 명함도 못 내미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문학이 그렇게 제도화되도 되는 것일까 묻고 싶다. 

 

또한 앞으로 작가가 될 사람이나 이미 작가가 된 사람이라도 한승원 작가의 말은 두고두고 새겨 볼만 하다.

소설가는 현실세계와 상상의 세계, 그러한 세상과 허공에 뿌리를 내려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속에서 참다운 진리를 찾아내는 사람이죠. ...... 그리스 소설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소설가를 향해 이렇게 말했어요. '이 한심한 영혼아 너는 돈을 주고 고기를 사 먹고 포도주를 사 먹고 빵을 사 먹는 것이 아니라 하얀 종이를 꺼내서 거기에다 빵이라고 쓰고 포도주라고 쓰고 종이라고 써서 그 종이를 먹는구나.' 그래서 한심한 영혼이라고 한 거죠. 현실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면서도 현실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잘못하고 있는 삶을 교정해 주는 노력을 하는 것이 소설가이고 소설가의 역할이죠.

...... 승려나 목회자가 도를 닦으며 살 듯, 소설가도 도 닦듯이 삶을 살아야 해요. 스님들이 욕심과 탐욕을 버려야만 제대로 살 수 있듯이 소설가들도 탐욕을 버리고 그 탐욕에 젖어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든지 창녀처럼 사는 여자의 이야기라든지 바람둥이처럼 사는 사람이라든지 그런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깨달은 것을 쓰는 거예요. 더 잘 사는 삶, 더 아름답고 예쁘게 사는 삶을 꿈꾸는 사람이 소설가죠.(163쪽) 

 

그렇게 해서 탄생한 문학 책 한 권 설혹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옛 성현의 말에 '군자저서전유구일인지지'(군자가 책을 써서 전하는 것은 다만 그 책을 알아주는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다)라고 했다. 꼭 이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시대가 바뀌어도 문학의 고귀한 가치는 지켜졌으면 좋겠다.

 

책 제목이 약간 거창한 느낌이 들긴하다. 인터뷰집인만큼 인터뷰이로 참여한 19인도 훌륭하지만 인터뷰어인 저자의 인터뷰 솜씨도 탁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인터뷰 할 작가의 텍스트를 일일이 다 읽고 인터뷰를 했을까 그 성실함과 독자가 궁금해 할만한 사항들을 잘도 짚어줬다는 생각이 든다. 좀 아쉬운 건 끝에 후기로 마무리를 해 줬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몇년 전, 나는 원재훈의 <나는 오직 글 쓰고 책 읽는 동안 행복했다>를 읽어었다. 그것도 작가들을 인터뷰한 책인데 거기에 몇몇 작가가 이 책과 겹치기도 한다. 그 작가들의 글 쓰기는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비교해 보는 작업도 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더불어 내가 독자로서 우리나라 작가들한테 너무 관심이 없었다는 걸 아울러 반성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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