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거사 크리스티의 <사랑을 배운다>를 조금씩 읽고 있다. 

어제는 주인공 어린 로사가 나이 많은 역사학자며 다소 괴팍한 존과 친구 아닌 친구가 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걸 읽었다.

 

... 존이 말했다. "넌 책을 어떻게 읽지? 처음부터 쭉 읽니?"

"네. 교수님은 안 그러세요?"

"안 그래." 존이 대답했다. "나는 앞부분을 보고 요지를 파악한다음 끝부분으로 가서 결말이 어떤지, 작가가 뭘 증명하려고 했는지 보지. 그리고 그후에야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그가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무엇이 작가를 그렇게 이끌었는지 살펴 봐. 그편이 훨씬 더 흥미진진하거든."

로라는 관심은 있지만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작가는 자기 책이 그런 식으로 읽히는 걸 바라지 않을 거예요."

"당연하지."

"저는 작가의 의도대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 존이 내뱉었다. "하지만 넌 빌어먹을 법률가들이 말하는 제2의 당사자를 잊고 있어. 독자 말이다. ...... 작가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책을 쓰지. 작가 멋대로. ...... 하지만 독자에게도 자기가 읽고 싶은 대로 읽을 권리가 있고, 그건 작가도 막을 수 없어."

"마치 싸우는 것 같은데요." ......

"난 그런 싸움을 좋아해." 존이 말했다. "사실 우리 인간들은 노예처럼 시간에 얽매어 살지. 시간의 순서 같은 건 아무 의미도 없는 건데 말이야. 영원을 생각한다면. 우린 얼마든지 시간 속을 내키는 대로 건너다닐 수 있어. 하지만 아무도 영원을 성찰하지 않지." (71~72쪽)

 

 이 부분을 읽으니 문득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한 장면이 생각이 났다. 정말 해리(빌리 크리스탈 분)은 그 비슷하게 읽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는 목차를 읽은 후 바로 책의 맨 끝장을 읽는다. 결론이 끝에 나와 있는데 뭐 때문에 힘들게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있느냐며 샐리와 옥신각신 하지 않던가?

 

꼭 그렇지 않더라도 우린 끝부분부터 읽으면 김이 빠진다고 해서 바득바득 처음부터 중간을 거쳐 끝장에 도달하려 한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요즘 붙들고 있는 책중에 용케 이런 순서대로 완독이 이르는 책이 얼마나 될까? 한 권을 온전히 읽기가 갈수록 어려워 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반드시 그런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작가가 그것을 원해서라기 보다 소극적이고 (여태까지 한 번도 그 룰이 깨진 적이 없는)객관화된 방식으로 읽기 때문은 아닐까?  난 일단 이 존 교수의 방법이 마음에 들었고 끝에 그렇게 말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책에서 존은 매우 까탈스럽고 고집불통에 문제적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우린 또 그런 사람을 얼마나 싫어하는가? 생긴대로 사는 사람은 대체로 무난하지만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런 것처럼 책도 작가가 정해 준 방식대로 읽으면 지는 것이다.    

 독자여, 작가를 거슬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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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28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설을 읽다가 줄거리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으면 책 뒷쪽 해설을 봐요. 그 소설을 쓴 작가가 카프카에요.

stella.K 2015-05-29 15:58   좋아요 0 | URL
프루스트는 안 보고?ㅎㅎ
아무튼 역시 카프카는 어려운 작가야.
난 읽는다고 하면 둘 다 봐야할 것 같아.ㅠ

페크pek0501 2015-06-0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볼 때 뒷부분을 본 건데 어느 날 재방송으로 그 앞부분을 볼 때가 있어요.
이럴 때 참 흥미롭더라고요. 예를 들면 두 부부가 이혼한 것까지 봤는데
앞 부분에서 그들이 사랑하는 관계로 나오면 말이죠.
아, 이혼을 하긴 했지만 한때는 저렇게 뜨겁게 사랑을 나눈 사이구나, 이러면서
이혼하기까지의 과정을 흥미롭게 보게 되는 것이죠.

이런 재미를 알아서일까요? 극장에서 영화 볼 때 중간에 들어가 끝까지 보고
다시 처음부터 중간까지 보는 게 재밌다고 말하는 사람을 봤어요. 그럴 듯하지 않나요?

stella.K 2015-06-03 13:18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 전문채널을 볼 때 그럴 때가 있어요.
거긴 했던 영화를 한동안 또 틀어주고 또 틀어주고 하잖아요.
어쩌다 괜찮은 영화를 처음부터 못 볼 때가 있는데
어쩌다 저런 장면이 나올 수 있을까?
아무래도 상상을 하게 되죠.
이야기의 인과 관계를 이해하려면 처음부터 보는 것이 아니라
중간부터 보거나 아니면 아예 끝부분에서부터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전 드라마도 그렇게 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직 시도해 보지는 못했네요. 확실한 공부가 될 것 같은데 말이죠.ㅠㅠ
 

 이책 나왔을 때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썼을까 좀 놀라웠다.

 

이책은 우선 소개 글에서 '맨스플레인'이란 신조어를 소개하고 있는데, 일명 남자들이 무턱대고 여자들에게 아는 척 설명하려 드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미국에서는 2010년 <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단어로 꼽혔고, 2014년에는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사전>에 실리기도 했다. 이 정도라면 남자들은 한 번쯤 자신도 그러지 않는가 뒤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또 그렇게 말하니 나도 일생 살면서 이런 남자 솔찮이 만나 봤다. 아니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남자들 거의 대부분 이런 기저가 있지 않을까? 가까이는 울아버지가 그랬다.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는 방법을 몰랐던 어렸을 적 나는 아버지가 술을 자시고 늦게 들어오시는 날은 숨기 바빴다. 아버지가 술 드시는 날은 어김없이 우리를 붙들고 뭐라고 뭐라고 횡설수설 하는 날이 바빴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나름 자식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아버지 나름의 방식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걸 맨정신으로 못하고 꼭 술을 드셔야 했던 것인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건, 한 20 몇년 전 스팸 전화 한 통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땐 핸드폰이 상용화되기 전이었으니 그런 전화를 걸러낼 수도 없는 일이고, 난 늘상 그런 전화가 오면 쌀쌀맞게 관심없다고 하곤 일방적으로 끊는다. 그래야 차후에라도 그런 전화를 안 받지 않겠는가? 그런데 누군지 모르겠는데 내가 쉽게 전화를 끊지 못하도록 계속 아양을 떨고 깐족거리는 것이었다. 뭐 이런 인간이 있나 싶어 조금 심하게 해서 전화를 끊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쌍욕을 하고 끊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쌀쌀맞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성격이고 보면 그쪽도 기분은 어지간히 상했나 보다. 잠시 후 전화가 왔는데 이 인간 말하는 게 좀 웃겼다. 다짜고짜로, "야, 너 이빨에 무좀 났냐?" 그러는 것이 아닌가? 순간 하도 말 같잖아 역시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는데 약간 겁이 더럭났다. 이거 사이코 겸 스토커면 어쩌지?   

지금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넌 어지간히 재수 무좀 난 사람인가 보구나. 그러니까 알지도 못한 사람한테 성질난다고 이러고 있지?" 그랬으면 날 죽이려 들었을까?

 

나의 20대의 마지막 시기를 교회 청년부에서 잠시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성경공부 조장이 나 보다 한 살 많은 소위 말하는 교회 오빠였다. 물론 난 나 보다 나이 많다고 아무나 오빠라고 하진 않는다. 그런데 이 형제님이야 말로 맨스플레인의 전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땐 그를 함부로 맨스플레인으로 분류할 수는 없었고 조원의 이야기를 들어 준답시고 어느 정도 듣고 있다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딱딱 정의를 내려주고 문제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는데 그게 왜 교회 오빠처럼 느껴지지 않고 앞서 말한 미스터 스팸의 이빨에 무좀 난 것처럼 느껴졌는지. 그가 잘 쓰는 언어 패턴이 있는데, "뭐 뭐하면 참 좋겠어."란 말인데, 그래서 '형제님은 마음 먹은대로 그렇게 잘 사나요?'라고 묻고 싶었다. 하긴, 별로 못 사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도 그 형제님은 훗날 청년부 회장까지 했으며, 자신이 원하는 여자와 결혼했으니까. 그것도 나랑 동갑내기 같은 성경공부 조원과. 그 친구가 당시 청년부 형제들에겐 나름 인기가 있었으니  그 형제님 입장에선 챙취한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어쨌든 나하고는 잘 안 맞았다.

 

또 하나의 맨스플레인의 전형은 애석하게도 내가 여기에 가끔 소개해 왔던 나의 글 공부 선생님이다. 난 이분을 일생 두 번 만나 공부를 했었는데, 뭐든 한 번이면 족하다고 내가 이 선생님을 다시 찾아가 공부한 건 정말 나의 실수이긴 했다. 이 선생님을 다시 뵙기 전엔 좋은 점만을 기억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내 글을 보고 잘 쓴다고 칭찬했던 거라던지, 쫀득쫀득 찰진 언어를 구사하는 거라던지, 수강생과 이물없이 지내는 것에서 오빠 같은 느낌까지. 다시 뵈면 이런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나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다시 뵀을 때 분명 그런 면들이 여전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한 것들과 마주했을 때 나는 조금은 당황했다. 그건 그 선생님에게 실망했다기 보다 사람의 좋은 면만을 기억하고 있는 내 자신이 바보 같달까? 

 

선생님은 산의 정기를 받고 사셔서 그런지 기가 세셨고, 무엇보다 좌중을 압도하는 언변은 사실 알고 보면 맨스플레인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남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나를 포함한 수강생 전부는 거의 정자세로 듣고 있어야만 한다. 난 이 선생님이 이렇게 살다가 돌아가시겠구나 했다.

 

또 한 사람은 나의 한창 시절 나와 함께 연극을 같이 했던 N이다. 난 거기서 글만 썼지만 그는 스텝부터 시작해서 늦게 서울 예전을 들어가 팀장과 연출까지 담당했고 학교에선 회장도 했으니 나름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내가 정이 많아 그런지 아니면 녀석이 복이 있었던 건지 그래도 팀이 해체되고도 가장 늦게까지 연락하고 지내기도 했다.  

 

올해 봄이 막 시작될 무렵, 난 또 무슨 신기라도 들린 것처럼 갑자기 다시 연극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무렵 뭔가 연극을 다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는 길을 보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몇 명 되지도 않지만 내가 아는 인맥을 최대한 동원해서 연락을 하고 거기에 당연 N이 빠질 리가 없었다. 그동안도 그는 나만 만나면 누나가 글만 쓰면 나머진 걱정하지 말라고 한마디씩 하는 고마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동안은 글 쓸 꺼리도 의욕도 없었으니 그런 말을 하면 그냥 고맙다고만 하고 넘기곤 했다. 그런데 녀석의 말을 지키게 해 줄 기회가 비로소 왔으니 내가 어찌 연락을 안하겠는가?

 

만나서 내 계획과 의도를 설명했더니 처음엔 흔쾌히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중엔 이런 말도 했다. "누나가 내가 싫다고 팀에서 나를 잘라버리기 전까지 저는 절대로 나 스스로 마음을 바꾸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 얼마나 신의에 찬 피도 안 섞인 누나를 생각하는 마음인가? 그 말을 그동안 두 번쯤 했던 것 같은데 솔직히 나도 감동 먹었었다. 그래 너 밖엔 없어. 너 믿고 한다. 이 정도면 세상에 둘도 없는 오누이지간 같아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그는 가면갈수록 뭔가 처음과는 다른 느낌을 갖게 했다. 어느새 눈빛이 달라져 있었고 나를 도와주겠다는 본말과 달리 점점 꼬장을 부리는 것이심상치가 않았다. 물론 처음엔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처럼 하더니 나중엔 자기가 하려는 것이 정석인 양 거기서 한 발도 물러나지 않을 기세다. 

 

물론 그 일은 나중에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설혹 그렇게 되지 않았어도 녀석과는 같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도와주겠다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며, 그것을 본인이 인지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또한 나를 위하는 척 하면서 결정적일 때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말하는 그것을 보면서 내가 얘를 그동안 잊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시절 나는 그가 뭔 일만 앞두고 신경이 날카로와져 사고칠 것만 같아 윗선에 계신 분께 도움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얘 좀 말려 달라고. 마침 그때가 생각이나 그 얘기를 들려줬더니 녀석은 실실 얼굴을 쪼개며, "그래서 그때 제가 그 말을 들었던가요?"한다. 그래서 잘은 기억은 안 나는데 좀 순해졌던 것 같았다고 얘기해 줬다. 그랬더니 "내가 누구 말을 그렇게 듣고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하며 말끝을 흐리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난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녀석을 잘라버려야 했다. 물론 녀석도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그렇게 의리와 신의로 똘똘뭉친 사람처럼 잘난 척 하더니 시쳇말로 개쪽 당하고 말았으니. 연출이 작가 보다 높다고 누가 말하던가? 연출이라고 시작도 하기 전에 갑질부터 하는 것도 꼴 사나웠고, 평소 때와 일할 때가 한결 같아야 하는데 N은 그것이 일치하지 않았다.

 

문득 그를 보면서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지금 그의 슬하에서 딸이 자라고 있는데 안 그래도 보수 꼴통 성향이 다분한 녀석이 앞으로 딸과 좋은 부녀지간으로 지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세상엔 대화가 잘 통하는 남자들도 많을 것이다. 전에 없었던 단어로 일반화시키는 것도 위험할 수도 있고. 하지만 한번쯤 맨스플레인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이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인지 아닌지 돌아 볼 필요는 있을 것 같고, 맨스플레인은 꼭 남자들에게만 있을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라고 본다. 여자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을 어떤 프레임으로 볼 것이냔데 저 책의 저자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본 것 같다.

 

남자들이여, 제발 듣는 귀를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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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5-23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남자라고 다 그런건 아닐거에요..
아시겠지만 남자 인간들도 여자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종류가 가지가지입니다
잘 골라서 사용하세요 ㅋㅋ

stella.K 2015-05-24 18:1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데 써 놓고 보니까 좀 거칠 게 쓴 것 같군요.
그러게요. 남자들도 가지가지일텐데 너무 여성적 편향으로
쓴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아무튼 말씀 새겨 듣도록 하겠습니다.^^

cyrus 2015-05-23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의 절반은 여자의 말을 귀 기울이지 않아요. 우리 아버지가 그래요. 어머니가 무얼 하라고 제안을 하면,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본인 생각대로 행동을 해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하는 제안은 거의 다 좋은 쪽이었는데 아버지가 그걸 가볍게 넘기는 바람에 손해를 본 적이 많았어요.

stella.K 2015-05-24 18:1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부인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단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라니까.
넌 이 담에 결혼하거든 부인 말 잘 들어라.^^

cyrus 2015-05-24 21:10   좋아요 0 | URL
누님 말씀하시는 거 우리 엄마 같았어요. 엄마가 아빠랑 부부싸움 하고 나면 항상 하는 얘기거든요.. ㅎㅎㅎ

hnine 2015-05-24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공부 선생님이란 S 선생님을 말씀하시나요??
저는 성질이 더 못돼서 그런지 남자뿐 아니라 가르치려는 말투로 말하는 모든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해요.

stella.K 2015-05-24 18:13   좋아요 0 | URL
네.ㅋ
저도 그래요. 거의 경멸하죠.
저 글 쓴 거 좀 보세요.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는데
그것을 반증하고 있지 않습니까?ㅋㅋ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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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발견했을 때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읽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작가의 글 쓰기에 관한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이번엔 한창훈이다.

 

번듯한 글 한 줄 제대로 못 쓰면서 나는 매번 이런 책에 눈독을 들인다.

그런데 아뿔싸! 제목이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은 한창훈 자신의 글 쓰기론만을 온전히 담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여느 에세이류는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이 책은 작가가 예전에 내놓은 <향연>의 개정판이다. 어쨌든 그동안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작가를 이제야 이책으로 조우했다. 물론 제목이 그러했던 만큼 작가의 글 쓰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긴은 한다. 

 

그가 작가가 되기로 한 동기가 재미있다.

미술은 동생이 하고 있었고, 음악은 돈이 너무 많이 들며, 연극은 한마디로 며느리시집살이와 맞먹는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독고다이류'라고 했다. 그렇다면 남는 건 작가가 되는 것. 천 원어치 종이와 볼펜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직업. 문학은 고아가 하는 짓. 둘째로, 남을 짓누르고 올라서려는 종자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것. 이 원칙을 훼손당하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작가이겠구나 했단다. (8~9p)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주인공이 사회 비참과 무관심의 대상이면 독자들이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 예를들어, 예전에 <아침마당>에서 헤어진 가족찾아 주기 뭐 그런 프로를 했는데 왜 재수없게 아침부터 눈물바람아냐'며 항의를 듣는단다. 순간 그는 인생이 얼마나 평안하고 즐거우면 타인의 아픔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왜 아침엔 울어서는 안 되는가? 그래서 그는 그들이 애써 알고 싶어하지 않는 당대 이야기로 그런 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라고(13~14p) 했다. 거기엔 그 나름의 분노가 서려 있어 보인다.

 

또 어느만큼 읽어가다 보면 그는 이렇게도 썼다. 

20대 중반, 직업에 대한 궁리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회사에 취업할 능력도 마음도 없고, 투자비가 거의 들지 않으면서 세상에 대한 태도로 소설가를 선택했다고(161p). 하지만 문제는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몰랐다는 것. 약간은 황당해 보이기도 하다. 소설가가 되기로 했으면서 소설을 어떻게 쓰는 지 모르다니. 하지만 그의 말이 맞기도 하다. 소설은 알아도 모르겠는 게 소설이다. 매번 새 소설을 쓸 때마다 미궁속을 헤메는 게 소설가들 아닌가? 단지 목표 의식만 뚜렸하다.

어떻게 소설을 써야 하지? 답은 바로 나왔다.

잘 쓰거나 열심히 쓰거나.

무엇을 써야하지? 이것도 마찬가지.

좋은 것을 쓰거나 감동적인 것을 쓰거나 그럼 됐다.

좋고 감동적인 것을 열심히, 잘 쓰면 되겠구나.('삶을 궁리하는 방법',162p)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단어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건 '궁리'라는 단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어떻게 살 것인가를 궁리하며 사는 게 맞는 것 같다. 뭐 본질적인 문제에 해답을 달겠다고,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라고 고민하는 햄릿형 인간 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탐구하고 연구하는 게 훨씬 인간다워 보인다. 그러니까 비굴하게 삶에서 한 발 물러서서 관망하지 말고, 상대적 박탈감 내지는 빈곤감에 우울하거나 일희일비 하지말고 그냥 잘 살려고 오늘도 어제처럼 궁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때로 그의 글이 나를 위로한다. 궁리 끝에 선택한 직업이 소설을 쓰는 일이면서 무슨 글 짓기 대회에서 장려상 쪼가리 하나 받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나도 그런데. 장려상은 고사하고 학창시절 교지에 내 글 한 자 올려 보지 못했다. 물론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서 아주 가끔 내 글이 활자화 되기도 했지만 그건 어찌보면 활자가 권위의식을 벗어버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오래 전, 386 세대의 작가들이 문단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할 때 누구는 문단계의 지각 변동을 예측했다. 이제 발로 뛰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책들을 보고 연구하고 그에 대한 결과물로 소설을 쓰고 수필을 쓰며, 연구서 비슷한 책을 낸다고. 또 그렇지 않으면 자아에 대한 깊은 고뇌와 고독 뭐 그런 책들을 낼 거라고. 그것도 작가로 살아가는 궁리 중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머리와 가슴은 커졌을지 모르지만 삶의 향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작가 한창훈은 지금도 어부로 일하면 글을 쓴다. 그가 고민 끝에 아니 궁리 끝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는 하지만 순수하게 글만 써서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게 작가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고 그래서 작가는 일종의 명예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작가는 체험이 아니면 글을 쓰지 않는다고 했는데 작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삶의 터전이 되고 바탕이 되는 곳에서부터 흘러 나온다. 비록 내가 원하는 그의 글 쓰기에 관한 부분은 그리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의 글에선 짭쪼름하면서도  비릿한 바다의 그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삶 그대로를 끌어 안은 냄새가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부분에선 남도의 걸진 욕이 튀어 나오고, 어느 부분에선 다듬어지지 않는 야성의 해학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 부분에선 같은 마을에 사는 누구의 사랑을 소설로 썼노라고도 밝히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에선 같은 문인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한다. 

 

적어도  한창훈 작가는 자신이 궁리한 것 중 하나는 지키고 쓰는 것 같다. 그것은 좋고 감동적인 것을 열심히 쓰는것. 작가가 그럴수만 있다면 그도 꽤 성공한 작가겠다 싶다. 그렇다면 나의 궁리는 무엇인가?

 

내가 늘 작가들의 이런 글을 읽고자 하는 건 작가는 어떻게 쓰는가를 알고 싶기도 하지만,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도록 만드는가를 알고자 함도 있다. 예전엔 분노가 글을 쓰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마침 박혜영 교수가 한 잡지에 '요즘 (우리나라) 문학작품을 읽어보면 조울증이나 자폐증에 걸린 작가들은 쉽게 볼 수 있지만 화가 난 작가들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12p)'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조울증을 포함한)우울증은 미국의 의료사회가 그것을 키워서 진료와 약의 판매고를 높이기 위함이라고는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작가들까지 그것에 편승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제대로 분노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조울증과 자폐증이 창궐하는 문학판에 대한 분노인가? 아니면 사회의 갑질에 대한 부조리와 억압을 글로써 표현하는 게 작가의 제대로 된 분노일까? 

 

박혜영 교수의 진단이 맞는 것이라면 오늘 날 우리나라 작가는 너무 나약하다. 고작 작가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다니. 반대로 작가는 누구 보다도 건강해야 하고 탄탄한 근육질로다져져야 한다. 제대로 분노할 줄 모르는 작가가 작가일 수 있겠는가? 나는 또 궁리해 본다. 

 

끝으로 작가의 생활철학이 마음에 들어 여기 적어 본다. 책의 날개에는, '사람을 볼 때 51점만 되면 100점을 주자.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어야지 꿀을 주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진심 보다 태도이다. 미워할 것은 끝까지 미워하자. 땅은 원래 사람의 것이 아니니 죽을 때까지 단 한 편도 소유하지 않는다.' '말 많은 이들과 오랫동안 술좌석을 같이하다가 터득한 것으로 '새로운 의미나 정보, 웃음, 그 외는 다물고 있자(297p)' 참고하면 사는데 두루 유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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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19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에 나오는 작가의 생활철학은 저랑 비슷해요. 사람들이랑 대화를 하면 일단 경청해요. 진부한 대화 주제가 나오면 그저 듣기만 합니다.

stella.K 2015-05-20 11:5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구나. 실제로 작가도 그런데.
근데 넌 참 좋은 성격을 가졌네.
남자들 중엔 자기 말만 떠드는 사람 있거든.
유무식을 떠나. 그런 사람 보면 나도 가만히 듣고 있긴 하지만
다음에 다시 만나고 싶지 않더라.
그러면서 그걸 자신은 언변이 좋다고 착각을 하고.
언변이 좋은 사람 보다 들어주길 잘하는 사람이
훨씬 좋다고 봐.
더 좋은 건 남자든 여자든 대화를 주고 받는데 별 어려움이 없는 상대가
좋긴 하지.^^

페크pek0501 2015-05-2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리... 그러고 보니 제가 요즘 궁리를 많이 하고 사네요.
이런 때엔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런 궁리를 해요.
쉬운 게 없다는 게 제 결론이고요. 아무리 코딱지 같이 하찮은 일이라도
마음을 쓰지 않으면 엉망이 되고 말아서요.

이 책 읽으셨군요. 저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고 있는데 술술 읽혀서
하루에 백 쪽 이상을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뻔한 얘기인데 괜히 샀나? 이러면서도 뭔가 얻어지는 게 있겠지, 그러면서 읽어요.
좋은 글 발견하면 나중에 페이퍼로 올릴 게요. ^^

stella.K 2015-05-24 18:1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나이들면 왜 그리 궁리도 많아지고, 걱정도 많아지는지 모르겠어요.ㅠ
오늘도 하루 해가 저물고 있네요.

저도 유시민의 책은 처음 글쓰기에 관해 읽는 사람이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역시 그런가 보네요.
네. 좋은 글 있으면 올려주세요.^^
 
 전출처 : stella.K > 음악을 듣는 귀를 키워라!

 우선 강연회장에 도착하니 오디오와 스피커가 눈에 띈다. 그곳은 전에도 두어 번 가 본적이 있는 어느 북카페였는데 그 전에도 그 오디오와 스피커가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있었던 것도 같고, 없었던 것도 같고. 아무튼 뭔가 준비된 강연회 같아 기대가 되었다. 무엇보다 턴테이블과 LP판 눈에 띈다. 이것은 또 얼마만에 보는 물건인가? 몇년 전 턴테이블과 LP판이 복고 열풍을 타고 다시 제작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막상 실물을 보니 반가웠다. 그리고 오디오 시험 방송(?)을 위해 틀어 준 음악은 말러의 교향곡1번이다. 저자는 바로 이 말러를 얘기하는 것으로 그날의 강연을 시작했다.

 

사실 그 시간은 저자의 두 번째 강연시간으로,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첫째 시간은 참석을 못하지 못했고 이렇게 <쇼팽과 리스트: 피아노가 부르는 밤의 노래>에 참석했다. 저자는 강연 초반에 요즘엔 클래식 대중화 바람을 타고 여기 저기서 클래식 강의를 많이 하는데 너무 쫓아 다니지는 말라고 한다. 그것은 클래식은 많이 듣는 것이 중요하지 학습하려고 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무엇이든 즐기기 전에 학습부터 하려고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근성을 경계하는 말일 것이리라. 하지만 나 자신 좀 띄아해진 것도 사실이다. 나는 클래식을 학습할 생각은 없는데 사실 클래식이 여간해서 즐겨지는 분야가 아니고 보면 이런 강연회장이라도 기웃거려 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도 학습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하지만 또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이런 기회가 계기가 되서 오히려 더 열심히 클래식을 들을  수도 있지 않은가? 

 

저자는 요즘은 중년층 이상에서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그것은 아마도 들을 만한 대중음악이 없어서는 아닐까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모름지기 노래란 따라 부를 수 있어야 하는데 4, 50대 만해도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따라 부를 수가 없다. 정서도 다르고. 하지만 말했다시피 클래식은 다소 어렵다는 편견이 존재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이런 강연이나 강의를 들으러 다니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기 보단  똑같은 음악을 여러번 반복해서 듣고 연주회장을 다니면서 음악을 듣는 근육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그러고 보면 요즘 유행하는 대중음악이나 클래식이나 음악이란 장르는 스스로 귀를 여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클래식도 그 시대는 대중음악이 아닌가. 

 

그런데 문득 나는 정작 저자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정보도 없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건 또 저자에 대한 결례는 아니었을까? 뒤늦게 나마 저자에 대해 알아 보니 그는 모신문사 문화부장을 지낸 기자 출신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강연내내 음악에 대한 조예가 상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클래식에 얼마만한 열정이면 저런 강연을 할 수 있는 걸까 감탄할 정도였다. 

 

강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쇼팽에 관한 부분이었다. 물론 당연한 것이긴 하겠만 사실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으로 그는 주로 피아노 독주곡을 많이 썼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초기 협주곡도 썼다. 그러면서 저자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려 주었는데 아무래도 초창기였던만큼 완숙기에 썼던 작품과 차이가 남을 설명한다. 그 과정을 베토벤과 박완서에 대한 예를 들기도 했는데, 베토벤이 위대한 것은 그의 작품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함에 있다고. 그러면서 저자는 데스크 기자 시절 이런 저런 명사들에게 원고 청탁을 하는 때가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기에 명사들인만큼 완벽하고 좋은 글을 보내 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 그들의 글은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놀랄 정도로 형편없기도 한단다. 그래서 결국엔 신문에 실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그들의 글이 수준이하여서라기 보단 신문의 원칙 중 하나는 지면이 한정된만큼 무엇을 더 할 것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뺄 것이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원칙 때문에 실을 수 없는 것이라고.  그런 와중에도 소설가 고 박완서 씨의 글은 완벽해서 문장 중 뭐 하나를 빼면 글 전체가 무너질 정도라고 한다. 과연 박완서구나 싶다. 그러고 보면 고 박완서 는 한국 문학계의 베토벤이었나 보다싶다.(난 이렇게 문인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그런만큼 저자는 베토벤과 박완서의 예를들어 완벽함이 무엇인지를 말하며 쇼팽의 초창기의 작품이 어떠했는지를 설명하려 한 것이다. 그런 설명을 듣고 막상 쇼팽의 완벽하지는 않지만 풋풋하고 의욕에 앞선다는 협주곡 1번을 들었다. 그런데 왠걸, 난 귀가 무뎌서 그런가 도대체 뭐가 풋풋하고 완벽하지 않다는 것인지 당황스러웠다.  내가 들은 협주곡 1번은 테크닉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더구나 그곡의 연주자는 그 유명하다던 루빈스타인이다. 그는 원래는 힘있는 연주 스타일로 유명했으나 말년에 힘을 많이 빼고 연주한 것이란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저자가 거짓말을 한 것처럼 오해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 있다. 나는 클래식 초짜나 다름없으니 이곡을 들으면 이곡이 좋고, 저곡을 들으면 저곡도 좋다. 그러니까 무엇이 무엇과 어떻게 다른지를 구별하고 판단하리만큼 변별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오류 아닌 오류를 범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 스스로를 비하할 생각은 없다. 그 한 시간 그 음악을 듣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이 아니겠는가.

 

솔직히 그런 자리에서 음악을 들으면 작곡자나 연주자의 생애를 듣는 건 기본이다. 우리는 저자가 이끄는대로 그들의 생애를 듣고 어느새 음악 용어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영화 이야기를 듣고 또 어느새 문학 이야기까지 듣게 된다. 그만큼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워낙에 풍부하고 방대해서 다 받아 적을 수가 없다. 그러지 않아도 저자는 자신의 하는 말을 노트할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하긴 이 시간을 즐기러 왔지 노트하러 온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저자의 말을 듣고 싶다면 책을 사서 읽으면 된다). 

 

사실 그날은 강연의 제목도 제목인만큼 쇼팽뿐만 아니라 리스트도 다뤘어야 하는데 쇼팽만큼 리스트는 그리 많이 다루지 못했다. 리스트는 원래 '헝가리 광시곡'으로 유명하지만 최근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란 소설로 한 번 더 유명해진 음악가이다. 하루키가 리스트의 '순례를 떠난 해'에서 제목을 따와 그렇게 붙였으니 말이다. 하루키가 제목을 그렇게 짓지 않았더라면 리스트의 곡 중에 그런 곡이 있는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것 말고도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 <1Q84>에서 '야나체크의 심포니에타'를 소개하므로 야나체크를 세계에 알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저자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음악을 사용하려면 그렇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써야 한다고 한다. 잘 아는 곡을 써 봐야 작품에 그다지 많은 도움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일리가 있는 말이다. 소설을 통해 음악이 뜨던가 음악을 통해 소설이 뜨던가 해야되지 않겠는가? 물론 소설과 음악 두 분야의 공조의 문제일테지만. 영화는 익숙한 음악을 써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어느 날 택시를 탔는데 마침 라디오에 야나체크의 음악이 나왔다고 시작되는 <1Q84>의 첫 부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 오버 같긴하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만 하긴 하다. 하루키는 확실히 영특한 작가다.  

 

보통 저자들의 강연은 1시간 반을 넘지않는데 이날은 두 시간을 넘겼다. 그런데도 저자는 자신이 준비한 이야기의 1/5을 했을까 말까란다. 정말 시간이 아쉬웠다. 그러면서 우리는 리스트의  음악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안녕을 고했다. 사람들 모이는 것을 감안한다면 너무 일찍은 시작 할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예정된 시간 보다 10분 내지 15분 정도는 일찍 시작했어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어째든 그날의 강연은 꽤 유익한 시간이었다. 나는 나오면서 새삼 '클래식 초짜'란 말을 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초짜로 살 것인가? 라디오를 듣거나 어디선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들어 본 곡이군 하며 스스로 만족할 줄도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이 글은 지난 5월 7일 <더 클래식 둘> 문학수의 클래식 Talk 콘서트를 다녀 온 후기다. 유려한 강연과 좋은 음질의 클래식 음악을 들려준 저자와 주최측에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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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4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5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5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6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5-05-1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위 막귀라고하죠....그 막귀가 뚫리면 감당 안되죠.^^.

stella.K 2015-05-18 15:25   좋아요 1 | URL
ㅎㅎ 막귀! 그걸 그렇게 부르는군요.
마치 조직의 2인자의 별칭 같아요.ㅋㅋ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 보다 말았다. 야하다기 보단 퇴폐적이어서. 감독 때문에 보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폴 버호벤 아닌가? 그런데 그가 유명하다는 건 알겠는데 정확히 무슨 영화를 만들었는지가 생각이나지 않았다. 나중에 알아봤더니 <원초적 본능>을 만들었던 감독이다. '아, 원초적 본능!' 하지만 또 이 '원초적 본능'을 봤는지 안 봤는지 기억이 없다. <토탈 리콜>은 본 것 같은데 이것 역시 기억이 안 나고.

 

이 영화 퇴폐적이긴 한데 나름 스토리 층위는 잘 쌓아 간 영화이긴 하다. 춤도 볼만 하고. 대체적인 반응은 기대 안하고 봤는데 나름 재미있었다는 건데 나도 그 점은 인정은 하겠다. 

★★★

 

본지가 비교적 오래되긴 했다. 그런데 이 영화 뭔지 모르게 좋다. 그냥 아련하고 서글프고, 사랑은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어쩜 기억의 문제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치매는 아니고 인간의 기억을 관장하는 뇌에 문제가 있어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도 어느 특정인을. 그런데 그게 하필 남편일 줄이야. 아내의 기억을 살리려는 남편의 노력이 가상한데 별 효험이 없다. 그런데도 5일 날 돌아 간다는 남편의 편지를 기억하고 매달 5일이면 어김없이 기차역에 남편을 기다리는 펑. 그러고 보면 여전히 남편을 사랑한다는 건데, 사랑하지 않고 서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이들의 사랑은 좀처럼 만나지지 않는다.

 

펑 역을 맡은 공리의 새삼 불안한 표정 연기가 이 배우는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그녀의 노쇄해지는 모습도 좋았고. 특히 햇빛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장면을 만들어 간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도 돋보인다. 

모처럼 별 ★★★★

 

배우의 연기는 좋은데 스토리는 그것에 못 미치는 안타까운 작품.

<타짜>에 나온 탑(최승현)은 글쎄, 조승우와 비교되서 일까? 그냥 보통의 연기였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 작품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냉혈한과 우수 어린 눈빛의 적절한 조화가 돋보였다고나 할까? 왠지 제임스 딘도 생각나고. 아무튼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동창으로 나온 한예리와의 케미도 좋은 편이다. 개인적으로 난 이 한예리란 배우가 왠지 기대가 된다. 약간 못 생긴 듯 하면서도 연기를 잘 한다. 

 

남파공작원 명훈(최승현)이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여 놓고도 자유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는 여지가 뭔가 있어 보이는데 왜 남한에서도 북에서도 살 수 없다고 죽어간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감독이 명훈을 죽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설득력 없이 죽게 만든 건 아닌지? 이쯤되면 감독은 각본에서 손을 떼고 전문 시나리오 작가가 썼어야 했던 건 아닐까? 우리나라는 감독이 자기가 쓴 시나리오 자기가 찍어야 한다는 이 강박에서 좀 벗어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포장마차를 하는 할머니 이주실이 나오는 부분이 좋았는데 2년 동안 북한에서 이렇다할 지령이 없다가 그 2년만에 겨우 받은 지령이 명훈에게 밥 먹는 거란다. 그 별 것 아닌 지령에도 감격해 하고 감정을 절제하면서 명훈에게 밥을 챙겨 주는 장면이 좋았다. 가끔 신앙과 북한의 주체사상을 빗대기도 하는데 긴장 없는 바람 빠진 신앙인들은 늘 긴장하고 사는 북한의 그 종간나 아새끼들의 태도는 배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이 영화 보면 감독이 김민정을 정말로 좋아하는가 보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김민정이만 띄워주고 나머지는 어떻게 되도 상관 없는 개념 없는 영화. 이렇다할 내용도 없고. 너무 빤해 보여서 끝까지 보지도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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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5-13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어쩜 기억의 문제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 잘못된 기억력 또는 잘못된 해석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 같단 생각을
이 문장을 보고 했습니다.

감독이 주연 배우를 정할 땐 남자가 되든 여자가 되든 일단 감독의 눈에 매력적인 사람으로 정할 것 같아요. 아무 매력이 없는 사람을 정할 리 없으니까 말이죠. 감독 자신이 좋아할 만한 배우래야 관객도 좋아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기도 할 것 같아요.

영화 많이 보셨군요. ^^

stella.K 2015-05-13 19:30   좋아요 0 | URL
ㅎㅎ 근데 그게 너무 티가 나잖아요.
관객은 영화에 몰입을 못하겠는데...ㅠ
우리 영화가 전반적으로 영화가 스토리가 약해진 것 같더군요.
배우에게만 의지하는 영화가 대부분인 것 같아 아쉬워요.
5일의 마중 안 보셨으면 보세요. 그건 언니한테 추천해 드릴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