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안경을 마쳐야지 해놓고 해를 넘기고, 달을 넘기고 있다.

눈이 나빠지니 내가 앞으로 책을 몇 권이나 더 읽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뭐가 어떻게 될 것도 아니고 눈이야 노화에 따른 것이니 슬퍼할 것도 없다. 이 나이 먹도록 안경 안 끼고 살았으면 잘 산 거 아닌가.

 

작가 보루헤스옹은 그의 지독한 독서 때문에 시력을 잃었다. 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보루헤스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무슨 사고를 당하지 않고 또 혹사시키지만 않는다면 나의 눈은 나의 노화와 함께할 것이다.

 

하긴 보루헤스는 독서로 시력을 잃었지만 그 반대의 케이스도 있다. 중국의 어느 교수는 자기 집 부엌에까지 책을 쌓아놓고 해가 져 깜깜한데도 불을 킬 생각도 안하고 책을 읽었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다른 것을 할 때 해가 떨어졌다면 그도 어둡기 전에 불을 켜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런 어둠속에서도 책을 읽은 것을 보면 그건 확실히 무아의 경지였을 것이고, 그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일 것이다.

 

며칠 전, <생활의 달인>을 보니 순 옛날 방식으로 수의를 만드는 9순의 할머니가 소개되었다. 나이가 9순이니 눈이 얼마나 안 좋겠는가.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직도 누구의 도움 없이 손수 바늘귀에 실을 꿰어 바느질을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할머니는 며느리와 PD 셋 중 가장 먼저 바늘귀에 실을 꿰는 기염을 토하기까지 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사람은 어느 경지에 오르면 육체의 감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모르긴 해도 그들은 그 일만 잘 하지 않을까? 어둠속에서 책을 읽으라면 읽겠는데 바닥에 떨어진 밥숟가락을 찾으라고 하면 못 찾을 것이고, 9순의 할머니도 바늘귀에 실을 꿰라면 하겠는데 머리카락을 주우라고 하면 못 줍지 않을까?

 

어쨌거나 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니 그런 신선 같은 재주는 없을 것 같고, 이제부터는 (시간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눈이 더 나빠지기 전에 읽어야 할 책 목록이라도 만들어야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요즘 작가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요즘에 나오는 신간은 웬만해선 눈길이 가지 않는다. 사춘기 때 미처 다 읽지 못한 또는 이미 읽었더라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고전에 마음이 간다. 학교 때 고전을 읽으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자랐건만 그땐 정말 귀 밖으로 들었다. 그땐 세상에 읽을 책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케케묵은 고리짝 책을 읽으라는 건가 한심하게 들었다.

 

한다하는 독서 고수들은 말한다. 그런 책들은 적어도 200년 이상 시간을 견디며 살아남은 책들이다.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그러니 고전을 읽으라고 일축한다. 그런데 이 시대 낭만 호사가 김갑수는 그의 책에서 고전을 아주 간단하게 정의했다. 재미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특히 제인 오스틴 같은 책은 너무 재밌다는 것이다. <작업인문학>에서). 과연 그도 그렇겠다 싶다.

 

적어도 200년 전, 사람들은 무엇으로 재미를 추구하며 살았겠는가. 뭐 사랑을 추구하며 산다지만 잘 알다시피 사랑의 유통기한은 6개월에서 길어야 1년 내외다. 스포츠도 내가 좋아야 하고 재능이 있어야 한다. 그 시절 볼만한 영화있었겠는가?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하고 추구하는 존재라고 한다. 그러니 그것은 아무리 추구해도 물리는 법이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순전히 상상력에 의존에서 썼을 테니 그 시대의 작가들의 상상력과 구성력이란 요즘의 기고, 뛰고, 나르는 어떤 작가 보다 고도화되지 않았을까. 거기다 오래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역사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니 고전이 된다는 건 아무 거나 되는 것이 아니겠지. 그 가치를 시력이 나빠지고서야 깨달으니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눈이 더 나빠지기 전에 읽어야할 책목록을 만들어야 한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러다 나도 눈이 더 나빠져 보루헤스옹처럼 골로 가던가 아니면 신선이 되던가 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내가 그렇게 책목록을 만들고 죽을 때까지 실천한다면 지금부터 읽는 나의 책읽기는 역전의 책읽기.

 

눈이 더 나빠지기 전에 읽어둬야 할 책으로 제일 먼저 고른 책은 <장 크리스토프>. 중학교 무렵에 같은 반 아이가 이 책을 가지고 있어서 처음 알았다. 얼핏 베토벤의 생애를 다뤘다고 알고 있어서 마침 난 그때 예술가의 생애와 삶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언제고 꼭 한 번 읽어봐야지 해 놓고 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다. 당시로도 5백 페이지가 넘어 !” 소리가 나올 정도였는데 이 책은 두 권 다 합쳐서 그것의 3배쯤 된다. 물론 억억!” 할 것 같지만 그러다 턱이 빠질지도 몰라 안으로 삼키고 그냥 읽어야겠다 생각했다.    

              

이책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또 지금도) 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팔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 출판사에서 작년에 새판을 찍었는데 만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팔고 있다.

 

그런데 난 이책을 못 살뻔 했다. 사실 난 1권을 어제 늦게 Y 서점에서 샀는데 원래 예정대로라면 수요일 날 받아볼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다. 한 달 전쯤 그런 얘기를 했지만, 요즘 은근 나의 책 구입을 탄압하는 엄마 때문에 그것을 피할 수 있는 확실한 날이 수요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화요일 오후에 주문을 해야 하는데 그만 인터넷이 고장이 나 주문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되면 이것저것 행사로 그러모은 한 장에 천 원 하는 상품권 3장 중 하나를 그냥 날려버리고 만다. 물론 아직 2천원의 상품권이 남아 있으니 8천원에 사는 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잘 알지 않은가? 우리 같은 서민형 장서인들은 1천원에 웃고 우는 거. 이건 아무래도 이번엔 책을 사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구입을 미루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뭔가를 착각하고 있었다. 인터넷을 고치고 다시 보니 사멸되었을 줄 알았던 상품권이 아직 유효했다. 게다가 오늘은 엄마가 병원을 가는 날이다. 이는 잘만 하면 엄마가 없을 때 책을 받을 수도 있다는 뜻. 그렇게만 돼 준다면.....

 

그런데 오전에 병원 가신 엄마가 오후 1시 무렵이 되자 돌아왔다. 아무래도 이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으려나 보다 했다. 그리고 나는 조금은 허탈하게 엄마가 옷을 갈아 입으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이번에도 한 소리 들으려나 보다 했다. 그런데 또 이게 웬일인가, 그 절묘한 타임에 택배가 우리집 문을 두드리고 내 책을 두고 갔다. 당연히 엄마는 옷을 갈아입느라 물건을 받을 수 없었고, 나는 다롱이를 내 방으로 몰아넣고 냉큼 그 책을 끄잡아 들였다. , 책 구입하기 정말 어렵다. 이번 주 초에 책을 받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절묘해지지 않아도 되는 건데. 이 정도면 나의 책 구입은 거의 전생의 업보요, 원죄에 가까운 일은 아닐까? 아무래도 전생에 엄마가 내 딸이었나 보다. 책을 무척 좋아하는. 그래서 내가 구박을 엄청 하지 않았을까? , 주여, 주님은 어찌하여 저를 시험하시나이까? 흑흑.

 

어쨌든 오늘도 무사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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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0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입니다. 이 책의 글자 크기가 작아요. 이 책을 계속 보면 눈이 피로해요. 얇은 분량의 책을 밤에 읽어도 잠이 올 정도예요. ㅎㅎㅎ

stella.K 2017-04-21 14:24   좋아요 0 | URL
난 보고 싶어도 못 보겠구나.
몇년 전까지만 해도 누워서 책을 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거의 못 보겠더군.
누워서 책 보면 눈이 더 안 좋아진다는 말도 있고 해서.ㅠ

cyrus 2017-04-22 16:42   좋아요 1 | URL
오랫동안 배 깔고 누워 있는 자세는 허리에 부담을 줘요. 그래서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어요. 그런데 문제는 목이 거의 책이 있는 아래로 고정되니까 목이 아파요..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자세가 없어요.. ^^;;

stella.K 2017-04-22 18:02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보고 있는 걸 보면
집념이 대단한 거야.
그런데 뭘 해도 사람은 한 자세로 오래 있을 수 없는 것 같아.
편하게 누워서 TV를 보는 것도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게 마련이거든.ㅋ

moonnight 2017-04-21 0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이 더 나빠지기 전에 읽어야할텐데 하는 조급증이 제게도 있습니다. 지금껏 늘 시력이 좋았었는데 이제는 ㅠㅠ;;
장 크리스토프가 베토벤의 생애에 관한 책이었군요;; 저도 보관함에 넣습니다^^;
저는 요즘 택배는 소화전 안에 넣어(숨겨-_-)달라고 부탁드려요. 그렇게 겨우 잔소리를 면하게 되었답니다. ㅎㅎ;;

stella.K 2017-04-21 14:30   좋아요 0 | URL
오, 소화전!
거기도 책을 둘 수 있는 공간이 있나 보죠?
동사무소에서 여성들을 위한 사물함 대여를
해 준다는데 좀 알아보고 신청해 보는 건 어떨까요?

<장 크리스토프> 아까 오전에 조금 읽어 봤는데
재밌을 것 같더군요.
사실 베토벤의 생애를 다뤘다는 건 반은 맞고, 반을 틀린 말이어요.
거기에 작가 자신의 정신을 이상화했다는군요.
언제 다 읽을런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도 전 두꺼운 책을 선호하니 문제요.
문나잇님도 그러신가요?^^

북프리쿠키 2017-04-21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베스트셀러나 신간에 손이 덜 가는것 같아요.
전 ˝소설˝분야는 되도록이면 고전문학 읽을려고 합니다~텔라님 말씀처럼 재미도 있구요ㅎ

stella.K 2017-04-21 14:31   좋아요 0 | URL
쿠키님은 저랑 취향이 비슷하신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17-04-22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헷갈리네요. 제가 읽은 게 몬테크리스토 백작이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베에토벤의 생애를 다룬 것도 읽었는데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어요.
기억력도 노화되고 있겠지요. 이젠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에 자신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어요.

시력은 노안 안경을 사시면 해결됩니다. 글을 볼 때만 쓰시면 됩니다.

몰래 하는 사랑이 짜릿하다고 하는데,
책도 몰래 사야 하니 짜릿하시겠는걸요.
하긴 저도 책이 배달될 때 되도록 식구들이 없을 때 받고 싶더라고요.
또 책이야? 그럴까 봐서요.ㅋ

stella.K 2017-04-22 18:47   좋아요 2 | URL
몬테크리스토는 다른 건데요.
베토벤의 생애라면 장 크리스토프가 맞을 것 같구요.
그런데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릴만한 것 같아요.

ㅎㅎ 짜릿하진 않아요.
그런데 그걸 사랑에 비유하시다니 언닌 낭만이 살아있네요.ㅋ
사실 장 크리스토프는 오래 전부터 함 읽어야지 벼르고 있었어요.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싶더군요.
하긴 이미 사 놓은 책도 못 읽고 있고
그만 사야지 해 놓고도 사면 왜 그리 좋은지 모르겠어요.
이래서 쇼핑 중독 이해할 것 같아요.
아주 춥거나 아주 더우면 엄마가 외출을 잘 안 하시는데
그안에 열심히 책을 사 둘까봐요. 흐흐

2017-04-26 1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6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랑스 시노그라퍼 - 1975-2015 공연.영화.전시 공간을 창조하는 사람들
뤼크 부크리스 외 지음, 권현정 옮김 / 미술문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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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가물에 콩 나기로)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가는 때가 있다. 조명이 켜지고 배우가 등장할 때까지 그 무대는 온전히 하나의 공간을 보여준다. 그게 어느 집 거실일 수도 있고, 을씨년스러운 어느 바닷가 모레 사장일 수도 있으며, 19세기 어느 귀족의 집이나 중세 어느 성당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런 공연물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런 무대장치가 극이 진행됨에 따라 어떻게 쓰이고 변화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공연물(오페라도 마찬가지겠지만)은 종합예술로서 한마디로 예술에 관한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되는 된다. 그러니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가 없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위한, 또한 누구를 위한 작품이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작가로 연극에 참여해 본 사람으로서 작품의 가장 첫 작업을 맡은 작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뭐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그런 생각도 그리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작품이든 그 작품이 결국 맨 마지막에 도달해야 할 대상이 누구냐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건 온전한 대답이 되지 못한다. 물론 작품이 추구해야 하는 작품성, 예술성은 온전히 작가의 몫이긴 하겠지만 그것의 완성은 결국 배우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가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써도, 연출가가 아무리 뛰어난 연출을 한다고 해도 배우가 온전히 그 작품과 배역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건 완전한 작품이 될 수가 없다. 물론 그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배역을 잘 할 수 없다면 그것을 잘할 수 있는 배우를 섭외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최악을 상황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는 프로라는 관점에서 각자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할지를 유기적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 결론은 그렇게 나올 것이며 그래야 관객이 감동하는 결론도 나올 것이다. 그래서 연극은 배우를 위한 예술이라고 했는가 보다.

시노그라피는 한마디로 말하면 무대디자인 또는 무대장치 등으로 설명될 수 있는 단어다. 그리고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시노그라퍼라고 한다.

흔히 우리는 그런 공연물을 볼 때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무대 디자인을 얼마나 눈여겨보는지 모르겠다. 물론 눈여겨 보긴 할 것이다. 아무리 배우가 중요하다지만 어떤 무대에서 공연하느냐에 따라 그 배우가 빛나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당장 요즘의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그렇다. 배우도 배우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무대 세트를 보면 눈을 빼앗길만하다. 그러나 처음에만 그렇지 결국 우리의 관심은 이내 배우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 물론 조금 더 관심의 영역을 넓혀서 누가 연출했는지, 누가 작품을 썼는지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 하나의 예의가 되었다.   

이 책은 비록 프랑스에 국한되어 있긴 하지만 시노그라퍼들의 대략적인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보니 나는 무대 디자이너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분야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분야에 대한 대중서가 나왔다는 건 확실히 흥미롭긴 하다. 하지만 과연 대중에 관심을 끌 수 있는지는 지금으로선 판단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프랑스의 시노그라퍼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흥미로울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나라 무대도 못지않게 화려하고 창조적이어서 그것을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 책은 1975년에서 2015년의 작품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시대를 굳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게 옛 시대의 작품들도 요즘에 봐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이 책은 글은 최대한 절제하고 각각의 시노그라퍼들의 대표작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시노그라퍼란 무엇인지 또는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가를 인터뷰식으로 간략하게 소개해 놨다. 대답이 여러 가지이긴 하다. 누구는 드라마트루기의 관점에서 작품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을 넓혀 가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연출가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작업을 한다고 했으며, 어떤 시노그라퍼는 배우를 많이 생각하며 작업을 한다고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아예 연출을 겸하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대답은 여러 가지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공연이란 커다란 작품을 앞에 놓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겠는가. 관계자들 외엔. 그들은 기꺼이 공연에 녹아들고 스며들어야 하는 존재임을 스스로 자인한 존재들이었다. 공연이 끝나면 없어져야 하는 무대장치다. 공간 예술이라 어디에 영구 보존하기도 어렵다. 장소를 대여하는 것이니 대여 기간이 끝나면 어쨌든 철거를 해야 한다. 보존을 하려면 사진 같은 기록물로 보관하던가 아니면 그 작품이 레퍼토리화해서 어디선가 계속 공연이 되면 그에 따라 그 무대디자인은 함께 갈 수도 있겠지.

이제 좀 시노그라퍼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도 쳐줄 박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작품은 웬만한 미술작품 못지않다. 그리고 상당히 매혹적이다. 이런 무대에서 공연하는 배우는 절로 연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감탄할 정도다. 이왕 연극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작가 같은 거 하지 말고 배우를 하면 좋겠다. 이렇게 배우를 위하는 사람이 많은데 배우는 정말 축복받은 직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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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1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화가들도 전업 화가가 되기 전에 무대 디자인 일을 한 적이 있고, 화가가 돼서도 무대 디자인 일을 했어요. 화가의 손길을 닿은 무대 디자인도 예술로 인정해야 합니다.

stella.K 2017-04-16 18:42   좋아요 0 | URL
정말 사진 보면 그림이야.
그 그림속에서 사람이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해 봐.
진작 그림을 배우지 못하고 무대 디자인을 못 배운 것이 아쉽더군.
이 책에 나온 사람과 그의 시노그라피는 빙산의 일각이겠더군.
우리네 같은 사람은 새끼 손가락으로 쿡 한 번 찍어
맛 본 것에 불과해.ㅠ
 

얼마 전, 김대식의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 대한 리뷰를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은 역시 후회하는 존잰가 보다.

 

방금 전, <알림센터>의 메시지 하나가 떴다. 확인해 봤더니 내가 <릿터> 정기구독권에 당첨됐다는 것이다.

 

2017-03-06 ~ 2017-03-31
2017-04-11
릿터 정기구독권

 

캬, 이럴 줄 알았으면 리뷰를 좀 잘 쓰는 건데.

난 그 책이 이벤트 중이라는 것도 모르고 좋은 평도 하지 못했다.

뭐 솔직한 게 가장 좋은 평이라는 걸 이벤트 주최측에서도 아는 거겠지.ㅋ

 

암튼 태어나서 정기구독의 호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닌가 한다.

원래 잡지는 나에게 사치라고 생각했다.

뭐 이왕의 행운이니 앞으로 1년 동안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읽어 주겠다. 음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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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2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4-12 17:51   좋아요 1 | URL
ㅎㅎㅎ 덕은요...ㅠ
요즘 알라딘이 저한테 이상해진 것 같습니다.
지난 번에 책을 자꾸 사게 된다고
책을 주문하는 손을 잘라야 한다고 했더니
오히려 더 열심히 주문하라고 당선작으로 뽑아주질 않나.
암튼 올 4월은 저에게 그렇게 잔인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ㅋㅋ

후애(厚愛) 2017-04-12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첨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오후 되세요.^^

stella.K 2017-04-12 18:05   좋아요 0 | URL
앗, 고맙습니다.^^

22c 2017-04-12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소에 쓰는 리뷰와 이벤트라는 걸 알고 쓰는 리뷰에.. 차이가 있나요?

stella.K 2017-04-12 18:40   좋아요 0 | URL
ㅎㅎ 아무래도 이벤트 당첨 목표로 쓴다면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건 아무래도 쓰는 사람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당첨이 되는 걸 보면...^^

서니데이 2017-04-12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기구독권 당첨되셨군요. 좋은 소식이네요.^^

stella.K 2017-04-12 20:04   좋아요 1 | URL
아, 네. 고맙습니다.^^

cyrus 2017-04-12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이번 달에 누님한테 기쁜 일들이 한꺼번에 왔네요. ^^

stella.K 2017-04-12 21:27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야. 난 대체로 홀수 년이
짝수 년에 비해 좀 안 좋은 경향이 있어
사리고 조심하고 있는 중인데
이런 일도 있네. ㅎㅎ
그런데 넌 이번에 아무 것도 안 됐나?
너도 응모했었잖아.

암튼 고맙다.^^

2017-04-12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2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2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7-04-12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낫 부럽습니다 축하합니다^^

stella.K 2017-04-13 16:5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난쟁이 백작 주주
에브 드 카스트로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몇 년 전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난쟁이 말고 '축소형 인간'으로서의 난쟁이가 TV에 나온 적이 있다. 미국인가 그랬고, 여자아이였다. 그때의 키가 약간 큰 인형 정도랄까?  세월이 흘렀으니 지금은 거의 숙녀가 다 돼있지 않을까? 아무튼 그런 보도를 접해 봤으니 이 전기 소설의 주인공 유제프 보루스와스키의 실존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더니 그의 초상으로 보이는 그림 한 점이 보인다.

정말 작다. 역자의 설명대로 유제프 보루스와스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연골 무형성증의 탈비례 난쟁이'가 아니라 신체의 비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체구만 작게 발달한 '축소 비례 난쟁이'인 것이다.   

그는 1739년에 태어나 백 살에서 2년이 모자른 98세를 살고 삶을 마감했다. 그를 본 의사는 20년도 채 살지 못할 거라고 했는데 그에 몇 배에 해당하는 삶을 살았으니 사는 것에 있어서는 여한이 없어 보인다. 더구나 옛날 시대에.

그러나 그 세월을 사는 그 조그만 어깨 위에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가 얼마만 한 것인지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하기가 어렵다. 비장애인도 세상을 살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건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는 이보다 훨씬 더 무겁고 커 보인다.

그나마 타고난 배경이라도 남 보다 유리하다면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유제프는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이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버지는 우물에 빠져 죽고, 그의 형제들은 병으로 죽거나 가난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졌으며, 어머니는 귀족 친구에게 유제프를 맡긴 후로 다신 만날 수가 없다. 그뿐인가, 훗날 그 자신도 자신의 첫째 딸을 양자로 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는다. 

아무튼 유제프는 그때부터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몸소 터득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됐다.

무엇보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귀족들 앞에서 춤과 재롱을 피워야 했다. 그리고 그건 유제프란 본래의 이름 보다 장난감이란 뜻의 주주로 더 많이 인식이 되었고, 당대 귀부인들 사이에선 행운의 마스코트쯤으로 여겨졌다. 물론 그 덕분에 일생 육체나 정신적으로 학대받은 적은 없다. 귀족을 상대한다는 건 그들 앞에서 재롱을 피워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더불어 그들은 유제프를 지켜주는 울타리도 되니까.

실제로도 그는 두 번의 양어머니가 바뀌는 동안 나쁘지 않은 사회적 대우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여기서 유제프가 당대 주류 사회에 섞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이 가기도 하지만, 더불어 그 시대 귀족들이 무작정 난쟁이 같은 장애인들을 어떻게 대했을까를 짐작해 본다. 어느 정도는 너그럽지 않았을까? 그도 그럴 것이 없는 사람끼리 서로 보살피며 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있는 사람이 더 인색하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광에서 인심 난다고, 있는 사람이 베푸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책에는 그런 언급이 나오진 않지만 귀족 교육 중엔 노블레스 오블리지에 대한 교육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해줘야 하는지를 나름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유제프에 대한 귀족들의 환심은 딱 거기까지다. (실제로 그런지 아니면 그렇게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구도 그를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사회적 약자니 돌봐줘야 하는 건 당연한 거지만 그러니만큼 사람들은 그를 장난감과 호기심의 대상으로 여겼으며 유희만을 얻으려 했다. 바로 이것에 유제프의 고독이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사랑을 만났다. 사랑하는 사람 이잘린을 만나기 전 잠시 직업이 배우인 여자를 만나고 나름 서로 진지한 사랑을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서로 진실하지 못했고 뭔가 어긋나 있어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잘린은 달랐다. 그녀만큼은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잘린이 자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하려면 지금까지 두 번째 양어머니 집에서 누렸던 호사를 뒤로하고 그 집을 나와야 한다.

그 선택에 유제프는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다. 과감하게 집을 나왔고 신혼 때 잠깐의 행복을 제외한다면 그의 삶은 매번 산 넘어 산이었다. 매번 고비의 순간이었고, 망하고 파산할 것만 같은데도 망하지 않고 파산하지 않는다. 그게 또 어찌 보면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도 그러지 않는가?

그리고 난 책을 다 읽어나갈 즈음 그의 삶에 진정한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부자로 생을 마쳤든, 가난하게 마쳤든, 짧던 길던 우리의 삶이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마지막엔 다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그만큼 살아오기가 쉬웠겠는가.

물론 유제프는 그렇게 힘들 게 살지 않아도 되는지도 모른다. 육체적으로 온전치 못하니 양어머니 그늘에서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아도 될 것이다. 사랑도 굳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해 뭐 하겠는가. 그 때문에 그는 평생 먹고사는 문제와 애증의 문제로 고통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가 양어머니의 집을 나오고,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을 사랑한 걸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담대한 자기 선언이었고, 자기 선택이었다. 물론 그렇게 하므로 인해 닥칠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일생 사는 동안 후회하지 않았다.

사람은 언젠가 꼭 한 번은 자기 선언과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람이지 어떻게 주워진 환경 속에서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짐승도 아니고 장난감은 더더욱 아니라면 말이다. 그 욕망은 유제프로선 더 강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정말 인간의 삶이란 책의 한 구절처럼, 모든 것을 가졌으나 모든 것을 가지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런 삶의 자조는 가지지 못한 사람 보다 가진 사람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또한 인생은 나그네 길 이랬다고 유제프는 양어머니 집을 나온 순간 나그네로서의 대로의 삶이 펼쳐졌다. 책을 읽어보면 그는 어느 한 군데 말뚝 박고 살았다는 말이 없다.

물론 그래서 그는 훗날 회고록을 세 번이나 고쳐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당시로선 교통도 그리 발달하지 못했으니 어딘가를 옮겨 다니며 살아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유제프의 몸으로서는 더더욱. 그러나 그런 감행이 있었기에 저자는 유제프의 회고록을 접했으며 우린 또 이렇게 그의 손끝에서 당대 유럽의 역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제프는 인생 어느 지점에서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만이 모든 수모를 감내하며 살아갔던 것이 아니라는걸. 자신이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살았다 뿐이지 사람들 저마다 삶의 짐을 가지고 다른 식의 수모를 감내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며 삶을 긍정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미에 보면, 누구도 죽고, 누구도 죽고, 누구도 죽었다며 당대 최고 권력자들의 명단이다. 사람은 그 인생의 시작은 다 달라도 그 끝은 비슷하다. 이것을 깨달으며 사는 것이 또한 인생 아닌가? 집채만 한 삶의 무게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이 겁이 나 미리 죽음에게 자신의 생명을 양도해버리는 건 또 얼마나 슬프고 어리석은 일인가?

소설이 나름 꽤 훌륭하다. 어찌 보면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클래식 버전을 보는 것도 같고(이 작품은 조만간 영화로 나오지 않을까?), 저자의 유려한 문체와 풍부한 비유가 읽는 내내 즐거웠다. 꼭 읽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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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12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형의 역사》라는 책에 난장이 사례가 나옵니다. 이 책에 유제프가 나오는지 확인해봐야겠어요.

stella.K 2017-04-12 21:24   좋아요 1 | URL
오, 그런 책도 있었구나.
이 책 정말 괜찮아. 재밌어.
너도 기회되면 읽어 봐.^^

cyrus 2017-04-12 21:57   좋아요 1 | URL
방금 전에 《기형의 역사》를 살펴봤는데요, 정말로 유제프 보루스와스키에 대한 내용이 있어요. 이 소설, 꼭 읽어봐야겠어요. ^^
 
내 책상위의 천사 - [초특가판]
제인 캠피온 감독, 케리 폭스 외 출연 / 기타 (DVD)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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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오래 전 <피아노>를 끝까지 다 보지 못한 기억이 난다. 영화든 드라마든 책이든 첫 인연을 잘 맺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그 다음도 기약할 수 있는 법인데 또 그런 의미에서 제인 캠피온은 나와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무슨 바람이 낫을까? 이 오래된 영화를 지금이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주인공의 머리가 인상적이라는 걸 대뜸 떠올릴 것이다. 어마무시한 곱슬머리! 지금이야 일부러 그런 가발을 만들어 쓸 정도지만 주인공이 나고 자랐을 193, 40년대는 한마디로 구제불능의 머리였을 것이다. 더구나 머리색도 빨간색. 옛날 같으면 마녀라고 했을 것이다. 주인공만해도 3명이 등장한다. 유년과 소녀, 숙녀로 나눠 각각의 시절을 연기한다. 

 

주인공의 소녀 시절 어디쯤에 왠지 나의 모습도 중첩되는 느낌이다. 주인공처럼 빨갛지는않지만 구제불능의 곱습 머리는 하나다. 나이들면 머리숱이 줄어든다고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 구제 받지 못한 머리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래서 왠지 주인공의 머리 얘기가 나오면 남의 얘기하는 것 같지가 않다. 아는 사람들이야 관심있어 한마디씩 하고 만져주고 한다지만 그것도 왠지 내가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아 편치가 않다. 그 시절 누구라도 네 머리는 개성있다고 해 줬으면 용기를 갖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내 머리가 누구를 불행하게 만든 것도 아닌데 괜히 주눅들어 있었다. 그러다 가수 인순이가 데뷔 초부터 파격적인 머리를 하고 나왔을 때 내가 얼마나 위로가 됐는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그녀의 머리보단 내 머리가 좀 낫긴 하지. 누구는 도진개진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해 맑은 것은 아니지만 악한 곳이라곤 전혀 없는 주인공의 다소 어눌한 연기가 능청스러우리만큼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뉴질랜드의 국민작가 자넷 프라임의 자전 소설을 제인 캠피온이 영화화한 것이다. 그녀가 자국내에선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는 우리로선 가늠할 수가 없다. 그 나라가 우리를 볼 때 제 3 세계라고 하겠지만, 우리 역시 뉴질랜드가 미국이나 일본만큼 익숙한 나라라고는 볼 수  없을 테니. 

 

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건 정신분열증 즉 조현병에 대한 지식이 저 시대에 그렇게도 없었나 놀랍기도 하다. 물론 난 아직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영화의 주인공 자넷 프라임은 다소 정서가 예민하고 대인 기피증이 있어서 그렇지 조현병자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의사의 오진으로 한 때 조현병자로도 살고 병원신세도 졌다. 

 

사실 어찌보면 그녀의 불안한 정서를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영화엔 잘 표현이 안 되있는 것 같기도 한데 오빠가 간질병이고, 두 언니가 각각의 시차를 두고 익사한 것도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인을 기피하고 책속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넷은 그녀만의 문학의 심연을 퍼올렸을 것이다.

 

문학. 그것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풍요와 만족속에선 결코 존재할 수 없고, 인간의 온갖 억압과 부조리함 속에서 피어나는 꽃 같은 것은 아닐까?  그것을 꺾어 갖는 순간 신기루는 사라지고 그것의 시녀가 되서 그 실을 잣는 사람이 작가가 되는 것이겠지.

 

작가는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든 글로 쓰길 원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한다. 그것은 거의 본성에 가깝다. 아니 작가에게 글을 쓰는 것이 본성이라고 한다면 자서전을 쓰는 것 역시 본성이다. 그래서 자넷 프라임은 <내 책상 위의 천사>란 자전 소설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만이 그러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상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이름을 남긴다는 게 뭔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자기 얘기 한 번은 하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 책 10권은 나온다고 떠든다. 그러나 정작 단 한 페이지 아니 단 한 줄도 못 쓰는 게 대부분이다.

 

자넷 프라임의 시대에 자서전은 아무나 쓰는 장르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회고록을 포함)자서전을 쓰는 행위가 흔해졌다. 이걸 두고 우려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서전이 누구를 헷고지 할 목적이나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고백의 차원에서 또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정리하는 차원에서라도 꼭 한 번은 어떤 식으로든 써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객관화하는 작업을 위해서라도. 물론 쉽진 않겠지만 꼭 그것을 써서 돈을 벌거나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욕심을 버린다면. 누구의 인생도 이유없는 인생은 없고 이해 받지 못할 인생은 없다. 그것을 가장 잘 정리할 수 있는 건 글로 남기는 것 밖에 없다.

 

문학에서 고백이 차지하는 비율은 거의 다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글쓰기에서의 황금율은 정직함, 솔직함이라고 하지 않던가? 자넷 프라임의 자전 소설이 출판되었을 때 자국내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감추고 싶은 개인의 내면을 얄짜 없이 보여주지 않는가. 사실 그게 생각 보다 쉽지가 않다. 그래서 자기 인생 이야기 책으로 쓰면 10권은 되는데 단 한 권, 한 줄도 못 쓰는 건 무엇보다 글을 못 써서가 아니라 여기서 걸리기 때문이다. 이것을 돌파하지 못한다면 무슨 글을 쓸 수가 있을까?

 

영화 장면에서 보면 누가 자넷에게 그런 말을 한다. 작가로 성공할 생각하지 말라고. 그건 그저 취미로 하고 살 길 찾으라고. 그런 말은 지금도 작가들 사이에선 심심찮게 하는 말이다. 그만큼 작가는 하나의 온전한 직업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자넷은 귓등으로 듣고 열심히 글을 써서 어느 출판사와 계약을 맺으면서 아파트를 하사 받는다. 뭐 영원한 건 아닐지 모르지만 작가로서 작업실로 쓰일 아파트를 하사 받는다는 건 대단한 것이다. 협회 같은 곳에서 유럽 곳곳을 여행해 볼 수 있는 자격도 얻는다. 그만하면 작가로서 최고의 대우 아닌가. 작가가 직업이 되고 안 되고는 역시 작가에게 달려 있는 것 같다. 

 

참고로, 자넷 프라임의 자전 소설은 현재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영화 본 것을 기념해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하필 출판사가 문제가 있는 출판사다. 불매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거기서 나오는 책을 사야 할 것이냐, 말아야 할 것이냐  갈등하거나 편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현실이 좀 그렇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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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10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가 자서전을 써봐라고 제안한다면 제대로 못 쓸 것 같습니다.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서 글로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아요. 대학생 때 참 특이한 과제를 많이 해봤어요. 그 중에 자서전 쓰기가 있었어요. 정말 난감한 과제였어요.

stella.K 2017-04-10 19:56   좋아요 0 | URL
거 교수님이 누군지...ㅎㅎㅎ
당연했다. 나도 20대 때 꿈도 꿔보지 않은 일이야.
아마 지금의 네 나이도 난감할 걸?
그런데 30대 후반이 되고 40이 넘으면 뭔가
내 인생을 반추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내 인생에서 좋은 건 뭐였고 나쁜 건 뭐였는지,
아쉬운 건 뭔지 왜 아쉬운지 말하고 싶어진다는 거지.
일종의 손익계산서 같은 거랄까?
그러면 앞으로 남은 인생은 조금 더 이익이 되는 삶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무슨 글을 쓰던 쓴다는 건 인내하는 과정이야.
그건 틀림없어.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