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진 샤프 지음, 백지은 옮김 / 현실문화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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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얇은 책이라 금방 읽게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읽기가 녹녹치 않다. 놀라운 건

이 책이 한때는 금서로 지정이 되서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법인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때 그런 때가 있기는 했다.

공산주의 불온서적이 그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그 대상이 될 줄은 몰랐다.

 

이 책은 한마디로 시위의 방법에 관한 책이다.

그것에 관해 꽤 자세하고 주도면밀하게 쓰여있는데

그것만으로도 불온서적이 될 수 있었다니 이 책가 가지는 위력 보단

새삼 독재가 불법은 불법이었나 보다 싶다.

이 책에 소개된 방법으로 민주화를 쟁취하면 독재 세력의

모가지가 날아가는 것이니 말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방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간디의 무저항 비폭력주의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사실 저자가 간과한 게 하나가 있다.

간디의 무저항 비폭력주의도 알고 보면 우리나라의

3.1운동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그렇다면 저자는 우리나라의 3.1운동을 연구대상에 포함시켰어야 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3.1운동이나 간디의 무저항 비폭력주의가

어떻게 성공한 시위가 될 수 있었는지에 관해선 우리 역시

아는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게 어느 날 갑자기 억압된 분노가 폭발하듯 이루어진 것이아니라는 것.

뭔가의 치밀한 계획과 방법에 의해 이루어진 성과물인텐데도 우린 그걸 너무

피상적으로 알고 있고, 역사의 한 장면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우리나라만 해도 3.1운동만이 무저항 비폭력이었을까?

그 이전에도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3.1운동으로부터 시작해서 진화의 진화를

거듭해서 지금의 촛불시위까지 발전된 것이 아니겠는가.

예전의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발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 촛불시위가

과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의아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능했음을 우린 또 얼마 전에 목도하지 않았는가?

세상을 바꾸는데 폭력이 가능하지 않음을 실증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하지도 않다.

언제 어느 때 독재는 독버섯처럼 자라 우리를 위협하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우린 어떤 식으로 독재에 맞서고 항거할 것인가 생각해 보야한다.

 

놀라운 건 저자는 비폭력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해

무려 198가지나 소개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다지 어렵거나 아주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용기만 가지면 몇 가지는 당장 어렵지 않게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문득 읽다보니 얼마 전 종영한 드라미 <김과장>이 생각났다.

거기도 보면 주인공이 회사를 상대로 저항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드라마의 특성상 코믹하게 그려지기도 했지만 그것도 그냥 웃고 넘어갈

것은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무저항 비폭력은 꼭 이마에 내천 자 그리고 해야 하는 건가?

그건 아니다. 그러면 지는 것이다.

 

누구는 말한다. 더 시끄러워져야 한다고.

조용하면 그건 주검이다. 독재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항의하고 항거하면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다.

사회 모든 체제가 올바르다면 그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사회는 올바르지 않게 굴로갈 수 있다.

그런데도 조용하면 그건 잘못된 거다.

저항하려면 바로해야 하고 제대로 해야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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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6-29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폭력, 하면 간디죠~!ㅎ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이 책을 보니 베링턴 무어의 독.민.기.원.이 생각나네요~
같이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cyrus 2017-06-29 13:39   좋아요 0 | URL
베링턴 무어의 책, 헌책방에서 본 적이 있는데 사야 겠군요. ^^

stella.K 2017-06-29 13:40   좋아요 0 | URL
독민기원...?!
저는 모르는 책이네요.
역시 야무님은 아는 것도 많으십니다.^^

cyrus 2017-06-29 13:47   좋아요 0 | URL
풀네임이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입니다. ^^

stella.K 2017-06-29 14:3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구나. 그럼 야무님 잘 못 알켜주신 거네.
독민사기였어.ㅋㅋ
 
한 줌의 모래 - 이시카와 다쿠보쿠 단카집
이시카와 다쿠보쿠 지음, 엄인경 옮김 / 필요한책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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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가 문학에 단카라는 게 있단다. 나로선 처음 듣는 것인데 57. 5. 7. 731자로 구성되는 일본의 전통 문학 방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시조 같은 거라고나 할까? 이 단카가 있기 전 와카가 있었다고 한다. 이 와카는 주로 귀족과 승려 계층이 즐겼는데 메이지 유신 이후 국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와카로부터 독립되어 사용됐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하면 좀 뭐하긴 하지만 시조든, 단카든 뭔가의 틀에 맞춘다는 게 과연 자연스러운 것인가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하지만 그것도 문학의 도구라면 도구고, 유희라면 유희가 아닐까.

 

단카하면 이시카와 다쿠보쿠를 말하지 않고선 논할 수 없고, 그는 우리나라의 백석이나 최승희의 영적 스승으로 추앙을 받는다고 하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도대체 그가 누구 길래 백석과 최승희가 무릎을 끓는단 말인가.

 

그는 1886년에 태어나 나이 27세에 요절한 시인이다. 집안 환경이 불우해 학력도 중졸이 전부다. 그 때문에 변변찮은 직장을 전전하기도 했지만 일찌감치 소설가의 꿈을 꾸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설가로서 이렇다 할 문학적 성과 이루지 못하고, 그 후로도 꾸준히 소설을 쓰긴 했지만 당대에 인정 받을만한 작품은 없었다. 단카집 <한 줌의 모레>는 거듭되는 좌절 속에 실패를 고통스럽게 받아들인 시점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까? 언제나 그렇듯 문학 작품은 작가의 삶이 녹아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책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특히 그는 가족들이 폐병으로 사망하기도 하고 그 자신도 같은 병을 앓으면서 늘 죽음에 대한 그림자를 느꼈다. 그래서 쓴 단카가 있다.

죽음에 관해

마치 평소의 지약(항상 지니고 다니며 먹는 약) 먹는 것처럼 나는 생각하노라

가슴이 아파지면

그뿐 아니라 그는 어렵게 얻은 아이가 한 달도 못돼 죽음을 지켜봐야 했으니 과연 죽음은 늘 그 가까이에 있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가출을 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가출했다 돌아온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덤덤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부모와 자식

제각각 동떨어진 마음 가지고 조용히 마주하는

서먹함은 왜일까

 

이렇게 그의 시는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삶에 대한 풍경과 느낌을 그때그때 단카로 옮겼던 것 같다. 그리고 살면서 행복해 본 적이 없어서일까 문장에서 전해지는 생생함이 결국 애잔함으로 남는다.

 

학력이 짧다고 해서 배움이 짧은 것은 아니다. 그는 단카 이후 리얼리즘-프롤레타리아 문학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는데 이는 말년에 사상가로 거듭났던 계기가 되기도 했단다.

 

누군가 나를

피스톨 가지고서 쏴 주지 않으려나

얼마 전 이토처럼 죽어 보여주련다.

(이 단카는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가리킨다. 19091926일에 안중근에 의해 하얼빈에서 암살된 이토 히로부미의 사망 소식을 접한 다쿠보쿠는 <이와테 일보>에 추도문을 발표하는 한편, “한국인의 입장과 애처로움을 이해한다고 쓴다. 이는 후에 발표한 시 <한 스푼의 코코아>의 첫 구절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픈 마음을과 연계되어 그가 안중근을 시상의 제재로 삼았다는 근거로 제시된다. 89p)

모르긴 해도 그는 안중근의 죽음을 보면서 그런 문학 세계를 구축해 나가지 않았을까?

 

그의 작품은 대체로 고독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다 슬프고 고독한건 아니다. 어떤 작품은 나름의 위트를 가진 것도 있다. 삶이라는 게 그런 것 같긴 하다. 슬픈 것 같아도 즐거움이 있고, 즐거운 것에도 슬픔이 있다. 그런 것처럼 오래 살았다고 문학에 족적을 남기는 것도 아니고, 요절을 했다고 해서 문학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비록 그는 자신이 원하던 소설을 이루지 못했지만 단카 하나로 문학사에 족적을 남겼으니 그 하나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훌륭한 문학가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단카를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뿌듯한 독서가 됐다.

문학을 설핏 알기 시작했던 사춘기 시절엔 시가 좋았다.

그러다 어른이 되면서 시를 잊고 살았다.

나이 들고 다시 시가 좋아졌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다시 올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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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27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카와 단카를 보면 절제미가 느껴져요. 비록 문장에 드러나지 않은 글쓴이의 감정을 정확히 맞출 수는 없지만, 독자는 단어와 문장만으로 글쓴이의 감정이 어떤 건지 얼추 이해하려고 해요. 그래서 시는 계속 봐야 합니다. ^^

stella.K 2017-06-27 18:40   좋아요 0 | URL
아, 맞아. 절제미! 그 단어를 빠트렸네.
그래서 일본문학이 좋은건데 말야. 큭 ㅠ

2017-06-27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6-27 18:40   좋아요 0 | URL
앗, 고맙습니다.^^
 

 

 

밤에, 우렁각시가 다녀가듯

비가 왔다.

연일 때이른 폭염에 긴 가뭄까지

잠시 더위나 식히라고

위로하듯 왔다 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는 흔적도 없이

말라 있었다.

우렁각시는 또 언제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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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5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5 2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성 셰프 분투기 - 음식에 가려진 레스토랑에서의 성차별
데버러 A. 해리스 & 패티 주프리 지음, 김하현 옮김 / 현실문화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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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성차별이나 젠더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널리 퍼져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분야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요리는 오래도록 여자 고유의 영역이었던 만큼 오히려 다룬다면 남성의 젠더화를 다룰 것 같지만 여성의 젠더화를 다루었다. 그것은 여자는 요리사로서만 그 존재를 한정하며, 남자는 군데에서 나온 셰프로 그 영역을 확장하며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요리뿐만이 아니라 주방 업무를 총괄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이게 사실일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이건 군대에서 여자가 대장이 됐을 때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요리의 세계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건 뭔가 빼앗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이 빼앗긴 분야에서 여자들이 어떻게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는지를 나름 소상히 다루었다.

 

주방은 불과 칼을 다룬다는 점에서 거친 곳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더구나 이 군대에서만 존재했을 셰프가 미식의 장에 도입되기 전에는 여자들은 가정에서 가족들을 위한 한 끼 분량의 요리를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미식의 장은 뭐든 대규모로 이루어지니 힘없는 여자 보다는 힘 있는 남자들이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여성이 사회에 인정받고 적응하려면 모든 걸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다못해 요리까지도 말이다.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해서 본 건 챕터4나쁜 년이거나 여성스럽거나 엄마 같거나. 그래. 그렇게 집을 나와 빼앗긴 미식의 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저 셋중의 하나는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미식의 장에서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직장에서 여자는 저 셋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의 각각의 정의는 이렇다. 남성적이고 권위적인 관리 방식을 따르는 건 나쁜 년이고, 여성스러운 건 친근한 관리 방식을 의미하며, 엄마 같은 것은 그야말로 부엌에서 엄마나 큰누나 같은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다. 책은 앞의 두 방식은 여자가 전문 셰프로 삶을 헤쳐 나가는 데 전혀 이상적이지 않으며 엄마 같은 세 번째 방식이 유리하다 못해 추천하기까지 한다.

 

물론 여성에게는 엄마나 누나 같은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난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뭔가 부조리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여성적인 것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며 여성들 중엔 엄마가 되고 누나가 되는 경험 없이 미식의 장에 들어 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말을 다시 풀어보면 남자들은 그저 무슨 일에든지 어쭈쭈나 해 주는 엄마 같고 누나 같은 사람에게 엉덩이나 토닥임 받기를 바란다는 것인데 그건 여자를 너무 한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긴, 원형적으로 볼 때 여자가 가족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기 위해 부엌에 있다는 것 자체가 엄마나 누나의 마음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여성 셰프는 바로 이런 이미지로 상명하복의 군대식 남성 셰프를 점령해 갔을 것이다.

 

남성 셰프는 개인으로 간주되고 오로지 자신이 내놓은 결과로만 평가받는 반면, 여성 셰프는 소수자로서 눈에 잘 띄기 때문에 한 여성 셰프의 특성이 모든 여성 셰프의 리더십 능력을 가리키는 표지가 된다.(257P) 그러니까 남자와 똑같은 것을 가지고 무기삼지 말라는 말이다. 그것은 빼앗긴 들에 봄을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겨울을 불러들이는 꼴밖엔 되지 않는 것이다. 남자에겐 없는 여자만이 가진 장점으로 자신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난 여기서 저자의 시선이 좀 의심스러워졌다. 저자는 여성의 장으로 대표될만한 장이 남성이 장악하면서 여성이 거기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에 골몰한 나머지 남자를 객관적으로 볼 신경이 없었던 것 같다. 남자들만 득시글거리는 곳이 과연 야성의 동굴이기만 할까?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은 독특하게도 여자(아이)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남자 아이들이 고립된 곳에서 자연스럽게 역할놀이에 빠져든다. 그러면 야성과 이기적 본능을 드러내는 그룹과 서로를 돌봐줘야 나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이타적이고 문화적인 그룹으로 나뉘는 것을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미안하다. 난 이 작품을 책으로 기억하지 않고 영화로 기억한다). 이것이 남성성을 대표한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인간 역학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주방을 단선적으로만 보여주는 건 신빙성이 떨어져 보인다.

 

이것은 또 페미니즘이 자칫 범할 수 있는 우이기도 할 것 같은데, 페미니즘이 인간 그것도 여성을 이해하고자 생긴 분야라면 인간 소외의 사례만을 집중적으로 다루지 말고 좀 더 총체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도 그럴 것이, 본 챕터 나쁜 년이거나 여성스럽거나 엄마 같거나는 앞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하다가 말미에 가선 실제로 그렇게 심각했던 것은 아니라고 꼬리를 슬그머니 내리기도 한다. 그러면 김이 좀 빠지기도 한다.

이렇게 남성들의 세계에서 여성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넘어야할 산은 또 있다. 그건 성희롱이다. 이건 이 책 침입자에서 형제가 될 때까지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이건 주방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직장에서도 아니 어쩌면 남녀가 모이는 어느 곳에서도 보편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사람은 왜 성희롱을 하느냐인 것이다. 성희롱은 남자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도 한다. 단지 그 빈도수가 여자 보다 남자가 훨씬 많다는 것. 짐작해 볼 수 있듯이 남자들이 그러는 건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가장 질 낮은 방법이다. 또한 이성을 얕잡아 보는 수단일 수 있으며, 이성에게 갖는 두려움이나 적개심을 드러낼 때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책에서처럼 여성에게 성적인 농담을 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알아보고 싶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 여성 셰프는 너무 예민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중요한 또 하나, 이성에게 어필하고 싶으나 그것을 모를 때 그 같은 우를 범한다는 것이다. 그때 얼굴이 빨개지면 장난은 안 끝나요. 밤새도록 이어질 걸요. 그 사람들은 모두에게 그런 행동을 해요. 게이한테도 하죠. 이때 절대로 흔들리면 안 돼요. 하지만 한 번 내 능력을 입증하면 엄청 재미있어져요. 그때부터 남자들은 자기가 뭘 잘못해서 여자 친구가 화가 났는지 물어보기 시작하거든요. 여자 친구의 입장을 알아야 하니까요.(195P) 어쩐지 웃픈 느낌이 든다.

 

내가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문득 얼마 전 군부대 내에서 상사의 성폭력에 시달려 자살한 어느 교관이 생각이 났다. 그녀는 죽지 말았어야 했다. 물론 난 이미 다른 나라 사람이 된 그녀를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남자가 얼마나 시답지 않은 이유에서 성범죄를 저지르는지를 알면 오히려 그녀는 살아 자신이 당한 일을 세상에 알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새삼 이 성희롱의 문제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다 훨씬 더 많이 다루어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즈음 뉴스나 시사 보도 행태가 남성의 시각에서 자주 사용한다는 것을 볼 때 말이다. 그러니 남성의 입장에서 성희롱이 자주 언급되는 것은 별로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1분에 몇 명의 사람이 성폭력을 당하는지를 안다면 몇 초만에 한 번씩 알람 울리듯 한다고 해서 결코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에 마음은 똑 같다. 미식의 장에서 남성 셰프들이 엄마나 누나를 선호한다면 여성 세프들은 아빠나 오빠 같은 사람을 원할 것이다. 음식은 문화적인 것이기 때문에 남자의 야성만을 가지고는 음식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잘 조합이 되어야 비로소 훌륭한 음식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꼭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리 미식의 장도 좋고, 페미니즘도 좋지만 사회생활의 기본은 내가 나를 대우해 주지 않으면 남도 나를 대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은 여성들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기위해 쓰인 것도 같다. 참고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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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7-06-30 0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보다는 앞서 것으로 생각되는 미국조차도 아직 남자가 1불을 벌 때, 여자는 80센트를 번다는 최근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성희롱이나 성차별, 갑-을로 나뉘는 구조에서는 대상이 바뀔 뿐, ongoing issue같네요.

stella.K 2017-06-30 14:5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그래도 한국이 미국 따라 가려면
아직도 멀었죠.
OECD 가입국중 남녀의 임금격차가 우리나라가
최하위란 말도 있던데...
이걸 또 경제 사정으로 돌리기도 하던데
물론 경제가 좋아지면 여성의 임금이 조금은 좋아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 여자가 경제를 나쁘게 한 건 아니잖습니까?
뭐 그냥 하는 말이려니 하지만 듣는 여자들 기분 나쁜 건 사실이죠.ㅋ
 
과학과 물 관리 - 지구의 물 부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한림 SA: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10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편집부 지음, 강윤재 옮김 / 한림출판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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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구의 어디는 홍수가 나서 난리고, 지구의 어디는 가뭄 때문에 애가 탄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벌써 여러 해째 여름이면 가뭄 피해를 보고 있다. 사람이 전기와 물 없이 살 수 있을까? 좀 우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와 물 둘중의 하나를 고르라면 난 물을 선택할 것 같다.

 

옛날엔 가뭄이 들면 재앙이고 그 재앙은 필시 인간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해 하늘에 기우제를 드렸다고 한다. 거기엔 나랏님이 친히 발벗고 나서기도 하고. 치산치수란 말도 있지만 댐과 저수지를 만들고 물을 과학적으로 관리하면서 점점 없어진 풍습이긴 하지만, 역시 비는 하늘의 일이라 하여 시골 어디에선가는 지금도 기우제를 드리긴 하는가 보다. 사실 나도 기우제 같은 건 안 드리지만 요즘 같은 가뭄이면 기도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도시는 아직까지 가뭄이라고 해서 수도에서 물이 안 나오는 건 아니지만, 가뭄 때문에 한 해 농사를 망치거나 아예 시작도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게 왠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또 그런 지역은 제한급수도 한다는데 그 여파가 도시에도 미치지 말라는 법이 어딨겠는가. 나는 어렸을 때 실제로 제한급수 받아 본적 있다. 그때는 가물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물론 그땐 지금만큼도 댐이나 물이 체계적으로 관리가 안 되있었으니 그렇기도 했겠지만 어쨌든 지금도 가뭄이 들면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부턴가 강우량이 느낄 정도로 현격하게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과거엔 평균 1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 꼴로 내리던 비가 그렇게 내리지도 않거니와 내렸다고 해도 그 양이 많지도 않다. 그것을 단순히 라니냐나 엘리뇨 같은 기후 변화 때문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린 이렇게 물이 부족한 시대에 살면서 그것에 대한 책임감을 얼마나 느끼고 사는지 모르겠다. 이 기후를 변화시킨 장본인은 인간이다. 지구의 역사는 그야말로 유구한데 지금의 지구가 온통 오물을 뒤집어 쓰게 된 건 100년여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인간이 죄가 많다 싶다. 그러니 기우제 드린다고 뭐라 할 형편도 아닌듯 싶다. 자연은 기다려 주지 않으며 받은만큼 돌려준다더니 이제 돌려 받을 일만 남은 건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빙하기나 간빙기 때도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생명을 이어 온 영장류다. 우린 앉아서 그런 푸념만 늘어놓을 시간이 없다. 어떻게 하면 자연으로부터 빼앗은 것들을 돌려주며 자연과 함께 공존하며 어려움들을 극복해 나갈까 를 고민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니 어느 부분 물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덜어지는 것도 같고, 또 어느 부분여전히 걱정과 우려가 남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거야 앞으로 과학이 헤쳐나가야 할 일이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넋놓고 있을 것만도 아니다.

 

옛말에 치산치수란 말이 있다. 이 말의 뜻과 어원을 따져봐야겠지만 모르긴 해도 이 말은 인간이 자연을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만큼 자연과 어떻게 어울릴 것인가란 의미에서 저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인간은 자연을 너무 탐욕적으로 이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비근한 예로 우린 매일하는 샤워를 포기할 수 있을까? 매일 샤워를 한다고 해도 물을 받아가며 쓸 수 있을까? 도시에선 좀 어울리지 않는 광경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샤워 꼭지에서 직접 떨어져 하수구로 직행하는 물의 양이 얼마나 하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어떤가? 물론 미국의 예이긴 하지만, 1인당 물소비가 빠르게 증가해 텍사스주 같은 경우 지난 1940년 이후 지금까지 인구대비 물사용량이 30배나 늘어났다고 한다. 이게 비단 그 곳만의 문제일까? 우리나라의 물 사용량은 독일의 2.2배가 많다고 한다. 이제 좀 감이 오나? 

 

누구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를 바래 기우제를 드리고, 누구는 댐이나 저수지를 만드는데 자신의 공력을 바치며, 어떤이는 어떻게 하면 단 한 방울의 물이라도 관리할까를 골몰할 때 지난 세월 동안 지구를 꾸준히 망가트려 온 장본인이 인간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적어도 한 번쯤 내가 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20세기는 오일 전쟁의 시대였지만 21세기는 물의 전쟁이 될 거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그것을 목도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물관리를 잘하는 나라가 강대국이 될 거라고도 한다. 솔직히 이즈음 우리가 가뭄 실태 보도를 접하게 되면 그것은 주로 농촌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그럴 수 밖에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도시는 아무리 가물어도 몇 개월은 버틸 수 있는 양의 물을 확보했다. 그런데 농업용물은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는 말이란 걸 이제야 깨닫는다.  해마다 가뭄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농촌지역은 무슨 죄란 말인가? 그것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방안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이 책은 비교적 내용이 좋은 편이긴 한데 나 같은 과학 문외자가 읽기엔 조금은 지루하기도하고 버겁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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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7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6-18 18:05   좋아요 1 | URL
ㅎㅎ 그래도 옛날 사람들은 목욕하는 날이 정해졌다잖아요.
단오를 포함한 명절 때 1월 1일이나 한 해 마지막 날 뭐 이런 때 말이어요.
그에 비하면 한 달 못 씼는 건 아무 것도 아닌데 그게 또 정말 그렇지가 않아요.

전에 성석제 작가도 한 달인가 몇 달을 안 씼어 본 적이 있다더군요.
나중에 얼굴에서 뭔 껍질 것은 게 떨어지는데
그게 떼였다나 뭐라나...ㅎㅎㅎ
사람들 중엔 매일 샤워 안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어떤 사람은 아침 저녁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뭐 나름 이유가 있을지 모르나 너무 심하다 싶기도 하더군요.

cyrus 2017-06-18 1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를 ‘UN 지정 물 부족 국가’로 지정한 공식 발표가 사실이 아니라고 해요. ‘물 부족 국가’를 지정한 사설 단체는 UN과 무관해요. UN은 그 사설 단체의 보고서를 인용했을 뿐이죠. 게다가 사설 단체의 결과가 국가의 물 부족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 아니에요. ‘물 부족 국가’가 아니어도 당연히 물은 아껴야 하고, 가뭄 같은 재해를 방지하기 위한 물 관리 대책이 필요해요.

고양이라디오 2017-06-18 12:55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몰랐던 사실이넹 ㅎ 어쩐지 우리나라 물부족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ㅎ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cyrus 2017-06-18 12:58   좋아요 1 | URL
최근에 이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

[카드뉴스] 한국은 ‘UN이 지정한’ 물 부족 국가? (한국일보, 2016년 3월 22일)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854158&memberNo=12475563&vType=VERTICAL

stella.K 2017-06-18 17:58   좋아요 1 | URL
ㅎㅎ 역시 넌 모르는 게 없구나. 박사다 박사!

그런데 물부족 국가가 맞는 것도 같아.
거의 해마다 농촌 지역 가뭄 피해 겪는 걸 보면.
그게 우리나라 농업용수 정책을 잘 못해서이기도 하거든.
그러니까 물부족 국가란 건 비가 안 와서가 아니라
온 비를 잘 관리하지 못해 그런 딱지가 붙는 것이기도 하겠다라구.
안타까운 일이지.
그래도 가뭄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지혜는 무궁무진하더군.

yamoo 2017-06-19 2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에 관한 책이군요! 환경관련 책 중에서 물 관련 책에 대한 내용은 대개 좀 비스무리한 거 같습니다. 어쨌거나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물부족 국가 중 하나로....올해 역시 아주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지요. 고려시대나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현재보다 더 극심한 가뭄이 있다는 걸 역사는 알려주고 있습니다. 물관리 정책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항상 사후약방문 식의 대처만 하는 듯해서 좀 답답하지요. 이를 위해 4대강 공사를 시작했는데...결과는 헬이라는..

stella.K 2017-06-20 13:30   좋아요 0 | URL
ㅎㅎ 결과는 헬.ㅎ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거의 해마다 이맘 때면 가뭄 지역에
얼마의 돈을 투입했다는 둥 말이 많던데
그 얼마의 돈으로 가뭄을 견딜 수 있는 건지,
어떻게 썼는지가 궁금해요.
가뭄은 미리 대비해야 하는 건지 그렇게 닦쳐서 해도 효과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책은 외국의 사례라 우리나라는 어떻게 관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재미도 그닥 없었구요.ㅋ